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그 요지경 세상'에 해당되는 글 32건

  1. 2008/12/09 [부정변증법] 사교육 문제보다 먼저 쓰레기 같은 교장, 교감 부터 해결해야 한다. (1)
  2. 2008/12/08 [부정변증법] 교장 탄핵 - 이 사건을 계기로 한국 학교의 교장의 정체가 알려지길
  3. 2008/12/06 [부정변증법] 아, 결국 안으로 굽은 팔
  4. 2008/10/24 [부정변증법] 정신건강이 위험한 교사들, 그리고 미쳐가는 교감, 교장 (1)
  5. 2008/10/11 [부정변증법] 영재교육도 망치는 교사 승진제도(퍼온 글)
  6. 2008/10/06 [부정변증법] 교장 되기(Becoming pricipal)
  7. 2008/10/01 [부정변증법] 교사의 전문성을 위하여(예전에 썼던 글)
  8. 2008/09/25 [부정변증법] 기간제 교사 -학교의 치부 (8)
  9. 2008/09/17 [부정변증법] 교사대생의 위험한 이데올로기
  10. 2008/09/17 [부정변증법] 교장만 되면 발뻗고 잘줄 알았더니
  11. 2008/09/16 [물쟁이] 교훈비-송공비?그들만의 리그 ,블랙센스(2) (1)
  12. 2008/09/15 [부정변증법] 수석교사제에 대하여(작년에 썼던 글)
  13. 2008/09/14 [부정변증법] 교사들의 대화 소재
  14. 2008/09/12 [부정변증법] 교감은 대체 뭐하는 사람인가?
  15. 2008/09/08 [물쟁이] 그들만의 리그, 블랙센스 (1)
  16. 2008/09/07 [부정변증법] 교사가 학교에 등돌리는 나라(매일경제)
  17. 2008/09/06 [부정변증법] 장학사, 연구사, 이건 또 웬 듣보잡 (1)
  18. 2008/09/05 [부정변증법] 학생 인권유린은 어디까지? -학교라는 괴물(퍼온 기사)
  19. 2008/09/04 [부정변증법] 비교육적 공간, 교무실
  20. 2008/09/03 [부정변증법] 승진병 환자들의 최대 격전지 -연구점수
  21. 2008/09/02 [부정변증법] 승진하려면 교사이기를 포기해야 하는 현실(2)
  22. 2008/09/01 [부정변증법] 승진 하려면 교사이길 포기해야 하는 현실(1) (2)
  23. 2008/08/30 [리틀윙] 중간놀이 시간 (1)
  24. 2008/08/30 [부정변증법] 기능직이나 보내줄 것이지....
  25. 2008/08/29 [부정변증법] 뇌물 부르는 근무평정. 대책없는 교장제도(펌 기사)
  26. 2008/08/28 [물쟁이] 천국의 아이들 (1)
  27. 2008/08/28 [부정변증법] 부장님, 실장님이라고 부르면서 스스로를 모욕하는 교사들 (2)
  28. 2008/08/28 [부정변증법] 교감 삐치다 (2)
  29. 2008/08/27 [부정변증법] 교장 및 현행 교원승진제도의 모순을 극명하게 보여준 사례(한겨레 펌 기사)
  30. 2008/08/26 [부정변증법] 그럼, 교감은 또 워 하는 자리일까?

광주의 모 초등학교에서 교장의 폭언과 횡포를 견디다 못한 교사들이 집단으로 반기를 들었다. 연줄, 연줄로 꽉 짜여지고 군기와 서열을 중요시하는 광주지역의 특성상 정말 어지간했다보다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서 어찌어찌 하여 서울에 올라온 그 지역 출신 교장, 교감들이 교사들에게 무리하게 마구 권력을 휘두르려다 저항과 냉소에 부딪치며 그들은 그들대로, 교사는 교사대로 상처받는 안타까운 현실이 또 눈에 밟힌다.

서울지역에는 교육적으로나 학문적으로나 아무 업적, 하다못해 형식적인 업적조차 없이 교감 승진한 농어촌 출신 교사들이 있다. 이들은 각종 꼼수를 총동원한 사람들이다. 그들이 동원하는 꼼수란 주로 농어촌 벽지 근부 가산점을 챙겨서 승진점수를 따는 것이다. 그래서 그 점수가 충분히 쌓이면 서울로 전보 내신을 내서 어떻게든 서울로 올라오는 것이다. 그러면 얼마 지나지 않아 서울지역 학교의 교감이 될 수 있다. 서울 토박이 교사들이야 농어촌 벽지 점수 따위가 있을 턱이 없으니 소위 승진점수에서 밀리는 것이다.

혹자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그들이 남들이 근무 기피하는 농어촌 지역에서 봉사했으니 그 정도 댓가는 받아야 하는게 아니냐고... 남들이 기피? 지나가던 이메가가 웃을 일이다. 지방 학교에서는 농어촌 벽지 근무를 서로 못해서 난리다. 그래서 농어촌 벽지 근무를 위해  시도 장학사에게 연줄이라도 닿아 보려고 술판을 벌리기 일쑤다. 그렇게 농어촌 벽지 근무를 하게 되면, 그래도 농어촌 교사 유인책은 된다고?

천만에... 그런 그들이 농어촌 벽지 학교에서 제대로 근무를 할 턱이 없다. 여전히 집은 도시에 두고 승용차로 출퇴근만 한다. 친절하게도 도교육청에서는 기름값까지 보조해준다. 그렇게 벽지학교, 농어촌 진흥 학교 따위만 이리 저리 골라다니면, 그런 학교에서 수업이야 어떻게 하든간에 근무하는 개월수만큼 승진 가산점이 착착 붙는다. 그러니 지방에서 교사가 승진하려면 연줄과 선후배간의 위계는 필수다. 조금이라도 연고가 있으면 달라 붙어서 형님, 아우님 하면서 술판 벌려야 한다. 이렇게 엉성한 사생활을 하니 낮에 제정신일 턱이 없다. 수업은 귀찮다. 수업이 귀찮을때 제일 좋은 방법은 학생들을 마구 두드려 패서 조용히 시켜 놓는 것이다. 더군다나 지방은, 특히 호남지방은 교사의 폭력에 대해 비교적 관대하다. 마구 조사버리면 되는 거다. 이렇게 이들은 교사시절부터 학생들에 대한 폭력, 폭언과 웃사람에 대한 아부를 몸에 익힌다.

그러다가 교감이 된다. 달라진건 오직 하나다. 바로 아래에 학생이 아니라 교사가 있다는 것. 그래서 이들은 교사에게도 서슴없이 폭언을 행사한다. 만의 하나 이들이 서울에서 교감이 되면, 상당한 저항과 냉소에 부딪칠수 있겠지만, 지방이라면 이 역시 그러려니 하고 넘어간다. 교장은 교사들의 불만과 모욕감을 알면서도 교감이 스스로 악역을 담당하며 군기를 잡아주니 모르는 척 넘어가 준다.

이런 인간들이 이제 교장이 된다면? 눈치 볼 상대도 하나 없는 교장이 된다면? 학생이나 교사는 전혀 자신에게 의미가 없고, 오직 교육청의 어르신들에게만 잘보이면 되는 그런 교장이 된다면? 그러니 광주 모 초등학교 같은 사태가 벌어지는 것이다. 이건 근본적으로 잘못된 제도다.

사교육 문제? 교육 시장화 저지? 다 필요없다. 먼저 저 쓰레기 같은 교장, 교감들(70%는 쓰레기일것)부터 쓸어버릴 생각을 해야 한다. 그들을 쓸어버릴수만 있다면 교원평가든, 뭐든 다 받아들일 용의가 있다.

☆ 글쓴이 소개☆
부정변증법님의 글입니다.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트랙백 주소 :: http://chamedu.hosting.paran.com/trackback/57

뉴시스에서 퍼온 기사입니다.

 
광주의 한 초등학교 교사들이 교장의 상습적인 언어폭력과 비민주적 학교운영에 반발, 교장 탄핵에 나서 파문이 일고 있다.

7일 광주 W초교에 따르면 이 학교 남녀 교사 61명은 최근 "매일같이 되풀이되는 교장의 욕설과 상식을 넘어선 감시활동, 비민주적 학교경영을 더 이상은 지켜볼 수 없다"며 광주시 교육청에 교장 교체를 요구하는 진정서를 제출했다.

이들이 제출한 자필 연대서명에는 교장과 교감, 휴직 교사를 뺀 1-6학년 전체 교사들이 참가했으며, 교총, 전교조 등 교원단체 일부 교사는 물론 교원단체에 소속되지 않은 일반 교사들도 상당수 포함돼 있다.

개별 교사들이 교장의 독단적인 학교운영이나 비위 사실 등에 대해 투서나 진정을 제출하는 경우는 간혹 있었으나, 전체 교사들이 집단 행동에 나서기는 매우 이례적이다.

이들은 진정서에서 "지난 9월 새로운 관리자(교장)에 대한 기대와 설레임으로 시작한 새학기가 안타깝게도 교장의 계속되는 폭언과 고성, 교직원들을 무시하는 일방통행식 학교경영으로 지울 수 없는 상흔만 남게 됐다"며 교장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교사들은 대표적인 문제점으로 ▲교사에 대한 인격모독과 욕설 ▲결재 지연으로 교장실 앞 복도에서 길게는 2-3시간 기다리는 진풍경 ▲매시간 교실순회 등 과도한 감시로 인한 수업침해 ▲임산부 교사에게 결재판 투척 ▲전출 희망교사에 대한 결재 지연과 반성문 강요 등을 거론했다.

한 교사는 "인격모독과 반복되는 언어폭력, 입에 담지 못할 욕설 때문에 교사로서 지켜온 자부심이 깡그리 무너졌다"며 "일부 여교사들의 경우 과도한 심적스트레스로 정서불안 증세마저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교사들은 진정서와 별개로 교장의 폭언과 비민주적 학교경영 사례를 한 데 모은 사례집을 만들어 교육 당국에 실명으로 제출할 계획이며, 교장 교체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전 교직원을 다른 곳으로 전보조치해 줄 것을 요구하는 배수의 진도 쳤다.

이에 대해 해당 교장은 "일부 교사와의 갈등은 있을 수 있으나 이를 공론화시키거나 공개적으로 문제삼은 적은 없었다"며 "교사들의 편의주의적 복무관행에 대해 일일이 지적하고 쓴소리를 한 것이 반발을 산 것 같다 같다"고 말했다.

이어 "가뜩이나 위계 질서가 무너지는 상황에서 기관장인 교장이 교사가 원하는대로 다 할 수도 없는 노릇 아니냐"며 "(욕설이나 고성의) 원인 제공도 교사들이 먼저 했다"고 해명했다.
☆ 글쓴이 소개☆
부정변증법님의 글입니다.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트랙백 주소 :: http://chamedu.hosting.paran.com/trackback/56

서울의 강남지역에 있는 어느 중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전해 들었다. 이야기는 이렇다.

그 학교에 새로 교감이 왔다. 전라남도에서 죽 교사생활을 하다가 서울에 올라와서 교감이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교감은 상식이하의 교감이었다. 교감이라기 보다는 거의 시정잡배에 가깝다고 한다. 교무실에서 큰소리로 교사들에게 호통을 치며, 전혀 문제되지 않는 사소한 사안을 가지고 고집을 부리며, 무슨 회식이든 간에 공짜로 술 먹을 수 있는 자리면 꼬박꼬박 찾아가서 고주망태로 꼬장을 부렸으며, 기간제 교사들과 젊은 여교사들만 골라서 호통을 치고 마치 학생부 교사가 문제아 대하듯이 무례한 언동을 일삼았다. 당연히 학생들에게도 함부로 대해서 여학생의 복장을 지도한다는 미명하에 치마를 들추고, 탁구채로 뺨을 치기까지 하였다. 이런 무뢰한이 어떻게 교감이 되었나 했더니, 전라도에서 근무하던 시절 각종 벽지근무 점수를 미친듯이 수집했다고 한다. 참으로 해괴한 승진제도를 가진 나라에서나 볼수 있는 풍경이다.

모든 교사들이 그를 미워했다. 그가 참석한다고 하면 회식이 취소되었으며, 교사들 셋 이상만 모이면 으레 화제는 교감 흉보는 것이었다. 심지어는 교장조차 그 교감의 무례한 언동에서는 예외가 되지 않았다. 교장이 여자라는 이유로 그 조폭 스타일의 교감은 멋대로 행동했고, 전혀 통제가 되지 않았다. 어쩌다 교사가 교장과 상의하여 어떤 일을 처리하면, 교감인 자기 무시했다고 마구 행패를 부렸다. 게다가 그는 무능했다. 무능하기 때문에 교육청 장학사에게 무시당했으며, 그러니 무슨 승진점수 될만한 프로젝트도 따오지 못했다. 그래서 교감임에도 불구하고 승진에 목마른 승진병 환자들, 점수병 환자들과도 사이가 나빴다. 승진병 환자들과 사이가 나쁜 교감이니 거의 할말 다 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어느날 그 학교를 몇 해 전에 졸업한 졸업생이 졸업증명서를 떼러 찾아왔다. 그 졸업생은 소위 양아치였기 때문에 아주 보기 드문 복장을 하고 있었다. 그 졸업생이 재학생인줄 알았던 이 무뢰배 교감은 느닷없이 졸업생에게 "이 새끼가 복장이 이게 뭐야?" 하면서 귀싸대기를 한대 올려 붙였다. 느닷없이 봉변을 당한 졸업생이 자기가 학교 다닐때 보지도 못했던 교감에게 얻어맞고 참을 턱이 있겠는가? 마침내 둘 간의 몸싸움이 벌어졌다.

이 때 해괴한 일이 벌어졌다. 그 동안 그토록 교감을 미워했던 교사들이 일제히 교감 편을 드는 것이다. 심지어 그 졸업생이 첨 보는 교감에게 가격당한뒤 반격했다는 사실을 들어 "교권이 땅에 떨어지고, 교사할 맛이 안나고"운운을 하기 시작했다. 이 사건을 보고 제보자는 참담함을 느꼈다고 한다. 교감이 함부러 폭력을 휘두르다가 제대로 한껀 걸렸구나, 이렇게 생각이 드는게 아니라 교권의 무너짐으로 생각한다는 것은, 그 동안 교감의 무뢰배짓을 인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학교의 일이라는게 항상 그렇다. 아무리 무지한, 무식한, 그리고 거의 범죄수준의 교사나 교감, 교장이 있더라도 막상 그들이 학생, 학보모, 여하튼 학교 밖의 누군가와 부딪치게 되면 갑자기 놀라운 단결력을 보여준다. 가재는 게편인가? 초록은 동색인가? 평소에 똥같이 여기던 작자와 같은 편이 된다면 결국 스스로를 똥으로 만드는 것일텐데, 교사집단은 그 점에서는 늘 한결같은 반응을 보인다. 여기에는 전교조 교사도 예외없다. 심지어 부정비리 사학의 재단 앞잡이 교사라도 학부모와 대거리를 벌이면 거의 교사편이 된다. 참으로 한심한 노릇이다.

혹자는 누워서 침뱉기 해서 뭐하냐고 하면서 이런 꼴을 정당화 시킨다. 그러나 누워서 침뱉기를 두려워하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내가 지금 누워있는 자리가 제자리가 아니라면 누워서 침뱉기라도 해야 한다. 그래야 그 자리를 떠날 마음이 생기지 않겠는가? 누워서 침뱉지 않는 교사, 학교, 참으로 암담하다.

☆ 글쓴이 소개☆
부정변증법님의 글입니다.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트랙백 주소 :: http://chamedu.hosting.paran.com/trackback/55

당신의 자녀가 정신병자의 손아귀에서 깨어 있는 시간의 대부분을 보내고 있다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 당신은 자녀가 영리하고 유능한 정신병자와 둔하고 무능한 그러나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 중 누구와 함께 시간을 보내기를 바라는가? 당연히 후자일 것이다. 그러나 학생도, 학부모도 누구도 여기에 대해서는 신경을 쓰지 않는다.

많은 심리학자들은 인간의 정서적 건강이 매우 불안하고 예민한 균형상태에서 유지되고 있음에 동의하고 있다. 특히 자아의 존재론적 안전감은 그것을 지켜주는 든든한 배경이 무너질 경우 정처없이 흔들리게 된다. 이렇게 존재론적 안전감이 위태로워질때 자아는 본능적으로 만사를 자아의 안전을 위해 재배치한다. 즉, 정신적 정당방위를 시도하는데, 그 과정에서 타인들에 대한 세심한 배려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존재론적 안전감의 배경에는, 공유되는 신념, 반복되어 온 관행, 자연, 전통, 가족과 같이 비교적 영속적인 친밀한 관계 등이 있다. 즉 아무리 풍파가 닥쳐와도 큰 변화 없이 의존할 수 있는 그런 문화적, 사회적, 심리적 대상들이 있다.

그러나 오늘날 이런 것들 중 그 어느 것도 안전하지 않다. 최근의 요동치는 금융 위기는 안전하지 않은 현대의 상징이다. 어떤 변화에도  불변이었던 재산의 상징이었던 "금"과 같은 상품은 존재하지 않고, 브레턴우즈 체제 붕괴 이후 "달러"도 한낱 유동성이 되었다. 그 어느 가치도, 제도도, 관행도, 가족관계도 안전하지 않다.

학교는 그 동안 비교적 안전한 공간이었다. 입시교육이라는, 그리고 관료주의라는, 권위주의라는 불변의 관행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모두 위협받거나 해체되고 있다. 해체되는 관료주의 하에 교사들은 스스로 생각할 필요 없이 그저 따르기만 하면 되었던 각종 관행들이 무너지는 것을 체감한다. 이제 교사들은 권위와 관행이라는 버팀목이 사라진 상황에 스스로 적응해야 한다. 학생들에 대한 권위는 스스로 만들어야 하며, 학생들과의 친밀감도 저절로 생기지 않아, 늘 협상하고 타협하고 감정노동을 해야 한다. 물론 그 과정에서 상처도 받아야 한다.

특히 여기에서 몸부림을 치게 되는 존재들은 교감, 교장들이다. 이들은 과거처럼 단지 교장, 교감이라는 이유만으로 내리게 된 네크로필리아적 명령들이 번번히 반발과 항의에 부딪치는 상황을 견디지 못한다. 결국 명령이 관철되기는 하지만, 그것은 교사들이 인간적인 감정이 더 악화되는것이 싫어서 마지못해 하는 것이지, 과거와 같은 복종이 아니다. 교장, 교감들 역시 그것을 잘 안다. 명령이 떨어지면 즉시 "예"하는 교사들이 아니라 앙앙불락한 얼굴로 마지못해 하는 교사들과 계속 같은 공간에서 얼굴보며 생활하는 것은 결코 유쾌한 일이 아니다. 이들은 딜레마에 빠진다. 교직원들이 심리적 안전감을 주는 공동체가 되려면 교장, 교감의 권력이 무너져야 한다. 그 권력을 지키려면 자신을 적대시하고 백안시하는 수십명의 교사들 가운데 섬처럼 존재해야 한다.

이런 상황은 교장, 교감들을 자기도취적 장애 상태로 이끈다. 그리하여 이들은 난초, 바둑 같은 개인적인 취미에 탐닉하거나, 아니면 교사들을 괴롭히는 가학성 변태행위에서 쾌감을 추구하거나, 아니면 상황이 어려워질수록 더욱 더 자신의 아집에 집착한다. 이로써 이들은 완전히 자아를 상실하고, 정서적으로 망가진다. 이런 정서적 망가짐은 수시로 솟구치는 분노의 형태로 내장되며, 이는 많은 교장, 교감들을 시한폭탄 같은 존재로 만든다. 문제는 교사들 역시 학생들을 상대로 이런 상태에 처해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학교의 교무실이란 시한폭탄들로 득실대는 무시무시한 장소다. 여기서는 멀쩡한 사람도 상처받기 십상이다.

어쩌면 이것이 공교육보다 사교육을 신뢰하는 이유중 하나인 것 같다. 직접 누가 해 본적은 없지만, 아마도 학원 강사들이 학교 교사들보다 정서적으로 더 건강할 가능성이 크며, 이는 경력이 길어질수록 더욱 그럴 것이다.
☆ 글쓴이 소개☆
부정변증법님의 글입니다.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트랙백 주소 :: http://chamedu.hosting.paran.com/trackback/53

  1. Subject: 선생님이 시킨대로 했을 뿐인데...... 손이 발이된 중학생의 사연

    Tracked from 가장 힘든때 무엇을 결의하고 어떻게 행동하는가 이것으로 인생은 결정된다. 여기에 인간의 진가가 있고 위대함이 있다. 2009/07/05 17:09  삭제

    둘째놈 입원한 병원에 가는 중에 처형이 들려준 첫째놈의 근간의 일을 들려주었습니다. 듣고보니 "아하! 그게 그런 사연이 있는 아이스크림이었구나" 우리가족에게만 재미있는 사건일지는 모르지만 소개합니다. 부반장의 역직에 대한 애착 첫째놈은 중딩1학년입니다. 부반장이기도 하구요. 그런데 부반장이라는 자리가 나름대로는 자신을 아이들로 부터 지탱해주는 유일한 버팀목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래서 임기가 6개월이면 이번달에 재선출해야하고 떨어지면 자신을 아이들..

일본에서 올해 노벨상 수상이 4명....이것은 충격이 아닐 수 없다.

학교교육이든 사회교육이든, 정부의 방침이든....우리와 비슷하면서도 상당히 다른 일본으로부터 우리는 진정 배우고 있는가?

일본을 능가하는 미래의 비젼을 우리는 구상하고 있는가? 답답한 상황이다.

일제고사, 성과급, 다면평가 등 수면 위에 떠오르는 거품같은 문제들에 집착하는 정부를 보면서....

또 이와 상대하지 않을 수 없음을 인정하나 여전히 전교조도 정부의 방침에서 시야를 떼고 저 멀리 개혁안을 내고 근본개혁을 촉구하면서 국민에게 알리는 작업을 하지 못하고 있다.

학급당 학생수 20명 안쪽으로 줄이기, 행정보조원 대거 투입, 교과교실제(이동수업), 학벌타파의 구체적인 대안, 학력인플레를 완화시키기 위한 실업교육 정상화, 승진의 왜곡된 열기를 바로잡기 위한 노력 등 구조적인 개혁의 물줄기를 타지 못하고 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며, 지금껏 그래왔다.

어제 어느 지역의 과학고에 근무하다 올해 내가 있는 학교로 전출온 50대 중반 가까운 연령대의 선생님이 말한다. "과학고에 근무하는데 거기서는 각종 수학, 과학경시대회 등에 아이들을 출전시키고 실적을 내는 정도에 따라 교사를 비교하고, 그리고 각종 수상경력 등은 실적이 되어 교사의 근평에 영향을 주고, 교사 자신도 출품해서 점수 따고....스트레스가 많더라구요. 승진을 위해서 과학고의 아이들도 일종의 희생을 치르고 있어요. 승진구조 이대로는 안되겠는데....다른 대안이 없으니 또 응하고 있습니다."라고 한다.

과학고도 취지와 어긋나게 기초 과학영재를 키워내는 것이 아니라 당장 실적내는 각종 경시대회에 내보내고, 학벌사회의 정점에 있는 서울 연고대에 보내며 우리의 인재들은 과학분야의 기반을 다질 기회를 상실케 하고 있다. 그래서 노벨상은 더욱 멀어지고 있다.....

이제 훌륭한 교과부 장관이 나오기를 기대하는 것은 그만두어야 할 것 같다. 바로 전교조가 먼저 국민들에게 교육개혁을 제대로 하지 않은 결과가 어떤 것인가를 중심으로 각종 통계자료, 인터뷰 자료 등을 토대로 국민 즉 시민단체에 알리고 대대적인 교육개혁 운동을 벌이지 않으면 희망은 없을 것 같다. 늘 지리멸렬하게 이렇게 정권의 정책에 따라 물결에 따라 표류하며 일렁이는 가운데 떠내려가듯이 우리의 교육은 그렇게 갈 것 같다.

해외유학, 조기유학 등은 계속 늘고... 교육후진국이라는 불명예는 무겁게 우리를 누른다. ......*

☆ 글쓴이 소개☆
부정변증법님의 글입니다.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트랙백 주소 :: http://chamedu.hosting.paran.com/trackback/51

아, 이건 교장으로 승진하기라는 의미가 아니다. 승진을 해서 부임한 교장이 어떻게 교장이 되어가나라는 뜻이다. 즉, 이른바 교장단 회가 가지고 있는 사회화 기능에 대한 짤막한 고찰이다. 실제로 전교조 출신 공모제 교장들이 가장 힘들어 하는 것도 이른바 교장단회에서 따돌림을 받고, 그들과 어울리기 힘들다는 것이다.

전교조 출신은 아니지만, 내가 무척 좋아했던 퇴직 교장이 있어서 한번 물어 보았다. 도대체 신임 교장들은 어떤 식으로 교장의 관행을 배우는가? 그 분의 입에서 토로된 기가막힌 사례들은 이렇다.

1) 처음 교장단 회에 나가자 퇴직이 얼마 안남은 노련한 교장이 선배 노릇을 하며, 이것 저것 가르쳐준다며 귀찮게 굴었다. 그런데 그 이것 저것이란 어떻게 이중장부를 잘 활용해서 각종 공사, 기자재 납품 등에서 돈을 남겨 먹을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분은 그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서는 하도 복잡하고 듣기도 더러워서 기억하지 않았다고 한다.

2) 그 분이 또 선배 교장들에게 들은 비법은, 법인 카드를 이용해서 친지들 대접하기였다. 자기 돈 내서 식사하는 교장은 바보라는 말까지 들었다고 한다. 물론 각종 경조사 비용도 자기돈으로 내는 교장은 바보 소리 듣는다고 한다.

3) 그럼 교육자로서 학교 운영자로서 교장의 비법과 노하우는 전수되는가 물어봤더니, 그런거는 거의 없고, 기껏 모여서 하는 이야기가 누구네 학교는 전교조가 많아서 힘들다더라, 전교조 잡는 법은 분회장에게 승진점수 메리트를 주면서 꼬시는 거라더라 등등의 것들이라고 했다. 그리고 각종 교육 예산의 헛점을 이용해서 해외여행 나갈 궁리들을 하더라는 것이다.

간혹, 교육적 마인드에서 진지한 대화를 꺼내 보는 교장이 있기도 하지만, 그렇게 했다가는 "교장 처음 해보나?" 하는 이상한 반응에 직면하기 일쑤라고 한다. 교장단회의... 도대체 그 안에서 오가는 이야기를 누가 몰카로 녹음이라도 했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하긴 견제받지 않는 권력은 썩을수 밖에 없으니.....
☆ 글쓴이 소개☆
부정변증법님의 글입니다.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트랙백 주소 :: http://chamedu.hosting.paran.com/trackback/50

교사의 전문성 신장을 가로막는 장벽들


절박한 과제로서 전문성 신장

  먼저 교사의 전문성 신장이 절박한 이유부터 짚어보면서 시작하겠습니다. 아무리 아니라 우겨도 교사의 대우가 평균을 넘는 것이 사실입니다. 문제는 그것이 과잉보상이라는 견해가 사회적으로 보편화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컨대 사람들은 교사보다도 대우가 좋은 교수나 의사를 부러워하기는 합니다. 하지만 그 일들을 “당장 할 수 있다.”고 감히 생각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교사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웬만한 교육을 받은 성인들은 교사 정도의 일은 당장이라도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들 보다 좋은 대우를 받는 교사를 곱게 보아 넘길 수 없는 것입니다. 지금 사회적으로 유통되는 교사의 이미지는 무능한데도 평균이상의 월급을 받고 노동자들의 절반만 일하는 집단입니다. 이런 분위기에서 교사가 지금 같은 대우를 계속 유지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과분한 대우를 포기하던가 아니면 그만한 대우를 받을만한 합당한 자격이 있음을, 아니 더 좋은 대우를 받아도 모자람을 당당히 선언하던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절박한 상황에 와 있습니다. 우리는 당연히 후자를 선택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스스로 전문성을 신장하고 이를 내어 보임으로써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교사의 전문성은 단지 전공 지식이나 교육학에 기능적으로 숙달되는 것 이상의 것이라야 합니다. 이는 무수한 지식의 네트워크에서 학생들에게 가장 도움이 될 수 있는 것들을 선택할 수 있고, 그것에 적합한 교육방법을 선택, 구상할 수 있으며, 학생들이 새로운 지식과 방법을 생산자로 설 수 있게 이끌 수 있는 그런 능력입니다. 이러한 전문성은 당연히 오랜 연구와 교실에서의 실천경험이 필요하며, 일반인은 물론 전문 연구자도 쉽게 넘볼 수 없는 능력입니다. 교육의 이러한 전문성을 끈질기게 연마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사회에 드러낼 때 우리에게 가해오는 부당한 압력과 비난은 중단될 것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많은 교사들이 적극적으로 전문성을 신장하고 보기는 어려운 것이 현실입니다. 하지만 이를 마냥 교사들의 안일과 나태로만 몰아세울 수는 없습니다. 부지런하고 의욕적인 교사들마저 중년기가 되면서 지치고 냉소적이 되면서 안일과 나태의 대열에 합류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교사의 전문성 신장을 가로막는 여러 구조적 장벽들이 있는 것입니다. 이 장벽들은 교사 집단 바깥에서 형성된 사회적, 제도적 장벽일수도 있고 교사집단 내부에 형성된 문화적, 관습적 장벽일수도 있습니다. 간단하게나마 이런 장벽들을 한 번 짚어봅시다.

  전문성 신장을 가로막는 외부의 장벽들

  부족한 기자재

아무리 유능한 의사라도 청진기 하나 쥐어주고 암을 치료하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교사의 전문성 역시 그것을 발휘할 수 있는 하드웨어의 제약을 받습니다. 교실에 빔프로젝터가 있고 없고에 따라 수업을 구상할 수 있는 범위가 달라지면, 냉방시설이 있는 교실과 없는 교실의 수업은 하늘과 땅 차이가 납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 학교의 실태는 비참합니다. 시설은 낡고, 시대에 뒤떨어졌으며, 경직되고 비대한 관료제로 인해 업그레이드도 매우 더디며, 학교간 편차도 심합니다. 학교의 각종 시설환경은 흡사 ‘타임캡슐’을 연상시킵니다. 그나마 신형의 시설과 기자재가 공급되어도 설치되는 그 순간부터 활용보다 분실·파손 방지, 관리 철저 등등의 잡무가 되어버립니다. 적극적으로 활용되는 시설과 장비는 고장이 나고 파손되는 것이 정상이지만, 이런 정상적인 생각을 갖추기에는 학교관리자라는 지위가 너무 비정상적입니다.

  전문성 신장에 적대적인 공간

교사들의 공간적 환경은 전문성 신장에 최악이며 적대적입니다. 교무실 배치를 보면 최소한의 공간을 사용하여 최대한의 교사를 몰아넣으려는 목적 외에는 없어 보입니다. 이런 공간에서는 연구도 휴식도 불가능하며 그나마 비좁은 공간을 컴퓨터가 차지한 다음부터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행정사무 아니면 인터넷 쇼핑뿐입니다. 초등 교사들은 교실을 연구실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지만 이는 궁여지책에 불과합니다. 개별 연구실이 어렵더라도 교사전용 도서실, 세미나실 등만 있어도 교사문화가 전문성에 친화적으로 바뀔 것입니다. 사실 이런 공간이 설치되어 있는 학교가 있긴 하지만 이 경우도 활용보다는 관리에만 신경 쓰느라 잠겨있기 일수입니다.

  유인동기 부족

전문성 신장을 교사 개개인의 열정과 윤리에만 맡겨두는 것은 낭만적 생각입니다. 전문성 신장은 노고와 비용을 요구하며, 유인동기가 없다면 일부 열정적 교사들을 제외하면 자발적으로 나서기 어려울 것입니다. 아시겠지만 우리 학교는 전문성을 신장해도 별 이득이 없고, 하지 않아도 별 손해가 없는 체제입니다. 전문성 신장의 유인동기가 없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전문성은 승진에도 아무런 기여를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전문성 신장이 경제적 보상, 명예, 승진에도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소수의 특별한 교사를 제외하면 자발적으로 전문성 신장에 나서지 않을 것입니다. 그나마 교육당국이 제공하는 얼마 안 되는 전문성 유인 동기는 주로 부정적 보상에 의존하려 들거나 쥐꼬리만한 혜택을 주면서 그것을 빌미로 산더미 같은 간섭을 하려들어 교사의 자존심을 손상시킵니다.

  행정사무와 낡은 관행

교사가 행정사무까지 보는 것은 교사의 전문성 뿐 아니라 행정직원들의 전문성도 손상시키는 최악의 조합입니다. 사실 교사 전문성 신장의 첫 걸음은 행정사무를 하지 않는것에서 시작되어야 합니다. 교사가 행정사무를 담당하는 것은 행정 비전문가인 교사가 각종 행정사무를 적당히 나눠가지는 것은 행정직원에게도 모욕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행정업무를 행정직원이 전담하게 되면 비로소 그들은 쓸데 없는 불합리한 잡무를 분석하고 이를 간소화, 합리화 하려는 노력을 할 것입니다. 즉 행정 전문가가 되는 것입니다. 반면 교사는 교실에 집중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지금까지 행정 잡무는 무능한 교사들의 도피처였습니다. 아무리 엉터리로 수업을 해도 공문서 몇 장 처리하면 용서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행정 잡무가 사라지면 무능한 교사가 도피할 영역이 없기 때문에 도리 없이 교실에 집중해야 합니다.

  남성의 지배의 문화

교사들의 대다수가 여성입니다. 따라서 젠더 문제를 고려하지 않고는 교사문제를 다룰 수 없습니다. 많은 여교사들이 교사와 주부라는 2중 지위를 가집니다. 그런데 주부라는 지위가 전문성 신장을 위해 사용되어야 할 소중한 시간을 빼앗아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남성에 비해 여성은 전문성 신장을 위해 시간을 사용하기가 어렵습니다. 많은 여성들이 남는 시간에 각종 가정유지 노동을 해야 합니다. 부부교사가 아닌 경우 여교사가 배우자에게 동등한 가사노동을 요구하는 경우가 그리 많지 않은 것입니다. 그런데 여교사의 배우자들이 대체로 여론주도층이라는 점이 더욱 문제입니다. 불행히도 많은 여교사들은 대기업에 다니는, 혹은 전문직인 배우자 앞에서 자신의 일이 그들이 하는 일 보다 더 어렵고 사회적으로 중요한 일이라는 확신을 심어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교사 하느라 아이에게 신경을 못 써서 미안하다고 말하는 여교사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배우자인 전문직 남성들은 직장에서 두고 온 자녀에게 미안해 하는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그 결과 남성들이 주류를 이루는 직종은 열정과 패기로 전념하는 이미지가 형성되고, 여성들이 주류를 이루는 교사는 주부가 적당히 겸직해도 되는 정도의 일이라는 이미지가 만들어집니다. 이것은 실로 무서운 이미지입니다. 이 마음속의 불평등을 극복해야 합니다. 전문성 신장의 장벽은 가정에서부터 제거해야 합니다.

 

전문성 신장을 가로막는 내 안의 장벽들

  지금까지 전문성 신장을 가로막는 장벽들을 살펴보면 제도적이거나 문화적인 것이라 교사 자신에게는 문제가 없는 것 처럼 착각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실상 외부의 장벽 못지않게 교사들 스스로 가지고 있는 전문성 신장의 장벽도 만만치 않습니다.

  자유를 번거로워하는 타성

주로 중년층 이상의 교사들의 성장을 가로막는 주된 이유입니다. 사실 전문직은 자율성을 가질 수 있지만 그것을 위해 치뤄야 할 책무성이란 비용을 요구합니다. 사실 수업을 스스로 구상해서 실시하는 것은 매우 고들픈 일입니다. 그냥 정해진 교육과정과 교과서에 따라 기계적으로 반복하는 수업이 훨씬 노고가 덜 드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니 편하게 정해진 수업만 하고 남는 시간을 여흥과 쇼핑으로 탕진하는 교사들의 수가 많은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 안락함은 자율성을 포기한 댓가, 즉 노예의 안락함입니다. 물론 교사를 부러워하는 시선이 전문성보다 노예의 안락함에 끌렸기 때문인 것이 현실입니다. 어쩌면 젊은이들 중에는 이 노예의 안락함을 누리기 위해 열심히 공부해 교사가 된 사람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지금 교사에 대한 좋은 대우는 사회적 합의가 되지 않은 비정상적인 과도기에 불과합니다. 노예의 안락함에 안주하고 있는 교사에게 지금과 같은 대우를 하는 것은 사회적 낭비입니다. 하루에 4~5시간 정도만 노동하고, 1년의 1/3이 휴가인 이유는 남는 시간동안 전문성을 신장하라는 것이지 놀거나 쉬라는 것이 아닙니다. 1999년 캐나다 교원노조의 투쟁 슬로건이 “하루 1시간의 공강시간 확보!”였음을, 레이건 시절 미국 교사들이 하루 45분의 비는 시간을 지키기 위해 치열하게 투쟁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하루에 2~3시간씩 남는 시간을 의미없는 웹서핑, 싸이질, 수다 등으로 탕진해도 되는 이런 비정상적인 상태가 얼마나 더 유지될 수 있을지 의심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교육학 소비자주의

교육학은 이미 완결된 매뉴얼이 아니라 구체적인 교육을 통해 수정, 보완, 발전되어야 하는 일련의 실천입니다. 따라서 교육학과 수업은 구별되지 않으며, 교육학자와 교사도 구별되지 않습니다. 교실은 단지 교육학이 적용되는 공간이 아니라 생성되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많은 교사들이 교육학을 배우고 익혀야 할 완성된 교수-학습 패키지로 인식하는 경향이 많습니다. 그래서 부지런한 교사들조차 교육학의 생산자가 아니라 소비자로 머물러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그나마도 창조적으로 변화, 발전시키기 보다 기계적으로 적용한 뒤 “역시 한국 현실에는 이런 수업이 안 돼.”라며 지레 포기해버리기가 일쑤입니다. 그래서 젊어서는 다양한 교수-학습을 시도해 보다가 나이 들어갈수록 단순 강의형에 안주해 버리는 불행한 루틴이 반복됩니다. 그러면서 학교 현장을 모르는 교육학자들의 탁상공론을 비판합니다. 하지만 학교 현장을 아는 교육학자가 달리 있을 수 있겠습니까? 교사 외에 누가 학교 현장을 알겠습니까? 그러니 교사가 교육학의 소비자인지 생산자인지의 답은 분명해질 수 밖에 없습니다.

  행복관의 부재

이런 분도 있을 수 있습니다. “당신이 말한 것이 옳다고 치자. 하지만 난 수업 대충 하고, 월급이나 받고, 남는 시간을 쇼핑하고, 친구만나 수다 떨고 사는 것이 더 행복하다. 무엇 때문에 아무 보상도 없이 스스로를 힘들게 만든단 말인가?” 물론 이는 매우 영리한 선택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삶의 태도에서는 행복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행복은 모두가 자신의 타고난 본성을 실현할 때 도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타고난 본성보다는 외부에서 강요된 기준에 따르도록 강요받으며 성장했습니다. 교사인 우리 역시 잘못된 교육의 희생자입니다. 우리는 무의식 중에 외적인 행복을 추구하는 습관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외적인 행복은 결과를 얻으면 얻을수록 새로운 욕망을 생산하는 허무한 행복입니다. 만약 미결정적 주체인 아동들이 타고난 본성을 실현하며 성장하는 과정에서 얻는 행복에 공감하는 그 아름다운 경험을 한 번이라도 겪는다면, 우리는 저 허무한 행복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프뢰벨은 아동의 교육은 잘못된 교육을 받은 어른이 자신을 고칠 수 있는 치유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원자화 경향

최근 성실하고 진취적인 젊은 교사들일수록 자주 토로하는 고민이 너무 일이 많고, 힘들고, 바쁘다고 합니다. 수업 준비하는 것도 벅차고, 처리해야 할 업무도 산더미처럼 보이고, 면담은 또 어찌해야 할지 깜깜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고민하는 교사들의 공통점은 이 모든 것을 홀로 한다는 것입니다. 홀로 자료 준비하고, 홀로 면담 준비하고, 홀로 업무를 처리합니다. 동료나 선배는 단지 고충을 토로하고 동정심이나 공감을 얻어내는 대상일 뿐, 함께 공부하고, 함께 준비하는 모습을 찾기가 어렵습니다. 하지만 지식은 소통과 공유를 통해 생성되지 결코 고독한 은둔을 통해 형성되지 않습니다. 안다는 것은 행함이며 행함은 곧 말하는 것이고, 말함은 곧 공동으로 행함입니다. 그래서 공자는 혼자 밤을 새지 말고 스승에게 말하라고 했던 것이다. 그런데 불행히도 최근 교사들의 원자화되는 경향이 강해집니다. 전교조 역시 과거와 같은 공동의 실천단위가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물론 전교조가 시대에 뒤떨어졌다고 비판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대체할만한 새로운 실천단위가 나온 것도 아닙니다. 이렇게 공동의 실천맥락에서 떨어져 나온 개체화된 인간은 아렌트의 말을 빌리면 모두 “잠재적인 나찌”입니다. 우리는 나찌들에게 전문성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전문성의 새로운 정립을 위하여

  지금까지 교사의 전문성 신장이 필요한 이유, 그리고 그것을 가로막는 장벽들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사실 그 동안 전문성이라고 하면 막스 베버가 말한 “차갑고 영혼 없는 전문가”의 속성을 떠올리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 전문성은 차라리 듀이가 말한 “자유로운 연구자들의 공동체”의 속성이 되어야 합니다. 교사는 정해진 매뉴얼에 정통한 전문가가 아니라 자신의 영역의 애정과 창의적인 정신을 발휘하는 전문가가 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교사의 전문성 신장은 교사뿐 아니라 사회 전체적으로 전문성이라고 하는 것의 새로운 의미 정립을 위해서도 중요한 일이 될 것입니다.

☆ 글쓴이 소개☆
부정변증법님의 글입니다.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트랙백 주소 :: http://chamedu.hosting.paran.com/trackback/49

학교에는 두 종류의 교사가 있다. 일반 기업에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있듯, 학교에는 정교사와기간제 교사가 있다. 원래 기간제 교사는 교사가 일정기간 이상의 휴직, 휴가를 냈을 경우, 기타 유고시에 그 결원을 보충하기 위해 근무하는 임시교사에서 비롯되었다.

그런데 1999년 명예퇴직 폭증으로 인한 초등교사 부족사태를 계기로 임시교사라는 명칭이 기간제교사로 바뀌면서, "임시"가 아닌 "정시"에도 기간제 교사를 채용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이는 당시 특수한 상황으로 보아 어쩔수 없는 측면이 있지만, 문제는 교원수급이 안정되고, 초등교사조차 임용고시 경쟁률이 1:2를 넘어서게 된 상황에서도 여전히 기간제교사 제도가 남아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서 교사라는 위계서열상 상당히 고급(?)스러운 노동자들에게도 어김없이 정규직/비정규직 내부분할이 시작되었다. 배치되는 경우가 늘어났다. 특히 사립학교의 경우 이를 악용해서 지역에 따라서는 신규채용 교사의 무려 84%가 기간제 교사인 곳도 있다. 즉 정규직 교사가 퇴임한 자리를 특별한 이유 없이 기간제 교사로 충원하는 것이다. 심지어 지역에 따라서는 공립학교까지 이런 일을 자행하고 있다. 앞으로도 신자유주의 정책의 기조상 공무원 정원을 감축하려 할 것이고, 따라서 신규교사 채용 규모도 축소되어, 그 차이는 고스란히 기간제 교사로 충원될 것이다.

기간제 교사의 문제는 다른 비정규직 노동자와 흡사하다. 우선 이들은 같은 노동을 하고도 더 적은 임금을 받는다. 기간제교사의 봉급은 최고 14호봉이다. 즉 5년 이상의 경력은 그대로 삭감되는 것이다. 이는 2006년에 인권위의 지적을 받은 사항이지만, 아직도 해결되지 않고 있다. 또 임시교사이던 시절에는 "중요한 업무를 맡기지 않는다"는 규정이 있어서, 행정업무나 담임업무에서 어느정도 배제되었지만, 기간제교사가 되면서 차별없이 모든 업무를 동등하게 나누어서 보아야 한다. 물론 은행이나 다른 직장에 비해서는 차이가 크지 않지만 동일 노동에을 하고 더 적은 임금을 받는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게다가 기간제 교사는 노동조합에 가입할수도 없다. 교원노조법에 의해 정규직 교사만 전교조 조합원이 될수 있기 때문이다. 엄밀히 말하면 전교조와 관련한 법규에는 정규직/기간제에 대한 특별한 언급이 없다. 그리고 특별한 언급이 없는 상태에서 자연스럽게 정규직 노동조합이 되고 만 것이다.

그 결과 학교의 기간제교사들은 교장, 교감이 자신의 권력을 행사해서 가학적 쾌감을 느끼기 위한 가장 만만한 상대가 된다. 계약 기간을 주로 1년 단위로 하기 때문에, 또 계약할때마다 호봉을 다시 획정하기 때문에 교장, 교감에게 밉보이면 다음 해를 기약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정규직 교사의 경우, 특히 공립학교의 경우 승진 욕심이 없는 교사라면 교장,교감이 뭘 어찌해볼 여지가 별로 없다. 그런데 기껏 온 평생을 발발기어 교감, 교장이 되었는데, 교사들에게 큰소리도 제대로 못쳐서야 지나간 청춘이 안타깝지 않겠는가? 그래서 기간제 교사들이 그들의 밥이된다. 어디 그 뿐이랴? 기간제 교사들은 종종 교장에게 뇌물도 바쳐야 한다. 추석이나 설에 다른 교사들은 그러려나보다 하고 넘어가지만, 기간제 교사들은 양주가 되었든, 갈비가 되었든 가져다 바쳐야 한다. 심한 교장은 현금을 요구하기도 한다.

학교의 그늘, 전교조가 애써 외면하는 곳, 그 사각에서 기간제 교사들은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자신의 운명을 불안하고 초조하게 바라보면서, 온갖 수모와 구박을 감내하며, 다른 교사들과 똑 같은 수업과 업무를 담당하면서, 더 적은 돈을 받고 있다. 그들에게 학생들에 대한 헌신과 끊임없는 자기 연찬을 기대할수 있을까? 그 피해는 과연 누구에게 갈까? 서로 경쟁해서 승리하지 못하면 목이 달아나는 상황으로 만들어 놓으면, 과연 참신한 혁신을 할까, 아니면 서로서로 실수하지 않기 경쟁으로 점점 퇴행할까?
☆ 글쓴이 소개☆
부정변증법님의 글입니다.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트랙백 주소 :: http://chamedu.hosting.paran.com/trackback/45

작년 어느 무렵 교대생, 사대생 대표(예비교사협의회)들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습니다. 이야기가 두어 순배 돌자 자연히 화제가 현재 교원양성제도에 대한 의견으로 모아졌습니다. 교사대생들은 현행 교원양성제도에 불만이 많았습니다. 특히 그들은 "아이들 가르치는데 필요한 것"보다 "교과내용"이 중심이 된 교사대 커리에 대해 비판했습니다.

그런데 이 학생들이 말하는 "아이들을 가르치는데 필요한 것"을 배운다는 것의 의미가 모호했습니다. 계속해서 그 뜻을 물어보면서 나는 그것이 교수-학습 이론이나 방법론을 배운다는 의미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말하는 아이들을 가르치는데 필요한 것은 오히려 아이들을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는 성품을 기른다는 의미에 가까웠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대안적인 교육과정으로 교육실습기간을 늘려서 이론보다는 주로 아이들과 함께하는 속에서 교원을 양성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일리가 있는 주장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나는 80년대때 태어나서 아직도 살아남아 있는 하나의 위험한 이데올로기의 그림자를 보았습니다. 그것은 "소박함, 질박함"의 이데올로기, "유식함과 세련됨"은 진실과 거리가 멀다는 이데올로기입니다.  그래서 전공에 대한 박학함은 아이들을 이해하는데 별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오히려 이런 거추장스러운 지식과 이론을 벗어버리고 진실하게 아이들을 바라보고 만날때 비로소 참교육이 가능하다는 믿음 말입니다. 그 옛날 NL의 품성론이 우리 진보진영을 망쳐놓았던 바로 그 이데올로기였습니다. (이제사 분명해졌지만 NL이 소박하고 질박한 품성을 장려한 것은 이 세상에 세련되고 지성적인 존재는 오직 한 사람 밖에 없어야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소박과 감상의 이데올로기는 사실 계몽주의에 저항하던 독일 귀족들과 계몽주의의 전사로 떨쳐 서기를 거부하던 18세기 독일 부르주아의 기회주의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이것은 루소를 이상하게 변형시킨 이데올로기로 사실상 폭압, 폭정을 긍정하였고, 그에 맞서 싸우고자 하던 지식인들을 비판하는 용도로 많이 사용되었습니다. 즉, 지적인 계몽주의자를 프랑스적이라 몰아치고 군주제 옹호자를 소박한 독일민족의 인격자로 추켜세웠던 것입니다. 음, 그들도 NL이었습니다.

우리나라도 이상하게 80년대에 이른바 '품성론'이라는 이름으로 이 이데올로기가 정착하여 수 많은 학생운동 지도자들이 "무식함"을 자랑하게 만들었습니다. 내용 없는 착함, 내용 없는 진솔함이란 결국 기존의 것을 긍정하는 것일수 밖에 없고, 당시 품성론을 유포했던 강철이라는 작자는 이 무식한 착함과 북에 있는 지도자에 대한 긍정을 연결시켰던 것입니다. 북에 있는 지도자가 세상을 떠나자 저 품성론의 전도사가 "뉴라이트"의 전사로 돌변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것은 긍정해야 할 기존의 것을 새로이 찾은 것에 불과합니다.  그 결과 품성이 거칠지만 이론으로 무장한 편협한 활동가들의 날선 말빨 앞에, 품성은 좋으나 내용이 없는 선량하고 소박한 활동가들이 "이건 아닌데...."하면서도 속수무책으로 난타당하는 상황이 발생합니다.

우리가 참으로 소박하고 텅빈 마음으로 아이들과 아무리 친하게 진해본들, 그것은 그저 마음씨 착한 어른에 불과합니다. 그렇다면 맘 착한 어른을 위해 한 해에 수천만원의 연봉을 지급하고 1년의 1/3에 달하는 엄청난 유급휴가를 주는 정부는 필경 정신나간 정부일 것입니다. 프레이리도 바로 그 점을 우려해서 교사는 보육자가 아니라 교육의 전문가라고 역설했던 것입니다. 그 전문성은 성품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합리적인 지성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참으로 소박하고 선량한 그 품성의 토대 위에 폭넓고 깊이있는 지식의 탑을 쌓는 것입니다. 교대생 중 한 친구가 "초등학생 가르치는데 무슨 미적분학까지 배워야 하느냐?"하고 볼멘소리를 했지만, 설사 사칙연산을 가르치더라도 고등수학까지 이해할 수 있는 교사는 사칙연산만 이해하는 교사보다 훨씬 더 유연하고 풍성한 사칙연산 수업을 할 수 있습니다.

제가 여유있고 흥미있는 경제수업을 할 수 있는 이유는, 교과서에 나오는 경제개념을 잘 이해하고 이것을 재미있게 표현할 수 있는 요령이 있어서가 아니라, 자본론, 국부론 등 경제학 고전들을 철저히 탐독하고, 그 결과 교과서의 지은이 보다 더 높은 위치에서 이를 굽어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교사가 학문분야의 놀라운 발견을 하고 이론적 개가를 올릴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교사는 자기 전공 분야에서는 최신의 이론을 이해하고 소화할 수 있어야 하며, 그외 여러 학문과 예술 분야에 고급 애호가 수준의 교양을 갖추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자니 교사는 늘 시간이 부족합니다. 아이들의 사랑은 교사가 "애지자"가 됨으로써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지'를 사랑하지 않는 교사는 아이들도 사랑할 수 없습니다. 혹은 무지하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독을 주고 있으면서 그것을 사랑이라고 우기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바로 그래서 다른 직종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교사의 많은 휴가가 주어진 것입니다. 쇼핑관광이나 다니고, 늦잠이나 자라고 주어진 것이 아니라.....

☆ 글쓴이 소개☆
부정변증법님의 글입니다.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트랙백 주소 :: http://chamedu.hosting.paran.com/trackback/39

몇 해전에 근무했던 학교의 일이다. 그 학교에 "돌아이"라는 꼬리표를 단 교장이 부임했다. 하도 사고를 많이 쳐서 교장될 가망이 없었는데, 명예퇴직 바람과 정년단축 덕분에 교장들이 많이 퇴임하여 자리가 난 것이다.

이 교장은 부임하자마자 별별 또라이 짓으로 사람들을 아연케 했다. 교무실에서 아침마다 국기에 대한 경례를 시킨다거나, "여자들은 군대에 안 갔다와서 애국심이 없다"고 대놓고 말한다거나, 유스호스텔에 하도 많은 뇌물을 요구해서 도리어 그 쪽에서 계약을 거부해 수련회가 무산되게 만든다거나.... 심지어 학교 돈 교묘히 떼어먹을때 공범자가 되기 마련인 행정실장 조차 "해도해도 너무하시는 거 아니냐"면서 분노하기까지.

이렇게 또라이 짓을 하니 당연히 교사들의 저항도 엄청났다. 사사건건 마이크잡고 일어서는 교사들이 속출했고, 당시 막 합법화 되었던 전교조에 가입하는 교사들도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오죽하면 전교조 분회장을 경선으로 뽑았을까?

물론 이런 또라이 교장에게도 비비는 딸랑이 교사들은 있었다. 게중에는 '나름 지적'인 사람도 있었고, 그 교장과 비슷한 수준인 또라이도 있었다. 나름 지적인 사람은 연구부장이 되었는데, 그가 교장에게 딸랑이가 된 이유는 결국 점수가 필요해서였다. 그에게는 또라이든 훌륭한 인격자이든 질적 차이가 없었다. 단지 교장이면 되었다. 그런데 그 나름 지적인 사람은 결국 딸랑이 노릇을 포기했다. 양심의 가책을 받아서가 아니다. 워낙 교장이 또라이로 찍혀있다보니 학교가 점수되는 프로젝트를 받아오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왕수'를 받더라도 가산점이 없으면 소용이 없는 법. 결국 그는 장학사가 되는 쪽으로 승진코스를 변경했다. 교장은 장학사가 되기 위해 필요한 '추천서'를 써주지 않음으로써 복수했지만, 서울사대 출신의 연구부장은 유유히 교육청에 있는 장학관에게 추천서를 받아서 제출했다. 그는 하버마스의 용어를 빌리자면 인지적 합리성만 편벽되게 발달한 왜곡된 이성이었다.

이렇게 딸랑이에게 배신당한 교장은 거의 폭주모드로 변경되었다. 주차장을 확보하기 위해 페인트로 "교장전용"이라는 글씨를 칠하라고 요구해서 기능직 직원들의 빈축을 샀고, 학생들이 듣는지도 모르고 "내가 덕이 없어서 이딴 학교에 부임했다"고 말하다가 그게 학교 홈페이지 올라가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마침내 그는 직원조회에서 화를 버럭내며 "교장만 되면 발 뻗고 잘줄 알았더니 이게 무슨 꼴이냐"고 외쳤다. 아, 그는 학교를 좌지우지하는 교장이 몹시도 부러웠던 모양이다. 그래서 평생의 꿈이 교장이었고, 교육자의 소명은 가르치는게 아니라 교장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교장이 되면 모든 목표를 달성한 것이기 때문에 아무 일 안하고 마음껏 학교를 농단하고 돈을 떼먹으면 되는 줄 알았나 보다. 마음껏 권력을 휘두르며 쾌감만 즐기면 되는줄 알았나 보다.

그런데 어찌하려? 한국 사회에서 교장이란 실제 그런 존재인걸.... 그 또라이 교장의 잘못이라면 그런 생각을 교묘히 감추지 않고 솔직하게 드러냈다는 것일 뿐.

☆ 글쓴이 소개☆
부정변증법님의 글입니다.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트랙백 주소 :: http://chamedu.hosting.paran.com/trackback/41

겨울 방학을 마치고 학교에 들어서니 정문 앞에 거대한 바윗덩어리가 새로 놓여 있었다.
큼지막하게 교훈이 새겨져 있어서, 교훈을 가슴깊이 새기자는 뜻으로 세웠구나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대착오적인 조각의 전시물도 의아하거니와, 이듬해 학교이전을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옮겨야 할 이삿짐 치고는 너무 큰 것이 아닌가?
그런데, 자세히 보니 비문 아래 당시 교장의 성함이 함께 새겨져 있었다.
퇴임을 앞둔 교장이 학교에 기증을 한 것일까? 물론 아니다.

게다가 방학중에 그 비석이 세워졌고, 교장, 교감과 부장 교사들이 모여서 축하연을 열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 의미(?) 있는 일이 교사와 학생들이 소외된 가운데 이루어진 일이라면 누가 믿을 것인가? 그런데 사실이다.

교감선생님께 찾아갔다.
"저 비석은 교장선생님께서 학교를 위해 기증하신 건가요? "
말씀은 이러했다. 떠나는 교장선생님은 학교를 위해 오랜 시간 여러가지 일을 하셨고, 퇴임을 앞두신 마당에 무언가 기념할 만한 것을 만들어 드리는 것도 좋은 일 아닌가...사람의 정이 그게 아니다....

그럼 그 흐뭇하고(?) 좋은(?) 일을 전교사와 학생들이 함께 축하할 일이지 어찌하여 방학 때, 그것도 교직원 회의날 도 절묘하게 피하여 축하연을 하셨는지요...
그에 필요한 모든 비용은 다 어디서 충당이 된 것인지요...
전 교사가 모이는 회의 시간에 공개적으로 사과를 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제가 직원회의 시간에 공개적으로 질문을 할까요?
등등 조용히 대화는 이어졌다.

이후 부재중인 교장을 대신하여 교감의 공개사과가 있었다.
하지만, 충분하지 않았다. 조용하고 점잖게 끝났다. 떠나는 사람에 대한 예의(?)차원에서...
과연 이 일이 어떤 경로로 이루어진 일일까?
 
송공비는 아직도 건재하다. 곧 이사갈 학교에 세워진 그 바윗덩어리를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하다.
교장은 떠났고, 새 교장이 부임했다. 이후 블랙센스는 다양한 형태로 이어지고 있다.
거기에 교육은 관심의 대상이 아니다. 다만 그들만의 리그가 있을 뿐이다.

☆ 글쓴이 소개☆
물쟁이님의 글입니다.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트랙백 주소 :: http://chamedu.hosting.paran.com/trackback/40

승진이 교사의 보상이 될 수 있는가?

   

교직사회에서는 “수석교사제” 시범운영 계획에 대한 논란이 한창이다. 한국교총은 이것이 자신들의 교섭의 개가라며 기세를 올리며, 교육부는 이것이 교육현장을 왜곡시키는 승진병의 해법이라며 환상을 유포하고 있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내용을 살펴볼수록 이번에 발표된 수석교사제는 목적이 모호할 뿐 아니라, 그것을 달성할 수단도 부재하다. 수석교사제의 목적은 승진제도의 대안이거나, 그동안 부족하다고 지적되어온 교사의 외적 보상의 보완일 것이다. 이 둘 중 어디에도 해당되지 않는다면 옥상옥이며 예산낭비다.

승진부터 살펴보자. 교사 승진제도가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심지어 교육 왜곡의 주범으로 지목당한 이유는 교육과 무관하기 때문이다. 현재 교사의 승진은 교감, 교장이 되거나 장학관, 혹은 연구관이 되는 것 외에 없다(흔히 알려진 바와 달리 장학사, 연구사는 교사와 동급이다). 그런데 교감, 교장이나 장학관 등은 행정직이다. 따라서 행정 업무에서 우수한 실적을 올린 사람이 선발되는 것은 당연하다. 문제는 교사의 각종 행정사무가 원칙적으로 “잡무”라는 것이다. 유일한 승진사다리인 교감이나 장학관 코스에 올라타기 위해 교사들이 주무인 “교육”이 아니라 “잡무”에 몰두해야 하는 것이 기막힌 현실이다. 교육법에 따르면 교사는 “법이 정한 바에 따라 학생을 교육한다”. 행정직원은 “교장의 명을 받아 각종 행정사무를 수행한다”. 현재 교사들이 분담하고 있는 행정사무는 엄밀히 말해 행정실 인력이 충분치 않은 현실을 감안해 도와주는 것이지,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 아니다. 비유하자면 경기장 직원이 부족해서 부득이 야구선수가 각종 뒷정리도 분담하고 있는데, 누가 청소를 잘했냐를 기준으로 4번타자를 결정한다면 여기에 누가 승복하겠는가?

물론 교육부도 이를 인정하여 행정사무가 아니라 “교육에 충실한” 교사들에게도 승진의 기회를 주기 위해 수석교사제를 실시하는 것이라 한다. 즉 행정직 승진 코스와 교육직 승진 코스를 두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앞의 문장들을 진지하게 읽어보면 행정직이 승진코스로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문제의 근원임을 알 수 있다. 교감, 교장, 장학관은 명백히 행정직이다. 따라서 그들의 적성은 교사의 그것과 판이하며, 그 직종으로의 전환은 승진이 아니라 업무 변경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즉 교사경험이 있는 행정직원인 것이다. 구청 서기가 교사의 상관이 아니듯, 교감과 장학관도 교사의 상관이 아니다. 교감, 교장은 학교의 각종 재정과 행정을 책임지는 실무자가 되며 장학관은 필요한 지원과 조언을 제공하면서 행정적 조정을 담당하는 관청 직원이 되는 것이다. 이런 학교에서야 비로소 수석교사가 학교의 각종 교육 프로그램이나 장학 등을 지원하면서 교육 3주체들을 이끌어가는 리더쉽을 발휘할 수 있다. 그런데 교육부는 진정 이런 학교를 만들 의지가 있는가?

그들의 계획에 따르면 수석교사들을 교육청 소속으로 해서 자기 학교가 아니라 지역 학교들을 돌아다니면서 사실상 장학사 일을 시키겠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게 과연 수석교사인지 아니면 교육청 하급 심부름꾼인지 참으로 혼란스러워진다. 마치 행정관청 일을 조금 나눠서하는 것이 곧 승진이라는 터무니없는 공식을 강요하는 것처럼 보인다.

수십년을 단지 평교사로 늙어가는 것이 교사들의 사기를 저하시키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 있다. 혹은 그저 시간만 채우고 월급이나 받아가는 교사와 열심히 연구하고 교육한 교사간에 아무런 차등이 없는 것이 문제가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물론 지금처럼 신규교사나 수십 년을 매진한 원로교사나, 혹은 그저 호봉만 올린 교사나 웬만한 교수와 맞먹는 학식과 덕망을 갖춘 교사들이 거의 동일하게 막교사로 취급되는 현실은 큰 문제다. 노고에 대한 보상은 당연히 필요하다. 보람과 긍지라는 내적 보상에만 의존하라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 수석교사제가 묵묵히 학식과 덕망을 축적하고 아이들을 사랑해 온 교사들에 대한 보상이 전혀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들이 바라는 보상은 자신들의 지식과 덕망에 대한 합당한 사회적 대우와 존경이지, 무슨 지위나 금전 따위가 아니다. 그리고 사회적 대우와 존경은 바로 자율권을 확대해주는 것, 신뢰를 보여주는 것에서 증명되는 것이다. 이미 교사에 대한 각종 포상, 표창이 승진에 눈먼 교사들의 쟁탈물로 전락한 현실을 감안하면 현재의 교감, 교장 승진제도가 온존한 상태에서 장학사 비슷한 수석교사제가 도입된다고 한들, 그 자리가 진정 학식과 덕망을 축적한 분들에게 돌아갈 것 같지 않다. 더구나 교육부 계획에 따르면 어느 정도 수준의 경력과 실적이 누적되면 자동적으로 수석교사라는 등급을 획득하는 것이 아니라 숫자를 미리 정해놓고 경쟁을 붙여서 관청이 최종 선발하는 방식을 내놓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교단을 황폐화시켜온 교육은 뒷전으로 미뤄두고 승진점수에 만 몰두하는 목적전치 현상의 대상만 하나 추가시킨 꼴이 된다. 승진점수 채우는 고등수학에 능한 사이비 교사들이 “교감 못되었으니 하다못해 수석교사라도”하면서 몰려들 것이 불 보듯이 훤하기 때문이다. 결국 마땅히 보상을 받아야 할 교사들은 또 다시 소외되고 말 것이다.

참교육에 매진해온 교사들이 바라는 보상은 별다른 것이 아니다. 후배교사들에게 자신의 경험과 노하우를 전수하고픈 것이며, 거기에 합당한 명예를 받는 것이다. 그들을 교대/사대의 겸직교수로 보임하여 앞으로 강화될 것이 예상되는 교생실습을 전담하게 한다거나, 혹은 학교 내에서 멘터나 컨설턴트의 역할을 맡게 하면 충분할 것이다. 물론 이 경우에는 현행의 각종 교육청 장학은 폐지되어야 한다. 수석교사의 잔소리가 장학사의 잔소리에 추가되는 형국이 되어서는 안 된다. 어쩌다 한 번 와서 신소리나 해대는 장학사보다는 같이 근무하면서 조언해줄 수 있는 존경받을 만한 중견교사가 젊은 교사들에게 훨씬 도움이 될 것이다. 그 어느 경우에나 지금까지 시대를 거슬러 어거지로 유지해온 학교에 대한 교육청의, 교사에 대한 행정 관료의 우위를 포기해야 한다.

요약하자. 수석교사제가 승진제도의 개선이 되려면 교육직이 아니라 행정직이 승진으로 간주되는 현행 승진제도 자체가 개편되어야 한다. 즉 교장, 교감, 장학관은 상급자가 아니라 다른 직종이 되어야 한다. 그럴 때 비로소 수석교사가 제대로 된 승진제도가 될 것이다. 수석교사제가 보상에 대한 보완이 되려면, 관청이 선발하려는 발상을 버리고, 덕망과 학식이 입증되면 숫자와 무관하게 모두 그 자격을 획득하도록 해야 한다. 또한 그 업무도 교생실습이나 학교 내 각종 자문으로 해야지 계획안처럼 교육청이 배당하는 엉뚱한 남의 학교 돌아다니며 잔소리나 하는 자리가 되어서는 안된다. 이러한 전제조건이 충족되지 않는다면 수석교사제는 아무짝에 소용없는 승진병의 확대판에 불과할 것이다. 여기에 낭비할 예산이 있다면 교사들의 도서구입비를 세금 공제라도 해주는 것이 교육에 훨씬 보탬이 될 것이다.

☆ 글쓴이 소개☆
부정변증법님의 글입니다.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트랙백 주소 :: http://chamedu.hosting.paran.com/trackback/38

어지러운 교무실(교무실에 대해 쓴 이전 포스팅 참조)가운데 몇몇 교사들이 모여있다. 이들이 의자들을 모아놓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들은 과연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일까? 그걸 어찌 다 알겠는가? 하지만 절대 이들의 대화소재가 아닐 것 같은것은 골라볼수 있다. 아마 다음과 같은 것들은 절대 교사들의 대화소재가 아닐 것이다.

1. 전공분야의 최신 이론들에 대한 대화(예: 과학교사들이 과학이야기 하거나, 사회교사가 사회학 이야기 하는 경우)
2. 교육학이나 교육철학에 대한 대화(교수법이라거나 교육관에 대한 이론적이고 심각하고 진지한 대화)
3. 각종 고전이나 인문학과 관련된 대화(예컨대 역사라거나, 혹은 예술작품이나 비평에 대한 이야기)
4. 학생, 청소년의 권리 증진과 관련된 대화


이건 내가 정말 장담한다. 교사들끼리 모였을때 위의 네가지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는다. 문제는 위의 네가지는 소위 지식인이라고 불리는 집단이 흔히 하기를 기대받는 그런 이야기라는 것이다. 즉 교사들은 절대 지식인스러운 대화를 하지 않는다.

그럼 대체 교사들은 모여서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을까? 장담은 못하지만 다음 네가지 중 하나일 가능성이 크다.

1. 전문적이지 않은 가십 수준의 학생 이야기(몇반의 아무개가 이렇다더라, 우리반 아무개네 집이 어떻다더라, 아무개가 참 수업태도가 나빠지더라 등등)
2. 연예가 중계성 대화
3. 사교육에 관한 대화(어디에 학원이 좋아서 우리 애도 보내야지. 영어학원은 어디가 좋아 등등)
4. 자기 자식 자랑

한 마디로 그냥 평범한 아줌마들이 자기들 거실에 모여 앉아서 할만한 이야기들이 교무실에서도 여전히 이야기되고 있다. 이들이 교사다. 이들이 "교직은 전문직이기 때문에 죽어도 학생, 학부모로부터 평가를 받을 수 없다"고 말하는 교사들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앞서 네가지의 소재로 이야기를 하려 하면 "잘난척 한다"고 핀잔을 듣거나 "아, 머리아프다."소리 듣기 일쑤다. 소위 선진국 같으면 대졸자들의 통상 교양 수준에서 이야기를 해도 소위 전문직인 한국 교사들은 "그렇게 수준높은 이야기"취급을 한다.

도대체 모여 앉아서 연예가 중계나 자기 자식 이야기나 하는 교사들, 정작 아이들 가르칠 내용에 대해서는 중학교 교과서 수준밖에 모르는, 그리고 그걸 부끄러워하지도 않는 교사들을 보면 앞날이 깜깜하다. 이들에게 퍼들어가는 월급들을 생각하면 내가 학부모라도 퇴출소리가 절로나온다. 퇴출은 변태짓을 하거나 폭력적인 교사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사교육, 자식자랑, 연예가중계가 대화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교사들 역시, 아니 그런 교사들이야말로 퇴출대상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교육시장화 저지 등의 나름 이유가 있기는 했겠지만, 교원평가 등등을 악착같이 반대해서 결과적으로 이런 교사들의 든든한 방패막이로 전락해버린 전교조를 보면, 그리고 저 연예가 중계 따위 대화판에 전교조 조합원들도 어김없이 끼어있고, 이들을 비조합원과 전혀 구별할수 없게된 모습을 보면 정말 기가 막히고, 앞날이 보이지 않는다.

전교조의 회생은 이런 조합원들에게 "그런 무식한 이야기나 하면서 교무실을 더럽히고 있느냐"라고 일침을 가할수 있는 그런 냉혹하고 비판적이고 비인간적인 조합원들이 좀 늘어나야 가능할 것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전교조는 너무 인간미가 넘쳐 차마 그 말들을 못하는 것 같다.

☆ 글쓴이 소개☆
부정변증법님의 글입니다.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트랙백 주소 :: http://chamedu.hosting.paran.com/trackback/37

학교에 참 요상한 자리가 있으니 그것은 바로 교감이다.
요상한 이유는 도대체 무슨 일을 하는지가 정해진 바가 없기 때문이다.

법적으로 교감은 완전히 교장의 땜방이다. "교장을 보좌하여 ~, 교장 유고시에~"

그런데 같은 법에서 "교장은 필요시 교사중 한 사람을 지명하여~ 담당하게 할수있다."는 내용도 나온다. 즉 교감은 교장이 일이 많거나 도움이 필요할때 지원하는 역할이며, 교장에게 일이 생길 경우 백업하는 역할이다. 그런데 교장은 평소에 교사중 하나를 지정하여 그런 역할을 맡길수도 있다. 즉 교사중 아무나 백업을 준비해 두면 그만인 것이다. 굳이 있을 이유가 없는 자리다.

결국 현실 학교에서 교감들 스스로가 느끼는 자신들의 존재이유는 오직 하나다. 교사가 바로 교장이 되는게 아니라 거쳐가는 단계를 하나 만들어 놓은 것이다. 따라서 교감의 가장 중요한 일은 "교장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며, 사실은 할 수 있는 일도 그것밖에 없다.

과거에는 교감이 하는 일이 퍽 많았다. 그것은 "교사를 감시하는 것"이었다. 유신, 5공시절, 지식인들의 동향에 민감하던 독재자들은 그 중 가장 위험할수 있는 집단인 교사들의 동태를 감시할 필요가 있었다.

교장은 교사들과 공간을 공유하지 않아서 한계가 있었기에, 교무실 한 가운데 감시탑처럼 박아놓은 교감이야말로 그 적격자였다. 심지어 교감에게 정보비라는 수당까지 지급하지 않았는가?

실제로 교감은 교육적 기능을 전혀 하지 않는다. 그저 하는 일이라고는 이런저런 행정 문서에 서명하고, 공문 날짜 체크하는게 전부다. 사실 이런 일은 상고에서 잘 배운 비서직 사원들이 훨씬 더 잘한다. 뭣하러 500만원씩 월급줘가면서 저딴일을 시키는가? 결국 교감의 역할은 교무실 가운데 앉아있는거다. 아무일 안해도 좋다. 인터넷으로 야구중계를 보거나 바둑을 두어도 좋다. 그저 가운데 버티고 앉아서 교사들이 알아서 기게 만들면 된다. 호통과 위압적인 방법을 사용하던, 친밀감과 인간적인 방법을 사용하던, 혹시 있을지 모르는 교사들의 자율성과 자주성을 사전에 차단해서 충실하게 사회재생산도구로 기능하게 감시하고 조율하는 자, 그게 교감인 것이다.

그런데, 권위주의 독재시대가 끝나고, 게다가 학교라는 대량생산 시스템이 낡은 틀이되고, 국가가 주도하는 중앙집권형 공교육이 석양에 서자, 그만 교감이라는 자리라 붕 뜨고 말았다. 아무 권한도 없고, 이제는 감시, 통제라는 역할도 미약해진 교감이 할 수 있는 일은 정말로 "교장이 되기 위해", "교장에게 충성하는 것"외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은 것이다. 언젠가 교장이 될 것이라는 꿈을 이루기 위해, 교장의 의향을 먼저 살펴서 교사들에게 강요하고, 이를 위해 호통이던, 인간적 유대든 동원하는 것, 그것이 교감의 역할이 되었다. 말하자면 영혼을 교장에게 맡긴 수족이 된 것이다.

도대체 이런 직책이 학교에 왜 있어야 하는가? 노인네가 심심해지면 성질 고약해진다고, 할일이 점점 줄어드는 나이먹은 교감(교장되는 것도 포기한)들은 교사들과 되지도 않는 언쟁을 벌리며 교무실 분위기만 험악하게 만든다. 지금 상태로서 교감은 백해무익한 존재이며, 한시라도 빨리 폐지되어야 할 직책이다.

만약 교감이 가치가 있으려면, 지금 교사들이 하고 있는 온갖 행정잡무를 모조리 전담해야 한다. 혼자하기 힘들면 교감 수를 늘리면 된다. 그래서 젊은 나이에 교감되서, 저 승진병 환자들이 그토록 사랑하던 일인 행정잡무만 하루종일 하게하면 된다. 아마 교감 두세명이 달라붙으면 교사 50명이 아까운 수업시간 사이사이에 스트레스 받으며 해야 했던 각종 행정업무를 모조리 무리없이 할 수 있을 것이다.

교감을 폐지하거나, 모든 행정업무를 전담케 하는 것. 어렵지 않고, 돈 더들지 않는 교육개혁의 쉬운 방법이다.

☆ 글쓴이 소개☆
부정변증법님의 글입니다.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트랙백 주소 :: http://chamedu.hosting.paran.com/trackback/36

 

학교 교장이 새로 부임 했다. 부임식 날, 아직 새 교장이 도착하기도 전의 상황이다.

학교 프린터는 여러 컴퓨터가 연결되어 있는 공유 형이다. 내 문서 인쇄물을 찾으러 프린터 앞으로 갔는데...오지도 않은 ‘교장 취임사’가 이미 출력되어 있었다.

오! 새 교장이 취임사를 먼저 파일로 보내 출력 하도록 지시하였을까?

물론 아니다. 대충 짐작이 가는 바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학교에서 행사가 있을 때, 국어과 교사가 교장의 연설문이나 교지의 원고를 대필하는 것을 종종 본 적이 있다.

그런데 이번 경우는 아마도 부탁도 하기 전 미리 취임사를 만들어 ‘올리기’ 위한 어느 세심한 부장의 블랙센스임이 분명하다. 교직 경력이 30년 가까이 되는 교사가 취임 연설문 정도를 스스로 쓰지 못할 리가 없다. 아니, 있어서는 안 된다.


교장과 부장교사들이 만드는 그들만의 리그는 일반 교사들을 매우 바보로 만든다.

아니나 다를까 새 교장이 부임한 다음 날 부장교사들의 얼굴은 피곤한 기색이 역력하다. 부임기념 모임이 거나하게 있었을 것이다. 교장은 평교사에게는 관심이 없다. 특히 부장 교사중 승진을 위해 꼼꼼한(?) 준비를 하고 있는 인물이 있다면 알아서 보고하고, 그 대화 속에서 학교내 상황의 진실이 왜곡되는 일은 부지기수다.

“내가 잘 말해줬어. 선생님 열심히 한다고...” 담당 부장교사가 하는 말이다. 참 기가 막히다. 그래서 뭐가 어떻다는 것인지...갑자기 바보가 된 느낌.. 내 평가를 하고 있었단 말인가?


이러한 소통 방법은 일반 교사를 여지없이 소외시킨다.

교장, 교감과 부장 교사들이 간부회의라는 명목 하에 학교의 모든 일들을 계획하고, 직원회의는 명령의 하달이나 계획의 집행을 위한 협조 요청 시간과 다름이 없이 이루어지고 있다.

무언가 의견이 있어 ‘벌떡’ 일어나 발언을 하는 것은 그들에게는 매우 곤란한 일이다.

늘 시간 관계상 일찍 마쳐야 하는 시간에 회의를 하는 것도 문제지만.


그들은 자주 모이고, 식사하고, 여행도 간다. 그들끼리.

방학이면 해외여행도 간다. 내 친구는 경기도 어느 학교 부장인데, 교장을 모시고 가는 해외여행의 계획과 총무 일을 맡아 하느라 겪는 고충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안할 수 없는 일이다. 교장이 평가에 대한 권한을 가지고 있고...또 그들 안에서 별 무리  없는 인간관계를 가지려면 위에서 원하는 대로 해야 한다. ”

거슬리는 말이다. ‘위’. 엄연히 위로서 군림하고 있는 것이 대한민국의 학교 교장이다.


교장의 사적인 행사에 식구처럼 동원되는 교사도 있다.  때로는 운전기사, 때로는 촬영기사, 혹은 촬영한 영상을 편집해달라고 자주 부탁을 해서, 거절했다가 미움을 산 부장도 있다. 그 이후 다른 평교사에게 촬영 편집을 계속 부탁해서 그 교사가 울상이 된 적이 있다. 아마도 무슨 교회에서 하는 행사를 찍은 것이었는데 대상이나 내용이 학교 교육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일이었으니...젊은 교사가 난감해 하면서도 노력봉사 했다고 한다.


스스로 원고를 써서 연설을 하는 교육계의 선배, 학교 정책에 대해 심사숙고 하다가 교사들에게 의견을 묻고, 좋은 의견을 수렴할 줄 아는 교장이 있다면 얼마나 , 어디에 있을지 정말 한번은 만나보고 싶다.


그들과 자주 식사를 하고, 따로 여행도 가고, 명절 때면 그들의 대접을 받는 그들만의 리그...그들의 교장모시기에 연출되는 갖가지 블랙센스를 볼 때 , 학교 현장의 의사소통이 어떨지는 안 봐도 알만한 상황이다.


다만, 필요도 없이 그들의 리그를 위해 교사들을 동원하는 일이 제발 없었으면 좋겠다.


그런 상황에서 용기 있게 ‘아니’라고 말할 수 있기를 ‘교육자’ '되기'를 원하는 교사에게 바랄뿐이다.



☆ 글쓴이 소개☆
물쟁이님의 글입니다.

트랙백 주소 :: http://chamedu.hosting.paran.com/trackback/27

[기자 24시] 교사가 학교에 등돌리는 나라


매일경제  기사전송 2008-09-05 18:06 

인터넷 강의가 없던 1990년대 후반 EBS 교육방송 강의는 사교육과 맞설 대안으로 각광받았다. 당시 대입 수험생들은 EBS 강의를 녹화해서 봤다. 학생들이 EBS 강의를 무료로 볼 수 있게 하는 시설은 고등학교 앞 독서실에서 필수였다.

EBS 강의의 인기로 스타 강사들도 줄지어 출현했다. 이 중 단연 돋보인 강사들이 '언어 트로이카'로 불리던 이남렬, 이만기, 이석록 교사였다. 세월이 흐른 지금 스타 강사 3인방 중 공교육 틀 안에 있는 사람은 이남렬 씨(현 서울시교육연구정보원 연구사) 뿐이다.

이남렬 연구사에게 부와 명성을 누리는 두 사람이 부럽지 않냐고 물었을 때 의외의 답변을 했다.

이씨는 "그 둘이 제일 부러워하는 사람이 바로 나"라며 "사석에서 만나면 '교단에 설 수 있어서 좋겠다'고 한다"고 말했다.

교단에 서는 모습이 부러운 데도 왜 떠났을까?

"열심히 노력해도 대가없이 고생만 할 뿐이에요. 자유롭게 가르칠 수 있다는 부분에서 오히려 학원이 낫고, 가르치는 보람도 느껴요."(이석록ㆍ현 메가스터디 평가연구소장)

"경쟁이라곤 교감, 교장이 되려는 가산점 경쟁뿐이에요. 올바른 교사가 되기 위한 경쟁은 없어요."(이만기ㆍ현 유웨이중앙교육 평가이사)

요즘 중고등학생들에게 가장 존경하는 선생님이 누구냐고 물으면 학원선생님을 꼽는다.

이들이 학교를 떠난 이유는 가르치는 학생이 싫어서가 아니라 열심히 하는 교사를 제풀에 지치게 하는 학교가 싫어서였다. 이만기, 이석록 두 사람 모두 사교육 업계에서 나름의 위상을 세웠지만 아직도 학교 현장을 그리워한다.

2008년 학교 현장은 여전히 열심히 하는 또 다른 교사를 학원시장으로 내몰고 있다. 이런 피해는 고스란히 공교육 현장의 학생과 학부모들에게 떠넘겨지고, 공교육 불신만 키워갈 뿐이다.

[사회부 = 김대원 기자 egofree@mk.co.kr]

☆ 글쓴이 소개☆
부정변증법님의 글입니다.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트랙백 주소 :: http://chamedu.hosting.paran.com/trackback/24

교육청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을 교육행정 공무원이라고 한다. 즉, 그들은 교사도 아니며, 교육자도 아니다. 그래서 그들을 일반 행정직이라고 한다. 그러나 일반 행정직이 교육이라는 전문적인 분야에 대한 지식이 부족할수 있기 때문에 교사 출신 공무원을 일부 채용하게 되는데, 그것을 일컬어 교육 전문직 공무원이라 부른다. 여기에는 장학사, 장학관, 교육연구사, 교육연구관이 있다.

따라서 이들은 별 다른 것 없다. 단지 교사가 행정직 공무원으로 전직한 것에 불과하다. 이들을 전문직이라고 부르는 것도 교사가 전문직이 되었다는 뜻이 아니라, 교사였기 때문에 일반행정직과 구별하여 전문직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더더군다나 교사가 교육전문직이 되는 것은 승진도 아니다.

장학사, 연구사가 되기 위한 조건은 다음과 같다.

1. 대학·사범대학·교육대학졸업자로서 5년이상의 교육 경력이나 2년이상의 교육경력을 포함한 5년이상의 교육 행정경력 또는 교육연구경력이 있는 자.
2. 9년이상의 교육경력이나 2년이상의 교육경력을 포함한
9년이상의 교육행정경력 또는 교육연구경력이 있는 자.

이 중 2번은 고졸 학력이 교사되기 불가능하기 때문에 사문화된 조항이다. 결국 정상적으로 교사로 임용되어서 5년을 근무하면 장학사의 자격이 생기는 것이다. 다만 장학사를 하겠다는 지원자들이 많다보니 자연히 경쟁이 생겨서 시험을 보지만, 절대 이것은 승진시험이 아니며, 국가고시도 아니다. 자격기준을 5년으로 한 것은 공무원임용시험령에 의거한다면 통상 7급으로 간주되는 초임교사가 6급 주사급으로 간주될수 있는 근속연한을 채워야 한다는 뜻이 된다.

다음, 장학관, 교육연구관이 되기 위한 조건은 다음과 같다.

1. 대학·사범대학·교육대학졸업자로서 7년이상의 교육 경력이나 2년이상의 교육경력을 포함한 7년이상의 교육 행정경력 또는 교육연구경력이 있는 자
2. 2년제교육대학 또는 전문대학졸업자로서 9년이상의 교육경력이나 2년이상의 교육경력을 포함한 9년이상의 교
육행정경력 또는 교육연구경력이 있는 자
3. 행정고등고시 합격자로서 4년이상의 교육경력이나 교육
행정경력 또는 교육연구경력이 있는 자
4. 2년이상의 장학사·교육연구사의 경력이 있는 자
5. 11년이상의 교육경력이나 2년이상의 교육경력을 포함한
11년이상의 교육연구경력이 있는 자
6. 박사학위를 소지한 자
 
앞서와 같은 이유로 5번은 사문화된 조항이다. 그리고 나머지에서 알 수 있는 것은 7년 이상의 교직경력을 가지고 있거나, 아니면 교육경력과 무관하게 박사학위가 있다면 누구나 장학관이나 연구관이 될 수 있는 자격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장학관, 연구관은 공개적으로 채용되고 있지 않으며, 오직 장학사, 연구사가 승진하는 것만 허용되고 있다. 이렇게 됨으로써 단지 경력이 7년 이상인 교사, 혹은 박사학위를 가진 교사라면 누구나 응시할 수 있어야 하는 장학관, 연구관이 먼저 장학사, 연구사를 거쳐 힘들게 힘들게 올라가야 하는 자리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어느샌가 장학관, 연구관이 학교로 수평이동하면 교감이 되는 것이 되어버렸다.

자, 여기서 사단이 났다. 앞에서 보듯이 장학사, 연구사는 2년을 근무하면 장학관, 연구관이 될 수 있다. 즉, 초고속 승진이 가능한 것이다. 그리고 장학관, 연구관이 되면 교감이 될 수 있다. 그렇다면 견적을 뽑아보자. 26세 교사가 5년이 지나 장학사에 도전한다. 대략 7년만에 장학사가 되었다고 치자. 그리고 다시 이런저런 방법(뇌물이던, 실적이던, 뭐던)을 동원하여 7년만에 장학관이 되었다고 치자. 그럼 40세다. 그리고 한 4~5년 근무하다 교감이 되는 것이다. 그럼 45세의 교감이 탄생한다. 교사가 20년 경력평정에 이런저런 가산점 챙겨가며 교감이 되는 지난한 코스에 비해 완전 지름길임을 알 수 있다. 게다가 장학사, 장학관으로 근무한 기간은 차후 교장 승진을 위한 경력 평정에서 가 경력으로 분류되기 때문에 교사출신 교감보다 훨씬 빨리 교장이 될 수 있다. 따라서 49~50세면 교장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교사로서 경력을 계속 쌓은 교감은 빨라야 54~56세나 되어야 교장이 될 수 있다. 지름길도 보통 지름길이 아닌 것이다.

자, 이게 대체 무엇을 의미할까? 교육경력보다 행정경력이 더 우월하다는 국가적인 선언인 것이다. 그 결과 일찌감치 승진을 생각하는 교사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장학사나 연구사가 되려고 거의 발악을 한다. 즉, 하루라도 빨리 가르치는 자리에서 벗어나려고, 교사가 아니게 되려고 발악을 한다. 하루라도 빨리 가르치는 일이 아니라 각종 서류작업, 행정업무보는 자리로 가야 승진할수 있다. 그렇다 보니 교사로 있을때 부터 이미 가르치는 일 보다 서류작업, 행정업무에 자기 정체성을 두어야 한다. 그렇게 성장한 사람들이 교장, 교감이 되기 때문에 결국 서류작업, 행정업무 열심히 하는 교사가 유능한 교사로 인정 받는다. 기실 가르치는 일은 자격을 가진 교사만 해야하는 전문적인 일이고, 각종 행정업무는 아르바이트 생을 써도 조금만 훈련시키면 잘 하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것이야 말로 가치전도다.

이런 가치전도가 해소되지 않는한 공교육 정상화는 불가능하다. 이를 해소하려면 먼저 연구사니 장학사니 하는 무리들을 법적으로 규정된 자기 지위로 복귀시키고, 이들이 교사에게 상전행세하는 것을 차단해야 한다. 장학사보다 상관인 장학관, 연구관을 규정대로 교사와 순환보직해야 하며, 교감으로 순환보직하는 불법적인 일을 중단해야 한다. 아울러 아무런 이유 없이 교장 승진에 가 경력을 부여하는 폐단도 시정해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먼저 교감이나 교장을 승진이 아니라 공모나 선출로 뽑거나, 아니면 완전히 직제 개편하여 단지 행정직으로 바꾸어야 한다. 대부분의 교육 선진국이 이렇게 하고있다.
 

☆ 글쓴이 소개☆
부정변증법님의 글입니다.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트랙백 주소 :: http://chamedu.hosting.paran.com/trackback/22


이런 어처구니 없는 일이 아직도 일어나는 곳이 학교입니다. 학생들이 언제나 사람대접을 받을지? 학교, 검찰, 경찰은 반드시 시민적 통제를 받아야 합니다. 그 첫걸음은 내부의 권력을 완전히 분산하는 것입니다. 교장이 좌지우지하는 학교, 총장 멋대로인 검찰, 청장 맘대로인 경찰은 반드시 괴물이 됩니다.(이하 퍼온 기사입니다.)




'



[TV리포트] 해외 토픽감인 사건이 평택의 E고등학교에서 벌어져 충격을 주고 있다. 지난 6월 체벌을 받던 한 여학생이 생리통을 호소하자 선생님이 직접 생리혈을 확인한 사건이다.

27일 방송된 KBS '추적60분'에 따르면 여교사는 화장실 앞에서 여학생에게 화장지를 두른 나무막대기에 생리혈을 묻혀 오라는 지시를 내렸다. 소문은 삽시간에 퍼졌고 믿을 수 없는 사건에 학생들은 충격에 빠졌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가 있어요. 그것은 인간으로서 정말 해야 할 짓이 아닌 거죠"
해당 사건의 교사는 거짓말을 하는 학생이 많아서 검사를 했다고 해명했다. 방송 인터뷰를 통해 대수롭지 않은 듯 그 때의 상황을 설명했다.

"이렇게 나무막대에다가 휴지를 테스터 개념으로 이렇게 (감았어요) 니코틴 검사하는 것처럼 생리혈을 검사하는 기구가 없었기 때문에 여기 끝에다가 생리혈을 살짝만 묻혀서 선생님에게 보여 달라 그렇게 확인했습니다."





교사는 화장실 앞에서 확인한 후에야 학생을 돌려보낸 것으로 드러났다. 선생님들은 왜 학생들이 체벌을 받기 싫어 거짓말했다고 오해한 것일까. 그것은 바로 학교 자체 교화 프로그램 '푸른 교실'이라는 체벌 때문이었다.

신발로 가려져 보이지 않는 양말의 작은 무늬와 차가운 에어컨 바람을 피하기 위해 걸친 체육복으로 학생들은 선생님으로부터 복장불량 지적을 받아야 했다. 1분의 지각도 허용이 되지 않았다.

우연히 풀어진 단추 하나 때문에 "퇴학감"이라는 교장의 폭언을 들은 고3 학생도 있었다. "수시원서도 써야 된다. 선생님 한 번만 봐주세요"라고 울며 매달리는 학생에게 "네가 대학가서 뭘 하냐"고 인격 모독을 한 것이다.

교 사에 의한 지적을 받은 학생들은 저녁 6시 20분부터 8시 40분까지 체력 단련 훈련인 '푸른 교실'에 참여해야 한다. '푸른 교실'은 운동장 달리기, 오리걸음, PT체조 등 마치 군인들이 받는 훈련과도 같았다. '푸른 교실'에 한 달에 4회 이상 적발될 경우 2주 연속 체력훈련을 받게 되는데 이를 '녹색교실'이라 했다.

방송에 따르면 매일 저녁 '푸른 교실'과 '녹색교실'에 참여하는 학생들은 70여명 가량으로 "일부 학생들에 국한되었다"던 교장의 주장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푸른 교실'에 참여한 학생들은 녹초가 되어 학업에 큰 지장을 받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지각에 대한 스트레스로 불면증에 시달리고, 체력저하로 인해 수업시간에 집중 할 수 없다고 했다. 장기적으로 성적 하락의 원인이 된다고 증언했다.





E고등학교 학생들의 인권 유린 현장은 '푸른 교실' 뿐만이 아니었다. 남자 선생님으로부터의 은밀한 신체접촉 성추행이 이루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볼을 비벼 보라고 여학생의 얼굴을 만지고, 등을 감싸며 가슴을 만지는 등 상상도 못할 성추행이 교사에 의해 학교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여 학생들은 상담교사에게 성추행 사실을 털어놨다. 상담 교사는 즉시 교감 선생님(9월 교장 취임예정)에게 보고했지만 어떠한 조치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사립학교 특성상 막강한 권력을 가진 교장, 교감 선생님에게 대항하기란 쉽지 않은 일인 셈. 덕분에 성추행을 일삼는 남자 교사들은 여전히 교단에 설 수 있었다.

또한 교사들의 구타로 학생들은 몸과 마음이 멍들어 가고 있었다. 동아리 모임에 나오지 않아 음악실에서 뺨을 맞았다고 증언하던 여학생은 그 때의 일이 생각난 듯 울음을 터뜨렸다.

선 생님들의 무차별적인 폭행으로 고막이 찢어진 남학생의 인터뷰도 이목을 끌었다. 방학하기 이틀 전 교문 앞에서 담배를 피우던 민석(가명)은 선생님에게 적발돼 무차별적인 폭행을 당했다. 민석인 현재 인공고막을 한 상태. 민석이를 구타한 남자 교사는 폭행 사실을 끝까지 부인했다.

가장 안타까운 사실은 이러한 인권 유린으로 청소년의 정신 건강을 해친다는 사실이다. '푸른 교실'에 의한 스트레스로 정신과 진료를 받는 학생들이 생긴 것이다.

한 편, 취재도중 문제가 불거지자 경기도교육청은 '푸른 교실'에 대한 인권 침해 요소를 개선하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장학사들은 '성추행', '폭행' 사건에 대한 어떠한 혐의 내용도 찾지 못했다. 학생들의 증언 없이 학교와 교사를 상대로만 조사한 것이 화근. 장학사들은 취재진의 인터뷰 동영상을 보고나서 재조사를 약속했다.

방송에 따르면 교감(9월 교장 취임예정)은 '푸른 교실'의 문제점을 인지, 폐지한다고 했다. '성추행'과 '폭행'으로 얼룩진 E고등학교 학생들의 인권 회복을 기대해 본다.


[구혜정 기자 august1410@naver.com]
'가이드 & 리뷰' 방송전문 인터넷 미디어 'TV리포트'
제보 및 보도자료 tvreport.co.kr < 저작권자 ⓒ 파이미디어 TV리포트 >

☆ 글쓴이 소개☆
부정변증법님의 글입니다.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트랙백 주소 :: http://chamedu.hosting.paran.com/trackback/20

교사는 어디에서 시간을 보낼까? 물론 교실과 교무실이다. 그 중 교무실은 교사가 8시반에 출근해서 16시 반에 퇴근할때까지 학교에서 보내는 시간의 절반을 보내는 공간이며, 수업활동을 위한 각종 준비나 연구가 이루어질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다.

교사가 학교에서 필요로 하는 공간은 다음과 같다.
1) 수업공간 2) 연구공간 3) 사무공간 4) 휴식공간

믿기 어렵지만 교무실은 이 중 연구, 사무, 휴식이 모두 이 곳에서 이루어지도록 되어있는 유일한 공간이다. 즉 교사는 교실 아니면 교무실이며, 수업 아닌 모든 것을 교무실에서 해야 한다. 그러나 교무실은 이 셋중 어느것도 할 수 없는 공간이다.

먼저 사진을 보기 바란다.

왼쪽 사진이 한국 학교의 전형적인 교무실 풍경이다. 이 풍경을 보면 무엇이 느껴지는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미 느끼는 바가 있을 것이다. 그건 바로 오른쪽 사진과 같은 관공서다. 즉, 관공서의 사무실이다. 그것도 낙후된 관공서의 사무실이다. 다른 학교를 뒤져 보아도 마찬가지다. 거의 대부분의 학교 교무실은 아래 사진과 같은 모습이다. 교감이 한 가운데 있고, 각부부장이 남면하고 있는 가운데 각 업무별로 사무용 책상들이 쭈욱 정렬해 있다. 그나마 고등학교는 5명, 6명씩 한 방을 쓰는 경우도 많고, 초등학교는 교실에 교사
사용자 삽입 이미지

방과후면 아수라장이 되는 교무실

용 책상과 컴퓨터가 설치되어 있어, 방과후에 자기 사무실로 사용할 수 있지만, 중학교는 수십명의 교사들을 교실 두칸 정도의 공간에 닥지닥지 몰아 넣는다. 요즘은 동사무소도 이런 곳은 없다.

이러니 교무실은 방과후나 쉬는 시간에는 수십명의 교사들과 그들을 찾아오는 학생, 학부모들로 일대 아수라장이 된다. 이런 곳에서 앞에서 제시한 세가지중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휴식? 절대 불가능하다. 연구, 눈이 있으면 보라. 무슨 연구가 가능하겠는가? 그럼 할 수 있는 일은 딱 하나, 형식적인 서류작업 뿐이다. 즉 여기서 교무실의 비밀이 밝혀진다. 교무실은 결코 교사들이 연구하라고 있는 공간이 아닌 것이다. 그렇다고 푸코가 말한 무슨 미시적 공간의 장인 것 같지도 않다. 그러기엔 너무 엉성하다. 교무실에는 그런 깊은 뜻이 없다. 있다면 오직 하나 "무성의한 공간"이다. 즉 국가가 자기 하수인들을 대충 공간 정해두고 닥치는대로 몰아 넣은 공간에 불과한 것이다. 다시 말해 교무실은 교사들의 수용공간이다.

그나마도 단지 잡무이며 결코 교사의 업무라고 볼 수 없는 행정업무에 따라 배치되어 있는 비교육적 공간이다. 교육법 어디에도 교사가 이런저런 행정사무를 보아야 한다는 규정은 찾을 수 없다. 교사는 법이 정한 바에 따라 학생을 교육할 뿐이다. 각종 교무를 통할하는 것은 교장의 업무다. 교장은 이를 행정직원과 교감에게 지시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그것이 너무 힘들기에 교사들이 십시일반으로 도와주는 것에 불과하다. 그런데 그만 그것이 주무가 되고, 그것을 기준으로 공간이 배치되고 말았다.

교사들에게는 연구를 위한 공간도 없고, 자료를 모아둘 공간도, 개인소유의 책장도 없다. 오직 한평도 안되는 비좁은 공간에 책상 한대가 전부다. 여기서 무슨 연구를 하고 무슨 경쟁력을 키우는가? 교사들에게 선진적인 교육을 원한다면 먼저 그들에게 연구실을 주어야 한다. 실제 교육 선진국중 교무실이 있는 나라는 없다. 각 교사들의 연구실이 있고, 필요할때 모이는 라운지와 회의실이 있을 뿐이다. 교육 선진화? 먼 데서 찾을것 없다. 교무실부터 바꾸자.










☆ 글쓴이 소개☆
부정변증법님의 글입니다.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트랙백 주소 :: http://chamedu.hosting.paran.com/trackback/19

자, 경력평정 20년 다 채우고, 시범학교 등등 프로젝트도 해서 꽉꽉 채웠다. 근무평정 "왕수"도 받았다. 그럼 교감이 될까 천만에. 아직 멀었다.

생각해 보라. 보통 한 학교에 시범사업 한두개 걸친 승진병 환자들은 적게는 다섯명 많게는 10명까지 달한다. 그러나 교감은 한 명이다. 근무평정 "왕수"는 어차피 다른점수 꽉 차면 언젠가는 받게 된다. 그러니 여전히 경쟁률은 5:1이다. 뭔가 더 있어야 한다. 그게 바로 연구점수다.

연구점수라. 듣기는 좋다.

우선 이거 연수점수가 들어간다. 연수점수는 보통 1정연수나 최근 2년간 받은 60시간 이상의 연수중 점수 높은거를 선택하도록 되어있다. 통상 교사의 연수는 88점이 최하점인지라 만점을 받아야 쓸만한게 된다. 그래서 승진병 교사들은 연수를 무척 많이 받는다. 1점이라도 더 높은 점수 나올때 까지 60시간 짜리라면 닥치는대로  받는다. 영어교사가 컴퓨터 연수를 받던, 댄스스스포츠 연수를 받던 좌우지간 교육부가 인가하는 연수이기만 하면 된다. 따라서 이 연수들은 교실 수업에 전혀 보탬이 되지 않는다. 도리어 연수 시험공부 하느라 교실에 쏟을 정력을 빼앗아 간다. 오죽하면 60시간 짜리 연수는 지원자가 많을 경우 "경력이 많은 사람"을 자른다. 점수따기용 연수임을 연수 주최측도 알고 있는 것이다. 하긴 그 연구사, 장학사도 동류들이니 얼마나 잘 아는가?

마침내 이렇게 100점짜리 연수를 하나 건졌다. 그럼 끝나는가? 아니다. 아직 멀었다. 최후의 관건, 가장 돈이 많이 들어가는 연구가산점이 남았다. 모두 3점이 반영된다.

이건 우수한 연구실적을 올린 교사에게 주는 가산점이다. 이게 또 웃긴다. 학술진흥재단에 등재된 권위있는 학술지에 논문을 게재하면 몇점을 받을까? 0점이다. 사이언스, 내이쳐 지에 논문이 실려도 0점이다. 오직 인정되는 논문은 교총에서 실시하는 연구대회 수상논문 뿐이다. 이게 말이 되는가? 저 연구대회 논문의 수준은 외부에서 볼까봐 부끄러울 정도다. 어쨌든 승진병 환자들은 부지런히 논문을 쓴다. 한 방에 금상을 받으면 1점을 받지만 동상이라도 받으면 십시일반으로 계속 동상, 동상, 동상, 이렇게 논문 점수를 모아 나간다. 그래서 1점을 채운다.  물론 교실수업과는 전혀 무관한 것들로, 논문을 위한 논문, 짜집기 논문들이다.

나머지 2점은? 대학원으로 채운다. 교육학 석사는 1점, 박사는 2점을 받는다. 물론 박사과정까지 제대로 공부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대개는 교육대학원 석사 과정을 두번 다닌다. 어쨌든 형식적으로 석사 학위가 두개니 대단하지 않은가? 하지만 단지 승진점수가 목적인 이들이 대학원에서 제대로 연구를 하겠는가? 교육대학원측도 그건 잘 안다. 다만 교사들의 두둑한 주머니를 털어 돈을 벌기위해 교육대학원을 세우는 것이다. 천안대학이 교육대학원만 서초구에 있다. 이게 뭘 의미하는가? 죽전으로 이사간 단국대학도 교육대학원은 여전히 서울에 있다. 오묘하지 않은가? 이렇게 짜집기 논문 여러편, 대학원 두번을 다녀야 비로소 연구점수도 완성이 된다.

아, 가산점이 또 있다. 포상 가산점이다. 이게 또 웃긴다. 교육장 상을 받은 적이 있어야 교육감 상을 받는다. 교육감 상을 받은 적이 있어야 교육부장관상을 받는다. 교육감 상부터 점수에 들어간다. 명색이 교육학박사고 항상 학교의 대표수업을 도맡아 해온 나는 나이 마흔이 넘도록 상 하나 받아본적이 없다. 그런데 승진병 환자들은 용캐도 용캐도 상을 잘도 받아간다.

이렇게 점수를 꽉 채우고 있어야 교장이 적당한 시점에 "왕수"를 주는 것이다. 이렇게 화룡점정으로 왕수를 받으면, 그토록 갈망하던 교감이 된다.

자, 지금까지 교사가 교감이 되기까지 필요한 것들을 무려 세번에 나누어 연재했다. 뭐가 느껴지는가? 그 어디에도 학생들을 어떻게 잘 가르쳤나 하는 것은 반영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연구점수, 대학원은 학교 밖의 일이다. 자기 교과와 무관한 논문, 대학원이라도 교육자만 들어가면 다 점수가 되니, 그 연구들 참 가관이다. 포상은 순전 교장 마음이다. 근평도 교장 마음이다. 경력평정의 가산점은 역시 수업과 무관한 각종 프로젝트 시범사업들이다. 이런 것들을 20년에 걸쳐 공들여 관리해야 교감이 되는 것이다. 50에 교감되고 싶으면 30세부터 준비해야 하는 것이다.

자, 이제 이해가 되는가? 교사가 승진하려면 일찌감치 교사이기를 포기해야 하는 것이다. 그럼 교실에서는? 그저 무탈하게 사고만 나지 않게 잘 관리하면 된다. 무섭게 해서 조용히 시키고 졸던말던 수업 결손 내지말고, 교실 청소나 깨끗이 하면 된다. 그리고 나머지 시간에 저 잡다한 짓거리를 공들여서 관리해야 하는 것이다.

이래도 교감들이 교육자라고 하겠는가? 이런 사람들이 과연 올바른 교육적 판단을 내릴수 있겠는가? 이미 교감으로 양성되는 과정속에 완전히 망가진 사람들인 것이다.
☆ 글쓴이 소개☆
부정변증법님의 글입니다.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트랙백 주소 :: http://chamedu.hosting.paran.com/trackback/18

경력평정 점수를 확보했으면, 다음에는 근무평정이 기다리고 있다. 근무평정은 문자만의 의미로는 근무를 얼마나 잘 했나 평가하는 것이다. 통칭 수우미양가로 평정하며, 학교장이 전권을 가지고 있다. 문제는 교사들은 자신이 무엇으로 평가되었는지, 어떤 근거로 그렇게 평가되었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근거도 결과도 알 수 없으니, 근평을 잘 받기 위한 정해진 규칙도 없다. 오직 교장의 자의에 의해서 결정된다.

다만, 당해년도 근무평정 최고 점수를 누가 받느냐 (속칭 왕 수라고 한다)하는 것은 관례상 교무부장이 받는다거나, 아니면 이 왕수 하나만 추가하면 바로 교감 나갈수 있는 사람에게 준다는 불문율 비슷한게 있다. 하지만 그것도 교장 마음이니 아무도 장담 못한다. 

이렇게 교장에 의해 마음대로 매겨질수 있는 근무평정이다 보니 그것을 잘 받기 위해서는 교장의 눈에 들어야 하고, 교장이 생각하기에 잘 근무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파악해야 한다. 교장이 바뀌면 평정기준도 바뀌는 것이다(물론 서류상으로야 학생지도 등등의 세부항목이 있지만, 미리 수우미 대상자 정해놓고 세부항목 점수는 거기에 맞춰 끼워 넣는다는거야 이미 알사람 다 아는 이야기다). 이 이야기인 즉슨, 교장이 청소를 중요시하면 수업을 전폐하고라도 매 수업시간에 학생들 청소를 빡빡 시켜야 하며, 교장이 행정사무를 중요시하면 맨날 서류뭉치 들고 끙끙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뜻이다.

이렇게 교장 눈에 들면 부장이 된다. 부장이 되면 적어도 근무평정에서 두번째 등급은 확보할 수 있다. 그리고 부장들 중에 한 두명이 최고 점수를 받는 것이다. 이로써 부장교사들은 기묘한 집단을 이룬다. 그들은 다른 교사보다 높은 점수를 확보한 집단이라는 우월감으로 자기들끼리 뭉치지만, 다시 그 속에서 최고점수를 받기 위해 교장의 총애를 다투어야 한다는 점에서 치열하게 시기하고 견제한다. 이 모든 것이 교사에게 기대되는 모습이 아님은 당연하다. 더 나아가 교장이 아부를 좋아하면 아부를, 술을 좋아하면 술자리를, 놀이를 좋아하면 노래방 모임을, 돈을 좋아하면 금일봉을 제공해야 한다는 뜻이다. 실제로 많은 부장교사들이 이런식으로 산다. 그 이유는 결국 교장이 절대권력을 가지고 있으며, 그들이 승진하려면 그것이 절대권력에 얼마나 잘 보이냐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본인에게 공개되지 않는 기준과 점수, 이것이야 말로 절대권력의 핵심조건임을 이미 노자와 한비자가 수천년 전에 말하지 않았던가?

그러니 교감으로 승진하고자 마음먹은 교사는 교육적 소명과 철학보다는 교장의 취향에 자신을 맞추어야 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교장은 이런 과정을 거쳐 교장이 되었기 때문에 교실수업에는 별 관심이 없다. 그런 일상적인 교실수업과 교육장면 보다는 외부에 폼내기 좋은 것들, 특별한 수업, 특별한 사업이 교장의 관심사다. 따라서 교장 눈에 들려면 이런 특별한 사업들에 헌신해야 한다. 불행히도 교사들의 수업시수는 이런 특별한 사업에 헌신할만큼 널널하지 않다. 따라서
특별한 사업의 대가는 일상적인 수업의 부실화다.

여기서 또 다시 고통스러운 역설이 반복된다. 교사는 승진하려면 교사이길 포기해야 한다. 교사일수록 그는 승진과 멀어지며, 교사가 아닐수록 그는 승진과 가까워진다. 보통 근무평정에서 왕수를 받을 정도의 위치가 되려면
두세 학교를 거치면서 10년여에 걸쳐 다양한 교장들의 취향에 맞춰가며 간과 쓸개를 내어 주어야 한다. 그래서 받게되는 훈장이 바로 왕수인 것이다.

그러나 왕수만 받았다고 승진이 되느냐 하면 그건 또 아니다. 여기까지는 승진병 환자라면 누구나 웬만큼은 한다. 그래서 동점자가 속출하기 십상이다. 따라서 변별력을 높이기 위한 또 다른 장치가 있다. 이른바 연구가산점이다. (다음에 계속)

☆ 글쓴이 소개☆
부정변증법님의 글입니다.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트랙백 주소 :: http://chamedu.hosting.paran.com/trackback/17

교장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학교. 갈수록 교육부는 초중등교육을 지자체로 이관하려 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교장의 권력은 더욱 세진다. 교사들은 교장이 되기위해 해바라기가 되어간다.

그런데, 교장들 세계에 "교장으로 부임한 첫날 자리에 앉으면 눈 앞에서 주마등처럼 지난 세월이 흘러간다."라는 말이 있다. 교장이 되기 위한 과정이 정말 지난하고 길고 험했단 뜻이리라. 학교를 책임지는 수장이 쉽게 되는 것도 문제겠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그 지난하고 험한 길이 학생들의 교육과는 전혀 무관하다는 것이다. 영어 교사가 운동장에 구덩이를 100개를 파고, 내가 이렇게 힘들게 일했는데 왜 인정해 주지 않느냐라고 따지면 "삽질"이라고 비웃음을 살 것이다.
그런데 교장이 되기 위해 주마등이 떠오를 정도로 파란만장했던 그 고생들도 학생교육의 관점에서 보면 "삽질"이라는 것에 한국 교육의 비극이 있다.

이제부터 그 삽질을 하나하나 분석해 볼 것이다.

교장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 교장 자격증을 획득해야 한다. 교장 자격증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교장 자격연수를 받아야 한다. 그럼 그 연수는 어떻게 받나? 그건 국가가 연수대상자 명단에 포함시켜 주어야 받을 수 있다. 즉 일정 요건이 되면 연수를 받고 자격증을 받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수를 정해 놓고, 순위를 매겨 일정 인원수에서 자른다는 것이다. 그럼 그 연수에 지원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먼저 교감자격증을 가져야 한다.

따라서 이 삽질의 시작은 교감이 되기위한 경쟁에서부터 시작된다. 자, 그럼 한 사람의 교사가 교감이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한 번 챙겨 보자.

사실 이 시점에서 필자도 곤란을 느낀다. 그 분야에 대해 잘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교육학 박사이면서, 나름 유능한 교사로 자부하는 필자도 승진을 하려면 그 분야를 따로 시간내어 연구해야 하는 것이다.

어쨌든, 정리해보면 교사가 교감이 되기 위해서는 승진후보자 명단에서 상위권에 이름을 올려야 하며, 그 상위권에 오른 교사들을 추려서 교감 연수를 실시하고, 교감자격증을 준다. 그럼 승진후보자 명단에 이름 올리는 순서의 기준이 되는 점수는 어떻게 산출하나?

1. 경력평정 2. 근무평정 3.연구가산점 의 합께로 산출한다.

경력평정은 교사가 근무한 햇수를 의미한다. 근무평정은 근무할때 교장으로부터 받은 평가를 의미한다. 연구가산점은 문자 그대로 우수한 연구실적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이 기준은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이렇다.

"오래 근무하고, 그 근무실적이 우수하면서 특출한 연구성과가 있는 교사가 교감이 된다."
과연 그럴까? 안타깝게도 그 반대라는 것이 문제다. 먼저 경력평정부터 살펴보자. 문구상으로는 기본15년, 초과 5년 모두 20년이 평정 대상이 된다. 

그런데, 두가지 고약한 것이 있다. 바로 경력 등급과 경력 가산점이다. 경력 등급은 같은 개월수를 근무하더라도 서로 다른 점수를 받는다는 것이다. 가 경력이 가장 많은 점수를 받고, 나, 다 순서로 이어진다.

문제는 교사만 하다가 교감이 된 사람보다 장학사나 연구사 좀 하다가 교감이 된 사람이 교장승진에 필요한 가 경력이 더 많아서 교장되기 더 쉽다는 것이다. 그래서 교사만 하다 교감이 될 경우 그냥 교감으로 정년퇴임하기 십상이다. 그래서 많은 교사들이 장학사나 연구사가 되려고 거의 발악을 한다. 기실 거의 강등에 가까운 이동인데도 그걸 마치 승진한것처럼 여기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그런데 교감이 되기위한 경력에는 불행중 다행으로 교사 경력과 장학사 경력이 함께 가 로 분류되어있다. 그러나 문제는 경력 가산점에 있다. 만약 이 가산점이 없다면,
무탈하게 징계없이 20년을 근무한 교사는 모두 경력점수가 만점이 되고 말 것이다. 이래서야 줄세우기가 되지 않는다.

그래서 이런 저런 명목을 달아 같은 개월수를 근무하더라도 매달 작지만 몇점식의 가산점이 추가되는 규정을 가지고 있다. 명목이야 가지가지다. 말많고 탈많은 벽촌오지 근무, 시범학교 근무, 부장교사 근무, 교사대부속학교 근무, 기타 등등이 있다. 이 중 농어촌에서는 오지 근무, 도시 지역에서는 시범학교 근무가 가장 말썽을 일으킨다. 아무런 교육적 소신 없이 점수를 위해 벽촌에 근무하는 교사가 그 지역에 무슨 애정을 가질 것이며, 단지 승진 가산점을 위해 온갖 프로젝트를 벌려놓고 보고서야 발표회야 정신없는 교사가 무슨 교실 수업을 제대로 하겠는가? 그
시범사업이라는 것도 온갖 해괴한 것들로 교실수업과 직접 관련 없는 것이 대부분이다.심지어 음악교사가 과학수업개선 시범팀에 끼여들기도 한다.

 그것도 그 학교 교사 전체가 가산점을 받는 것이 아니라 기껏해야 열댓명의 프로젝트 팀이 가산점을 받는 것이니, 그 팀에 끼기 위해서는 교장,교감의 눈에 들어야 한다. 심지어는 프로젝트 사냥꾼들이 있어서 그런 사업 벌리는 학교만 골라가며 전근다니는 교사가 있을 지경이다. 문제는 그런 시범사업이 하나 벌어지면 그 열댓명이 아니라 전체교사, 전체 학생들이 이런저런 일치다거리 하느라 부산스럽다는 것이다. 결국
열댓명의 승진점수를 위해 온 학교가 들썩거리는 상황이 되니, 참으로 한심스러운 일이 아닐수 없다.

그러나 이런식으로 경력점수를 만점을 채우고 다시 가산점까지 보태야 겨우 교감 승진 경쟁에 명함을 내밀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각종 시범사업 쫓아다니다보면 나중에는 자기 교과목이 뭐였는지 잊어버리는 것은 시간문제며, 시범사업 하는 학교 리스트와 그쪽 연줄관리하는데만 도가 트이게 된다. 이런 사람들을 어찌 교사라 하겠는가? 하지만 교감이 어디 교사인가? 그러니
교감이 되기 위해 먼저 배워야 할 것은, 교사이기를 포기하는 것이니 참으로 오묘하지 않은가?

하지만 이건 시작에 불과하다.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점수차도 많이나는 근무평정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이것 참.....(다음에 계속)


☆ 글쓴이 소개☆
부정변증법님의 글입니다.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트랙백 주소 :: http://chamedu.hosting.paran.com/trackback/16



(작년 12월쯤에 썼던 글입니다)


초등학교엔 '중간놀이'라는 시간대가 있다.

아이들의 건강을 위해 2교시 마치고 20분 동안(보통의 쉬는 시간은 10분) 신체 활동을 하게 하는 것인데, 이것이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교사와 아이들 모두에게 고역인 시간이었다. 말이 '중간놀이'이지 중간 시간대에 아이들이 자유롭게 노는 것이 아니라 미리 짜여진 각본(학교교육과정)에 따라 전교생이 운동장에 모여 '체조(집단체조)' 같은 것을 하곤 했던 것이다.


지금도 일부 학교에서는 이렇게 하는지도 모르겠다.

우리 학교에서는 2005학년도에 내가 생활담당을 할 때 이것을 "중간에 자유롭게 놀이 하는 시간"으로 바꿨다. 교사의 역할은 요일별로 학년당 한 분이 안전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어린 양떼를 돌보는 목자"의 역할을 하는 것을 기본 취지로 정해 직원협의회에 통과 시켰다. 사실 '목자'의 역할도 필요 없지만, 당시에는 관리자가 보기에 교사들이 아무 것도 안 하고 노는 것 같은 인상을 주지 않기 위해, 일종의 타협점으로 제시한 것이었다.

그런데 작년에 이어 올해는 학교교육과정 편성에서 '중간놀이'를 없애버렸다. 어떠한 결정단위에서 이렇게 했는지는 모르지만, 내가 보기에 아이들을 위한 배려는 절대 아니다.

(이 글과 관련하여 그 진의를 악의적으로? 의심해보건대, 10분을 줄이면 그만큼 아이들을 10분 일찍 집으로 보낼 수 있기 때문에 자기시간이 10분 더 확보되는 것 때문일 지도 모른다. 설령 이것이 아니라 하더라도 교사들이 "아이들의 행복을 빼앗아 간다"는 것을 모르는 점에서 그들의 판단을 좋게 볼 수 없다.)



20분의 중간놀이 시간은 아이들에게 꿀맛 같은 시간임에 틀림없다. 2교시 마침 종이 울리기가 무섭게 공이나 줄넘기를 들고 쏜살같이 뛰쳐나와 운동장이나 학교 뒷뜰에서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즐겁게 논다. 얼마나 공을 차고 싶었으면, 며칠간 비가 계속 올 때면 참다참다 더 이상 못 견디겠던지 녀석들은 우산을 들고서 공을 찬다(저학년은 이런 모습이고 고학년은 아예 비 맞으면서 찬다).

10분으로 축소된 2교시 쉬는 시간, 들어갈 종이 치면 아이들은 아쉬움을 뒤로 하고 부지런히 교실로 향한다.

그런데, 교사들은 아이들만큼 바쁘게 교실로 돌아가지 않는다. (초등학교 교사들은 2교시 마치고 동학년협의회실에서 '커피타임'이란 이름의 '문디 반상회'를 갖는다)

심지어 어떤 학년은 들어갈 종이 친 뒤 10분이 지나도록 개긴다. 선생이 없는 교실이 조용할 리가 없다. 시끌벅적 야단법석... 선생은 이런 소요를 막기 위해 '반장'이라는 이름의 간수를 시켜 칠판에 떠드는 아이 이름을 적게 한다.

('커피타임'을 가지려면 사실 10분으로는 모자란다. 동학년 구성원들이 다 모이려면 5분이 걸린다. 모이는데 5분이 걸리는데 커피 끓이고 학년부장이 업무 전달하고 수다 떨고 하는 중간에 벌써 종 친다. 그러므로, 애시당초 중간놀이 시간을 10분으로 잡은 자체가 무리였던 것이다. 애들 10분 일찍 보내고 싶으면 '커피' 욕심을 내지 말던가......)



교육의 장에서, 도대체가 있을 수 없는 진풍경이 '학생'이 아닌 '교사'의 편에서 빚어지고 있다.

교장/교감은 뭐 하는 사람이냐고?

그렇다. 2003년 개교 이래 지금까지 우리 학교 교장/교감들은 그저 좋은 사람이었다. 교사가 늦게 출근하고 근무시간 전에 자율적으로 퇴근해도 불러서 지도하는 법이 없고 위와 같이 수업시간 지키지 않는 교사에게도 이런저런 쓴소리를 던지는 법이 없다. 그래서 좋은 사람이다. "사람 좋다"는 게 뭘 뜻하는지...

교장/교감은 다면평가 관철시키기에는 최선을 다해도 교사 통제 하는 일에는 결코 '승부수'를 띄우지 않는다.


그리고 어떤 면에서는 '전교조(우리 분회)' 눈치를 보는 것도 있는 듯하다.

이 글에서 내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에서 이 점이 중요하지만 이에 대해서는 자세히 적지 않겠다.

단위학교의 실정에 따라 교육 모순의 성질이 다르고 또 관리자와 분회 사이의 대립 접점이 저마다 다르겠지만, 공립학교에서 학교장이 아이들을 망치는 경우보다는 교사들에 의해 그렇게 되는 경우가 훨씬 많다고 나는 생각한다.

우리 초등 전교조가 '표준수업시수법제화'를 주장할 자격이 있는지 스스로의 양심에 물어봐야 할 것이다.


교원평가가 현장을 황폐화시킬 괴물이기에 반대해야 한다면...... 학교 내에서 현재 교사집단내에 팽배해 있는 그릇된 문화, 즉 "우리 내부의 괴물"에 대해서는 스스로 청산할 의지와 노력이 뒤따르고 있는지에 대해 뼈를 깎는 성찰이 필요할 것이다.


우리 학교, 교사들이 근무하기에 너무 좋은 학교라 소문 나 있다고 한다. 한편으론, '관리자의 무덤'이라는 소리도 들린다. 지금까지 내가(우리가)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치열하게  싸워왔던가 하는 회의감이 밀려온다.


..................


특수반이라서 편할 것이라고 학년초 업무분장 나눌 때 내게 '생활지도'를 맡겼다. 초등의 생활담당교사나 중등의 학생부장은 '간수(guard)'이다. - 생활지도는 영어로 'life guidance'인데, 한국의 학교에서 생활지도는 생활통제로 변질되어 기능한다. 교사는 guider가 아니라 guard이다.

요즘 같이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아이들은 많이 움직인다. 따라서 내가 많이 움직여야 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복도에서 달리는 녀석들 이름 적었다가 적당한 날 아침에 방송을 한다. 방송으로 이름 적힌 녀석들을 호출한다. 이렇게 해도 아무도 나보고 '학생 인권 유린' 어쩌구 안티 거는 사람 없다. 오히려 칭찬을 한다. ㅇㅇ샘, 조용한 학교 만들기 위해 수고하신다고...


아이들이 얼마나 순진한지... 불려온 녀석들은 마치 "죄인"인 양 고개를 숙인다. 

"내가 지금 뭐 하는 짓인가" 생각해본다. '생활지도'인가 '생활통제'인가?


물고기가 헤엄 치기 위해 태어났듯이, '아이'라는 생명은 달리기 위해 태어난 것을... 이들이 펼치는 장난(play)은 '일탈'이 아니라 건강한 성장을 위해 꼭 필요한 '신체활동(play)'이 아닌가?

누가 죄인인가?

누가 일탈을 범하고 있는가?

생활지도(?)를 받아야 할 쪽이 누구인가?

☆ 글쓴이 소개☆
liveas1님의 글입니다.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트랙백 주소 :: http://chamedu.hosting.paran.com/trackback/15

"이런, 기능직이나 더 보내주지..."
이 대사는 어느 학교 교감이 한 말이다.
사연인즉슨, 이 학교 학급수가 늘어서 복수교감 학교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다음 학기부터 교감이 한 명 더 배치된다고 하자, 원래 있던 교감이 "교감은 뭐하러?" 하면서 한 말이다.

바로 이 말이 학교의 현실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말이다. 실제 학교는 교감보다는 기능직 직원 한명이, 행정직원 한명이 더 간절히 필요하다. 아니면 교감이 기능직이 하는 일, 행정직이 하는일을 도맡아서 하던가....

초중등교육법상 교사는 법이 규정한 바에 따라 학생을 교육하도록 되어있다. 그 외의 어떤 일도 교사의 일로 규정된 일은 없다. 생활기록부 등 학생관련 서류와 기록의 작성및 관리 담당자는 교육법상 교장, 그리고 그를 보좌하는 교감으로 되어있다. 즉, 현행법은 수업과 학생지도를 제외한 모든 문서작업을 교장, 교감, 그리고 행정직원의 일로 사실상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이른바 각종 교무를 통할하도록 되어 있는 자리는 교장인 것이다.

이는 제법 꼴을 갖춘 거의 모든 나라의 공통된 현상이다. 오죽하면 일본에서는 너무 일이 많아 고되다고 도로 교사가 되겠다고 신청하는 교장이 늘어날까? 미국에서도 교장, 교감, 그리고 행정직원 네명이 학교의 모든 행정사무를 처리한다. 그래서 교장 교감은 3D로 통한다. 정작 교사는 수업이 끝나면 연구실로 들어가며, 일단 연구실에 들어간 교사는 학부모나 학생도 방해하지 못하게 되어있다.

그런데 유독 한국만 시간이 남아 터져 난초에 물질이나 하는 교장, 고개 쳐박고 인터넷 쇼핑이나 하다, 수업하느라 바쁜 교사가 시간을 쪼개어 쪼개어 작성한 각종 행정문서에 빨간줄이나 그어서 다시 써오라는 가학놀이을 즐기는 교감들이 득실거린다. 심지어 그 부족한 행정직원조차 그 중 한명이 기껏 주사나 주사보에 불과한데도 행정실장입네 하며 마치 기관장이나 된양 일 안하고 건들거리며 어른 행세를 한다.

이러니 학생 가르치고 연구하기에도 빠듯한 교사들이 엉뚱하게 남이 해야 할 일 하느라 정신을 못차린다. 교사의 잡무, 행정업무는 얼른 보면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교육하는 와중에 그 일을 한다면 그게 장난이 아니며, 비생산적이며 무척 짜증스럽다. 비생산적인 일로 짜증이 난 교사가 학생을 어떤 식으로 대할지는 안봐도 삼천리다.

그래서 학교가 학원에게 밀리는지 모른다. 학원 선생은 오직 수업만 신경쓴다. 각종 비즈니스, 사무는 모두 원장과 총무가 도맡아서 한다. 고객관리와 면담은 부원장의 몫이다.

공교육 강화. 그 길은 멀리 있지 않다. 일손 바쁜 학교에서 탱자탱자 놀고먹는 소위 관리직들에게 일감을 잔뜩 주고, Teacher 들을 문자 그대로 teach에 전념하게 하는 것이다. 지금처럼 기능직보다 쓸모없는 교감이 계속 존속하는 한 공교육의 미래는 암담하다.
 


☆ 글쓴이 소개☆
부정변증법님의 글입니다.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트랙백 주소 :: http://chamedu.hosting.paran.com/trackback/12

[ 2008-08-26 08:42:49 ]

CBS사회부 고영규 기자

교감 승진 대상자에게 근무평점을 빌미로 금품을 수수한 초등학교 교장에 대해 사전구속영장이 신청됐다.

경 기도 화성동부경찰서는 교감 승진대상자로부터 수 차례에 걸쳐 금품을 받은 혐의(뇌물수수)로 오산 모 초등학교 교장 A(57) 씨에 대해 사전구속영장을 신청하고, 금품을 제공한 혐의(뇌물공여)로 같은 학교 여교사 B(47) 씨를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에 따르면 A 씨는 지난해 8월1일 교감 승진후보인 B 씨로부터 "근평을 잘 받게 해달라"는 청탁과 함께 100만원을 받는 등 올 초까지 8차례에 걸쳐 220만원을 받은 혐의다.

A 씨는 또 지난해 8월 1박2일로 국내 여행을 하면서 B 씨에게 여행경비로 240만원을 대신 지불하도록 하는가 하면 용품 등을 제공받은 혐의도 받고 있다.

하지만 A 씨는 지난해 100만원과 일부 용품은 받았으나 나머지 혐의는 인정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A 씨의 금품수수 의혹은 이 학교 전·현직 교사와 학부모가 연명, 화성교육청에 진정서를 제출하면서 드러났다.
☆ 글쓴이 소개☆
부정변증법님의 글입니다.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트랙백 주소 :: http://chamedu.hosting.paran.com/trackback/11

알리는 오늘도 지각을 했다.

오전반인 여동생과 운동화를  교대로 신고 학교에 와야 했기 때문이다. 복도에서 기다리고 있는 호랑이 교장선생님!

"알리! 오늘도 지각을 했구나!"

이런 저런 변명을 해야 하는 알리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사실대로 말 할 수 없을 만큼 가난한 집안 사정...


엄한 교장 선생님은 여러번 지각을 하는 게으른 학생은 학교를 다닐 자격이 없다며 집으로 돌아가 부모님을 모시고 오라고 한다.

'천국의 아이들'이라는 이란 영화의 한 장면이다. 그 영화 얘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교장의 오지랍 얘기를 하려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교장이 지각생까지 지도하다니...

우리 상식에는...적어도 우리가 학교에서 보는 광경으로는 우리네 교장들이 체신없이 할 일은 아니다.

지각을 하거나 문제를 일으키거나 모두 담임 몫이다.


교장은 학교에서 무엇을 하나?

학생들은 교장을 잘 모른다. 아주 높은 곳에서 가끔 방송 조회를 통해 훈화를 하는 고리타분한 사람쯤으로 알고 있는 것 같다.

매우 넓고 쾌적한 직무실에서 고요하게 앉아 무엇을 할까?


이렇게 지위는 있으나 역할을 잘 수행하지 않거나 역할조차 알 수 없는 그 자리가 편해서인지 교장 되려는 사람이 많다. 적어도 승진을 바라는 사람들에게  최종 목표는 '교장'이다.  

더러는 존경 받는 교장도 있다. 그러나 난 아직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다. 어느새 다섯 번째 학교에 6~7명의 교장을 만나보았으나 그 가운데는 없었다.


교장이 되려는 사람들 얘기를 간 혹 전해 듣다 보면 말도 믿을 수 없는 사례들이 많다. 그 가운데 하나는 가장 최근에 들은 얘기다. 교감이 되고 교장이 되려면 근무성적을 1등 받아야 한다고 한다.

그런데 1등을 받으려면 학교에서 가장 일을 많이 한 사람으로 인정 받아야 마땅한 일이지만, 때로는 무언의 약속을 하고 서로 돌려가며 점수를 주고 받는단다. 어느 야심찬 부장 교사가 당시 교감에게 1등을 달라고 했다. 그런데 교감이 총애하는 부장은 따로 있었고, 요청한 사람은 보기 좋게 거절 당했다. 거절당한 그 사람 " 나는 꼭  필요해요! 그사람은 얼마 주던가요? 얼마면 되겠어요? " 기가 찰 일이다. 얼마를 어떻게 주었는지 모르지만 그사람은 현재 승승장구 중이고 조만간 교장이 될 것이다. 당시 교감이 총애하던 부장교사는 전해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그 교감의 집에 가서 청소를 해주었다는데...군대에서 상관에게 잘 보이려고 하위 군인의 부인들이 김장해주러 가고 청소해주러 간다는 말은 들어보았으나 교육계에서 일어나는 이 웃지 못할 이야기들은 대체 어디까지가 진실일까?  


학생들이 지각을 하는지, 누가 전학을 오는지 일탈 학생을 담임교사가 지도하느라 얼마나 힘드는지 알지 못하는 교장. 들어도 '참! 쯔쯔' 하고 마는 교장. 뒺짐지고 위세를 보이며 걸어다니고, 엄연히 금연구역인 교내 당직실 한 귀퉁이에서 흡연을 하는 위법자...내가 아는 교장의 모습이다.

학교에서 일어나는 경사로운 일에는 교장의 덕을 내세우고  불미스런 일에는 뒤로 꽁지를 숨겨버리는 교장.


그런 교장자리에 오르겠다고 그 교장이 원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따라 해주는 똥닦게 교사들이 다시 그 자리에 오르면 다시 그런 교장이 되지 말란 법이 없다.


천국의 아이들...

어려운 형편에서 학교를 다니느라 지각을 하더라도, 지각을 하면 안된다며 부모님 모시고 오라고  꾸중을 하는  학교의 제일 엄한 선생님이 교장이고 , 그런 교장의 관심과 지도를 받으며 학교를 다닐 수  있다면 적어도 우리네 학교 보다는 천국이 아닐런지...

☆ 글쓴이 소개☆
물쟁이님의 글입니다.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트랙백 주소 :: http://chamedu.hosting.paran.com/trackback/10

학교에는 보직교사가 있다. 보직교수가 교수보다 전혀 상급자가 아니라 단지 그 직무를 맡은 것에 불과하듯, 보직교사 역시 단지 그 직무를 맡은 것에 불과한 교사다. 그런데 보직교사들이 서로를 부르는 호칭은 보직교수들과 자뭇 다르다.

보직교수들은 서로를 부를때 "이 처장", "박 실장"보다는 "이 교수", "박 교수" 혹은 "이 선생", "박 선생"을 선호한다. 차라리 공식적으로 "학생처장"이라고 부를지언정 "이 처장" 혹은 "이 ** 처장님"이라는 칭호는 듣기 어렵다.

반면 보직교사들은 한사코 "선생"칭호를 사용하지 않는다. 심지어는 "한아무 선생님"이라고 후배 교사가 부르면 부장님이라고 부르지 않았다고 성을 내기도 한다. 그야말로 속물 근성의 발로가 아닐수 없다. 그 속내에는 "선생님"을 매우 낮은 말단관리 쯤으로 생각하는 자학 근성이 숨어 있다. 그래서 그런지 6급 행정 주사에 불과한 학교 행정실장을 마치 상관처럼 생각하는 한심한 교사도 있다. "부장님"이라고 불림으로써 그 6급 행정주사와 동급이 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그놈의 부장님, 실장님 소리가 교무실을 뒤흔들때면, 여기가 학교인지 아니면 관공서나 회사인지 헷갈릴 정도다.

그런데, 상호 다른 직렬의 공무원을 특별채용할 경우의 대우 기준으로 사용되는 "공무원임용시험령 별표 9"에 보면 "선생님"은 결코 미관 말직이 아니다. 교사는 직급이 없기때문에 호봉을 기준으로 삼는데, 신임교사가 9호봉을 지급받고, 중간에 1급 자격증을 따면 1호봉 승급함을 감안하면 신규교사는 7급에 준하며(초등학교의 경우 7급이 행정실장을 함/ 주사보), 4년차가 되면 6급에 준하고(중학교 행정실장/ 주사), 7년차가 되면 5급(고등학교 행정실장/ 사무관), 15년차가 되면 4급(서기관/ 교육부 과장급)에 준함을 알수 있다. 이 사실을 가장 모르는 사람들이 바로 교사다. 그래서 김진표 전 교육부장관이 "앞으로 교사를 예우해서 각종 행사에 6급에 준하도록 하겠다"는 헛소리까지 나오는 것이다. 특별한 예우가 필요 없다. 법대로만 대접하면 되는 것이다.

[별표 9] <개정 2007.12.28>

특별채용예정계급별 경력기준(제27조제3항관련)

 

임용예정계급

 

 

직무분야

3급

4급

5급

6급·

기능직기능6급

이상

7급·

기능직기능7급

8급·

기능직기능8급

9급·

기능직기능9급

이하

경찰공무원

경무관

총경

경정

경감

경위

경사

경장

순경

중령

소령

대위

중위

소위

준위

원사

상사

중사

하사

교육

공무원

(사립

학교

교원

포함)

대학(교육대학·전문대학 포함)교원

교수

부교수

조교수

전임

강사

 

 

 

초·중·

고등

학교

교원

및 기타 교육공무원

「공무원보수규정」 별표 11

적용대상자

 

24호봉

16호봉

12호봉

11호봉

 

 

「공무원보수규정」 별표 12중

대학봉급액란

적용대상자

 

17호봉

11호봉

7호봉

6호봉

 

 

「공무원보수규정」 별표 12중

전문대학봉급액란 적용대상자

 

19호봉

13호봉

9호봉

8호봉

 

 

판사·검사

5호봉

2호봉

 

 

 

 

 

기능직공무원

 

 

 

기능직기능6급

이상

기능직기능7급

기능직기능8급

기능직기능9급

이하

관련직무분야 박사학위 소지자

박사학위

소지후

8년

이상

박사학위

소지후

4년

이상

박사학위

소지자

 

 

 

 

관련직무분야 민간근무 경력자

임용예정직급에 상당하는 관리자 경력 3년이상

6년

3년

 

 

사실이 이런데도, 경력 7년만 지나면 사실상 하급자에 불과한 행정실장과 동급으로 부장님이라 불리며 감격스러워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승진에 필요한 근무평정 점수 때문이다. 근무평정 점수를 부과하는 권한은 온전히 교장에게 있으며, 교장은 그것을 수업과 각종 교육활동이 아니라 이른바 행정업무를 기준으로 매기는 경우가 많다. 즉, 가장 행정업무를 많이 보는 교무부장이 최고등급을 받는 것이 관례화되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승진에 눈 먼 교사들은 서로 교무부장이 되려고 한다. 교무부장이 되려면 먼저 부장이 되어야 한다. 즉 교육보다는 행정스러워져야 한다. 결과적으로 훌륭한 교사가 아니라 행정실장이 전범으로 자리잡게 된다. 이 한심스러운 상황의 배경에 더 한심스러운 승진제도, 근무평정제도가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세상은 냉정해서 스스로 대접하는 만큼만 대접해준다. 스스로를 행정직원의 하급자로 대접한다면, 세상은 그렇게 대접할 것이다. 교사들에게 필요한 것은 승진제도에서 비롯된 왜곡된 말단의식을 버리고, 더도 말고, 딱 법이 정한만큼의 자부심과 책임감을 가져야 할 것이다. 물론 그 놈의 부장님 소리 집어치우고, 마땅히 선생으로 서로 불러야 할것이다.



☆ 글쓴이 소개☆
부정변증법님의 글입니다.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트랙백 주소 :: http://chamedu.hosting.paran.com/trackback/8

우리학교 교감은 잘 삐진다. 일단 삐지면 각종 결재 등에서 반드시 복수를 한다. 사소한 트집을 잡아 반려를 한다던지, 아니면 남들 있는 앞에서 호통을 친다던지 하면서. 그런데 절대 전교조 활동가, 부유층이나 권력층 남편을 둔 교사, 그리고 힘이 세보이는 남교사에게는 그러지 않는다. 항상 애꿎은 기간제 교사나, 비교적 젊은 여교사가 그 대상이 된다.

1학년 어느 반에선가 전교1등이 나왔다. 그 학생의 학부모가 감사드린다면서 별안간 보쌈을 학교에 보냈다. 담임교사는 과학교사들의 양해를 얻어, 과학실에 보쌈을 펼쳐놓고, 전체 교사들에게 쪽지를 돌려 작은 파티에 초대를 했다.

그런데, 교감이 삐졌다. 다들 한 점씩 먹으러 가는데, 꼼짝도 않고 꿍하면서 자리에 앉아있다. 몇몇 여교사들이 가서 달래주자, 겨우 비적비적 일어나서 "진작 그럴 것이지"하는 모습으로 과학실로 갔다.

그는 대체 왜 삐쳤던 것일까? 나중에 자초지종을 알아보니, 이랬다.

1. 과학실을 교과 이외의 목적으로 사용하면서 "관리자"의 허락을 구하지 않았다는 점.
2. 교사들에게 과학실로 오라고 초대 쪽지를 보내기 전에 먼저 "교감"을 모시지 않았다는 점. 한 마디로 뭍 교사들과 동등하게 취급했다는 점

그 사정을 알게 되자, 나는 화가난다기 보다는 매우 코믹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관리자"라는 말을 들으면 뭔가 높다는 생각이 드는게 아니라 아파트 관리실이 생각나는 것은 왜일까? 그럼 학교는 "관리자"와 "교육자"로 구성될터, 그럼 어느쪽이 더 근사해 들리는가?

교감들이 이렇게 사소한 일에 시비를 걸고 자기를 어떻게든 드러내려고 애쓰는 이유는 단 하나밖에 없을 것이다. "할일이 없어서!"

만약 교원평가를 실시해야 한다면, 교사들 보다는 이런 "관리자"들에 대한 평가가 먼저 엄하게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 글쓴이 소개☆
부정변증법님의 글입니다.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트랙백 주소 :: http://chamedu.hosting.paran.com/trackback/7

교감 되려면 ‘영덕대게’ 뇌물?
경기 초교 교장, 승진 명분 수백만원·물품 ‘꿀꺽’
한겨레 김기성 기자
고추, 검은 콩, 양념 불고기, 영덕 대게, 게살 파먹는 도구….

일부 초등학교 교사들이 자신의 인사평가를 책임지는 교장에게 수백만원의 돈과 함께 바친 ‘뇌물 목록’이다. 교장에게 돈과 뇌물을 준 한 여성 교사(47)는 “교장이 교감 승진을 앞둔 나 대신 ‘다른 후배 교사를 키워주겠다’라고 공공연히 말했다”며 “아무리 스스로 인사 관리를 해도 교장에게 잘못 보이면 모두 허사여서 어쩔 수 없었다”고 경찰에서 털어놨다.

경기도 한 초등학교 교장(57)이 함께 근무하는 교사들한테서 상습적으로 금품과 향응을 받아오다 경찰에 적발됐다. 이 교장은 2007년 6월부터 지난 2월까지 승진을 앞둔 이 여성 교사에게 8차례에 걸쳐 서울 자신의 아파트와 학교 근처 식당 등에서 10만원권 수표 등 모두 220만원을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은 26일 이 교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그는 또 같은 해 8월 중순께는 다른 교사에게 “1박2일로 여행을 가자”고 제안한 뒤 여행 경비와 선물 대금 등으로 250만원을 내게 한 사실도 경찰조사에서 밝혀졌다. 또 교장 비위를 진정한 한 교사는 “어느 교사는 교장에게 잘 보이기 위해 서울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오는 교장을 날마다 마중 나가 승용차로 학교까지 출근시키기도 했다”고 전했다.

이밖에도 이 교장은 학교 배드민턴부 인원을 부풀려 밥값 50만원을 챙기기도 했으며, 자신이 미리 정한 수련회장으로 학생들을 보내기 위해 다른 수련회 장소에 대해서는 답사조차 하지 않고 낮은 점수의 심사결과표를 만들도록 지시한 혐의(허위 공문서 작성)도 받고 있다. 경찰은 교장의 가족에 대한 계좌 추적 과정에서 서울의 한 초등학교 교사인 교장 부인(54)도 지난 해 10월 학부모들한테서 180만원을 받은 것을 확인해 해당 교육청에 통보했다고 밝혔다.

화성동부경찰서 김영배 지능범죄수사팀장은 “교감 승진 과정에 교장이 절대적 권한을 갖고 있어 이런 부조리가 일어난 것으로 보인다”며 “교육계에서 일어나선 안 될 일이어서 구속영장까지 신청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이 교장과 함께 근무했던 교사 19명은 “교육계에 이런 비리가 없어져야 한다”며 경기도 교육청에 진정서를 내 경찰이 수사를 벌이게 됐다. 한편, 교장은 26일 연락이 닿지 않았으며, 교장이 선임한 변호인은 “뇌물을 강요한 적도 없고 일부 물품은 대가성이 없다”고 주장했다. 영장 실질심사는 27일 수원지법에서 열린다.

김기성 기자 player009@hani.co.kr

☆ 글쓴이 소개☆
부정변증법님의 글입니다.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트랙백 주소 :: http://chamedu.hosting.paran.com/trackback/6

학교장의 권한이 막강함을 지난 번에 살펴 보았다. 그리고 그 막강한 권한이 승진의 욕구가 되는 것이지 결코 교육과는 무관함을 살펴보았다. 그렇다면 교장과 함께 학교에 설치된 교감은 또 뭐하는 자리일까?

법조문을 살펴보면 교감이라는 자리는 참으로 우스꽝스러운 자리임을 알 수 있다. 교감의 지위와 권한에 대해서는 역시 초중등 교육법 제 20조에서 규정하고 있는데, 그 중 2항이 바로 교감에 대한 몫이다.

초중등교육법 제 20조 ②교감은 교장을 보좌하여 교무를 관리하고 학생을 교육하며, 교장이 부득이한 사유로 직무를 수행할 수 없는 때에는 그 직무를 대행한다. 다만, 교감을 두지 아니하는 학교의 경우에는 교장이 미리 지명한 교사가 그 직무를 대행한다.

이 조문을 따르면 교감은 아무것도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교무를 관리하고 학생을 교육하는 것이 교장을 보좌하는 것으로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즉 "교장을 보좌하고, 교무를 관리하며 학생을 교육한다"가 아니라 "교장을 보좌하여~"라는 것이다. 교무를 관리하고 학생을 교육하는 것은 교장이 하는 것이다. 심지어 동 법 동 조 3항의 "교사는 법이 정한바에 따라 학생을 교육한다."라는 조문과 비추어 보면 교감의 권한은 교사만도 못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법이 정한 바에 따라" 교육한다는 것은 과거 "교장의 명을 받아"를 민주적으로 개정한 것이라고는 하지만, 학교교육과정의 최종 편성권자가 학교장인 이상, 결국 학생 교육의 주체는 교장이다. 다만 학교교육과정위원회, 성적관리위원회 등의 자문기구를 거칠 뿐이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자문기구이기 때문에 교장이 전권을 가질 수 있다.

만약 교장이 전권을 휘두르며, 이를 교감과 공유하거나 일부를 할양할 의사가 전혀 없을 경우, 혹은 교장에게 부득이한 사유가 생기지 않는 경우 교감은 "할일이 없고, 권한도 없는"자리인 것이다.

사실 교감이 이런 자리라는 것은 누구보다도 교감들이 더 잘 안다. 교감이 무슨 벼슬인줄 알고 교사들에게 군림하려 들었다가 자신의 무력함을 절감한 교감들은 초보에 속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감이 되려고 교사들이 애쓰는 이유는 현행 교장이 자격증 제이며, 교장 자격증을 따기 위해서는 교감 자격증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교감은 교장이 되기위해 반드시 거쳐가야 하는 코스이며, 요식적인 절차에 불과하지 결코 어떤 교육적 이유로 소신과 사명을 갖고 일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닌 것이다.

결과적으로 교감들은 자신의 근무평정 성적을 좌우하는 교장의 충견이 될 수밖에 없다. 연세가 지긋해서 교감으로 정년퇴임할 것이 확실시 되는 교감 외에는 교사들의 의견을 수합해 교장과 협의하는 교감을 찾아보기 어렵다. 교감에게 이를 요구한다는 것은 거의 초월적 요구라 할 수 있다. 교감은 교장의 확성기에 불과하다. 한국의 학교는 이런 교장의 확성기를 위해 아까운 교원 정원을 낭비하고 있는 것이다.

☆ 글쓴이 소개☆
부정변증법님의 글입니다.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트랙백 주소 :: http://chamedu.hosting.paran.com/trackback/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