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대생의 위험한 이데올로기 by 부정변증법
작년 어느 무렵 교대생, 사대생 대표(예비교사협의회)들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습니다. 이야기가 두어 순배 돌자 자연히 화제가 현재 교원양성제도에 대한 의견으로 모아졌습니다. 교사대생들은 현행 교원양성제도에 불만이 많았습니다. 특히 그들은 "아이들 가르치는데 필요한 것"보다 "교과내용"이 중심이 된 교사대 커리에 대해 비판했습니다.
그런데 이 학생들이 말하는 "아이들을 가르치는데 필요한 것"을 배운다는 것의 의미가 모호했습니다. 계속해서 그 뜻을 물어보면서 나는 그것이 교수-학습 이론이나 방법론을 배운다는 의미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말하는 아이들을 가르치는데 필요한 것은 오히려 아이들을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는 성품을 기른다는 의미에 가까웠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대안적인 교육과정으로 교육실습기간을 늘려서 이론보다는 주로 아이들과 함께하는 속에서 교원을 양성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일리가 있는 주장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나는 80년대때 태어나서 아직도 살아남아 있는 하나의 위험한 이데올로기의 그림자를 보았습니다. 그것은 "소박함, 질박함"의 이데올로기, "유식함과 세련됨"은 진실과 거리가 멀다는 이데올로기입니다. 그래서 전공에 대한 박학함은 아이들을 이해하는데 별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오히려 이런 거추장스러운 지식과 이론을 벗어버리고 진실하게 아이들을 바라보고 만날때 비로소 참교육이 가능하다는 믿음 말입니다. 그 옛날 NL의 품성론이 우리 진보진영을 망쳐놓았던 바로 그 이데올로기였습니다. (이제사 분명해졌지만 NL이 소박하고 질박한 품성을 장려한 것은 이 세상에 세련되고 지성적인 존재는 오직 한 사람 밖에 없어야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소박과 감상의 이데올로기는 사실 계몽주의에 저항하던 독일 귀족들과 계몽주의의 전사로 떨쳐 서기를 거부하던 18세기 독일 부르주아의 기회주의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이것은 루소를 이상하게 변형시킨 이데올로기로 사실상 폭압, 폭정을 긍정하였고, 그에 맞서 싸우고자 하던 지식인들을 비판하는 용도로 많이 사용되었습니다. 즉, 지적인 계몽주의자를 프랑스적이라 몰아치고 군주제 옹호자를 소박한 독일민족의 인격자로 추켜세웠던 것입니다. 음, 그들도 NL이었습니다.
우리나라도 이상하게 80년대에 이른바 '품성론'이라는 이름으로 이 이데올로기가 정착하여 수 많은 학생운동 지도자들이 "무식함"을 자랑하게 만들었습니다. 내용 없는 착함, 내용 없는 진솔함이란 결국 기존의 것을 긍정하는 것일수 밖에 없고, 당시 품성론을 유포했던 강철이라는 작자는 이 무식한 착함과 북에 있는 지도자에 대한 긍정을 연결시켰던 것입니다. 북에 있는 지도자가 세상을 떠나자 저 품성론의 전도사가 "뉴라이트"의 전사로 돌변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것은 긍정해야 할 기존의 것을 새로이 찾은 것에 불과합니다. 그 결과 품성이 거칠지만 이론으로 무장한 편협한 활동가들의 날선 말빨 앞에, 품성은 좋으나 내용이 없는 선량하고 소박한 활동가들이 "이건 아닌데...."하면서도 속수무책으로 난타당하는 상황이 발생합니다.
우리가 참으로 소박하고 텅빈 마음으로 아이들과 아무리 친하게 진해본들, 그것은 그저 마음씨 착한 어른에 불과합니다. 그렇다면 맘 착한 어른을 위해 한 해에 수천만원의 연봉을 지급하고 1년의 1/3에 달하는 엄청난 유급휴가를 주는 정부는 필경 정신나간 정부일 것입니다. 프레이리도 바로 그 점을 우려해서 교사는 보육자가 아니라 교육의 전문가라고 역설했던 것입니다. 그 전문성은 성품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합리적인 지성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참으로 소박하고 선량한 그 품성의 토대 위에 폭넓고 깊이있는 지식의 탑을 쌓는 것입니다. 교대생 중 한 친구가 "초등학생 가르치는데 무슨 미적분학까지 배워야 하느냐?"하고 볼멘소리를 했지만, 설사 사칙연산을 가르치더라도 고등수학까지 이해할 수 있는 교사는 사칙연산만 이해하는 교사보다 훨씬 더 유연하고 풍성한 사칙연산 수업을 할 수 있습니다.
제가 여유있고 흥미있는 경제수업을 할 수 있는 이유는, 교과서에 나오는 경제개념을 잘 이해하고 이것을 재미있게 표현할 수 있는 요령이 있어서가 아니라, 자본론, 국부론 등 경제학 고전들을 철저히 탐독하고, 그 결과 교과서의 지은이 보다 더 높은 위치에서 이를 굽어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교사가 학문분야의 놀라운 발견을 하고 이론적 개가를 올릴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교사는 자기 전공 분야에서는 최신의 이론을 이해하고 소화할 수 있어야 하며, 그외 여러 학문과 예술 분야에 고급 애호가 수준의 교양을 갖추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자니 교사는 늘 시간이 부족합니다. 아이들의 사랑은 교사가 "애지자"가 됨으로써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지'를 사랑하지 않는 교사는 아이들도 사랑할 수 없습니다. 혹은 무지하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독을 주고 있으면서 그것을 사랑이라고 우기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바로 그래서 다른 직종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교사의 많은 휴가가 주어진 것입니다. 쇼핑관광이나 다니고, 늦잠이나 자라고 주어진 것이 아니라.....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