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실련은 전교조에서 현재 정진화 위원장이 속해있는 정파입니다. 그들에게 전교조내 유일한 공개 정파인 "새로운 힘"이 던지는 공개 서한입니다.

들어라 참실련이여!

  <참실련>은 전교조가 중요한 기로에 섰을 때 마다 잠시 망설이고 서성거렸지만 늘 <교찾사>를 따라갔다. 7차 교육과정 투쟁 때에도 교원평가 투쟁 때에도 그랬다. 조합원 총 투표제 논쟁 때에도 그들은 그랬다. 잠시 무언가 다른 태도를 보일 듯이 머뭇거리다 막판에 어정쩡하게 조합원 총 투표제를 사실상 포기하며 <교찾사>와 함께 했다.

  그런 의미에서 스포츠 구단으로 따지면 <참실련>과 <교찾사>는 한 구단에 속한다. 그리고 그 구단에 2군은 <참실련>이다. <참실련> 입장에선 다소 억울한 평가일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냉정히 과거를 되돌아본다면 그리 억울할 일도 아니다. 술자리나 사석에서 이러쿵저러쿵 서로 이야기하면서 느낀 감정상의 차이나 혹은 방법상의 차이는 냉정히 빼고 말이다. 감정상의 차이나 방법상의 차이는 한 구단의 1군 2군에도 있다.

  교장선출보직제 등 몇 가지를 우선정책으로 내세웠다고 주장할 런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정책은 전교조가 처한 현실에선 늘 문건 속의 정책으로 끝났다. 전교조 현실에선 7차, 성과급, 네이스, 교원평가가 세상과 부딪히는 전선이었다. 그리고 그 전선의 주도권은 늘 <교찾사>가 만들었고 주도했다.

  따라서 <참실련>을 평하는데 사실 정책은 필요 하지 않다. 그렇다면 무엇을 통해 <참실련>을 들여다보아야 할까? 그것은 그들의 주의주장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이 조직의 중요한 순간에 행한 행동을 따져보는 것이 <참실련>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2000년 전교조선거 때 <참실련> 후보의 슬로건은 <국민과 함께>였다. 그러나 <교찾사>의 ‘7차 교육과정 투쟁 올인 노선’에 모든 것을 내줌으로써 국민과 함께는 커녕 ‘참교육 학부회’ 등 중요한 우군들마저 잃어갔다. 그러나 이 정도만 해도 한 번의 실수로 봐줄만하다. ‘신자유주의’, ‘교육과정’ 담론에 접하며 당황했거나 혹은 아직 내부 정리가 미처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었으니까.

  2004년 선거 때는 ‘국민에게 박수 받는 전교조!’로 후보를 내세운 <참실련>은 교원평가에 대해 애매모호한 태도를 보이면서 국민적으론 교원평가 강력반대 연가투쟁 을 배치했다. 그로인해 국민에게 박수는커녕 삿대질만 받는 꼴을 자초했다. 역시 <교찾사>노선에 충실한 대리인 역할만 한 꼴이다.

  1
2006년 선거 때의 일이다. <참실련>의 가장 주요한 슬로건은 <고립을 넘어>였다. 그리고 선거의 쟁점은 ‘교원평가’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 였다. <새로운 힘>은 학생에 의한 수업평가 제도화로 정부의 교원평가 국면을 넘어서자고 했다. 학생의 수업평가권 확대요구는 전교조의 정신이며 가치라고 했다. <새로운힘>은 교원평가 국면에서 그것이 전교조의 유일한 무기라고 했다.

  <교찾사>는 새힘의 이런 정책을 정부정책 수용론자로 몰아붙였다. 그러나 <참실련>은 <새힘>의 정책에 많은 <참실련> 구성원들이 사실상 동의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의 선거 슬로건이 <고립을 넘어!>로 설정했다는 것은 전교조가 처한 현실을 인식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 핵심에 교원평가가 있다는 사실도 인지했을 것이다. 그래서 하물며 <참실련> 후보까지 개인적인 자리에선 <새힘>의 정책에 동의했다.

  그러나 거기까지다. 그들은 여전히 그 순간에도 자신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행동하지 않았다. 혹 수용 론으로 몰릴까 두려워 더욱 소리 높여 교원평가 반대를 외쳤다. 왜 일까? 이유는 간단했다. 그걸 주장해서는 집권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자신의 집권이 전교조의 가치보다, 전교조의 고립보다 더 중요했던 것 일까? <참실련>의 태도는 늘 그랬다.

  2008년 8월 대의원 대회에서도 그랬다. 당시 <참실련>의 대다수는 MB정권이 전교조 고립화 전략으로 ‘교원평가’를 몰아붙이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교원평가 반대는 최악의 선택이라는 사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교원평가에 대한 입장을 수정하지 않고는 난국을 돌파할 수 없다는 것도 그들은 충분히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언제나처럼 자신의 생각대로 행동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시민사회단체와 그리고 자신 속에서 요동치는 의지를 용기 있게 선택하기보다는 또 다시 <교찾사>눈치와 곧 다가올 전교조 선거에서의 승리를 선택했다. <참실련>은 전교조의 중요한 길목에서 늘 용기 없고 비겁한 행동을 반복 했다. 그 결과 전교조는 지금 매우 어려운 처지에 놓여있다. 단지 몇 가지 잘못으로 지금 전교조의 처지를 진단하는 것은 다소 과도하다고 생각할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전쟁은 결정적인 몇 가지 잘못으로 패한다. <참실련>의 책임이 무겁다.

  늘 그랬다. 중요한 사안에 대해 애매모호한 태도로 쭈빗 거리고 결단의 시기에 이 눈치 저 눈치 살피고, 자기의 생각마저 용기 있게 표현하지 못하는 것이 <참실련>의 현재까지 모습이다. <참실련>이 친목계 모임이 아닌 운동가들이 모여 만든 의견구룹이기 위해서는 자기의견을 있는 그대로 내놓는 용기부터 배워야한다. 선거에 집권하겠다고 뛰어들 때의 용기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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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의와 가치 추구보다 집권을 우선하는 행동은 정치꾼들이나 하는 것이지 운동집단

이 할 일은 아니다. 우리가 세상 속에서 운동을 할 때 대의명분과 운동이 추구하는 가치를 최우선으로 삼아 한 발 한 발 가듯이 우리내부를 변화시키는 운동도 그렇게 가야하는 것이 맞다. 그걸 잃어버린 순간 더 이상 운동집단도 운동가도 아니다.

  어쩌면 지금 <참실련>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반교찾사 집권전략이 아니라 자신의 내부를 들여다보는 것이다. 그리고 치열하게 자기정체성에 대한 검증이 요구된다. 그 과정에서 용기도 배워야한다. 전교조의 미래를 결정하는 사안에 대해서는 자신의 정파마저 가벼이 보는 용기, 전교조가 추구했던 교육적 가치를 두고는 교사들하고도 싸울 수 있다는 용기.

  분명한 가치정립과 그것을 행동으로 조직할 용기를 만들어 내지 못한다면 <참실련>의 미래는 언제나 그랬듯이 <교찾사>의 대리인역할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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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원평가가 다시 화급의 이슈가 되었습니다.잠잠하던 교육계에 다시 논쟁의 불분기 시작했습니다. 많은 교사들은 억울해 합니다. 정부가 원하는 그런 계량화, 수치화, 획일화된 평가로 어떻게 교육성과를 재단하느냐며 불만이 대단합니다. 그런데 이 시점에서 참 심각한 의문이 떠오릅니다. 그 억울해하는 교사들이 결국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수치화, 계량화, 획일화된 평가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별안간 바담풍, 바담풍 속담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나는 학생들을 수치화해서 평가할테니, 너희는 우리를 그러지 마라. 나는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수치화된 평가를 하겠지만, 너희는 우리에게 그러면 안된다. 대략 이런 뜻이 됩니다. 누가 봐도 이건 앞뒤가 맞지 않는 궤변입니다.

교사는 자기가 받기 원하는 대우를 학생들에게 해주어야 합니다. 혹은 학생들에게 가하는 대우에 걸맞는 대우를 사회로부터 받아야 하며, 그렇게 될수밖에 없습니다. 학생들을 통제하는 것이 교사의 업무이던 시절, 교사는 통제받았습니다. 학생들을 닥달하는 것이 교사의 업무이던 시절, 교사는 닥달받았습니다. 그러나 학생들의 자유를 개발하는 것이 교사의 업무라면, 교사들은 자유로울것입니다. 학생들을 창조적으로 만드는 것이 교사의 업무라면, 교사들은 창조적 환경에서 일할 수 있을 것이며, 적어도 그렇게 일하게 하라는 사회적 압력을 만들어낼수 있을 것입니다. 학생들에게 가하는 대우는 교사가 받을수 있는 대우의 최대한입니다.

억울해 하는, 피해의식에 가득찬 교사들에게 묻습니다. 그대들은 학생들이 원하는 것을 해 주었는가? 그러면 또 "수요자 논리, 시장논리"어쩌면서 반박할 준비가 되어있는 고집불통의 교사들 모습이 떠올라 머리부터 아파옵니다. 그러나 사회는 교사에게 항상 이 질문을 던질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여기에 답하지 못하는 한, 창조적이고 자유로운 교원정책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아니, 지금 상황은 교사만 자유로워지고 학생들에 대한 대우는 예전과 그대로인 불균형 상태입니다. 그런데 교사들은 그 자유는 지키고, 그 억압은 유지하려하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전교조가 결과적으로 이런 이기적 욕망을 앞장서서 지키고있는 꼴이 되었습니다. 그게 전교조 위기의 원인이며, 욕을 먹는 원인입니다.

해답은 매우 간단한 곳에 있습니다. "아이들이 원하는 것을 해주라!" 그러나 이는 감정적인 내용이 아닙니다. 아이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기 위한 과정부터 매우 지적이고 과학적인 작업을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공부하지 않는 교사는 아이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알지 못할것입니다. 그래서 사실은 자기가 원하는 것을 해주고는 아이들이 그걸 몰라준다고 서운해하고, 그 서운함이 심해지면 복수심과 원한을 품고 사디스트가 되는 것입니다.


일찌기 소크라테스가 말했듯이 악의 근원은 무지에 있음이니... 아렌트가 말했듯이 생각없음은 바로 절대악이니.... 니체가 말했듯이 확신이야 말로 인간을 노예로 만드는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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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기사다. 한겨레, 시사인에 이어 경향신문까지 교원평가와 관련한 전교조의 방침에 지지할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했다. 교원평가 반대는 우군이 없음이 분명해진 것이다. 아, 우군이 있다. 바로 교총이다. 생각해보라. 교원평가의 가장 큰 피해자가 누구겠는가? 늙은 교사 모임인 교총이다. 교원평가 반대같은 집단이기주의의 오해가 가능한 그런 사안에서는 교총을 앞세워야 하고, 개혁적인 사안에서는 전교조가 앞서야 했는데, 포지션이 잘못되어 완전히 교착되고 말았다.(이하 기사)

‘교원평가제’를 둘러싸고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갈등을 빚고 있다. 전교조는 일단 논란의 당사자인 현인철 대변인의 사표를 8일 수리해 내홍을 정리하겠다는 입장이다. 시민사회단체들은 “곪을 대로 곪은 갈등이 불거진 것”이라며 사태를 주시하고 있다.

발 단은 현 대변인이 지난달 한 시사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사견임을 전제로 교원평가에 찬성하는 취지의 발언을 한 데서 비롯됐다. 현 대변인은 “학교 내에서 학생들은 성적경쟁에 내몰리고 있는데 학부모들은 교원평가를 통해 교사수준을 높이기를 요구하고 있다”며 “이 같은 학부모와 학생의 의견을 수렴하지 않는다면 소통을 거부하겠다는 것 아니냐”고 밝혔다.

전교조가 폐쇄적인 ‘그들만의 리그’로는 지지층을 넓히기 어렵다는 것이다. 전교조는 공식적으로는 정부의 교원평가방식에 반대한다는 입장이다. 지난 7월 서울시교육감 선거 당시 전교조가 지지한 주경복 후보가 낙선한 주 요인도 학부모들이 요구하는 교원평가제에 미온적 입장이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상황은 전교조에 녹록지 않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교원평가는 참여정부 때의 ‘절대 평가’보다 더 강력한 내용으로 법제화가 추진되고 있다. 뉴라이트 계열 단체에서는 ‘상대 평가’를 승진·보수와 연계하는 방안을 요구하고 있다. 교육과학기술부는 이달 말에 확정안을 내놓고 오는 11월쯤 국회에 제출한다는 계획이다.

일단 정부안이 확정되면 한나라당이 과반인 국회 통과가 유력하다. 정부와 서울시교육청이 좌파성향의 전교조에 대해 연일 강공을 펴는 점도 이 같은 전망에 무게를 싣는다.

전교조 고위 관계자는 이런 상황 때문에 현 대변인의 발언이 부적절했다고 지적했다. “정부의 초강력 안이 준비되고 있는 시점에서 이전 정부의 교원평가제 기준을 논의하는 것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것이다. 2004년 참여정부 안에 대해서도 ‘교원의 승진·퇴출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고 지적해온 전교조로서는 이명박 정부 안은 더욱 ‘논외’ 대상이다. 이 관계자는 “국제중, 영리학교법인 등 이명박 정부의 공격적인 교육정책이 쏟아져나오는 때에 교원평가제를 거론해 조직역량을 떨어뜨린 것은 조직을 해치는 행위”라고 고개를 저었다.

전교조 내에서는 교원평가가 노선 대립의 핵심 현안인 만큼 이번에 합리적인 접점을 모색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김정명신 함께하는교육시민모임 공동회장은 “학부모들 사이에 교육의 질을 높이는 수단으로 교원평가 도입요구가 있다는 현실을 전교조가 무조건 무시할 상황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지난 서울시교육감 선거를 거치면서 교육운동 진영 내에서는 전교조의 역할에 대해 비판이 많고, 정파싸움에 휘말린 전교조가 이제 한계에 달한 것 아니냐는 회의론도 있었다”고 전했다.

학부모단체인 참교육학부모회 윤숙자 회장은 “기본적으로 학생을 위한 교원평가가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이라며 “힘으로 밀어붙이는 정부와 무조건 반대하는 전교조가 극단적인 대립으로 치달으면 피해를 입는 것은 현장의 학생들”이라고 우려했다.

<최민영기자 m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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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여전히 걱정과 고생이 많으시죠? 도대체 왜 우리 노고를 몰라주고 공격만 하는지 안타까우시죠? 하지만 드릴 말씀은 드려야겠습니다. 물론 저 역시 전교조 간부인지라 누워서 침뱉기지만, 그래도 침은 입안에 있는 것보다는 얼굴에 묻는 것이 더 낫습니다. 닦을 수 있으니까요.

정부는 합법화 이전에는 전교조의 주장을 그냥 무시하지 못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전교조의 주장을 중심으로 여론이 형성되었기 때문입니다. 비합법 시절에는 지구장(위원장-지부장-지회장-지구장-분회장 순서죠?)조차 유력인사 대접을 받아서 지역 신문에 나기도 하고 그랬습니다. 그렇게 무시하지 못할 힘이 합법화를 이끌어 낸 동력이었습니다. 그런데 합법화 이후에는 서서히 정부가 전교조를 무시하기 시작했습니다. 한때는 임명장도 받기 전에 교육부 장관을 반대 성명 하나로 교체할 수 있었던 전교조는 이제 더 이상 없습니다. 지금은 지구장은 커녕 지부장도 그냥저냥한 사람 취급 받습니다. 합법화 이전이나 이후나 이명박 이전에는 정부가 큰 차이가 없다고 봐야 합니다. 그렇다면 변수는 전교조에 있습니다. 물어보아야 합니다. 왜 합법화 이전에 오히려 더 영향력이 있었나?

전교조가 언제 대안을 내지 않았냐 볼멘소리를 합니다. 네, 전교조에서 나온 각종 정책은 총론부터 각론까지 산더미 같습니다. 하지만 그러면 뭐합니까? 아무도 그것을 하고있지 않는 걸. 단지 정책안에 불과하지, 정작 교실에서 학교에서 하고 있는 활동이 승화된 것이 아닌걸.

비합법 시절에는 교사들이 먼저 움직였습니다. 그래서 학교가 먼저 변했습니다. 전교조 본부는(당시는 본조) 제일 나중에 말했습니다. "봐라. 선생님들이 이렇게 하지 않느냐?" 합법화 이후에는 거꾸로 되었습니다. 본부가 먼저 말합니다. 지부가 말합니다. 분회장에게 공문이 날아옵니다. 전교조는 이러자, 저러자고 말하는데, 실제 조합원 교사들이 그걸 바라는 것인지, 그럴 단초가 있기나 한 건지 의심받기 시작합니다. 그 이러자, 저러자도 항상 총체적이었습니다. 국가의 교육 제도 전반을 뒤집어야 가능한 것들이었습니다. 그런걸 "관념적"이라고 합니다.

그러는 동안 전교조 교사들은 "국가 교육제도가 이런데, 나 하나 뭐 해서 바뀌겠어?"하는 환원론자가 되어갔습니다. 말은 복잡하고 감동적으로 하지만 결론은 항상 "입시교육철폐","교육과정전면개편"이 되었습니다. 그럼 그 동안에 전교조 교사들은 학교에서 무엇을 할것이며, 하고 있는가에 대한 이야기는 사라졌습니다. 이제 전교조 교사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습니다. 그냥 교사에 불과하게 되었습니다. 그나마 단협 이루어지기 전까지는 학교의 이런저런 관행에 맞서 싸우기나 했습니다. 그러나 단협으로 이런것도 깨끗하게 해소되었습니다. 그리고 상층부가 해결해주며 조합원은 돈만내는 구조로 바뀌어갔습니다.

비합법시절 전교조의 업적은 주로 필부필녀 조합원 교사들의 세세하고 소박한 실천들의 집대성이었습니다. 그런데, 합법화 이후 전교조의 연구실적은 거의 대부분 상층부 활동가들이 머릿속에서 끄집어 낸 것들입니다. 참교육실천대회에 논문들이 몇트럭분씩 나옵니다. 하지만 그 수준은 해가 갈수록 낮아져서, 이제는 거의 유명무실해져서 이 행사를 계속 존치할 이유가 있는가 까지 논의되고 있습니다.

여러 선배님들! 조합에 대한 애정과 긍지가 자칫 냉정한 현실을 외면할까 작은 걱정이 됩니다. 지나온 과거는 참으로 아름답고 자랑스럽지만, 그건 과거입니다. 과거는 단지 지워버리는 것이 아니라 계승하고 발전시켜야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부정"의 과정이 필요합니다. 일단 부정 해서 그 외부로 눈을 돌린 뒤, 부정했던 그 과거의 유산을 한 계기로 포괄할수 있는 새로운 전체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하여, 이제부터 제가 여러분들을 부정해 드리려고 합니다. 부디 널리 혜량하여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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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장의 권한이 막강함을 지난 번에 살펴 보았다. 그리고 그 막강한 권한이 승진의 욕구가 되는 것이지 결코 교육과는 무관함을 살펴보았다. 그렇다면 교장과 함께 학교에 설치된 교감은 또 뭐하는 자리일까?

법조문을 살펴보면 교감이라는 자리는 참으로 우스꽝스러운 자리임을 알 수 있다. 교감의 지위와 권한에 대해서는 역시 초중등 교육법 제 20조에서 규정하고 있는데, 그 중 2항이 바로 교감에 대한 몫이다.

초중등교육법 제 20조 ②교감은 교장을 보좌하여 교무를 관리하고 학생을 교육하며, 교장이 부득이한 사유로 직무를 수행할 수 없는 때에는 그 직무를 대행한다. 다만, 교감을 두지 아니하는 학교의 경우에는 교장이 미리 지명한 교사가 그 직무를 대행한다.

이 조문을 따르면 교감은 아무것도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교무를 관리하고 학생을 교육하는 것이 교장을 보좌하는 것으로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즉 "교장을 보좌하고, 교무를 관리하며 학생을 교육한다"가 아니라 "교장을 보좌하여~"라는 것이다. 교무를 관리하고 학생을 교육하는 것은 교장이 하는 것이다. 심지어 동 법 동 조 3항의 "교사는 법이 정한바에 따라 학생을 교육한다."라는 조문과 비추어 보면 교감의 권한은 교사만도 못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법이 정한 바에 따라" 교육한다는 것은 과거 "교장의 명을 받아"를 민주적으로 개정한 것이라고는 하지만, 학교교육과정의 최종 편성권자가 학교장인 이상, 결국 학생 교육의 주체는 교장이다. 다만 학교교육과정위원회, 성적관리위원회 등의 자문기구를 거칠 뿐이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자문기구이기 때문에 교장이 전권을 가질 수 있다.

만약 교장이 전권을 휘두르며, 이를 교감과 공유하거나 일부를 할양할 의사가 전혀 없을 경우, 혹은 교장에게 부득이한 사유가 생기지 않는 경우 교감은 "할일이 없고, 권한도 없는"자리인 것이다.

사실 교감이 이런 자리라는 것은 누구보다도 교감들이 더 잘 안다. 교감이 무슨 벼슬인줄 알고 교사들에게 군림하려 들었다가 자신의 무력함을 절감한 교감들은 초보에 속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감이 되려고 교사들이 애쓰는 이유는 현행 교장이 자격증 제이며, 교장 자격증을 따기 위해서는 교감 자격증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교감은 교장이 되기위해 반드시 거쳐가야 하는 코스이며, 요식적인 절차에 불과하지 결코 어떤 교육적 이유로 소신과 사명을 갖고 일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닌 것이다.

결과적으로 교감들은 자신의 근무평정 성적을 좌우하는 교장의 충견이 될 수밖에 없다. 연세가 지긋해서 교감으로 정년퇴임할 것이 확실시 되는 교감 외에는 교사들의 의견을 수합해 교장과 협의하는 교감을 찾아보기 어렵다. 교감에게 이를 요구한다는 것은 거의 초월적 요구라 할 수 있다. 교감은 교장의 확성기에 불과하다. 한국의 학교는 이런 교장의 확성기를 위해 아까운 교원 정원을 낭비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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