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 참 요상한 자리가 있으니 그것은 바로 교감이다.
요상한 이유는 도대체 무슨 일을 하는지가 정해진 바가 없기 때문이다.

법적으로 교감은 완전히 교장의 땜방이다. "교장을 보좌하여 ~, 교장 유고시에~"

그런데 같은 법에서 "교장은 필요시 교사중 한 사람을 지명하여~ 담당하게 할수있다."는 내용도 나온다. 즉 교감은 교장이 일이 많거나 도움이 필요할때 지원하는 역할이며, 교장에게 일이 생길 경우 백업하는 역할이다. 그런데 교장은 평소에 교사중 하나를 지정하여 그런 역할을 맡길수도 있다. 즉 교사중 아무나 백업을 준비해 두면 그만인 것이다. 굳이 있을 이유가 없는 자리다.

결국 현실 학교에서 교감들 스스로가 느끼는 자신들의 존재이유는 오직 하나다. 교사가 바로 교장이 되는게 아니라 거쳐가는 단계를 하나 만들어 놓은 것이다. 따라서 교감의 가장 중요한 일은 "교장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며, 사실은 할 수 있는 일도 그것밖에 없다.

과거에는 교감이 하는 일이 퍽 많았다. 그것은 "교사를 감시하는 것"이었다. 유신, 5공시절, 지식인들의 동향에 민감하던 독재자들은 그 중 가장 위험할수 있는 집단인 교사들의 동태를 감시할 필요가 있었다.

교장은 교사들과 공간을 공유하지 않아서 한계가 있었기에, 교무실 한 가운데 감시탑처럼 박아놓은 교감이야말로 그 적격자였다. 심지어 교감에게 정보비라는 수당까지 지급하지 않았는가?

실제로 교감은 교육적 기능을 전혀 하지 않는다. 그저 하는 일이라고는 이런저런 행정 문서에 서명하고, 공문 날짜 체크하는게 전부다. 사실 이런 일은 상고에서 잘 배운 비서직 사원들이 훨씬 더 잘한다. 뭣하러 500만원씩 월급줘가면서 저딴일을 시키는가? 결국 교감의 역할은 교무실 가운데 앉아있는거다. 아무일 안해도 좋다. 인터넷으로 야구중계를 보거나 바둑을 두어도 좋다. 그저 가운데 버티고 앉아서 교사들이 알아서 기게 만들면 된다. 호통과 위압적인 방법을 사용하던, 친밀감과 인간적인 방법을 사용하던, 혹시 있을지 모르는 교사들의 자율성과 자주성을 사전에 차단해서 충실하게 사회재생산도구로 기능하게 감시하고 조율하는 자, 그게 교감인 것이다.

그런데, 권위주의 독재시대가 끝나고, 게다가 학교라는 대량생산 시스템이 낡은 틀이되고, 국가가 주도하는 중앙집권형 공교육이 석양에 서자, 그만 교감이라는 자리라 붕 뜨고 말았다. 아무 권한도 없고, 이제는 감시, 통제라는 역할도 미약해진 교감이 할 수 있는 일은 정말로 "교장이 되기 위해", "교장에게 충성하는 것"외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은 것이다. 언젠가 교장이 될 것이라는 꿈을 이루기 위해, 교장의 의향을 먼저 살펴서 교사들에게 강요하고, 이를 위해 호통이던, 인간적 유대든 동원하는 것, 그것이 교감의 역할이 되었다. 말하자면 영혼을 교장에게 맡긴 수족이 된 것이다.

도대체 이런 직책이 학교에 왜 있어야 하는가? 노인네가 심심해지면 성질 고약해진다고, 할일이 점점 줄어드는 나이먹은 교감(교장되는 것도 포기한)들은 교사들과 되지도 않는 언쟁을 벌리며 교무실 분위기만 험악하게 만든다. 지금 상태로서 교감은 백해무익한 존재이며, 한시라도 빨리 폐지되어야 할 직책이다.

만약 교감이 가치가 있으려면, 지금 교사들이 하고 있는 온갖 행정잡무를 모조리 전담해야 한다. 혼자하기 힘들면 교감 수를 늘리면 된다. 그래서 젊은 나이에 교감되서, 저 승진병 환자들이 그토록 사랑하던 일인 행정잡무만 하루종일 하게하면 된다. 아마 교감 두세명이 달라붙으면 교사 50명이 아까운 수업시간 사이사이에 스트레스 받으며 해야 했던 각종 행정업무를 모조리 무리없이 할 수 있을 것이다.

교감을 폐지하거나, 모든 행정업무를 전담케 하는 것. 어렵지 않고, 돈 더들지 않는 교육개혁의 쉬운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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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는 어디에서 시간을 보낼까? 물론 교실과 교무실이다. 그 중 교무실은 교사가 8시반에 출근해서 16시 반에 퇴근할때까지 학교에서 보내는 시간의 절반을 보내는 공간이며, 수업활동을 위한 각종 준비나 연구가 이루어질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다.

교사가 학교에서 필요로 하는 공간은 다음과 같다.
1) 수업공간 2) 연구공간 3) 사무공간 4) 휴식공간

믿기 어렵지만 교무실은 이 중 연구, 사무, 휴식이 모두 이 곳에서 이루어지도록 되어있는 유일한 공간이다. 즉 교사는 교실 아니면 교무실이며, 수업 아닌 모든 것을 교무실에서 해야 한다. 그러나 교무실은 이 셋중 어느것도 할 수 없는 공간이다.

먼저 사진을 보기 바란다.

왼쪽 사진이 한국 학교의 전형적인 교무실 풍경이다. 이 풍경을 보면 무엇이 느껴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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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느끼는 바가 있을 것이다. 그건 바로 오른쪽 사진과 같은 관공서다. 즉, 관공서의 사무실이다. 그것도 낙후된 관공서의 사무실이다. 다른 학교를 뒤져 보아도 마찬가지다. 거의 대부분의 학교 교무실은 아래 사진과 같은 모습이다. 교감이 한 가운데 있고, 각부부장이 남면하고 있는 가운데 각 업무별로 사무용 책상들이 쭈욱 정렬해 있다. 그나마 고등학교는 5명, 6명씩 한 방을 쓰는 경우도 많고, 초등학교는 교실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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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과후면 아수라장이 되는 교무실

용 책상과 컴퓨터가 설치되어 있어, 방과후에 자기 사무실로 사용할 수 있지만, 중학교는 수십명의 교사들을 교실 두칸 정도의 공간에 닥지닥지 몰아 넣는다. 요즘은 동사무소도 이런 곳은 없다.

이러니 교무실은 방과후나 쉬는 시간에는 수십명의 교사들과 그들을 찾아오는 학생, 학부모들로 일대 아수라장이 된다. 이런 곳에서 앞에서 제시한 세가지중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휴식? 절대 불가능하다. 연구, 눈이 있으면 보라. 무슨 연구가 가능하겠는가? 그럼 할 수 있는 일은 딱 하나, 형식적인 서류작업 뿐이다. 즉 여기서 교무실의 비밀이 밝혀진다. 교무실은 결코 교사들이 연구하라고 있는 공간이 아닌 것이다. 그렇다고 푸코가 말한 무슨 미시적 공간의 장인 것 같지도 않다. 그러기엔 너무 엉성하다. 교무실에는 그런 깊은 뜻이 없다. 있다면 오직 하나 "무성의한 공간"이다. 즉 국가가 자기 하수인들을 대충 공간 정해두고 닥치는대로 몰아 넣은 공간에 불과한 것이다. 다시 말해 교무실은 교사들의 수용공간이다.

그나마도 단지 잡무이며 결코 교사의 업무라고 볼 수 없는 행정업무에 따라 배치되어 있는 비교육적 공간이다. 교육법 어디에도 교사가 이런저런 행정사무를 보아야 한다는 규정은 찾을 수 없다. 교사는 법이 정한 바에 따라 학생을 교육할 뿐이다. 각종 교무를 통할하는 것은 교장의 업무다. 교장은 이를 행정직원과 교감에게 지시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그것이 너무 힘들기에 교사들이 십시일반으로 도와주는 것에 불과하다. 그런데 그만 그것이 주무가 되고, 그것을 기준으로 공간이 배치되고 말았다.

교사들에게는 연구를 위한 공간도 없고, 자료를 모아둘 공간도, 개인소유의 책장도 없다. 오직 한평도 안되는 비좁은 공간에 책상 한대가 전부다. 여기서 무슨 연구를 하고 무슨 경쟁력을 키우는가? 교사들에게 선진적인 교육을 원한다면 먼저 그들에게 연구실을 주어야 한다. 실제 교육 선진국중 교무실이 있는 나라는 없다. 각 교사들의 연구실이 있고, 필요할때 모이는 라운지와 회의실이 있을 뿐이다. 교육 선진화? 먼 데서 찾을것 없다. 교무실부터 바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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