교원평가를 조건부로 찬성하며

2008-10-18 

[1] 교원평가에 대한 가지 견해

 

1.        교원평가의 취지: 교사들의 능력을 배가시켜 교육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 정부에 추진하는

 

2.        교원평가를 추진하는 정부의 입장에 대한 평가: 교육투자를 통한 교육환경 개선을 하지 않는 정부의 무능과 직무유기를 교사들에게 일정 정도 전가하는 것임.

 

3.        교원평가 수용 여부: 그러나 교원평가는 수용하는 것이 좋다.

3-1     교육환경 개선은 장기적으로 이뤄질 일이어서 계속 추진하여야 하지만, 현재 교육의 질적 개선을 위한 요건 중에 교사가 변해야 하는 부분이 있는데, 교사들 스스로가 변할 있는 교육환경과 교사들의 의지가 모두 취약하다. 여기에 교육계 밖에서 평가를 거부하는 것은 아무리 좋게 판단한다고 해도 교사들 스스로가 평가의 무풍지대로 남으려고 하는 집단 이기주의로 비쳐질 가능성이 상존한다는 것이다.

3-2     게다가 교수평가가 지금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 경우가 사실상 드문데도 역시 교수도 평가받는데 교사가 평가받지 않는다는 것은 이해할 없다는 식의 논리가 통용되고 있으며, 논리가 전적으로 타당하지 않아도 타당성이 없는 것도 아니다.

3-3     평가를 거부하는 것보다는 수용하는 것이 일단 융통성있고 스스로를 겸손하게 드러내는 것이므로 좋다고 본다. 그러면 다른 교육적 사안을 비판하고 대안을 때도 정부나 여론이 보다 호의적으로 반응을 보일 것이다.

3-4     교원평가는 성과급, 다면평가와 맞물려 있어서 평가를 거부하면 성과급도 거부하게 되는데, 성과급도 현재로서는 전면 거부가 어려울 같다. 참에 교원평가 척도를 질적으로 가다듬는 것도 좋다고 본다. , 교육환경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바꿔야 하는가에 대한 대안을 학부모 단체와 교원단체가 공조해서 내는 것이 제일 중요하며, 평가를 수용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교육환경이 개선되어 가르치고 배울 맛을 느끼게 하면 교원평가라는 부적 강화(negative reinforcement) 필요성은 줄어들 것이다. 정부는 바로 점을 못보고 있다.

3-5     원인은 교육환경의 열악함이지만 결과적으로 교사들의 교육에 대한 열정, 독서를 꾸준히 하는 가운데 실력을 연마하려는 의지 등의 면에서 교사들이 차별화되어 대우가 달라져야 필요성이 교육내부에서도 감지된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어떤 교사는 시간 나는 대로 전공별 독서, 수업준비, 자료편집, 학급 아이들 지도를 위한 조언 구하기와 고민 등을 한다. 반면,  일상의 취미에만 관심을 갖는 교사, 시댁과 친정 가족과 아들 딸의 사적 이야기를 틈나는대로 하면서 잡담을 즐기는 교사,  55 나이든 교사에 대해 수업부담이나 업무 시험감독 등을 빼줄 앉아서 사담을 나누거나 인터넷 쇼핑몰을 뒤지는 교사들, 동료교사는 수업과 업무를 하느라 바쁜데 일을 돕고자 하는 생각을 갖지 않는 편협하고 이기적인 성향의 교사들이 분명 존재하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이들이 극소수는 아니다.

3-5-1 교사들이 이렇게 능력과 열정에서 차이가 나는 이유: 교원양성과정에서 현재 임용고시가 시험위주로 되어 있어서 전체를 보는 안목이 부족하게 되어 있다. 게다가 평교사로서 정년까지 가는 것이 대세이며 여기서 교직의 보람을 느끼는 선진국과 달리, 한국의 교직풍토는 부장, 교감, 교장으로 승진하는 데서 우대받는 풍토이다. 그래서 나이들면 승진하려고 하며 과정에서 알차게 전공별 독서와 수업에서 실제 있는 자료개발 등이 소홀해진다.  결혼에 집착하는 사회적 인식과 이로 인해 결혼생활이 우선이고 학교의 공적 업무를 소홀히 하는 경향도 작용한다고 보여진다. 여러 갖가지 교육의 모순을 방치한 교육현실 인식능력과 의지가 부족한 정치인들이 내놓는 편리한 대증요법이 바로 교원평가이지만 다음과 같은 주요 요건들이 개선되면 교육경쟁력을 보다 월등히 살아날 것이다.

 

4.        이제부터 우리가 일을 가지로 요약해 있다.  

4-1 교육환경 개선사업을 위한 본격적인 개혁 청사진을 내는 : (아래 [2] 에서 제시할 것임)

4-2 지금껏 교육투자를 하지 않음으로써 발생하는 문제상황을 드러내는 : 우리나라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어떤 고통을 얼마나 느끼는가를 그래프와 설문지 통계조사를 해서 가시적으로 드러냄으로써 언론에 시리즈로 공표하는 이것은 시민들의 적절한 분노를 자아낼 것이다. 정당한 분노는 정부에 대한 가장 강력한 개혁의 추동의 힘으로 작용할 것이다. 전교조만 외쳐대야 봐야 소용없다. 전교조 좌파에 대한 편견이 심한 척박한 이념적 풍토에서는 더욱 어렵다. 다음 촛불집회는 어른들이 주도해야 것이며 목표는 교육개혁이다.

4-3 교원평가 척도를 질적으로 개발하는 : 이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나 전면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교원평가 척도를 질적으로 개발한 상태를 100으로 우리가 노력하면 60까지는 가능하지 않을까 가정해 본다. 질적으로 노력을 하는 가운데 교사들의 교육에 대한 보다 세밀한 고민이 이뤄지도록 자극할 수도 있을 것이다.

 

[2]  교원평가를 넘어서서 사고해야 한다.

이는  교육경쟁력을 살리기 위한 방안이다. 이것은 멀리 있지 않고 교육환경을 갖추는 상식에 충실할 가능할 것이다. 우리는 지금껏 상식을 외면해 왔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환경을 악화시키고 있다.

 

   학급당 학생수를 평균 20명으로 줄여라! : 한국의 교사들의 오랜 숙원이다.

    행정보조원을 대거 투입하라! : 미국의 어느 학교에서는 행정보조원이 교사 수보다 많은 곳이 있다. 그래서 학교 교사들은 행정업무를 위해 공문을 만지는 일이 거의 없다. 한국의 교사들은 (행정) 공문만지거나 수업시간표 짜기, 연간계획서 만들기, 학생들 인솔하고 각종 행사에 다니기 위해 서류작성하고 영수증 처리하여 행정실에 내기 ….일이 많다. 행정 보조원이 투입되면 이런 일들이 대폭 없어지면서 교사들이 학생과의 대화, 수업자료 편집, 독서, 교과협의회 등이 보다 원활해질 것이며 이는 교사의 실력향상과 교육경쟁력으로 이어질 것이다.

    외국의 학교들 처럼 교과교실전담제에 따라 학생들의 이동수업을 보장해야 한다. : 교사가 전담 교실을 배정받으면 그곳에 각종 책과 수업자료를 비치하여 보다 질높게 수업에 임할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도 전공필수 과목 외에 선택해서 들을 있어 관심도도 높아질 것이다. 학교예산 불요불급한 것을 줄이고 학교 증설에 힘써야 한다. : 교육개혁에 대한 안목을 지닌 교사들을 물색해서 학교 회계 전문가와 함께 학교 교육예산 중에서 어떤 것을 줄이야 하는가를 심도있게 논의하도록 한다. 정부 관리가 교사들을 직접 물색하기 보다는 현장의 개혁성향의 교장, 교감, 교사 그리고 교원단체 임원을 통해서 추천한다. 그리고 교사들을 단계적으로 대폭 증원해야 한다.

    평준화를 손질한다. : 아이들의 이해수준이 다른데 무조건 이질집단의 장점만을 고집할 없다. 이질집단에서 공부 잘하는 아이가 뒤쳐지는 아이를 가르쳐 주면서 협동심의 배가된다는 논리는 타당하지만 모든 과목, 모든 상황에 적용할 사안은 아니다. 과목의 성격과 난이도 등에 의해 동질집단으로 구성될 필요가 있다. 평준화는 단계적으로 해지하되 성적이 뒤쳐지는 아이들에 대해 전문적인 기술교육을 시키는 시설을 갖추지 않는 정부의 무능에 문제가 있다.

    학벌을 타파하고 대학의 서열화를 깨야 한다. : 서울대를 정점으로 해서 줄서는 기막힌 낙후성을 시급히 개선해야 한다. 그래서 시민단체, 학부모 단체, 교원단체가 관철될 때까지 학벌과 대학 간판을 보고 인재를 선발하는 관행을 근절하고 능력에 따라 철저히 선발, 대우하도록 촉구하고 매스컴이 여기에 함께 하도록 한다. 유럽처럼 인근 지역의 대학에서 실력껏 공부하도록 대학 교수와 환경의 양적 질적 고양이 이뤄져야 가능할 것이다.

    실업계 고교의 증설과 교육과정을 기업체와 함께 한다. 그래야 학생들이 현장에서 있는 기술을 연마할 있으며 적정 인력이 바로 기업체에 취업할 있을 것이다.  실업계를 살려야 과도한 입시경쟁이 완화된다. 왜냐하면 기술을 연마해서 보수를 받고 사회적으로 인정해주면 인문계 고교진학 열기는 줄어들 것이기 때문이다. 박정희 시절의 금오공고, 철도공고 등의 명성을 되살려 장인정신을 확산시키지 않으면 안된다. 일본은 장인정신이 살아있지 않은가?

    -- 교사들의 승진열기가 교육경쟁력을 먹는 하나의 요인이다.; 평교사를 대폭 우대하고 교장은 평교사들 중에서 교직경력 10, 교육행정학 석사과정 이수, 부장경력 5, 교육문제 인식과 개선을 위한 경력에 가산점을 주면서 지역 단위학교에서 선발하도록 한다. 지금 과학고에서도 승진열기 때문에 소수의 학생을 선발해서 각종 경시대회에 내보내 단기적인 실적을 내려고 한다. 기초 과학적 소양을 쌓고 장차 노벨상 수상을 기대하며 공부할 아이들이 승진열기의 과정에 참여되는 것은 시급히 막아야 한다. 미래를 응시할 모르는 교육당국자와 교육관행이 참으로 문제가 아닐 없다.

    학기당 이수과목을 평균 7개로 줄여야 한다. 너무 많은 과목을 배우고, 7 교육과정 이후 공부량이 늘어나 학생들의 실력은 깊이를 잃고 있다. 그래서 고교생 중에서 문학, 철학, 역사 등의 고전을 접하는 아이들이 드물다.

    교과협의회를 정부에서 장려하고 간섭을 줄인다. 최근 역사교과서에 대해 교과부가 직접 개입하는 것은 역사성이 부족한 퇴행적 모습이다. 정부는 좌파와 우파가 건강하게 토론하며 학문적이고 지적으로 성장하게 해주어야 하는 역할에 그쳐야 한다.

    교사연구실을 대폭 늘려주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학교내 공간 확보, 이를 위해서는 학교가 많이 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학교 부지 확보를 위해 도심지역의 주택단지를 매입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여기에 예산을 투입해야 한다.

 

[3] 마치며

      교사들이 관심가질 영역으로는 첫째, 시간나는 대로 전공 사회과학 에세이 독서를 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 한국의 교사들이 일에 채이고, 학급운영의 부담, 의지의 상실로 시간나면 독서해야 한다는 사실을 잊는 교사들이 있다.  상황이 교원평가의 필요성을 가중시키고 있다. 시댁 친정, 군대 이야기, 술 먹은 이야기 등 사담을 자주 나누는 교사들에게 동료교사가 우리 볼까요?”하는 말을 없다. 말하면 교사와의 인간관계는 종결된다. 이것은 교사관계가 열린 것이 아니고 닫힌 사회임을 있다.  둘째, 교육문제 인식능력을 교환하기 위해 교육문제에 대해 학교 안팎에서 토론의 기회를 가질 필요가 있다.

      열정과 능력을 기르기 위해 노력하는 교사를 가려내는 작업을 위해 교내에서 평가단 구성이 필요하다. 그리고 교원평가 결과에 대해 본인의 이의제기를 기회를 주고 평가단 3자의 역할을 해줄 교사들을 입회시켜 토론 속에서 교원평가를 마무리한다.

      단위학교 안에서 무능한 교사를 골라내야 필요는 없다. 일반적인 기준을 마련해서 평가하면 것이며, 평가결과는 성과급과 인사이동에 영향을 줘야 한다.

*****전교조 교사로서 교육적인 열정을 지닌 교사가 배제되는 평가척도가 구성되지 않도록 조심하며, 승진구조에 편승하는 교사가 평가에서 혜택을 배타적으로 보는 일이 없도록 역시 평가척도 구성에 유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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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실련은 전교조에서 현재 정진화 위원장이 속해있는 정파입니다. 그들에게 전교조내 유일한 공개 정파인 "새로운 힘"이 던지는 공개 서한입니다.

들어라 참실련이여!

  <참실련>은 전교조가 중요한 기로에 섰을 때 마다 잠시 망설이고 서성거렸지만 늘 <교찾사>를 따라갔다. 7차 교육과정 투쟁 때에도 교원평가 투쟁 때에도 그랬다. 조합원 총 투표제 논쟁 때에도 그들은 그랬다. 잠시 무언가 다른 태도를 보일 듯이 머뭇거리다 막판에 어정쩡하게 조합원 총 투표제를 사실상 포기하며 <교찾사>와 함께 했다.

  그런 의미에서 스포츠 구단으로 따지면 <참실련>과 <교찾사>는 한 구단에 속한다. 그리고 그 구단에 2군은 <참실련>이다. <참실련> 입장에선 다소 억울한 평가일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냉정히 과거를 되돌아본다면 그리 억울할 일도 아니다. 술자리나 사석에서 이러쿵저러쿵 서로 이야기하면서 느낀 감정상의 차이나 혹은 방법상의 차이는 냉정히 빼고 말이다. 감정상의 차이나 방법상의 차이는 한 구단의 1군 2군에도 있다.

  교장선출보직제 등 몇 가지를 우선정책으로 내세웠다고 주장할 런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정책은 전교조가 처한 현실에선 늘 문건 속의 정책으로 끝났다. 전교조 현실에선 7차, 성과급, 네이스, 교원평가가 세상과 부딪히는 전선이었다. 그리고 그 전선의 주도권은 늘 <교찾사>가 만들었고 주도했다.

  따라서 <참실련>을 평하는데 사실 정책은 필요 하지 않다. 그렇다면 무엇을 통해 <참실련>을 들여다보아야 할까? 그것은 그들의 주의주장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이 조직의 중요한 순간에 행한 행동을 따져보는 것이 <참실련>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2000년 전교조선거 때 <참실련> 후보의 슬로건은 <국민과 함께>였다. 그러나 <교찾사>의 ‘7차 교육과정 투쟁 올인 노선’에 모든 것을 내줌으로써 국민과 함께는 커녕 ‘참교육 학부회’ 등 중요한 우군들마저 잃어갔다. 그러나 이 정도만 해도 한 번의 실수로 봐줄만하다. ‘신자유주의’, ‘교육과정’ 담론에 접하며 당황했거나 혹은 아직 내부 정리가 미처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었으니까.

  2004년 선거 때는 ‘국민에게 박수 받는 전교조!’로 후보를 내세운 <참실련>은 교원평가에 대해 애매모호한 태도를 보이면서 국민적으론 교원평가 강력반대 연가투쟁 을 배치했다. 그로인해 국민에게 박수는커녕 삿대질만 받는 꼴을 자초했다. 역시 <교찾사>노선에 충실한 대리인 역할만 한 꼴이다.

  1
2006년 선거 때의 일이다. <참실련>의 가장 주요한 슬로건은 <고립을 넘어>였다. 그리고 선거의 쟁점은 ‘교원평가’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 였다. <새로운 힘>은 학생에 의한 수업평가 제도화로 정부의 교원평가 국면을 넘어서자고 했다. 학생의 수업평가권 확대요구는 전교조의 정신이며 가치라고 했다. <새로운힘>은 교원평가 국면에서 그것이 전교조의 유일한 무기라고 했다.

  <교찾사>는 새힘의 이런 정책을 정부정책 수용론자로 몰아붙였다. 그러나 <참실련>은 <새힘>의 정책에 많은 <참실련> 구성원들이 사실상 동의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의 선거 슬로건이 <고립을 넘어!>로 설정했다는 것은 전교조가 처한 현실을 인식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 핵심에 교원평가가 있다는 사실도 인지했을 것이다. 그래서 하물며 <참실련> 후보까지 개인적인 자리에선 <새힘>의 정책에 동의했다.

  그러나 거기까지다. 그들은 여전히 그 순간에도 자신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행동하지 않았다. 혹 수용 론으로 몰릴까 두려워 더욱 소리 높여 교원평가 반대를 외쳤다. 왜 일까? 이유는 간단했다. 그걸 주장해서는 집권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자신의 집권이 전교조의 가치보다, 전교조의 고립보다 더 중요했던 것 일까? <참실련>의 태도는 늘 그랬다.

  2008년 8월 대의원 대회에서도 그랬다. 당시 <참실련>의 대다수는 MB정권이 전교조 고립화 전략으로 ‘교원평가’를 몰아붙이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교원평가 반대는 최악의 선택이라는 사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교원평가에 대한 입장을 수정하지 않고는 난국을 돌파할 수 없다는 것도 그들은 충분히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언제나처럼 자신의 생각대로 행동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시민사회단체와 그리고 자신 속에서 요동치는 의지를 용기 있게 선택하기보다는 또 다시 <교찾사>눈치와 곧 다가올 전교조 선거에서의 승리를 선택했다. <참실련>은 전교조의 중요한 길목에서 늘 용기 없고 비겁한 행동을 반복 했다. 그 결과 전교조는 지금 매우 어려운 처지에 놓여있다. 단지 몇 가지 잘못으로 지금 전교조의 처지를 진단하는 것은 다소 과도하다고 생각할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전쟁은 결정적인 몇 가지 잘못으로 패한다. <참실련>의 책임이 무겁다.

  늘 그랬다. 중요한 사안에 대해 애매모호한 태도로 쭈빗 거리고 결단의 시기에 이 눈치 저 눈치 살피고, 자기의 생각마저 용기 있게 표현하지 못하는 것이 <참실련>의 현재까지 모습이다. <참실련>이 친목계 모임이 아닌 운동가들이 모여 만든 의견구룹이기 위해서는 자기의견을 있는 그대로 내놓는 용기부터 배워야한다. 선거에 집권하겠다고 뛰어들 때의 용기처럼.

2

대의와 가치 추구보다 집권을 우선하는 행동은 정치꾼들이나 하는 것이지 운동집단

이 할 일은 아니다. 우리가 세상 속에서 운동을 할 때 대의명분과 운동이 추구하는 가치를 최우선으로 삼아 한 발 한 발 가듯이 우리내부를 변화시키는 운동도 그렇게 가야하는 것이 맞다. 그걸 잃어버린 순간 더 이상 운동집단도 운동가도 아니다.

  어쩌면 지금 <참실련>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반교찾사 집권전략이 아니라 자신의 내부를 들여다보는 것이다. 그리고 치열하게 자기정체성에 대한 검증이 요구된다. 그 과정에서 용기도 배워야한다. 전교조의 미래를 결정하는 사안에 대해서는 자신의 정파마저 가벼이 보는 용기, 전교조가 추구했던 교육적 가치를 두고는 교사들하고도 싸울 수 있다는 용기.

  분명한 가치정립과 그것을 행동으로 조직할 용기를 만들어 내지 못한다면 <참실련>의 미래는 언제나 그랬듯이 <교찾사>의 대리인역할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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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천장은 원래 여성들의 고위직 진출을 가로 막는 회사 내 보이지 않는 장벽을 뜻하는 말이다. 겉 보기에는 아무런 차별이 없는 것 같은데도 유독 여성 직장인들만 승진의 최상한선이 있는 현상이다. 여성의 승진을 무언가 가로막고 있는데, 그 장벽은 보이지 않는 것이다.

물론 학교에도 유리천장이 있다. 교사의 60%가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교감, 교장 중에 여성 비율은 매우 미미하다. 하지만 나는 여기서 이걸 지적하려는 게 아니다. 이런 유리 천장을 분쇄해야 마땅할 전교조에서도 유리천장이 있다는 것이다. 다음의 몇몇 사례를 보자.

중학교에서 기술을 가르치는 김OO교사는 전교조 초창기 동료들이 해직되는 것을 보고 의협심이 발동해 후원회 활동을 시작하고, 합법화가 되자마자 가입하고 이후 세 학교를 이동하는 동안, 가는 학교마다 분회장을 하고, 가는 학교마다 학교운영위원으로 들어가는 열혈 활동가였다. 그런데 활동을 거듭하면 할수록 그는 의구심을 느껴야만 했다. 자신과 같은 열혈 활동가도 결국 어디선가 이미 결정되어 내려오는 사업, 투쟁을 단지 내려오는 지시에 따라 이행만 하고 있기 때문이다.

때로는 마치 잡무를 하는게 아닐까 하는 회의감도 밀려왔다. 잡무가 결국 무엇인가? 자기 의사와 무관하게 해야 하는 일이 잡무다. 그는 지구장도, 심지어 지회장도 해보았지만, 그 어느 경우에도 자신의 의사가 전교조의 정책으로 만들어진다고 느껴 본적이 없다. 전교조의 의사결정 기관에 대해서는 전국대의원대회, 상임집행위, 중앙집행위, 중앙위원회 등이 있다고 규약을 보아 알고 있지만, 이상하게 자신은 그런 단위에는 교묘하게 진입이 차단되어있다고 느껴졌다. 도대체 그 자리는 누가 차지한단 말인가? 전교조 초기부터 열심히 활동했던 자신도 결국은 학교 단위에서 서명이나 받고, 성과급 1/n 나누느라 복잡하게 계산이나 해야하는 처지가 되었는데, 전교조의 사업과 투쟁을 결정하는 사람들은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듣기에는 전교조 내에 정파들이 있다고 햇다. 그러나 그는 그 정파들의 이름도 잘 몰랐다. 전교조에 정파가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정파의 이름이 교찾사와 참실련이라는 것도 전교조가 아니라 조선일보를 보고 알았다. 공식적으로, 전교조의 이름으로 정파가 거론된 적은 한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절망적으로 그는 전교조 게시판에 "교찾사는 대체 어디에 계시는 분들인가요?"라는 글을 쓰기도 했다. 그러나 아무도 답변하지 않았다.

2년마다 한번씩 위원장이나 지부장 선거를 하면 그때마다 양 진영 후보가 나오고, 각 후보별 선거운동 본부가 세워진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의 선거운동을 하고 싶어도 누구에게 해야 하는지 알 수 없다. 저 후보들이 어떤 과정을 통해 후보로 나오게 되는지도 알 수 없다. 저 후보들이 위원장이나 지부장으로 당선된뒤 집행부를 구성할때 어떤 통로로 그 작업을 하는지, 자신도 집행부에서 일해보고 싶은데, 어떻게 지원할수 있는지도 알 수 없다. 모든 것이 베일로 싸여 있다.

이렇게 열혈 전교조 활동가 김선생은 지회장 이상으로는 결코 올라갈 수 없는 유리천장을 실감하고 있었다. 도대체 이게 교육민주화를 외치는 조직에서 가능한 이야기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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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 글입니다. 동의하는 내용도 있고, 아닌 내용도 있지만, 일단 교총 해부를 위한 분석틀로서 스크랩해서 여기 걸어 둡니다.


한국교총이 국민들로 부터 비난 받아 마땅한 10가지(12가지)

1. 촛불집회 배후설 제기 : 6월 25일 한국 교총 성명서
교육정책 까지 '미친교육'이라는 반 교육적인 용어까지 동원하여 학생과 시민을 선동하는 일부 세  력들은 교육을 정치투쟁의 수단으로 일삼는 행위를 즉각 중단 하라!! 조중동의 기사를 보는듯한 느낌!!

2. 교총, 한나라당과 교권보호법 추진중 : 학생과 학부모에 의한 교원폭행 사태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어 학부모 학교 출입을 제한하는것을 골자로 하고 있음 . 학부모는 학교장과 해당교사의 동의를 얻어야만 학교 출입이 가능..  교사에 의한 학생 체벌은 모르쇠로일관 하더니., 체벌금지법, 학생 인권법안에는 난색을 표명하더니..
급식도우미하러 오랄때는 언제고.. 맞벌이라 못간다고하니 일당 받고하는 급식 도우미를  소개 해준하고 할때는언제고..
우리 아이가 교사한테 죽도록 얻어맞고 와도 교장이나교사가 동의하지 않으면 학부모는 항의 하러 학교도 못가고 ..  에라이 못된 교총.

3. 성추행 교사등 문제 교사 비호죄 (제 식구감싸기) : 학생들에게 씻을수없는 천인공노할 죄를 짓고도 살아남는 재주가 뛰어난 것은 ? 권력해바라기의 능력

4. 지난대선때는 한나라당 공개적인 지지를 표명한하고 이명박한테 일찌감치 줄섰던 교총은 정치적인가 아닌가?

5. 교총 회장은 한나랑당 비례대표 .. 이건 정치적인가 아닌가를 떠나서 권력 해바라기..

6. 학생 체벌 금지를 반대하는죄 크도다..  체벌이아니라 폭행 수준의 체벌이 다반사.... 폭언은 일상적으로..

7. 학생 두발 자율, 학생 인권법 반대.. 학생은 날마다 줘 패면서 교권만 외치는 집단이기주의의 초절정..

8. 교원정년 연장 법안 추진중 : 청년실업은 안중에도 없고 지 밥그릇 챙기기만 열중하는 죄 ,명박이 당선 되니 지지한 댓가, 본전 뽑기 본격 가동

9. 0교시, 우열반, 심야 보충 학습 사설 모의 고사부활하는 4.15 학교 자율화 ( 자율은 포장뿐!!) 적극 찬성하는 죄. 학생들 달달 볶아대는 선수들!!

10. 불법찬조금, 촌지 적극 조장하는 죄 : 뒷돈이 그리워.. 소년조선, 소년동아 학생들에게  단체 강제구독 강요까지..조선, 동아ㅡ 로비력 끝내 줍니다.

기타
-사립학교 비리 조성죄(사립학교법 개정 반대 투쟁의 선봉장 한국 교총)
- 전교조의 광우병 수업에 대한 비난 성명서 발표 : 7월 2일
전교조의 학교 내외의  광우병 수입 쇠고기 수입 반대 현수막 게시및 가정 통신문송부에 대해 교총은 학교가 정치 선동장이 된다고 전교조이 이런행위를 즉각 중단하라고 요구. 이 또한 조중동 신문을 보는 듯한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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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들에 대한 국민의 불만이 높다. 사실 나는 그 불만도 정상적인 불만이라고 보지는 않는다. 무지한 이기주의에서 비롯된 불만까지 다 들어줄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어쨋든 그렇게 교사들에 대한 불만이 높은 가운데서, 가장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교직단체인 전교조가 욕을 들어먹는 것은 당연하다.

문제는 전교조가 욕을 들어먹는 동안, 정작 수십년간 낙후된 한국 교육의 범인인 낡고, 늙고, 부패한 교원들이 주로 가입한 단체, 한국교총은 슬그머니 뒤로 빠졌다는 것이다. 상당히 많은 일반인들이 사실 전교조보다 교총이 훨씬 더 큰 교원단체라는 것을 잘 모른다. 8만명의 교사들이 가입한 전교조와 16만명의 교사가 가입한 교총 중 누가 공교육 파탄의 책임을 더 많이 져야 하겠는가? 더군다나 전교조는 "잘할 줄 알았는데, 기대만큼 하지 않은 죄인"이고 교총은 "이러한 문제를 만들어낸 장본인이면서, 한번도 반성한 적 없는 죄인"인데, 어느쪽의 죄가 더 무겁겠는가?

이 교총이라는 단체는 그 출범부터도 정치적이고 불순하다. 한국 교총의 전신인 조선교육연합회는 조선교육자협회 등 좌익계 교원단체의 활동을 견제할 목적으로 1947년 11월 23일 설립되었다.  당시 문교부장이었던 오천석이 미국교육회(NEA)를 모범으로 설립을 주도한 만큼, 처음부터 어용, 관제, 친미, 사대라는 오명을 다 뒤집어쓰고 시작한 것이다. 훗날 대한교육연합회로 명칭을 바꾸었다(약칭으로 교련). 이후 전두환에게 장수병풍을 선물하는 등, 어용, 관제단체로서의 역할에 충실하다가 87년 민주화 이후 이를 부담스러워하여 이름을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로 바꾸었다. 그러나 이름만 바꾸었을뿐 그 동안 저질렀던 자신들의 반민주적이고, 어용적인 행태에 대해서는 전혀 사과하지 않았다. 이는 마치 IMF터뜨린 신한국당이 일체의 사죄 없이 당 이름만 한나라당으로 바꾸고 슬그머니 비난을 모면하려 한것과 같다.

전교조가 단체교섭을 개시한 합법화 이후, 전교조를 견제하기 위해 특별법에 따라 정책협의회라는 일종의 교섭권을 획득하게 되는데, 그렇다면 그 이전에 이 단체가 한 역할은 대체 무엇인지 알길이 없다. 결국 전문성 향상 운운이 아니라, 교사들을 통제하기 위한 독재정부의 하수인이었을 뿐이다.

실제 70년대에 이 단체는 거의 유니온숍처럼 모든 교사가 가입하다시피 했다. 본인의 의사를 물어보지도 않고 발령받자마자 자동적으로 가입되어 월급에서 회비 공제하는 경우도 비일비제했다. 교장이 단체로 가입원서 나눠주고 보는 앞에서 작성하도록 하는 경우도 흔했다. 그걸로도 모자라서 승진점수에 들어가는 연구발표대회를 독점 개최한다거나, 혹은 부동산 투기가 한창일때 주택조합을 결성해서 아파트 대박을 내도록 한다거나 하는 떡고물도 던졌다. 그 어느 경우든 간에 이 단체 가입자들은 교육적인 목적에서, 전문성 함양을 목적으로 가입한 경우는 없다고 보아야 한다. 그런 일을 하지도 않고, 그럴만한 사람들이 모여있지도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단체는 교장, 교감, 장학사, 장학관들이 회원으로 가입되어 있다. 단체는 단체고 학교는 학교라야 하는데, 그렇지가 못한 현실상, 사실상 이 단체는 교장, 교감, 장학사, 장학관, 그리고 승진을 위해 이들과 한패가 된 교사들이 주도하고, 그들의 목소리를 반영하고 있다.

지금 한나라당 조차 현행 교장 승진제도가 교육을 왜곡하고 있음을 동의하는데도, 교장공모제를 결사반대하며 이를 저지하기 위해 기를 쓰고 있는 이들의 모습을 보라. 각종 교육개혁을 모두 초를 치고 결사반대하면서 마치 자기들이 아닌양, 전교조보래요 하면서 뒤로 빠지는 이들의 비열한 작태를 보라. 전교조가 기대에 못미쳐서 혼을 좀 내줘야 할 학생이라면, 교총은 그 폐해가 너무도 커서 퇴학시켜야 할 학생이라고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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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사이트는 전교조내 정파중 가장 세력이 세다는 "교육노동운동의 전망을 찾는 사람들", 일명 교찾사의 홈페이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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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edulabour.jinbo.net/

이 주소를 치고 찾아가면 우리를 기다리는 것은 왼쪽과 같은 화면 뿐이다. 즉 아이디와 비밀번호만 치는 창 하나 달랑 뜬다.

도대체 여기가 무엇을 하는 사이트고, 여기 모인 사람들이 뭐 하는 사람들인지 도통 알수 있는 방법이 없다.

회원가입을 누르면 실명과 함께 전교조 소속 지부, 지회, 소속학교, 성명, 이메일 등을 밝히게 되어있다. 그래서 회원가입 신청을 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연락이 오는데, "누구의 초대로 왔느냐?" 하는 것이다. 즉 회원가입이 추천제이며, 기존 회원의 추천이 없으면 가입할 수 없다. 아마 소망교회보다 더 폐쇄적이지 않을까 싶다.

현재 전교조 집행부를 차지하고 있는 "참교육실천연대"의 경우는 더욱 폐쇄적이다. 이들은 비공개 카페를 사용하고 있는데, 어떤 검색에도 뜨지 않는다. 교찾사는 저 홈페이지 회원가입 누르고 연락처 남기면 연락이라도 받을수 있지만 참실련은 아예 어디서 어떻게 해야 참실련이 되는지 완전히 안개속이다. 그냥 우연히 아는 사람 통해서 우연히 간택되는 길 밖에 없다.

아래 사진은 참실련의 자체 연수 모습이다. 보다시피 꽤 많은 사람들이 비까번쩍한 시설에서 행사를 하고 있다. 그런데 이 정도 되는 조직(현수막까지 걸어놓고 있는)이 완전히 안개속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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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조직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것은 정말 기가막히는 노릇이다. 물론 교찾사도 이런 자체행사를 참실련보다 더 많이 한다.

그래서 전교조의 정파갈등은 조직내 정당제도로 볼 수 없다. 정당은 적어도 실체가 있는 조직이다. 예컨대 진보신당의 정파조직인 "전진", 심지어 혁명을 내거는 나름 결사조직인 다함께, 노동자의힘, 해방연대 같은 조직도 공개 홈페이지와 함께 자신들의 실체를 드러내고 있다.

그런데 전교조의 양대정파는 단지 소문으로만 그 존재가 알려질 뿐, 공식적으로는 존재하지 않으며, 그 실체도 전혀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선거때 1번진영, 2번진영 이렇게 불릴 뿐이다.

이렇게 폐쇄되고 가려진 정파조직의 구성원들이 양대 정파를 합하면 1000명 정도 된다. 그리고 양대 정파에 소속되어 있지는 않지만, 정파의 존재를, 그리고 정파 구성원들과 어느 정도 안면이 있는 이른바 활동가들이 또 그 정도 있다. 결국 이 2000명이 전교조의 모든 것을 결정하고 있다. 전교조 본부, 지부의 각종 직책은 물론, 전국 대의원의 절대 다수도 결국 이 2000명이 나눠먹는 형국이 되어있다. 또한 참교육실천대회 발표자와 청중까지도 결국 이 2000명 안에서 나온다.

지금 전교조 지회장이 결원이 될 위험에 처해 있는데, 이는 일꾼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이 2000명 안에서만 일꾼을 찾기 때문에 빚어진 일이다. 대의원대회가 치열한 논쟁을 밤새도록 하고 있어도, 나머지 8만 조합원들은 뭐가 쟁점이 되고 있는지, 뭐가 논의되고 있는지조차 알지 못한다. 이들은 철저히 전교조의 의사소통에서 배제되어 있는 것이다. 결국 전교조는 8만의 조직이 아니라 2000의 조직이며, 그나마 2000중 1000명은 다시 정파로부터 배제되어 결코 조직 의사결정의 핵심에 접근하지 못한다.

필자는 공교롭게도 양대 정파가 모두 자기편으로 판단해서 제법 고급정보를 많이 얻을수 있었는데, 이제는 들통이 났는지, 전교조의 의사결정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에 대한 정보가 몹시 부족해졌다.

나중에 밝히겠지만, 그래도 교육을 이끌 사람들은 교사들이며, 그래도 그 중 나은 사람들이 전교조에 많이 가입해 있다. 그런데 이 나은 사람들의 의사가 반영되지 않고, 그들이 철저히 배제되고 있는 1000명의 결사대가 전교조인 것이다. 이는 전적으로 권력의 독점에 취해 평조합원을 조작과 동원의 대상으로만 여겨온 비밀조직 양대정파의 책임이다. 그리고 이들이 혁파될때 비로소 전교조는 제자리를 찾을 것이다.

이들이 혁파되는 방법은 간단하다. 조합원들이 이들의 존재를 알게되고, 이들에게 그 실체의 공개를 요구할 때이다. 비밀이 벗겨진 정파는 대중조직이 되어 통제를 받거나 아니면 소멸한다. 이 글은 바로 이런 목적에 복무하기 위해 작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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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에 전교조내 운동권 정파들의 경직된 믿음과 그것이 야기한 갑갑한 상황에 대해 개관하였다. 이제 구체적으로 전교조내 정파들의 현황과 실태를 살펴보도록 하자. 이것을 보고 분개할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기가막힐 사람도 있을 것이다. 어쩌면 이 포스트가 조중동 잡것들에게 이용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느 경우라도 다 현재보다는 났다. 어차피 깨져야 할것들이니.

우선 전교조내 정파가 무엇인지 정의하자. 정파란 조합원들 중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여론 주도층, 즉 활동가들이 일정한 사회, 정치적 견해에 따라 모인 의견집단을 말한다. 얼른 보면 사안에 따라 이합집산하는 임의적인 모임 같지만, 뿌리깊은 인맥으로 엮어져서 지금은 단지 의견집단이라기 보다는 마치 조선시대 노론, 소론 같은 단단한 당파로 고착되어 있다.

이하의 내용은 이금자 선생님의 성공회신학대학 석사논문에서 상당부분 따온 내용이다.

그 뿌리는 전교조가 세워지기도 전인 전교협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전교협 건설의 두 주역은 YMCA, 흥사단 등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공개조직과 서울 남부지역에서 서서히 수를 늘려나가고 있던 비합법 지하조직이었다. 아무래도 전자는 시민운동, 개혁운동적 성향이 강하고, 후자는 레닌주의, 좌파적 성향이 강할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들은 전교협 발족까지 그 뜻을 같이한다. 공개조직 활동가들이 주로 대표와 공식적 직함을 맡았고, 비공개조직 활동가들은 각 현장 조직을 감당했다.

이들이 처음 갈라선것은 전교협을 노동조합으로 전환하자는 공개조직파에 대해 시기상조이니 제2교직단체로 출범해야 한다는 비공개조직파가 반대하면서 시작되었다. 그러나 어쨌든 노동조합으로 발족했고, 다 알다시피 가혹한 탄압으로 1500명이 해직되었다. 해직되지 않은 20000여명의 교사들은 자신이 조합원임을 숨기고 활동해야 했다.

이때 비공개조직파를 중심으로 대량해직 사태를 더욱 쟁점화하면서 공세적으로 돌파하자면 20000명의 이름도 다 밝히면서 즉, "어디 다 짤라 봐라!"하면서 밀어 붙여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이를 "비판안"이라 불렀다. 반대로 무리한 투쟁은 그나마 남은 조합원들의 탈퇴를 불러오니 현장  교사대중의 수준과 이해에 맞추어 대중적 지지를 획득해야 한다는 주장이 맞붙었는데, 이를 "기존안"이라 불렸다.  이로써 "과감한 선도투쟁"과 "현장의 대중정서"라는 두개의 대립적인 전술이 분명해졌고, 처음으로 정파라 불릴만한 집단이 이 두 전술을 중심으로 형성되기 시작했다.

이때 기존안에서 다시 분열이 일어났는데, 이른바 10인안 그룹이라 해서, 교원노조가 문제가 되면 교사조합이라는 이름으로라도 합법화를 먼저 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이에 기존안 진영의 나머지와 비판안 진영이 합세하여 이들을 공격하였고, 결국 10인안 그룹(주로 YMCA 출신들)은 기존안 진영에서 분리되어 나름의 인맥을 바탕으로 참교육교사연대(참교연)라는 별도의 정파로 독립하게 된다. 이후 뜻밖에도 "노동조합으로 합법화"가 이루어지며(사실은 비정규직 입법과 교환한 더러운 뒷거래의 결과), 노조사수론을 끝까지 움켜쥐었던 기존안 그룹이 합법화 이후의 주도권을 쥐게 된다.

 자, 족보를 그려보면 이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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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족보를 보면 알수 있지만 공교롭게도 전교협 시절부터 이루어진 인맥이 주장을 달리해가면서 계속 유지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오늘날의 교찾사를 이루는 진영이 시종일관 원칙론과 강경론을 주장하는 반면, 반대쪽 진영은 일정한 경향성이 없이 선거때마다 이합집산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오늘은 일단 이 정도로 해두고, 다음부터 각 정파별로 하나하나 비판해 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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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잡지사와의 인터뷰에서 심상정 전의원이 우리나라 진보진영에 정파는 없고 족보만 있다는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정말 예리한 지적입니다. 정파와 족보의 차이가 무엇일까요? 정파는 언제든지 바뀔수 있습니다. 옳다고 생각하면 같이 가는것이고, 생각이 바뀌면 째지는게 정파입니다. 하지만 족보는 절대 불변합니다. 양자를 가더라도 어디에서 양자를 갔다는 원천기록은 남습니다.

그런점에서 우리나라의 진보진영은 참으로 정파는 없고 족보만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대개 정파는 처음 운동에 발을 들여 놓은 써클의 선배가 누구냐에 따라 결정되고,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대학 졸업후에도 그 정파는 계속 유지되어 나이가 40이 되고 50이 되어도 여기 때라 패가 갈립니다. 조직 내 투표를 할라치면 개인적 선택의 표는 찾아보기 어렵고 우르르 몰려다니는 정파표만 난무합니다. 진보라는 이름을 붙이기가 부끄러울 정도입니다. 87년으로부터도 20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동일한 정파가 그대로 남아있다는게 이게 정파가 아니라 족보라는 첫번째 증거요, 각 정파의 막내가 80년대에는 20대, 90년대에는 30대, 2000년대에는 40대라는 것이 그 명백한 두번째 증거입니다.

그렇다면 어쩌다가 정파가 이렇게 족보가 되고 말았을까요? 그건 우리나라 양대 정파라는 NL과 PD가 이념적 불임상태에 빠져 사실상 정파로서의 생명이 끝났기 때문입니다. 생명이 끝났으니 젊은이들은 더 이상 없고 나이들어 가며 뭉쳐있는 일종의 친목회, 동문회에 불과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 그럴수록  중년의 위기속에 정체성은 더욱 붙들고 싶어서 20년전의 그 이념에 더욱 집착하게 됩니다. 내부 결속은 더 강해지고, 외부와의 소통은 마비상태에 이릅니다. NL과 PD는 원수가 되고 "NL+PD"와 다른 민중들은 아예 다른 차원 사람이 됩니다. 두 정파의 차이가 샛강이라면 두 정파와 일반민중들과의 차이는 가히 은하계가 되었습니다. 차라리 빨갱이라고 욕먹던 시절이 더 나을 지경입니다. 이제는 아예 관심의 대상도 아닙니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요? 자신이 믿는 바를 한번도 의심하지 않는 습관, 자신의 외부의 시선들을 돌아보지 않는 습이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사실 80년대에는 모든 것이 의심스러웠습니다. 군바리들이 정보를 독점하고 온갖 보도통제를 했습니다. (저 역시 보도지침의 잔재에 저항하다 방송사에서 짤린 전력이 있습니다. 그리고 임용고시를 봤죠).  그 시절 비선을 타고 흐릿해질때까지 복사에 복사를 거듭한 타자글씨의 팜플렛들은(심지어는 필사본) 한가닥 진실의 샘물이었습니다. 그걸 돌려보고, 보자마자 불태우면서 "어리석은 백성들은 속고 있지만, 우리는 진실을 알고 있다."는 우쭐함도 생겼습니다. 그리고 아닌게 아니라 그 우쭐함이 실상 운동의 큰 동력이었습니다.  자본론의 번역자가 체포되던 시절(강금실의 전남편이라더군요), 골방에 모여앉아 거친 제본의 자본론을 강독하고, 때론 단파라디오로 한민전 소리도 몰래몰래 들으면서 말입니다.

사실 어느정도 사실이었습니다. TV, 신문만 접하던 민간인(?)들보다 운동권들은 확실히 더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었고, 비선 등을 통해 더 넓은 정보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다만 그러다가 고약한 버릇이 두가지 생겼습니다.하나는 시민들의 상식적인 생각을 무시하는 버릇입니다. 저들은 자본에게, 파쇼에게, 미제에게 세뇌되어, 허위의식에 사로잡혔다, 우리만 진실을 알고 있다라는 생각 말입니다. 또 하나는 우리가 접하는 정보원에 대해 무비판적이 된 버릇입니다. 이 엄혹한 시절에 목숨걸고 전달되는 이 소중한 정보와 사상을 어떻게 의심한단 말입니까? 그 결과 신문에 나오는 사실은 의심하면서도 문건으로 전달되는 정보는 100% 수용하고, 의심이 생기면 오히려 의심이 생긴다는 사실, 즉 "자신의 사상적 허약성"을 자아비판하기까지 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떻습니까? 누구나 금단의 정보를 얻을수 있습니다. 어떤 분은 저에게 미제에게 세뇌된 정보만 접해서 그렇다고 합디다. 하지만 저 역시 그분이 말하는 소위 미제에 세뇌되지 않은 그 정보를 충분히 찾아 봅니다. 물론 원한다면 누구나 그 정보를 얻어 볼수 있습니다. 청소년들 조차 손쉽게 그런 정보를 얻어 보는 것을 보았습니다.  운동권(?)은 더 이상 특별히 더 많은 정보를 가지지 않습니다. 도리어 정보화에 지체되고, 영어등 국제감각에 지체된 80년대의 후예들은 접하는 정보의 폭에서 일반인보다도 협소한게 현실입니다. 그럼에도 시민의 상식을 무시하고, 자신들이 가진 협소한 정보를 "신앙"하는 버릇만 고스란히 남았습니다.

한국 진보진영의 가장 큰 문제는 바로 더 이상 "진보적이지 않고", 도리어 "후미에 쳐져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주제에 시민들을 내리깔며 오만하다는 것입니다.

80년대를 함께 호흡했던 동지 여러분들..(저는 이제 이 동지란 말도 도통 듣기 싫습니다. 어떻게 뜻이 같을 수 있습니까?), 아니 동료 여러분들. 우리 가슴에 손을 얹고 곰곰히 생각해 봅시다. 그 결과가 지금입니다. 지금의 우리 고립, 우리의 무력, 우리의 자괴감이 과연 신자유주의 때문에, 조중동 때문에, 미제의 압박때문에, 순전히 외부에서 비롯된 것입니까? 김현준 선생님 마지막 말씀이 무엇이었습니까? "문제의 근원인 내부를 보라"였습니다.

물론 자신이 믿어왔던 바, 더군다나 수십년 믿어왔던 바를 의심하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하지만 그 믿어왔던 바가 "종교"가 아니라 "이념"이고 "운동"라면, 사실 매 순간 의심해야 합니다. 시민들의 상식적 생각이 우리 생각과 다를때 저들이 세뇌된 것이라는 터무니 없는 오만함도 버려야 합니다.

사실 저는 NL과 PD를 다 거쳐온 놈이고, 지금은 NL, PD 양측에게 모두 원수가 될 작정을 하고 있는 놈입니다. 처음 NL이었다가 뛰쳐나온 이유는 도통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는 식반론, 30년대 항일무투의 일반화, 또한 반민주적인 수령론 등에 대해 질문하자 도리어 질문한다고 집단적으로 화를 내었기 때문입니다.

PD에서 뛰쳐나온 이유는 89년 이후 현실사회주의권의 완전 소멸(몰락도 아니고 소멸입니다. 기억에서조차 사라져 버렸고, 그걸 되살리자고 생각하는 사람마저 없다는 점에서)에서 아무런 교훈도 얻지 못하고 여전히 전위당론, 정투/경투, 통전론 등만 되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한 마디로 두진영 모두 공히 소련과 그 언저리는 모조리 망했고, 북한은 분명 우리가 지향할 목표가 아님이 명백해졌는데도, 즉 제시했던 모델이 이미 소멸했는데도, 미동도 하지 않는 그 경직됨을 우직함과 신념으로 착각하는데 질렸기 때문입니다.

서론은 이 정도 해 두고, 앞으로 NL과 PD의 운동론을 틈날때 마다 낱낱이 비판하려 합니다. 사실상 이미 사회적으로 80년대 같은 영향력을 발휘할 가망이 거의 없어진 저 이념들을(인정할 건 인정 합시다), 굳이 확인사살하려는 것은 저 유령들이 진보를 가로막기 때문입니다. 이미 스스로 무엇을 되게 할 힘은 상실한 저 이념들이, 새로운 무엇이 되는 것은 붙잡고 늘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이 운동입니까? 진보를 가로막는 것을 뚫고 나가는 것입니다. 진보를 가로막는 것이 과거 우리의 신념들이라면, 그것들은 무슨 근거로 진보의 거센 물결앞에 소멸되지 않을 특권을 가진단 말입니까?

"너의 당파성,계급성이 의심스럽다"이런 질문이 혹시 올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대답을 말하자면 나도 의심스럽습니다. 아니 당파성과 계급성이 있을 이유가 뭐람? 이게 제 답입니다. 지금 상태는 진실을 보다 가까이 알기 위해, 데카르트처럼 내가 알고 있던 모든 것을 다 의심하는 단계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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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Casino 12502430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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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원평가가 다시 화급의 이슈가 되었습니다.잠잠하던 교육계에 다시 논쟁의 불분기 시작했습니다. 많은 교사들은 억울해 합니다. 정부가 원하는 그런 계량화, 수치화, 획일화된 평가로 어떻게 교육성과를 재단하느냐며 불만이 대단합니다. 그런데 이 시점에서 참 심각한 의문이 떠오릅니다. 그 억울해하는 교사들이 결국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수치화, 계량화, 획일화된 평가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별안간 바담풍, 바담풍 속담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나는 학생들을 수치화해서 평가할테니, 너희는 우리를 그러지 마라. 나는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수치화된 평가를 하겠지만, 너희는 우리에게 그러면 안된다. 대략 이런 뜻이 됩니다. 누가 봐도 이건 앞뒤가 맞지 않는 궤변입니다.

교사는 자기가 받기 원하는 대우를 학생들에게 해주어야 합니다. 혹은 학생들에게 가하는 대우에 걸맞는 대우를 사회로부터 받아야 하며, 그렇게 될수밖에 없습니다. 학생들을 통제하는 것이 교사의 업무이던 시절, 교사는 통제받았습니다. 학생들을 닥달하는 것이 교사의 업무이던 시절, 교사는 닥달받았습니다. 그러나 학생들의 자유를 개발하는 것이 교사의 업무라면, 교사들은 자유로울것입니다. 학생들을 창조적으로 만드는 것이 교사의 업무라면, 교사들은 창조적 환경에서 일할 수 있을 것이며, 적어도 그렇게 일하게 하라는 사회적 압력을 만들어낼수 있을 것입니다. 학생들에게 가하는 대우는 교사가 받을수 있는 대우의 최대한입니다.

억울해 하는, 피해의식에 가득찬 교사들에게 묻습니다. 그대들은 학생들이 원하는 것을 해 주었는가? 그러면 또 "수요자 논리, 시장논리"어쩌면서 반박할 준비가 되어있는 고집불통의 교사들 모습이 떠올라 머리부터 아파옵니다. 그러나 사회는 교사에게 항상 이 질문을 던질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여기에 답하지 못하는 한, 창조적이고 자유로운 교원정책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아니, 지금 상황은 교사만 자유로워지고 학생들에 대한 대우는 예전과 그대로인 불균형 상태입니다. 그런데 교사들은 그 자유는 지키고, 그 억압은 유지하려하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전교조가 결과적으로 이런 이기적 욕망을 앞장서서 지키고있는 꼴이 되었습니다. 그게 전교조 위기의 원인이며, 욕을 먹는 원인입니다.

해답은 매우 간단한 곳에 있습니다. "아이들이 원하는 것을 해주라!" 그러나 이는 감정적인 내용이 아닙니다. 아이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기 위한 과정부터 매우 지적이고 과학적인 작업을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공부하지 않는 교사는 아이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알지 못할것입니다. 그래서 사실은 자기가 원하는 것을 해주고는 아이들이 그걸 몰라준다고 서운해하고, 그 서운함이 심해지면 복수심과 원한을 품고 사디스트가 되는 것입니다.


일찌기 소크라테스가 말했듯이 악의 근원은 무지에 있음이니... 아렌트가 말했듯이 생각없음은 바로 절대악이니.... 니체가 말했듯이 확신이야 말로 인간을 노예로 만드는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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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전교조를 비판하거나 두둔하는 글이 아니다. 그냥 실상을 그대로 건조하게 기록하는 글이다. 판단은 독자들에게 맡긴다.

전교조 본부나 지부에는 전임자와 상근자라는 두 종류의 직원이 근무하고 있다.

전임자는 전교조에서 근무하기 위해 학교를 휴직한 교사들이다. 이 휴직은 교원노조법에 의해 보장되어 있으며, 휴직기간동안 봉급은 전교조에서 휴직당시 호봉에 맞추어 지급한다. 이들은 휴직기간(1~2년)이 끝나면 다시 학교로 복직한다. 전임자가 되기 위해 휴직한 기간은 호봉승급기간과 경력에 모두 포함된다. 따라서 전임자는 교사가 전교조에 파견근무했다고 보면 틀림없다.

상근자는 전교조가 직접 고용한 직원이다. 상근자는 같은 경력의 교사의 95%의 보수를 받도록 전교조 규약에 못박혀 있다. 필경 이는 해직되었다가 복직하지 못한 교사들을 위한 규정이었겠지만, 이제는 그냥 채용직원들로 충원되고 있는 전교조의 실정과 비교하면 상당히 문제의 소지가 있다. 아마도 각종 시민단체, 노동조합 직원들 중 가장 많은 보수를 받는 것이 전교조 상근직원들일 것이다. 민주노총과 비교하면 거의 두배에 달한다. 게다가 상근직원들은 1년에 연가 15일, 매달 월가, 여름과 겨울에 특별휴가 각 5일씩, 그리고 매년 특정한 달을 지정하여 안식월 휴가 30일 등 근 50일에 달하는 휴가혜택도 가지고 있다. 이 역시 해직교사가 방학이 있는 학교생활과 비슷한 리듬을 유지하라고 배려한 것 같지만, 다른 시민단체, 노동조합과 비교하면 정말 파격적인 대우가 아닐수 없다. 그래서 이들은 신이내린 직장을 넘어 신도 부러워하는 직장이라고 불리는데, 그 내막은 나중에 다시 말하겠다.

어쨌든 이렇게 전임자와 상근자가 본부에는 합하여 근 50명, 16개 지부에 각 4명 정도씩 근 100명 정도 된다. 게다가 이들 100명은 모두 직책이 화려하다. 전교조는 가히 직책의 인플레이션이라고 할만한데, 우선 본부에 위원장, 부위원장 이하 사무처장과 각 실장들이 있다. 각 실장들 휘하에 상근직과 전임자가 서너명씩 배당되는데, 이들의 직책은 모두 국장이다. 따라서 전교조 사무실에서 국장이라고 하면 최 하급 직원이라고 보면 틀림없다. 간혹 신규채용 직원이나 비정규직 직원이 채용되기도 하는데, 그렇게 되면 이들의 직책은 부장이다. 나이 스무살 경리직원이 "부장님"소리 들을 수 있는 유일한 직장이 아마 전교조 사무실일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본부와 지부의 직책이 같다는 것이다. 본부뿐 아니라 각 시도 지부에도 똑같이 사무처장과 각 실장들이 있다. 그래서 마찬가지로 최하위 직원은 부장이다. 전교조 사무실은 그래서 수많은 국장들과 약간의 부장, 꽤 많은 실장들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서라도 이렇게 불리면 기분 좋을지 모르지만, 이들 수많은 부장, 국장, 실장의 인건비로만 연 40억 가량이 소모되고 있다. 세상에 인건비로 수십억을 쓰는 NGO는 대한민국에 하나도 없을 것이다. 이렇게 많은 인건비를 쓰고, 이렇게 많은 부장님, 국장님들을 모시고 있는 전교조가 교원평가 대안 하나 변변히 내놓지 못하고 우왕좌왕하고 있는 것을 보면, 조합비 그만내고 싶다는 생각이 욱 하고 치미는 것은 인지상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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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기사다. 한겨레, 시사인에 이어 경향신문까지 교원평가와 관련한 전교조의 방침에 지지할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했다. 교원평가 반대는 우군이 없음이 분명해진 것이다. 아, 우군이 있다. 바로 교총이다. 생각해보라. 교원평가의 가장 큰 피해자가 누구겠는가? 늙은 교사 모임인 교총이다. 교원평가 반대같은 집단이기주의의 오해가 가능한 그런 사안에서는 교총을 앞세워야 하고, 개혁적인 사안에서는 전교조가 앞서야 했는데, 포지션이 잘못되어 완전히 교착되고 말았다.(이하 기사)

‘교원평가제’를 둘러싸고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갈등을 빚고 있다. 전교조는 일단 논란의 당사자인 현인철 대변인의 사표를 8일 수리해 내홍을 정리하겠다는 입장이다. 시민사회단체들은 “곪을 대로 곪은 갈등이 불거진 것”이라며 사태를 주시하고 있다.

발 단은 현 대변인이 지난달 한 시사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사견임을 전제로 교원평가에 찬성하는 취지의 발언을 한 데서 비롯됐다. 현 대변인은 “학교 내에서 학생들은 성적경쟁에 내몰리고 있는데 학부모들은 교원평가를 통해 교사수준을 높이기를 요구하고 있다”며 “이 같은 학부모와 학생의 의견을 수렴하지 않는다면 소통을 거부하겠다는 것 아니냐”고 밝혔다.

전교조가 폐쇄적인 ‘그들만의 리그’로는 지지층을 넓히기 어렵다는 것이다. 전교조는 공식적으로는 정부의 교원평가방식에 반대한다는 입장이다. 지난 7월 서울시교육감 선거 당시 전교조가 지지한 주경복 후보가 낙선한 주 요인도 학부모들이 요구하는 교원평가제에 미온적 입장이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상황은 전교조에 녹록지 않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교원평가는 참여정부 때의 ‘절대 평가’보다 더 강력한 내용으로 법제화가 추진되고 있다. 뉴라이트 계열 단체에서는 ‘상대 평가’를 승진·보수와 연계하는 방안을 요구하고 있다. 교육과학기술부는 이달 말에 확정안을 내놓고 오는 11월쯤 국회에 제출한다는 계획이다.

일단 정부안이 확정되면 한나라당이 과반인 국회 통과가 유력하다. 정부와 서울시교육청이 좌파성향의 전교조에 대해 연일 강공을 펴는 점도 이 같은 전망에 무게를 싣는다.

전교조 고위 관계자는 이런 상황 때문에 현 대변인의 발언이 부적절했다고 지적했다. “정부의 초강력 안이 준비되고 있는 시점에서 이전 정부의 교원평가제 기준을 논의하는 것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것이다. 2004년 참여정부 안에 대해서도 ‘교원의 승진·퇴출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고 지적해온 전교조로서는 이명박 정부 안은 더욱 ‘논외’ 대상이다. 이 관계자는 “국제중, 영리학교법인 등 이명박 정부의 공격적인 교육정책이 쏟아져나오는 때에 교원평가제를 거론해 조직역량을 떨어뜨린 것은 조직을 해치는 행위”라고 고개를 저었다.

전교조 내에서는 교원평가가 노선 대립의 핵심 현안인 만큼 이번에 합리적인 접점을 모색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김정명신 함께하는교육시민모임 공동회장은 “학부모들 사이에 교육의 질을 높이는 수단으로 교원평가 도입요구가 있다는 현실을 전교조가 무조건 무시할 상황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지난 서울시교육감 선거를 거치면서 교육운동 진영 내에서는 전교조의 역할에 대해 비판이 많고, 정파싸움에 휘말린 전교조가 이제 한계에 달한 것 아니냐는 회의론도 있었다”고 전했다.

학부모단체인 참교육학부모회 윤숙자 회장은 “기본적으로 학생을 위한 교원평가가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이라며 “힘으로 밀어붙이는 정부와 무조건 반대하는 전교조가 극단적인 대립으로 치달으면 피해를 입는 것은 현장의 학생들”이라고 우려했다.

<최민영기자 m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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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는 교장이 있다. 전교조에는 위원장이 있다. 현재 한국 사회 지형에서 이들은 서로 상극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남이 쓴 글을 읽는다는 것이다. 즉 각종 공개적인 행사에서 남이 쓴글을 폼나게 읽으면서 연설한다는 것이다.

교장이야 워낙 내가 이 블로그에서 자주 밝혀놓은것처럼 찌질대는 듣보잡질을 해야 될수 있는 것이니 그렇다고 치자. 그런데 그런 왜곡된 교육현실을 비판하는 대안집단의 수장인 전교조 위원장이 똑같은 짓을 한다는 것은 좀체 납득하기 어렵다. 심지어는 이미 작성된 연설문의 의미를 제대로 몰라서 더듬거리는 것까지 똑같으니 탄식이 절로 나온다.

도대체 이들은 왜 연설문을 작성하지 않을까? 그러고보니 한국에서는 어떤 단체든 그 단체의 "어른"즉 "장"은 무슨 일이든 직접 하는 것을 아주 부끄럽게 생각하는 것 같다. 장은 남이 깔아준 멍석에 가장 마지막에 등장해서 카메라와 스포트라이트만 받는게 너무 당연시되었다. 단체의 모든 영광과 자랑스러운 순간은 장에게 집중되고, 온갖 나쁜 일과 자잘한 비난과 힐난은 담당자에게 쏟아지는 것 역시 너무도 자연스럽게 정착되었다. 이런 일을 개혁하고자 만든 전교조조차 이런일을 반복하는 것을 보면 참으로 뿌리깊은 문화가 아닐수 없으며, 전교조 활동가 역시 헤겔의 말을 빌리면 즉자적 존재를 결코 벗어나지 못했음을 자인하는 꼴이 되고 말았다.

필자 역시 전교조 위원장을 위해 몇 편의 연설문을 써주었다. 참으로 심혈을 기울여 쓴 감동적인 연설문이 남의 이름으로 건성으로 읽힌뒤 소모품처럼 사라지는 것을 보는 것은 참으로 슬프고 불쾌한 일이다.

요즘 전교조가 동네북이되고 있다. 시사인, 한겨레에 이어 경향신문에서조차 전교조를 비판하고 있다. 가히 우군이 없다고 해야할 지경이다. 그건 전교조가 나빠서가 아니라 기대에 미치지 못해서 쏟아지는 질타일 것이다. 이 위기를 어떻게 벗어날까? 먼저 지도부, 특히 위원장이 직접 일하는 것 부터 시작해야 한다. 위원장이 직접 연설문을 작성해야 한다. 홀로 조용한 공간에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고, 그것을 어떻게 대중들에게 설득력 있게 풀어 나갈까 고민한다면, 그 속에서 전교조 혁신의 필요성과 그 방안은 저절로 떠오를 것이다.

전교조 위원장에게 간절히 고한다. 연설문을 직접 작성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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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여전히 걱정과 고생이 많으시죠? 도대체 왜 우리 노고를 몰라주고 공격만 하는지 안타까우시죠? 하지만 드릴 말씀은 드려야겠습니다. 물론 저 역시 전교조 간부인지라 누워서 침뱉기지만, 그래도 침은 입안에 있는 것보다는 얼굴에 묻는 것이 더 낫습니다. 닦을 수 있으니까요.

정부는 합법화 이전에는 전교조의 주장을 그냥 무시하지 못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전교조의 주장을 중심으로 여론이 형성되었기 때문입니다. 비합법 시절에는 지구장(위원장-지부장-지회장-지구장-분회장 순서죠?)조차 유력인사 대접을 받아서 지역 신문에 나기도 하고 그랬습니다. 그렇게 무시하지 못할 힘이 합법화를 이끌어 낸 동력이었습니다. 그런데 합법화 이후에는 서서히 정부가 전교조를 무시하기 시작했습니다. 한때는 임명장도 받기 전에 교육부 장관을 반대 성명 하나로 교체할 수 있었던 전교조는 이제 더 이상 없습니다. 지금은 지구장은 커녕 지부장도 그냥저냥한 사람 취급 받습니다. 합법화 이전이나 이후나 이명박 이전에는 정부가 큰 차이가 없다고 봐야 합니다. 그렇다면 변수는 전교조에 있습니다. 물어보아야 합니다. 왜 합법화 이전에 오히려 더 영향력이 있었나?

전교조가 언제 대안을 내지 않았냐 볼멘소리를 합니다. 네, 전교조에서 나온 각종 정책은 총론부터 각론까지 산더미 같습니다. 하지만 그러면 뭐합니까? 아무도 그것을 하고있지 않는 걸. 단지 정책안에 불과하지, 정작 교실에서 학교에서 하고 있는 활동이 승화된 것이 아닌걸.

비합법 시절에는 교사들이 먼저 움직였습니다. 그래서 학교가 먼저 변했습니다. 전교조 본부는(당시는 본조) 제일 나중에 말했습니다. "봐라. 선생님들이 이렇게 하지 않느냐?" 합법화 이후에는 거꾸로 되었습니다. 본부가 먼저 말합니다. 지부가 말합니다. 분회장에게 공문이 날아옵니다. 전교조는 이러자, 저러자고 말하는데, 실제 조합원 교사들이 그걸 바라는 것인지, 그럴 단초가 있기나 한 건지 의심받기 시작합니다. 그 이러자, 저러자도 항상 총체적이었습니다. 국가의 교육 제도 전반을 뒤집어야 가능한 것들이었습니다. 그런걸 "관념적"이라고 합니다.

그러는 동안 전교조 교사들은 "국가 교육제도가 이런데, 나 하나 뭐 해서 바뀌겠어?"하는 환원론자가 되어갔습니다. 말은 복잡하고 감동적으로 하지만 결론은 항상 "입시교육철폐","교육과정전면개편"이 되었습니다. 그럼 그 동안에 전교조 교사들은 학교에서 무엇을 할것이며, 하고 있는가에 대한 이야기는 사라졌습니다. 이제 전교조 교사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습니다. 그냥 교사에 불과하게 되었습니다. 그나마 단협 이루어지기 전까지는 학교의 이런저런 관행에 맞서 싸우기나 했습니다. 그러나 단협으로 이런것도 깨끗하게 해소되었습니다. 그리고 상층부가 해결해주며 조합원은 돈만내는 구조로 바뀌어갔습니다.

비합법시절 전교조의 업적은 주로 필부필녀 조합원 교사들의 세세하고 소박한 실천들의 집대성이었습니다. 그런데, 합법화 이후 전교조의 연구실적은 거의 대부분 상층부 활동가들이 머릿속에서 끄집어 낸 것들입니다. 참교육실천대회에 논문들이 몇트럭분씩 나옵니다. 하지만 그 수준은 해가 갈수록 낮아져서, 이제는 거의 유명무실해져서 이 행사를 계속 존치할 이유가 있는가 까지 논의되고 있습니다.

여러 선배님들! 조합에 대한 애정과 긍지가 자칫 냉정한 현실을 외면할까 작은 걱정이 됩니다. 지나온 과거는 참으로 아름답고 자랑스럽지만, 그건 과거입니다. 과거는 단지 지워버리는 것이 아니라 계승하고 발전시켜야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부정"의 과정이 필요합니다. 일단 부정 해서 그 외부로 눈을 돌린 뒤, 부정했던 그 과거의 유산을 한 계기로 포괄할수 있는 새로운 전체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하여, 이제부터 제가 여러분들을 부정해 드리려고 합니다. 부디 널리 혜량하여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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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전교조 본부간부로 1년간 일한 적이 있다. 전교조 본부는 영등포에 민주노총이 있는 건물에 있다. 말이 민주노총의 산하조합이지, 건물에서 차지하고 있는 사무실의 면적이나 굴리는 예산은 도리어 전교조가 더 큰 규모를 자랑했다.

그런데, 민주노총 산하의 모든 사무실의 공통점이 있엇다. 그것은 바로 자욱한 담배연기였다. 특히 금연건물이라는 팻말 앞에 버젓이 흡연용 소파와 재떨이 까지 설치해놓고 있었다. 심지어 회의실에서도 담배들을 피워대었다. 여기에는 거친 금속노조나 소위 배웠다는 전교조나 차이가 없었다.

하도 답답해서 전교조 본부에서 근무하는 전임자(교사로서 파견나온 사람들)의 흡연율을 조사해 보았다. 2007년 당시 전교조 본부 전임자는 무려 31명이었다. 사실 이것도 문제다. 최소한 12억 이상이 본부  전임자 인건비로 나간다는 뜻이니... 상근직원들 인건비까지 포함하면....

어쨌든 주제로 돌아와서 이 31명의 전임자(말하자면 핵심 전교조 교사라 할 수 있다)들 중 흡연자의 수는 무려 21명이었다. 67%가 넘는 흡연율! 이건 한국의 성인 남성 평균을 웃돌 뿐 아니라 제3세계 빈민층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흡연율이다. 교사의 흡연율로는 믿을수 없는 수치다. 게다가 이건 남녀 합친 수치다. 남성 전임자만 따로 분류해 보면 모두 25명중 19명이 흡연자였다. 76%라는 놀라운 수치가 나온다. 이 정도면 전교조가 아니라 끽교조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정확한 통계는 나와있지 않지만 한국의 남자교사들의 평균 흡연율은 30% 내외일것으로 보인다.)

담배를 피우는 것은 자기 자유며 뭐라 할수 없다. 하지만 전교조 활동가라는 변인과 흡연율이라는 변인이 정적인 상관관계를 이루는 것은 뭔가 문제가 있다. 특히 이들 끽연가들은 금연장소, 비흡연자가 있는 장소에서 거리낌없이 담배를 피운다는 점에서 거의 노숙자나 다름없는 매너를 보인다.

교사는 담배를 피우라고 가르치는 입장이 아니다. 도리어 끊으라고 가르치는 입장이다. 그 이유도 무슨 규율 따위가 아니라 건강에 매우 해롭기 때문이다. 내몸 내가 망치는데 무슨상관이냐는 식의 반응은 교육적으로 매우 바람직하지 않다. 그러니 끊어도 시원찮을 담배인데, 통상적인 교사들보다 몇배나 더 높은 흡연율을 보인다면, 참으로 문제가 아닐수 없다.

불굴의 의지와 투혼을 자랑해왔던 그들이다. 그렇다면 담배를 끊으라. 담배를 이기지 못하면서 무엇과 싸워 이길수 있겠는가? 해로운줄 알면서도 이기지 못해 담배를 끊지 못하는데, 해로운줄 알면서 학업성취도 평가, 입시교육 하는 다른 교사나 학부모를 무슨 근거로 비난할 수 있겠는가? 심지어는 담배가 해롭다는 것은 서양식 사고방식이며, 민족의 전통은 남녀노소가 담배를 피우는 것이라는 궤변까지 늘어놓으면서 담배를 부둥켜 안고 있으니, 또 담배와 관련된 언급만 나오면 신경질을 내며 공격적인 반응을 보이니 이는 중독증의 전형적인 현상 아닌가?

전교조가 단지 이익집단, 단지 노조가 아니라 참교육을 주장하는 교육운동 단체라고 말할 수 있으려면, 그 어떤 집단보다도 고결해야하고, 품위있어야 하고, 지성적이라야 한다. 담배를 피우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고통을 주니(피우고 난 다음에도 그 냄새는 한동안 몸에 남아서 공기를 더럽힌다. 흡연자는 잘 모르는 사실이다) 고결하지 못하며, 일개 중독성 물질에 매달려서 시름과 고민을 해결한다고 핑계를 대니 품위도 없고, 몸에 해로운 것을 버젓이 알면서도 나만은 예외겠지 하는 어리석은 생각을 하니 지성적이지도 않다.

그러니 전교조는 먼저 담배부터 끊어야 할 것이다. 참고로 나도 2004년에 17년간 피웠던 담배를 끊었다. 단 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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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공간에서는 전교조에 대한 비판을 별도의 독립적인 카테고리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오해 하지는 말아야 할 것이, 이 공간에서 전교조 비판을 중요시 하는 것은 뉴라이트 등등에서 말하는 것처럼 교육을 망치기 때문에 비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한 가지 분명히 해야 할 것은 교육을 망치는 쪽은 교장, 교감, 교장단회의, 교육청, 그리고 그들과 검은 커넥션을 이루고 있는 교육관료와 사교육업체들이지 결코 전교조가 아닙니다. 전교조가 비판 받아야 하는 이유는 교육을 망쳤기 때문이 아니라, 교육이 망가지는것을 막지 못했기 때문이며, 교육을 더 좋게 만들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잘못했다가 아니라 더 잘하지 못했다고 비판받는 것이 너무 부당할수도 있지만, 그것은 애초에 전교조가 약속하고, 그 약속 덕분에 한때 수많은 시민들의 정신적, 물질적 후원을 받았기에, 더 잘하지 못했다면 당연히 비판받아야 합니다.

사실 이 비판에서 저 역시 자유롭지 못합니다. 저 역시 여러 차례 분회장을 지냈고, 심지어 본부 간부까지 지낸, 소위 전교조 활동가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만큼 더 많이 비판받아야 하고, 그 만큼 더 많은 대안을 생산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가지고 이 공간을 채워 나가려 합니다.

비단 저 뿐 아니라 전교조에 대하여 따끔한 말이 필요하다면, 누구라도 이 공간을 채우는 공동 필진에 가입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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