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원평가를 조건부로 찬성하며

2008-10-18 

[1] 교원평가에 대한 가지 견해

 

1.        교원평가의 취지: 교사들의 능력을 배가시켜 교육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 정부에 추진하는

 

2.        교원평가를 추진하는 정부의 입장에 대한 평가: 교육투자를 통한 교육환경 개선을 하지 않는 정부의 무능과 직무유기를 교사들에게 일정 정도 전가하는 것임.

 

3.        교원평가 수용 여부: 그러나 교원평가는 수용하는 것이 좋다.

3-1     교육환경 개선은 장기적으로 이뤄질 일이어서 계속 추진하여야 하지만, 현재 교육의 질적 개선을 위한 요건 중에 교사가 변해야 하는 부분이 있는데, 교사들 스스로가 변할 있는 교육환경과 교사들의 의지가 모두 취약하다. 여기에 교육계 밖에서 평가를 거부하는 것은 아무리 좋게 판단한다고 해도 교사들 스스로가 평가의 무풍지대로 남으려고 하는 집단 이기주의로 비쳐질 가능성이 상존한다는 것이다.

3-2     게다가 교수평가가 지금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 경우가 사실상 드문데도 역시 교수도 평가받는데 교사가 평가받지 않는다는 것은 이해할 없다는 식의 논리가 통용되고 있으며, 논리가 전적으로 타당하지 않아도 타당성이 없는 것도 아니다.

3-3     평가를 거부하는 것보다는 수용하는 것이 일단 융통성있고 스스로를 겸손하게 드러내는 것이므로 좋다고 본다. 그러면 다른 교육적 사안을 비판하고 대안을 때도 정부나 여론이 보다 호의적으로 반응을 보일 것이다.

3-4     교원평가는 성과급, 다면평가와 맞물려 있어서 평가를 거부하면 성과급도 거부하게 되는데, 성과급도 현재로서는 전면 거부가 어려울 같다. 참에 교원평가 척도를 질적으로 가다듬는 것도 좋다고 본다. , 교육환경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바꿔야 하는가에 대한 대안을 학부모 단체와 교원단체가 공조해서 내는 것이 제일 중요하며, 평가를 수용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교육환경이 개선되어 가르치고 배울 맛을 느끼게 하면 교원평가라는 부적 강화(negative reinforcement) 필요성은 줄어들 것이다. 정부는 바로 점을 못보고 있다.

3-5     원인은 교육환경의 열악함이지만 결과적으로 교사들의 교육에 대한 열정, 독서를 꾸준히 하는 가운데 실력을 연마하려는 의지 등의 면에서 교사들이 차별화되어 대우가 달라져야 필요성이 교육내부에서도 감지된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어떤 교사는 시간 나는 대로 전공별 독서, 수업준비, 자료편집, 학급 아이들 지도를 위한 조언 구하기와 고민 등을 한다. 반면,  일상의 취미에만 관심을 갖는 교사, 시댁과 친정 가족과 아들 딸의 사적 이야기를 틈나는대로 하면서 잡담을 즐기는 교사,  55 나이든 교사에 대해 수업부담이나 업무 시험감독 등을 빼줄 앉아서 사담을 나누거나 인터넷 쇼핑몰을 뒤지는 교사들, 동료교사는 수업과 업무를 하느라 바쁜데 일을 돕고자 하는 생각을 갖지 않는 편협하고 이기적인 성향의 교사들이 분명 존재하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이들이 극소수는 아니다.

3-5-1 교사들이 이렇게 능력과 열정에서 차이가 나는 이유: 교원양성과정에서 현재 임용고시가 시험위주로 되어 있어서 전체를 보는 안목이 부족하게 되어 있다. 게다가 평교사로서 정년까지 가는 것이 대세이며 여기서 교직의 보람을 느끼는 선진국과 달리, 한국의 교직풍토는 부장, 교감, 교장으로 승진하는 데서 우대받는 풍토이다. 그래서 나이들면 승진하려고 하며 과정에서 알차게 전공별 독서와 수업에서 실제 있는 자료개발 등이 소홀해진다.  결혼에 집착하는 사회적 인식과 이로 인해 결혼생활이 우선이고 학교의 공적 업무를 소홀히 하는 경향도 작용한다고 보여진다. 여러 갖가지 교육의 모순을 방치한 교육현실 인식능력과 의지가 부족한 정치인들이 내놓는 편리한 대증요법이 바로 교원평가이지만 다음과 같은 주요 요건들이 개선되면 교육경쟁력을 보다 월등히 살아날 것이다.

 

4.        이제부터 우리가 일을 가지로 요약해 있다.  

4-1 교육환경 개선사업을 위한 본격적인 개혁 청사진을 내는 : (아래 [2] 에서 제시할 것임)

4-2 지금껏 교육투자를 하지 않음으로써 발생하는 문제상황을 드러내는 : 우리나라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어떤 고통을 얼마나 느끼는가를 그래프와 설문지 통계조사를 해서 가시적으로 드러냄으로써 언론에 시리즈로 공표하는 이것은 시민들의 적절한 분노를 자아낼 것이다. 정당한 분노는 정부에 대한 가장 강력한 개혁의 추동의 힘으로 작용할 것이다. 전교조만 외쳐대야 봐야 소용없다. 전교조 좌파에 대한 편견이 심한 척박한 이념적 풍토에서는 더욱 어렵다. 다음 촛불집회는 어른들이 주도해야 것이며 목표는 교육개혁이다.

4-3 교원평가 척도를 질적으로 개발하는 : 이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나 전면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교원평가 척도를 질적으로 개발한 상태를 100으로 우리가 노력하면 60까지는 가능하지 않을까 가정해 본다. 질적으로 노력을 하는 가운데 교사들의 교육에 대한 보다 세밀한 고민이 이뤄지도록 자극할 수도 있을 것이다.

 

[2]  교원평가를 넘어서서 사고해야 한다.

이는  교육경쟁력을 살리기 위한 방안이다. 이것은 멀리 있지 않고 교육환경을 갖추는 상식에 충실할 가능할 것이다. 우리는 지금껏 상식을 외면해 왔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환경을 악화시키고 있다.

 

   학급당 학생수를 평균 20명으로 줄여라! : 한국의 교사들의 오랜 숙원이다.

    행정보조원을 대거 투입하라! : 미국의 어느 학교에서는 행정보조원이 교사 수보다 많은 곳이 있다. 그래서 학교 교사들은 행정업무를 위해 공문을 만지는 일이 거의 없다. 한국의 교사들은 (행정) 공문만지거나 수업시간표 짜기, 연간계획서 만들기, 학생들 인솔하고 각종 행사에 다니기 위해 서류작성하고 영수증 처리하여 행정실에 내기 ….일이 많다. 행정 보조원이 투입되면 이런 일들이 대폭 없어지면서 교사들이 학생과의 대화, 수업자료 편집, 독서, 교과협의회 등이 보다 원활해질 것이며 이는 교사의 실력향상과 교육경쟁력으로 이어질 것이다.

    외국의 학교들 처럼 교과교실전담제에 따라 학생들의 이동수업을 보장해야 한다. : 교사가 전담 교실을 배정받으면 그곳에 각종 책과 수업자료를 비치하여 보다 질높게 수업에 임할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도 전공필수 과목 외에 선택해서 들을 있어 관심도도 높아질 것이다. 학교예산 불요불급한 것을 줄이고 학교 증설에 힘써야 한다. : 교육개혁에 대한 안목을 지닌 교사들을 물색해서 학교 회계 전문가와 함께 학교 교육예산 중에서 어떤 것을 줄이야 하는가를 심도있게 논의하도록 한다. 정부 관리가 교사들을 직접 물색하기 보다는 현장의 개혁성향의 교장, 교감, 교사 그리고 교원단체 임원을 통해서 추천한다. 그리고 교사들을 단계적으로 대폭 증원해야 한다.

    평준화를 손질한다. : 아이들의 이해수준이 다른데 무조건 이질집단의 장점만을 고집할 없다. 이질집단에서 공부 잘하는 아이가 뒤쳐지는 아이를 가르쳐 주면서 협동심의 배가된다는 논리는 타당하지만 모든 과목, 모든 상황에 적용할 사안은 아니다. 과목의 성격과 난이도 등에 의해 동질집단으로 구성될 필요가 있다. 평준화는 단계적으로 해지하되 성적이 뒤쳐지는 아이들에 대해 전문적인 기술교육을 시키는 시설을 갖추지 않는 정부의 무능에 문제가 있다.

    학벌을 타파하고 대학의 서열화를 깨야 한다. : 서울대를 정점으로 해서 줄서는 기막힌 낙후성을 시급히 개선해야 한다. 그래서 시민단체, 학부모 단체, 교원단체가 관철될 때까지 학벌과 대학 간판을 보고 인재를 선발하는 관행을 근절하고 능력에 따라 철저히 선발, 대우하도록 촉구하고 매스컴이 여기에 함께 하도록 한다. 유럽처럼 인근 지역의 대학에서 실력껏 공부하도록 대학 교수와 환경의 양적 질적 고양이 이뤄져야 가능할 것이다.

    실업계 고교의 증설과 교육과정을 기업체와 함께 한다. 그래야 학생들이 현장에서 있는 기술을 연마할 있으며 적정 인력이 바로 기업체에 취업할 있을 것이다.  실업계를 살려야 과도한 입시경쟁이 완화된다. 왜냐하면 기술을 연마해서 보수를 받고 사회적으로 인정해주면 인문계 고교진학 열기는 줄어들 것이기 때문이다. 박정희 시절의 금오공고, 철도공고 등의 명성을 되살려 장인정신을 확산시키지 않으면 안된다. 일본은 장인정신이 살아있지 않은가?

    -- 교사들의 승진열기가 교육경쟁력을 먹는 하나의 요인이다.; 평교사를 대폭 우대하고 교장은 평교사들 중에서 교직경력 10, 교육행정학 석사과정 이수, 부장경력 5, 교육문제 인식과 개선을 위한 경력에 가산점을 주면서 지역 단위학교에서 선발하도록 한다. 지금 과학고에서도 승진열기 때문에 소수의 학생을 선발해서 각종 경시대회에 내보내 단기적인 실적을 내려고 한다. 기초 과학적 소양을 쌓고 장차 노벨상 수상을 기대하며 공부할 아이들이 승진열기의 과정에 참여되는 것은 시급히 막아야 한다. 미래를 응시할 모르는 교육당국자와 교육관행이 참으로 문제가 아닐 없다.

    학기당 이수과목을 평균 7개로 줄여야 한다. 너무 많은 과목을 배우고, 7 교육과정 이후 공부량이 늘어나 학생들의 실력은 깊이를 잃고 있다. 그래서 고교생 중에서 문학, 철학, 역사 등의 고전을 접하는 아이들이 드물다.

    교과협의회를 정부에서 장려하고 간섭을 줄인다. 최근 역사교과서에 대해 교과부가 직접 개입하는 것은 역사성이 부족한 퇴행적 모습이다. 정부는 좌파와 우파가 건강하게 토론하며 학문적이고 지적으로 성장하게 해주어야 하는 역할에 그쳐야 한다.

    교사연구실을 대폭 늘려주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학교내 공간 확보, 이를 위해서는 학교가 많이 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학교 부지 확보를 위해 도심지역의 주택단지를 매입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여기에 예산을 투입해야 한다.

 

[3] 마치며

      교사들이 관심가질 영역으로는 첫째, 시간나는 대로 전공 사회과학 에세이 독서를 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 한국의 교사들이 일에 채이고, 학급운영의 부담, 의지의 상실로 시간나면 독서해야 한다는 사실을 잊는 교사들이 있다.  상황이 교원평가의 필요성을 가중시키고 있다. 시댁 친정, 군대 이야기, 술 먹은 이야기 등 사담을 자주 나누는 교사들에게 동료교사가 우리 볼까요?”하는 말을 없다. 말하면 교사와의 인간관계는 종결된다. 이것은 교사관계가 열린 것이 아니고 닫힌 사회임을 있다.  둘째, 교육문제 인식능력을 교환하기 위해 교육문제에 대해 학교 안팎에서 토론의 기회를 가질 필요가 있다.

      열정과 능력을 기르기 위해 노력하는 교사를 가려내는 작업을 위해 교내에서 평가단 구성이 필요하다. 그리고 교원평가 결과에 대해 본인의 이의제기를 기회를 주고 평가단 3자의 역할을 해줄 교사들을 입회시켜 토론 속에서 교원평가를 마무리한다.

      단위학교 안에서 무능한 교사를 골라내야 필요는 없다. 일반적인 기준을 마련해서 평가하면 것이며, 평가결과는 성과급과 인사이동에 영향을 줘야 한다.

*****전교조 교사로서 교육적인 열정을 지닌 교사가 배제되는 평가척도가 구성되지 않도록 조심하며, 승진구조에 편승하는 교사가 평가에서 혜택을 배타적으로 보는 일이 없도록 역시 평가척도 구성에 유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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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좋아하는 사람들이 권력을 잡고 있다. 미국 좋아하는 사람들, 아니 미국을 신앙하는 사람들이 정책을 결정하고 있다. 그런데 한사코 미국을 안 따라하는 것이 있다. 바로 교장제도, 교사 승진제도, 학교 행정제도다.

우선 미국 교장제도의 특징은 "교장선생님"이 아니라는 것이다. 즉, 교장은 교장이고 선생님은 선생님이다. 우리말의 교장선생님에 해당되는 말은 head teacher로 이는 일부 명문 사립학교에서 시행되는 제도인데, 대부분의 공립학교는 이에 해당되지 않으며 principal을 두고 있다.

head teacher는 교육자의 대표로서 교장 개념이다. 명문 사립학교에서는 교사들 중에서 자원을 받아 면접과 기타 심사를 거쳐 이사회에서 위임한 심사위원들이 교장을 선출한다. 이 교장선생님은 교사보다 훨씬 바빠사 학교의 대소사는 물론 각종 상담과 지도업무까지 감당한다. 교사들은 학생들을 처벌하고 상담하는 경우가 드물다. 이건 다 교장이 하는 일이다. 그래서 이 교장선생님들은 전교생의 이름과 특성을 다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하는 일로 봐서는 우리나라 교장보다는 차라리 학생주임 더하기 상담부장에 가깝다.

principal은 행정직의 개념으로 사실은 교장이라는 번역어도 적당하지 않다. 어쨌든 이 교장이 하는 일은 오히려 우리나라 학교의 행정실장에 가깝다. 교장1인과 교감 1~2인, 그리고 비서(우리나라 행정실장)와 행정직원 2인 정도가 그야말로 수업을 제외한 학교의 모든 사무를 다 담당한다. 이른바 장학업무도 담당하는데, 이는 애로사항을 듣고 조치를 취하기 위함이지, 교사에게 지시를 하기 위함이 아니다. 즉, 미국의 교장은 교사의 상관이 아니다. 단지 교감과 행정직원의 상관이다. 교사들은 수업과, 수업을 위한 연구 외에는 아무런 책무가 없다. 학교의 각종 소소한 관리 업무는 교장의 책무다. 즉, 그런 일들을 감독하는게 아니라 "직접 하는 것"이 교장의 책무이며, 혼자하기 힘들면 교감과 같이 하는 것이다. 공문서 트집잡아서 수업하느라 바쁜 교사에게 다시쓰라고 헛소리 하는 것이 아니라, 공문서를 직접 작성하는 것이 교장의 일이다.

그래서 미국 학교의 교사들은 수업시간이 아니면 얼굴 보기도 힘들다. 각자 연구실에 들어박히며, 일단 연구실에 들어간 교사는 학부모나 학생이라 할지라도 약속없이 만나기 어렵다. 그렇다면 각종 애로 상담은 누구한테 할까? 그건 교장의 일이다. 각종 제증명 발급은 누구 일일까? 그것 역시 교장 책임하에 행정직원이 한다. 한마디로 교장입네 하고 에헴 하는 그런 것은 있을 수 없다. 기본적으로 교사가 승진해서 교장이 되는 것이 아닌데, 무슨 에헴인가? 대학원에서 교육행정 석사 받고, 교장 연수 받은 뒤에 15개월인가 교장 시보 수련을 받으면 교장 자격증 받을 수 있는게 미국이다. 그러니 20대에도 교장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자, 미국 좋아하는 사람들. 이런 것 좀 따라해라. 제발 미국처럼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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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들에 대한 국민의 불만이 높다. 사실 나는 그 불만도 정상적인 불만이라고 보지는 않는다. 무지한 이기주의에서 비롯된 불만까지 다 들어줄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어쨋든 그렇게 교사들에 대한 불만이 높은 가운데서, 가장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교직단체인 전교조가 욕을 들어먹는 것은 당연하다.

문제는 전교조가 욕을 들어먹는 동안, 정작 수십년간 낙후된 한국 교육의 범인인 낡고, 늙고, 부패한 교원들이 주로 가입한 단체, 한국교총은 슬그머니 뒤로 빠졌다는 것이다. 상당히 많은 일반인들이 사실 전교조보다 교총이 훨씬 더 큰 교원단체라는 것을 잘 모른다. 8만명의 교사들이 가입한 전교조와 16만명의 교사가 가입한 교총 중 누가 공교육 파탄의 책임을 더 많이 져야 하겠는가? 더군다나 전교조는 "잘할 줄 알았는데, 기대만큼 하지 않은 죄인"이고 교총은 "이러한 문제를 만들어낸 장본인이면서, 한번도 반성한 적 없는 죄인"인데, 어느쪽의 죄가 더 무겁겠는가?

이 교총이라는 단체는 그 출범부터도 정치적이고 불순하다. 한국 교총의 전신인 조선교육연합회는 조선교육자협회 등 좌익계 교원단체의 활동을 견제할 목적으로 1947년 11월 23일 설립되었다.  당시 문교부장이었던 오천석이 미국교육회(NEA)를 모범으로 설립을 주도한 만큼, 처음부터 어용, 관제, 친미, 사대라는 오명을 다 뒤집어쓰고 시작한 것이다. 훗날 대한교육연합회로 명칭을 바꾸었다(약칭으로 교련). 이후 전두환에게 장수병풍을 선물하는 등, 어용, 관제단체로서의 역할에 충실하다가 87년 민주화 이후 이를 부담스러워하여 이름을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로 바꾸었다. 그러나 이름만 바꾸었을뿐 그 동안 저질렀던 자신들의 반민주적이고, 어용적인 행태에 대해서는 전혀 사과하지 않았다. 이는 마치 IMF터뜨린 신한국당이 일체의 사죄 없이 당 이름만 한나라당으로 바꾸고 슬그머니 비난을 모면하려 한것과 같다.

전교조가 단체교섭을 개시한 합법화 이후, 전교조를 견제하기 위해 특별법에 따라 정책협의회라는 일종의 교섭권을 획득하게 되는데, 그렇다면 그 이전에 이 단체가 한 역할은 대체 무엇인지 알길이 없다. 결국 전문성 향상 운운이 아니라, 교사들을 통제하기 위한 독재정부의 하수인이었을 뿐이다.

실제 70년대에 이 단체는 거의 유니온숍처럼 모든 교사가 가입하다시피 했다. 본인의 의사를 물어보지도 않고 발령받자마자 자동적으로 가입되어 월급에서 회비 공제하는 경우도 비일비제했다. 교장이 단체로 가입원서 나눠주고 보는 앞에서 작성하도록 하는 경우도 흔했다. 그걸로도 모자라서 승진점수에 들어가는 연구발표대회를 독점 개최한다거나, 혹은 부동산 투기가 한창일때 주택조합을 결성해서 아파트 대박을 내도록 한다거나 하는 떡고물도 던졌다. 그 어느 경우든 간에 이 단체 가입자들은 교육적인 목적에서, 전문성 함양을 목적으로 가입한 경우는 없다고 보아야 한다. 그런 일을 하지도 않고, 그럴만한 사람들이 모여있지도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단체는 교장, 교감, 장학사, 장학관들이 회원으로 가입되어 있다. 단체는 단체고 학교는 학교라야 하는데, 그렇지가 못한 현실상, 사실상 이 단체는 교장, 교감, 장학사, 장학관, 그리고 승진을 위해 이들과 한패가 된 교사들이 주도하고, 그들의 목소리를 반영하고 있다.

지금 한나라당 조차 현행 교장 승진제도가 교육을 왜곡하고 있음을 동의하는데도, 교장공모제를 결사반대하며 이를 저지하기 위해 기를 쓰고 있는 이들의 모습을 보라. 각종 교육개혁을 모두 초를 치고 결사반대하면서 마치 자기들이 아닌양, 전교조보래요 하면서 뒤로 빠지는 이들의 비열한 작태를 보라. 전교조가 기대에 못미쳐서 혼을 좀 내줘야 할 학생이라면, 교총은 그 폐해가 너무도 커서 퇴학시켜야 할 학생이라고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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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 참 요상한 자리가 있으니 그것은 바로 교감이다.
요상한 이유는 도대체 무슨 일을 하는지가 정해진 바가 없기 때문이다.

법적으로 교감은 완전히 교장의 땜방이다. "교장을 보좌하여 ~, 교장 유고시에~"

그런데 같은 법에서 "교장은 필요시 교사중 한 사람을 지명하여~ 담당하게 할수있다."는 내용도 나온다. 즉 교감은 교장이 일이 많거나 도움이 필요할때 지원하는 역할이며, 교장에게 일이 생길 경우 백업하는 역할이다. 그런데 교장은 평소에 교사중 하나를 지정하여 그런 역할을 맡길수도 있다. 즉 교사중 아무나 백업을 준비해 두면 그만인 것이다. 굳이 있을 이유가 없는 자리다.

결국 현실 학교에서 교감들 스스로가 느끼는 자신들의 존재이유는 오직 하나다. 교사가 바로 교장이 되는게 아니라 거쳐가는 단계를 하나 만들어 놓은 것이다. 따라서 교감의 가장 중요한 일은 "교장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며, 사실은 할 수 있는 일도 그것밖에 없다.

과거에는 교감이 하는 일이 퍽 많았다. 그것은 "교사를 감시하는 것"이었다. 유신, 5공시절, 지식인들의 동향에 민감하던 독재자들은 그 중 가장 위험할수 있는 집단인 교사들의 동태를 감시할 필요가 있었다.

교장은 교사들과 공간을 공유하지 않아서 한계가 있었기에, 교무실 한 가운데 감시탑처럼 박아놓은 교감이야말로 그 적격자였다. 심지어 교감에게 정보비라는 수당까지 지급하지 않았는가?

실제로 교감은 교육적 기능을 전혀 하지 않는다. 그저 하는 일이라고는 이런저런 행정 문서에 서명하고, 공문 날짜 체크하는게 전부다. 사실 이런 일은 상고에서 잘 배운 비서직 사원들이 훨씬 더 잘한다. 뭣하러 500만원씩 월급줘가면서 저딴일을 시키는가? 결국 교감의 역할은 교무실 가운데 앉아있는거다. 아무일 안해도 좋다. 인터넷으로 야구중계를 보거나 바둑을 두어도 좋다. 그저 가운데 버티고 앉아서 교사들이 알아서 기게 만들면 된다. 호통과 위압적인 방법을 사용하던, 친밀감과 인간적인 방법을 사용하던, 혹시 있을지 모르는 교사들의 자율성과 자주성을 사전에 차단해서 충실하게 사회재생산도구로 기능하게 감시하고 조율하는 자, 그게 교감인 것이다.

그런데, 권위주의 독재시대가 끝나고, 게다가 학교라는 대량생산 시스템이 낡은 틀이되고, 국가가 주도하는 중앙집권형 공교육이 석양에 서자, 그만 교감이라는 자리라 붕 뜨고 말았다. 아무 권한도 없고, 이제는 감시, 통제라는 역할도 미약해진 교감이 할 수 있는 일은 정말로 "교장이 되기 위해", "교장에게 충성하는 것"외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은 것이다. 언젠가 교장이 될 것이라는 꿈을 이루기 위해, 교장의 의향을 먼저 살펴서 교사들에게 강요하고, 이를 위해 호통이던, 인간적 유대든 동원하는 것, 그것이 교감의 역할이 되었다. 말하자면 영혼을 교장에게 맡긴 수족이 된 것이다.

도대체 이런 직책이 학교에 왜 있어야 하는가? 노인네가 심심해지면 성질 고약해진다고, 할일이 점점 줄어드는 나이먹은 교감(교장되는 것도 포기한)들은 교사들과 되지도 않는 언쟁을 벌리며 교무실 분위기만 험악하게 만든다. 지금 상태로서 교감은 백해무익한 존재이며, 한시라도 빨리 폐지되어야 할 직책이다.

만약 교감이 가치가 있으려면, 지금 교사들이 하고 있는 온갖 행정잡무를 모조리 전담해야 한다. 혼자하기 힘들면 교감 수를 늘리면 된다. 그래서 젊은 나이에 교감되서, 저 승진병 환자들이 그토록 사랑하던 일인 행정잡무만 하루종일 하게하면 된다. 아마 교감 두세명이 달라붙으면 교사 50명이 아까운 수업시간 사이사이에 스트레스 받으며 해야 했던 각종 행정업무를 모조리 무리없이 할 수 있을 것이다.

교감을 폐지하거나, 모든 행정업무를 전담케 하는 것. 어렵지 않고, 돈 더들지 않는 교육개혁의 쉬운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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