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의 모 초등학교에서 교장의 폭언과 횡포를 견디다 못한 교사들이 집단으로 반기를 들었다. 연줄, 연줄로 꽉 짜여지고 군기와 서열을 중요시하는 광주지역의 특성상 정말 어지간했다보다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서 어찌어찌 하여 서울에 올라온 그 지역 출신 교장, 교감들이 교사들에게 무리하게 마구 권력을 휘두르려다 저항과 냉소에 부딪치며 그들은 그들대로, 교사는 교사대로 상처받는 안타까운 현실이 또 눈에 밟힌다.

서울지역에는 교육적으로나 학문적으로나 아무 업적, 하다못해 형식적인 업적조차 없이 교감 승진한 농어촌 출신 교사들이 있다. 이들은 각종 꼼수를 총동원한 사람들이다. 그들이 동원하는 꼼수란 주로 농어촌 벽지 근부 가산점을 챙겨서 승진점수를 따는 것이다. 그래서 그 점수가 충분히 쌓이면 서울로 전보 내신을 내서 어떻게든 서울로 올라오는 것이다. 그러면 얼마 지나지 않아 서울지역 학교의 교감이 될 수 있다. 서울 토박이 교사들이야 농어촌 벽지 점수 따위가 있을 턱이 없으니 소위 승진점수에서 밀리는 것이다.

혹자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그들이 남들이 근무 기피하는 농어촌 지역에서 봉사했으니 그 정도 댓가는 받아야 하는게 아니냐고... 남들이 기피? 지나가던 이메가가 웃을 일이다. 지방 학교에서는 농어촌 벽지 근무를 서로 못해서 난리다. 그래서 농어촌 벽지 근무를 위해  시도 장학사에게 연줄이라도 닿아 보려고 술판을 벌리기 일쑤다. 그렇게 농어촌 벽지 근무를 하게 되면, 그래도 농어촌 교사 유인책은 된다고?

천만에... 그런 그들이 농어촌 벽지 학교에서 제대로 근무를 할 턱이 없다. 여전히 집은 도시에 두고 승용차로 출퇴근만 한다. 친절하게도 도교육청에서는 기름값까지 보조해준다. 그렇게 벽지학교, 농어촌 진흥 학교 따위만 이리 저리 골라다니면, 그런 학교에서 수업이야 어떻게 하든간에 근무하는 개월수만큼 승진 가산점이 착착 붙는다. 그러니 지방에서 교사가 승진하려면 연줄과 선후배간의 위계는 필수다. 조금이라도 연고가 있으면 달라 붙어서 형님, 아우님 하면서 술판 벌려야 한다. 이렇게 엉성한 사생활을 하니 낮에 제정신일 턱이 없다. 수업은 귀찮다. 수업이 귀찮을때 제일 좋은 방법은 학생들을 마구 두드려 패서 조용히 시켜 놓는 것이다. 더군다나 지방은, 특히 호남지방은 교사의 폭력에 대해 비교적 관대하다. 마구 조사버리면 되는 거다. 이렇게 이들은 교사시절부터 학생들에 대한 폭력, 폭언과 웃사람에 대한 아부를 몸에 익힌다.

그러다가 교감이 된다. 달라진건 오직 하나다. 바로 아래에 학생이 아니라 교사가 있다는 것. 그래서 이들은 교사에게도 서슴없이 폭언을 행사한다. 만의 하나 이들이 서울에서 교감이 되면, 상당한 저항과 냉소에 부딪칠수 있겠지만, 지방이라면 이 역시 그러려니 하고 넘어간다. 교장은 교사들의 불만과 모욕감을 알면서도 교감이 스스로 악역을 담당하며 군기를 잡아주니 모르는 척 넘어가 준다.

이런 인간들이 이제 교장이 된다면? 눈치 볼 상대도 하나 없는 교장이 된다면? 학생이나 교사는 전혀 자신에게 의미가 없고, 오직 교육청의 어르신들에게만 잘보이면 되는 그런 교장이 된다면? 그러니 광주 모 초등학교 같은 사태가 벌어지는 것이다. 이건 근본적으로 잘못된 제도다.

사교육 문제? 교육 시장화 저지? 다 필요없다. 먼저 저 쓰레기 같은 교장, 교감들(70%는 쓰레기일것)부터 쓸어버릴 생각을 해야 한다. 그들을 쓸어버릴수만 있다면 교원평가든, 뭐든 다 받아들일 용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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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원평가를 조건부로 찬성하며

2008-10-18 

[1] 교원평가에 대한 가지 견해

 

1.        교원평가의 취지: 교사들의 능력을 배가시켜 교육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 정부에 추진하는

 

2.        교원평가를 추진하는 정부의 입장에 대한 평가: 교육투자를 통한 교육환경 개선을 하지 않는 정부의 무능과 직무유기를 교사들에게 일정 정도 전가하는 것임.

 

3.        교원평가 수용 여부: 그러나 교원평가는 수용하는 것이 좋다.

3-1     교육환경 개선은 장기적으로 이뤄질 일이어서 계속 추진하여야 하지만, 현재 교육의 질적 개선을 위한 요건 중에 교사가 변해야 하는 부분이 있는데, 교사들 스스로가 변할 있는 교육환경과 교사들의 의지가 모두 취약하다. 여기에 교육계 밖에서 평가를 거부하는 것은 아무리 좋게 판단한다고 해도 교사들 스스로가 평가의 무풍지대로 남으려고 하는 집단 이기주의로 비쳐질 가능성이 상존한다는 것이다.

3-2     게다가 교수평가가 지금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 경우가 사실상 드문데도 역시 교수도 평가받는데 교사가 평가받지 않는다는 것은 이해할 없다는 식의 논리가 통용되고 있으며, 논리가 전적으로 타당하지 않아도 타당성이 없는 것도 아니다.

3-3     평가를 거부하는 것보다는 수용하는 것이 일단 융통성있고 스스로를 겸손하게 드러내는 것이므로 좋다고 본다. 그러면 다른 교육적 사안을 비판하고 대안을 때도 정부나 여론이 보다 호의적으로 반응을 보일 것이다.

3-4     교원평가는 성과급, 다면평가와 맞물려 있어서 평가를 거부하면 성과급도 거부하게 되는데, 성과급도 현재로서는 전면 거부가 어려울 같다. 참에 교원평가 척도를 질적으로 가다듬는 것도 좋다고 본다. , 교육환경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바꿔야 하는가에 대한 대안을 학부모 단체와 교원단체가 공조해서 내는 것이 제일 중요하며, 평가를 수용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교육환경이 개선되어 가르치고 배울 맛을 느끼게 하면 교원평가라는 부적 강화(negative reinforcement) 필요성은 줄어들 것이다. 정부는 바로 점을 못보고 있다.

3-5     원인은 교육환경의 열악함이지만 결과적으로 교사들의 교육에 대한 열정, 독서를 꾸준히 하는 가운데 실력을 연마하려는 의지 등의 면에서 교사들이 차별화되어 대우가 달라져야 필요성이 교육내부에서도 감지된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어떤 교사는 시간 나는 대로 전공별 독서, 수업준비, 자료편집, 학급 아이들 지도를 위한 조언 구하기와 고민 등을 한다. 반면,  일상의 취미에만 관심을 갖는 교사, 시댁과 친정 가족과 아들 딸의 사적 이야기를 틈나는대로 하면서 잡담을 즐기는 교사,  55 나이든 교사에 대해 수업부담이나 업무 시험감독 등을 빼줄 앉아서 사담을 나누거나 인터넷 쇼핑몰을 뒤지는 교사들, 동료교사는 수업과 업무를 하느라 바쁜데 일을 돕고자 하는 생각을 갖지 않는 편협하고 이기적인 성향의 교사들이 분명 존재하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이들이 극소수는 아니다.

3-5-1 교사들이 이렇게 능력과 열정에서 차이가 나는 이유: 교원양성과정에서 현재 임용고시가 시험위주로 되어 있어서 전체를 보는 안목이 부족하게 되어 있다. 게다가 평교사로서 정년까지 가는 것이 대세이며 여기서 교직의 보람을 느끼는 선진국과 달리, 한국의 교직풍토는 부장, 교감, 교장으로 승진하는 데서 우대받는 풍토이다. 그래서 나이들면 승진하려고 하며 과정에서 알차게 전공별 독서와 수업에서 실제 있는 자료개발 등이 소홀해진다.  결혼에 집착하는 사회적 인식과 이로 인해 결혼생활이 우선이고 학교의 공적 업무를 소홀히 하는 경향도 작용한다고 보여진다. 여러 갖가지 교육의 모순을 방치한 교육현실 인식능력과 의지가 부족한 정치인들이 내놓는 편리한 대증요법이 바로 교원평가이지만 다음과 같은 주요 요건들이 개선되면 교육경쟁력을 보다 월등히 살아날 것이다.

 

4.        이제부터 우리가 일을 가지로 요약해 있다.  

4-1 교육환경 개선사업을 위한 본격적인 개혁 청사진을 내는 : (아래 [2] 에서 제시할 것임)

4-2 지금껏 교육투자를 하지 않음으로써 발생하는 문제상황을 드러내는 : 우리나라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어떤 고통을 얼마나 느끼는가를 그래프와 설문지 통계조사를 해서 가시적으로 드러냄으로써 언론에 시리즈로 공표하는 이것은 시민들의 적절한 분노를 자아낼 것이다. 정당한 분노는 정부에 대한 가장 강력한 개혁의 추동의 힘으로 작용할 것이다. 전교조만 외쳐대야 봐야 소용없다. 전교조 좌파에 대한 편견이 심한 척박한 이념적 풍토에서는 더욱 어렵다. 다음 촛불집회는 어른들이 주도해야 것이며 목표는 교육개혁이다.

4-3 교원평가 척도를 질적으로 개발하는 : 이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나 전면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교원평가 척도를 질적으로 개발한 상태를 100으로 우리가 노력하면 60까지는 가능하지 않을까 가정해 본다. 질적으로 노력을 하는 가운데 교사들의 교육에 대한 보다 세밀한 고민이 이뤄지도록 자극할 수도 있을 것이다.

 

[2]  교원평가를 넘어서서 사고해야 한다.

이는  교육경쟁력을 살리기 위한 방안이다. 이것은 멀리 있지 않고 교육환경을 갖추는 상식에 충실할 가능할 것이다. 우리는 지금껏 상식을 외면해 왔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환경을 악화시키고 있다.

 

   학급당 학생수를 평균 20명으로 줄여라! : 한국의 교사들의 오랜 숙원이다.

    행정보조원을 대거 투입하라! : 미국의 어느 학교에서는 행정보조원이 교사 수보다 많은 곳이 있다. 그래서 학교 교사들은 행정업무를 위해 공문을 만지는 일이 거의 없다. 한국의 교사들은 (행정) 공문만지거나 수업시간표 짜기, 연간계획서 만들기, 학생들 인솔하고 각종 행사에 다니기 위해 서류작성하고 영수증 처리하여 행정실에 내기 ….일이 많다. 행정 보조원이 투입되면 이런 일들이 대폭 없어지면서 교사들이 학생과의 대화, 수업자료 편집, 독서, 교과협의회 등이 보다 원활해질 것이며 이는 교사의 실력향상과 교육경쟁력으로 이어질 것이다.

    외국의 학교들 처럼 교과교실전담제에 따라 학생들의 이동수업을 보장해야 한다. : 교사가 전담 교실을 배정받으면 그곳에 각종 책과 수업자료를 비치하여 보다 질높게 수업에 임할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도 전공필수 과목 외에 선택해서 들을 있어 관심도도 높아질 것이다. 학교예산 불요불급한 것을 줄이고 학교 증설에 힘써야 한다. : 교육개혁에 대한 안목을 지닌 교사들을 물색해서 학교 회계 전문가와 함께 학교 교육예산 중에서 어떤 것을 줄이야 하는가를 심도있게 논의하도록 한다. 정부 관리가 교사들을 직접 물색하기 보다는 현장의 개혁성향의 교장, 교감, 교사 그리고 교원단체 임원을 통해서 추천한다. 그리고 교사들을 단계적으로 대폭 증원해야 한다.

    평준화를 손질한다. : 아이들의 이해수준이 다른데 무조건 이질집단의 장점만을 고집할 없다. 이질집단에서 공부 잘하는 아이가 뒤쳐지는 아이를 가르쳐 주면서 협동심의 배가된다는 논리는 타당하지만 모든 과목, 모든 상황에 적용할 사안은 아니다. 과목의 성격과 난이도 등에 의해 동질집단으로 구성될 필요가 있다. 평준화는 단계적으로 해지하되 성적이 뒤쳐지는 아이들에 대해 전문적인 기술교육을 시키는 시설을 갖추지 않는 정부의 무능에 문제가 있다.

    학벌을 타파하고 대학의 서열화를 깨야 한다. : 서울대를 정점으로 해서 줄서는 기막힌 낙후성을 시급히 개선해야 한다. 그래서 시민단체, 학부모 단체, 교원단체가 관철될 때까지 학벌과 대학 간판을 보고 인재를 선발하는 관행을 근절하고 능력에 따라 철저히 선발, 대우하도록 촉구하고 매스컴이 여기에 함께 하도록 한다. 유럽처럼 인근 지역의 대학에서 실력껏 공부하도록 대학 교수와 환경의 양적 질적 고양이 이뤄져야 가능할 것이다.

    실업계 고교의 증설과 교육과정을 기업체와 함께 한다. 그래야 학생들이 현장에서 있는 기술을 연마할 있으며 적정 인력이 바로 기업체에 취업할 있을 것이다.  실업계를 살려야 과도한 입시경쟁이 완화된다. 왜냐하면 기술을 연마해서 보수를 받고 사회적으로 인정해주면 인문계 고교진학 열기는 줄어들 것이기 때문이다. 박정희 시절의 금오공고, 철도공고 등의 명성을 되살려 장인정신을 확산시키지 않으면 안된다. 일본은 장인정신이 살아있지 않은가?

    -- 교사들의 승진열기가 교육경쟁력을 먹는 하나의 요인이다.; 평교사를 대폭 우대하고 교장은 평교사들 중에서 교직경력 10, 교육행정학 석사과정 이수, 부장경력 5, 교육문제 인식과 개선을 위한 경력에 가산점을 주면서 지역 단위학교에서 선발하도록 한다. 지금 과학고에서도 승진열기 때문에 소수의 학생을 선발해서 각종 경시대회에 내보내 단기적인 실적을 내려고 한다. 기초 과학적 소양을 쌓고 장차 노벨상 수상을 기대하며 공부할 아이들이 승진열기의 과정에 참여되는 것은 시급히 막아야 한다. 미래를 응시할 모르는 교육당국자와 교육관행이 참으로 문제가 아닐 없다.

    학기당 이수과목을 평균 7개로 줄여야 한다. 너무 많은 과목을 배우고, 7 교육과정 이후 공부량이 늘어나 학생들의 실력은 깊이를 잃고 있다. 그래서 고교생 중에서 문학, 철학, 역사 등의 고전을 접하는 아이들이 드물다.

    교과협의회를 정부에서 장려하고 간섭을 줄인다. 최근 역사교과서에 대해 교과부가 직접 개입하는 것은 역사성이 부족한 퇴행적 모습이다. 정부는 좌파와 우파가 건강하게 토론하며 학문적이고 지적으로 성장하게 해주어야 하는 역할에 그쳐야 한다.

    교사연구실을 대폭 늘려주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학교내 공간 확보, 이를 위해서는 학교가 많이 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학교 부지 확보를 위해 도심지역의 주택단지를 매입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여기에 예산을 투입해야 한다.

 

[3] 마치며

      교사들이 관심가질 영역으로는 첫째, 시간나는 대로 전공 사회과학 에세이 독서를 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 한국의 교사들이 일에 채이고, 학급운영의 부담, 의지의 상실로 시간나면 독서해야 한다는 사실을 잊는 교사들이 있다.  상황이 교원평가의 필요성을 가중시키고 있다. 시댁 친정, 군대 이야기, 술 먹은 이야기 등 사담을 자주 나누는 교사들에게 동료교사가 우리 볼까요?”하는 말을 없다. 말하면 교사와의 인간관계는 종결된다. 이것은 교사관계가 열린 것이 아니고 닫힌 사회임을 있다.  둘째, 교육문제 인식능력을 교환하기 위해 교육문제에 대해 학교 안팎에서 토론의 기회를 가질 필요가 있다.

      열정과 능력을 기르기 위해 노력하는 교사를 가려내는 작업을 위해 교내에서 평가단 구성이 필요하다. 그리고 교원평가 결과에 대해 본인의 이의제기를 기회를 주고 평가단 3자의 역할을 해줄 교사들을 입회시켜 토론 속에서 교원평가를 마무리한다.

      단위학교 안에서 무능한 교사를 골라내야 필요는 없다. 일반적인 기준을 마련해서 평가하면 것이며, 평가결과는 성과급과 인사이동에 영향을 줘야 한다.

*****전교조 교사로서 교육적인 열정을 지닌 교사가 배제되는 평가척도가 구성되지 않도록 조심하며, 승진구조에 편승하는 교사가 평가에서 혜택을 배타적으로 보는 일이 없도록 역시 평가척도 구성에 유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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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의 전문성 신장을 가로막는 장벽들


절박한 과제로서 전문성 신장

  먼저 교사의 전문성 신장이 절박한 이유부터 짚어보면서 시작하겠습니다. 아무리 아니라 우겨도 교사의 대우가 평균을 넘는 것이 사실입니다. 문제는 그것이 과잉보상이라는 견해가 사회적으로 보편화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컨대 사람들은 교사보다도 대우가 좋은 교수나 의사를 부러워하기는 합니다. 하지만 그 일들을 “당장 할 수 있다.”고 감히 생각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교사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웬만한 교육을 받은 성인들은 교사 정도의 일은 당장이라도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들 보다 좋은 대우를 받는 교사를 곱게 보아 넘길 수 없는 것입니다. 지금 사회적으로 유통되는 교사의 이미지는 무능한데도 평균이상의 월급을 받고 노동자들의 절반만 일하는 집단입니다. 이런 분위기에서 교사가 지금 같은 대우를 계속 유지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과분한 대우를 포기하던가 아니면 그만한 대우를 받을만한 합당한 자격이 있음을, 아니 더 좋은 대우를 받아도 모자람을 당당히 선언하던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절박한 상황에 와 있습니다. 우리는 당연히 후자를 선택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스스로 전문성을 신장하고 이를 내어 보임으로써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교사의 전문성은 단지 전공 지식이나 교육학에 기능적으로 숙달되는 것 이상의 것이라야 합니다. 이는 무수한 지식의 네트워크에서 학생들에게 가장 도움이 될 수 있는 것들을 선택할 수 있고, 그것에 적합한 교육방법을 선택, 구상할 수 있으며, 학생들이 새로운 지식과 방법을 생산자로 설 수 있게 이끌 수 있는 그런 능력입니다. 이러한 전문성은 당연히 오랜 연구와 교실에서의 실천경험이 필요하며, 일반인은 물론 전문 연구자도 쉽게 넘볼 수 없는 능력입니다. 교육의 이러한 전문성을 끈질기게 연마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사회에 드러낼 때 우리에게 가해오는 부당한 압력과 비난은 중단될 것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많은 교사들이 적극적으로 전문성을 신장하고 보기는 어려운 것이 현실입니다. 하지만 이를 마냥 교사들의 안일과 나태로만 몰아세울 수는 없습니다. 부지런하고 의욕적인 교사들마저 중년기가 되면서 지치고 냉소적이 되면서 안일과 나태의 대열에 합류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교사의 전문성 신장을 가로막는 여러 구조적 장벽들이 있는 것입니다. 이 장벽들은 교사 집단 바깥에서 형성된 사회적, 제도적 장벽일수도 있고 교사집단 내부에 형성된 문화적, 관습적 장벽일수도 있습니다. 간단하게나마 이런 장벽들을 한 번 짚어봅시다.

  전문성 신장을 가로막는 외부의 장벽들

  부족한 기자재

아무리 유능한 의사라도 청진기 하나 쥐어주고 암을 치료하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교사의 전문성 역시 그것을 발휘할 수 있는 하드웨어의 제약을 받습니다. 교실에 빔프로젝터가 있고 없고에 따라 수업을 구상할 수 있는 범위가 달라지면, 냉방시설이 있는 교실과 없는 교실의 수업은 하늘과 땅 차이가 납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 학교의 실태는 비참합니다. 시설은 낡고, 시대에 뒤떨어졌으며, 경직되고 비대한 관료제로 인해 업그레이드도 매우 더디며, 학교간 편차도 심합니다. 학교의 각종 시설환경은 흡사 ‘타임캡슐’을 연상시킵니다. 그나마 신형의 시설과 기자재가 공급되어도 설치되는 그 순간부터 활용보다 분실·파손 방지, 관리 철저 등등의 잡무가 되어버립니다. 적극적으로 활용되는 시설과 장비는 고장이 나고 파손되는 것이 정상이지만, 이런 정상적인 생각을 갖추기에는 학교관리자라는 지위가 너무 비정상적입니다.

  전문성 신장에 적대적인 공간

교사들의 공간적 환경은 전문성 신장에 최악이며 적대적입니다. 교무실 배치를 보면 최소한의 공간을 사용하여 최대한의 교사를 몰아넣으려는 목적 외에는 없어 보입니다. 이런 공간에서는 연구도 휴식도 불가능하며 그나마 비좁은 공간을 컴퓨터가 차지한 다음부터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행정사무 아니면 인터넷 쇼핑뿐입니다. 초등 교사들은 교실을 연구실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지만 이는 궁여지책에 불과합니다. 개별 연구실이 어렵더라도 교사전용 도서실, 세미나실 등만 있어도 교사문화가 전문성에 친화적으로 바뀔 것입니다. 사실 이런 공간이 설치되어 있는 학교가 있긴 하지만 이 경우도 활용보다는 관리에만 신경 쓰느라 잠겨있기 일수입니다.

  유인동기 부족

전문성 신장을 교사 개개인의 열정과 윤리에만 맡겨두는 것은 낭만적 생각입니다. 전문성 신장은 노고와 비용을 요구하며, 유인동기가 없다면 일부 열정적 교사들을 제외하면 자발적으로 나서기 어려울 것입니다. 아시겠지만 우리 학교는 전문성을 신장해도 별 이득이 없고, 하지 않아도 별 손해가 없는 체제입니다. 전문성 신장의 유인동기가 없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전문성은 승진에도 아무런 기여를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전문성 신장이 경제적 보상, 명예, 승진에도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소수의 특별한 교사를 제외하면 자발적으로 전문성 신장에 나서지 않을 것입니다. 그나마 교육당국이 제공하는 얼마 안 되는 전문성 유인 동기는 주로 부정적 보상에 의존하려 들거나 쥐꼬리만한 혜택을 주면서 그것을 빌미로 산더미 같은 간섭을 하려들어 교사의 자존심을 손상시킵니다.

  행정사무와 낡은 관행

교사가 행정사무까지 보는 것은 교사의 전문성 뿐 아니라 행정직원들의 전문성도 손상시키는 최악의 조합입니다. 사실 교사 전문성 신장의 첫 걸음은 행정사무를 하지 않는것에서 시작되어야 합니다. 교사가 행정사무를 담당하는 것은 행정 비전문가인 교사가 각종 행정사무를 적당히 나눠가지는 것은 행정직원에게도 모욕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행정업무를 행정직원이 전담하게 되면 비로소 그들은 쓸데 없는 불합리한 잡무를 분석하고 이를 간소화, 합리화 하려는 노력을 할 것입니다. 즉 행정 전문가가 되는 것입니다. 반면 교사는 교실에 집중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지금까지 행정 잡무는 무능한 교사들의 도피처였습니다. 아무리 엉터리로 수업을 해도 공문서 몇 장 처리하면 용서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행정 잡무가 사라지면 무능한 교사가 도피할 영역이 없기 때문에 도리 없이 교실에 집중해야 합니다.

  남성의 지배의 문화

교사들의 대다수가 여성입니다. 따라서 젠더 문제를 고려하지 않고는 교사문제를 다룰 수 없습니다. 많은 여교사들이 교사와 주부라는 2중 지위를 가집니다. 그런데 주부라는 지위가 전문성 신장을 위해 사용되어야 할 소중한 시간을 빼앗아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남성에 비해 여성은 전문성 신장을 위해 시간을 사용하기가 어렵습니다. 많은 여성들이 남는 시간에 각종 가정유지 노동을 해야 합니다. 부부교사가 아닌 경우 여교사가 배우자에게 동등한 가사노동을 요구하는 경우가 그리 많지 않은 것입니다. 그런데 여교사의 배우자들이 대체로 여론주도층이라는 점이 더욱 문제입니다. 불행히도 많은 여교사들은 대기업에 다니는, 혹은 전문직인 배우자 앞에서 자신의 일이 그들이 하는 일 보다 더 어렵고 사회적으로 중요한 일이라는 확신을 심어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교사 하느라 아이에게 신경을 못 써서 미안하다고 말하는 여교사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배우자인 전문직 남성들은 직장에서 두고 온 자녀에게 미안해 하는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그 결과 남성들이 주류를 이루는 직종은 열정과 패기로 전념하는 이미지가 형성되고, 여성들이 주류를 이루는 교사는 주부가 적당히 겸직해도 되는 정도의 일이라는 이미지가 만들어집니다. 이것은 실로 무서운 이미지입니다. 이 마음속의 불평등을 극복해야 합니다. 전문성 신장의 장벽은 가정에서부터 제거해야 합니다.

 

전문성 신장을 가로막는 내 안의 장벽들

  지금까지 전문성 신장을 가로막는 장벽들을 살펴보면 제도적이거나 문화적인 것이라 교사 자신에게는 문제가 없는 것 처럼 착각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실상 외부의 장벽 못지않게 교사들 스스로 가지고 있는 전문성 신장의 장벽도 만만치 않습니다.

  자유를 번거로워하는 타성

주로 중년층 이상의 교사들의 성장을 가로막는 주된 이유입니다. 사실 전문직은 자율성을 가질 수 있지만 그것을 위해 치뤄야 할 책무성이란 비용을 요구합니다. 사실 수업을 스스로 구상해서 실시하는 것은 매우 고들픈 일입니다. 그냥 정해진 교육과정과 교과서에 따라 기계적으로 반복하는 수업이 훨씬 노고가 덜 드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니 편하게 정해진 수업만 하고 남는 시간을 여흥과 쇼핑으로 탕진하는 교사들의 수가 많은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 안락함은 자율성을 포기한 댓가, 즉 노예의 안락함입니다. 물론 교사를 부러워하는 시선이 전문성보다 노예의 안락함에 끌렸기 때문인 것이 현실입니다. 어쩌면 젊은이들 중에는 이 노예의 안락함을 누리기 위해 열심히 공부해 교사가 된 사람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지금 교사에 대한 좋은 대우는 사회적 합의가 되지 않은 비정상적인 과도기에 불과합니다. 노예의 안락함에 안주하고 있는 교사에게 지금과 같은 대우를 하는 것은 사회적 낭비입니다. 하루에 4~5시간 정도만 노동하고, 1년의 1/3이 휴가인 이유는 남는 시간동안 전문성을 신장하라는 것이지 놀거나 쉬라는 것이 아닙니다. 1999년 캐나다 교원노조의 투쟁 슬로건이 “하루 1시간의 공강시간 확보!”였음을, 레이건 시절 미국 교사들이 하루 45분의 비는 시간을 지키기 위해 치열하게 투쟁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하루에 2~3시간씩 남는 시간을 의미없는 웹서핑, 싸이질, 수다 등으로 탕진해도 되는 이런 비정상적인 상태가 얼마나 더 유지될 수 있을지 의심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교육학 소비자주의

교육학은 이미 완결된 매뉴얼이 아니라 구체적인 교육을 통해 수정, 보완, 발전되어야 하는 일련의 실천입니다. 따라서 교육학과 수업은 구별되지 않으며, 교육학자와 교사도 구별되지 않습니다. 교실은 단지 교육학이 적용되는 공간이 아니라 생성되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많은 교사들이 교육학을 배우고 익혀야 할 완성된 교수-학습 패키지로 인식하는 경향이 많습니다. 그래서 부지런한 교사들조차 교육학의 생산자가 아니라 소비자로 머물러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그나마도 창조적으로 변화, 발전시키기 보다 기계적으로 적용한 뒤 “역시 한국 현실에는 이런 수업이 안 돼.”라며 지레 포기해버리기가 일쑤입니다. 그래서 젊어서는 다양한 교수-학습을 시도해 보다가 나이 들어갈수록 단순 강의형에 안주해 버리는 불행한 루틴이 반복됩니다. 그러면서 학교 현장을 모르는 교육학자들의 탁상공론을 비판합니다. 하지만 학교 현장을 아는 교육학자가 달리 있을 수 있겠습니까? 교사 외에 누가 학교 현장을 알겠습니까? 그러니 교사가 교육학의 소비자인지 생산자인지의 답은 분명해질 수 밖에 없습니다.

  행복관의 부재

이런 분도 있을 수 있습니다. “당신이 말한 것이 옳다고 치자. 하지만 난 수업 대충 하고, 월급이나 받고, 남는 시간을 쇼핑하고, 친구만나 수다 떨고 사는 것이 더 행복하다. 무엇 때문에 아무 보상도 없이 스스로를 힘들게 만든단 말인가?” 물론 이는 매우 영리한 선택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삶의 태도에서는 행복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행복은 모두가 자신의 타고난 본성을 실현할 때 도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타고난 본성보다는 외부에서 강요된 기준에 따르도록 강요받으며 성장했습니다. 교사인 우리 역시 잘못된 교육의 희생자입니다. 우리는 무의식 중에 외적인 행복을 추구하는 습관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외적인 행복은 결과를 얻으면 얻을수록 새로운 욕망을 생산하는 허무한 행복입니다. 만약 미결정적 주체인 아동들이 타고난 본성을 실현하며 성장하는 과정에서 얻는 행복에 공감하는 그 아름다운 경험을 한 번이라도 겪는다면, 우리는 저 허무한 행복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프뢰벨은 아동의 교육은 잘못된 교육을 받은 어른이 자신을 고칠 수 있는 치유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원자화 경향

최근 성실하고 진취적인 젊은 교사들일수록 자주 토로하는 고민이 너무 일이 많고, 힘들고, 바쁘다고 합니다. 수업 준비하는 것도 벅차고, 처리해야 할 업무도 산더미처럼 보이고, 면담은 또 어찌해야 할지 깜깜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고민하는 교사들의 공통점은 이 모든 것을 홀로 한다는 것입니다. 홀로 자료 준비하고, 홀로 면담 준비하고, 홀로 업무를 처리합니다. 동료나 선배는 단지 고충을 토로하고 동정심이나 공감을 얻어내는 대상일 뿐, 함께 공부하고, 함께 준비하는 모습을 찾기가 어렵습니다. 하지만 지식은 소통과 공유를 통해 생성되지 결코 고독한 은둔을 통해 형성되지 않습니다. 안다는 것은 행함이며 행함은 곧 말하는 것이고, 말함은 곧 공동으로 행함입니다. 그래서 공자는 혼자 밤을 새지 말고 스승에게 말하라고 했던 것이다. 그런데 불행히도 최근 교사들의 원자화되는 경향이 강해집니다. 전교조 역시 과거와 같은 공동의 실천단위가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물론 전교조가 시대에 뒤떨어졌다고 비판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대체할만한 새로운 실천단위가 나온 것도 아닙니다. 이렇게 공동의 실천맥락에서 떨어져 나온 개체화된 인간은 아렌트의 말을 빌리면 모두 “잠재적인 나찌”입니다. 우리는 나찌들에게 전문성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전문성의 새로운 정립을 위하여

  지금까지 교사의 전문성 신장이 필요한 이유, 그리고 그것을 가로막는 장벽들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사실 그 동안 전문성이라고 하면 막스 베버가 말한 “차갑고 영혼 없는 전문가”의 속성을 떠올리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 전문성은 차라리 듀이가 말한 “자유로운 연구자들의 공동체”의 속성이 되어야 합니다. 교사는 정해진 매뉴얼에 정통한 전문가가 아니라 자신의 영역의 애정과 창의적인 정신을 발휘하는 전문가가 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교사의 전문성 신장은 교사뿐 아니라 사회 전체적으로 전문성이라고 하는 것의 새로운 의미 정립을 위해서도 중요한 일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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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원평가가 다시 화급의 이슈가 되었습니다.잠잠하던 교육계에 다시 논쟁의 불분기 시작했습니다. 많은 교사들은 억울해 합니다. 정부가 원하는 그런 계량화, 수치화, 획일화된 평가로 어떻게 교육성과를 재단하느냐며 불만이 대단합니다. 그런데 이 시점에서 참 심각한 의문이 떠오릅니다. 그 억울해하는 교사들이 결국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수치화, 계량화, 획일화된 평가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별안간 바담풍, 바담풍 속담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나는 학생들을 수치화해서 평가할테니, 너희는 우리를 그러지 마라. 나는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수치화된 평가를 하겠지만, 너희는 우리에게 그러면 안된다. 대략 이런 뜻이 됩니다. 누가 봐도 이건 앞뒤가 맞지 않는 궤변입니다.

교사는 자기가 받기 원하는 대우를 학생들에게 해주어야 합니다. 혹은 학생들에게 가하는 대우에 걸맞는 대우를 사회로부터 받아야 하며, 그렇게 될수밖에 없습니다. 학생들을 통제하는 것이 교사의 업무이던 시절, 교사는 통제받았습니다. 학생들을 닥달하는 것이 교사의 업무이던 시절, 교사는 닥달받았습니다. 그러나 학생들의 자유를 개발하는 것이 교사의 업무라면, 교사들은 자유로울것입니다. 학생들을 창조적으로 만드는 것이 교사의 업무라면, 교사들은 창조적 환경에서 일할 수 있을 것이며, 적어도 그렇게 일하게 하라는 사회적 압력을 만들어낼수 있을 것입니다. 학생들에게 가하는 대우는 교사가 받을수 있는 대우의 최대한입니다.

억울해 하는, 피해의식에 가득찬 교사들에게 묻습니다. 그대들은 학생들이 원하는 것을 해 주었는가? 그러면 또 "수요자 논리, 시장논리"어쩌면서 반박할 준비가 되어있는 고집불통의 교사들 모습이 떠올라 머리부터 아파옵니다. 그러나 사회는 교사에게 항상 이 질문을 던질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여기에 답하지 못하는 한, 창조적이고 자유로운 교원정책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아니, 지금 상황은 교사만 자유로워지고 학생들에 대한 대우는 예전과 그대로인 불균형 상태입니다. 그런데 교사들은 그 자유는 지키고, 그 억압은 유지하려하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전교조가 결과적으로 이런 이기적 욕망을 앞장서서 지키고있는 꼴이 되었습니다. 그게 전교조 위기의 원인이며, 욕을 먹는 원인입니다.

해답은 매우 간단한 곳에 있습니다. "아이들이 원하는 것을 해주라!" 그러나 이는 감정적인 내용이 아닙니다. 아이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기 위한 과정부터 매우 지적이고 과학적인 작업을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공부하지 않는 교사는 아이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알지 못할것입니다. 그래서 사실은 자기가 원하는 것을 해주고는 아이들이 그걸 몰라준다고 서운해하고, 그 서운함이 심해지면 복수심과 원한을 품고 사디스트가 되는 것입니다.


일찌기 소크라테스가 말했듯이 악의 근원은 무지에 있음이니... 아렌트가 말했듯이 생각없음은 바로 절대악이니.... 니체가 말했듯이 확신이야 말로 인간을 노예로 만드는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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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기사다. 한겨레, 시사인에 이어 경향신문까지 교원평가와 관련한 전교조의 방침에 지지할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했다. 교원평가 반대는 우군이 없음이 분명해진 것이다. 아, 우군이 있다. 바로 교총이다. 생각해보라. 교원평가의 가장 큰 피해자가 누구겠는가? 늙은 교사 모임인 교총이다. 교원평가 반대같은 집단이기주의의 오해가 가능한 그런 사안에서는 교총을 앞세워야 하고, 개혁적인 사안에서는 전교조가 앞서야 했는데, 포지션이 잘못되어 완전히 교착되고 말았다.(이하 기사)

‘교원평가제’를 둘러싸고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갈등을 빚고 있다. 전교조는 일단 논란의 당사자인 현인철 대변인의 사표를 8일 수리해 내홍을 정리하겠다는 입장이다. 시민사회단체들은 “곪을 대로 곪은 갈등이 불거진 것”이라며 사태를 주시하고 있다.

발 단은 현 대변인이 지난달 한 시사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사견임을 전제로 교원평가에 찬성하는 취지의 발언을 한 데서 비롯됐다. 현 대변인은 “학교 내에서 학생들은 성적경쟁에 내몰리고 있는데 학부모들은 교원평가를 통해 교사수준을 높이기를 요구하고 있다”며 “이 같은 학부모와 학생의 의견을 수렴하지 않는다면 소통을 거부하겠다는 것 아니냐”고 밝혔다.

전교조가 폐쇄적인 ‘그들만의 리그’로는 지지층을 넓히기 어렵다는 것이다. 전교조는 공식적으로는 정부의 교원평가방식에 반대한다는 입장이다. 지난 7월 서울시교육감 선거 당시 전교조가 지지한 주경복 후보가 낙선한 주 요인도 학부모들이 요구하는 교원평가제에 미온적 입장이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상황은 전교조에 녹록지 않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교원평가는 참여정부 때의 ‘절대 평가’보다 더 강력한 내용으로 법제화가 추진되고 있다. 뉴라이트 계열 단체에서는 ‘상대 평가’를 승진·보수와 연계하는 방안을 요구하고 있다. 교육과학기술부는 이달 말에 확정안을 내놓고 오는 11월쯤 국회에 제출한다는 계획이다.

일단 정부안이 확정되면 한나라당이 과반인 국회 통과가 유력하다. 정부와 서울시교육청이 좌파성향의 전교조에 대해 연일 강공을 펴는 점도 이 같은 전망에 무게를 싣는다.

전교조 고위 관계자는 이런 상황 때문에 현 대변인의 발언이 부적절했다고 지적했다. “정부의 초강력 안이 준비되고 있는 시점에서 이전 정부의 교원평가제 기준을 논의하는 것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것이다. 2004년 참여정부 안에 대해서도 ‘교원의 승진·퇴출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고 지적해온 전교조로서는 이명박 정부 안은 더욱 ‘논외’ 대상이다. 이 관계자는 “국제중, 영리학교법인 등 이명박 정부의 공격적인 교육정책이 쏟아져나오는 때에 교원평가제를 거론해 조직역량을 떨어뜨린 것은 조직을 해치는 행위”라고 고개를 저었다.

전교조 내에서는 교원평가가 노선 대립의 핵심 현안인 만큼 이번에 합리적인 접점을 모색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김정명신 함께하는교육시민모임 공동회장은 “학부모들 사이에 교육의 질을 높이는 수단으로 교원평가 도입요구가 있다는 현실을 전교조가 무조건 무시할 상황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지난 서울시교육감 선거를 거치면서 교육운동 진영 내에서는 전교조의 역할에 대해 비판이 많고, 정파싸움에 휘말린 전교조가 이제 한계에 달한 것 아니냐는 회의론도 있었다”고 전했다.

학부모단체인 참교육학부모회 윤숙자 회장은 “기본적으로 학생을 위한 교원평가가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이라며 “힘으로 밀어붙이는 정부와 무조건 반대하는 전교조가 극단적인 대립으로 치달으면 피해를 입는 것은 현장의 학생들”이라고 우려했다.

<최민영기자 m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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