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실련은 전교조에서 현재 정진화 위원장이 속해있는 정파입니다. 그들에게 전교조내 유일한 공개 정파인 "새로운 힘"이 던지는 공개 서한입니다.

들어라 참실련이여!

  <참실련>은 전교조가 중요한 기로에 섰을 때 마다 잠시 망설이고 서성거렸지만 늘 <교찾사>를 따라갔다. 7차 교육과정 투쟁 때에도 교원평가 투쟁 때에도 그랬다. 조합원 총 투표제 논쟁 때에도 그들은 그랬다. 잠시 무언가 다른 태도를 보일 듯이 머뭇거리다 막판에 어정쩡하게 조합원 총 투표제를 사실상 포기하며 <교찾사>와 함께 했다.

  그런 의미에서 스포츠 구단으로 따지면 <참실련>과 <교찾사>는 한 구단에 속한다. 그리고 그 구단에 2군은 <참실련>이다. <참실련> 입장에선 다소 억울한 평가일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냉정히 과거를 되돌아본다면 그리 억울할 일도 아니다. 술자리나 사석에서 이러쿵저러쿵 서로 이야기하면서 느낀 감정상의 차이나 혹은 방법상의 차이는 냉정히 빼고 말이다. 감정상의 차이나 방법상의 차이는 한 구단의 1군 2군에도 있다.

  교장선출보직제 등 몇 가지를 우선정책으로 내세웠다고 주장할 런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정책은 전교조가 처한 현실에선 늘 문건 속의 정책으로 끝났다. 전교조 현실에선 7차, 성과급, 네이스, 교원평가가 세상과 부딪히는 전선이었다. 그리고 그 전선의 주도권은 늘 <교찾사>가 만들었고 주도했다.

  따라서 <참실련>을 평하는데 사실 정책은 필요 하지 않다. 그렇다면 무엇을 통해 <참실련>을 들여다보아야 할까? 그것은 그들의 주의주장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이 조직의 중요한 순간에 행한 행동을 따져보는 것이 <참실련>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2000년 전교조선거 때 <참실련> 후보의 슬로건은 <국민과 함께>였다. 그러나 <교찾사>의 ‘7차 교육과정 투쟁 올인 노선’에 모든 것을 내줌으로써 국민과 함께는 커녕 ‘참교육 학부회’ 등 중요한 우군들마저 잃어갔다. 그러나 이 정도만 해도 한 번의 실수로 봐줄만하다. ‘신자유주의’, ‘교육과정’ 담론에 접하며 당황했거나 혹은 아직 내부 정리가 미처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었으니까.

  2004년 선거 때는 ‘국민에게 박수 받는 전교조!’로 후보를 내세운 <참실련>은 교원평가에 대해 애매모호한 태도를 보이면서 국민적으론 교원평가 강력반대 연가투쟁 을 배치했다. 그로인해 국민에게 박수는커녕 삿대질만 받는 꼴을 자초했다. 역시 <교찾사>노선에 충실한 대리인 역할만 한 꼴이다.

  1
2006년 선거 때의 일이다. <참실련>의 가장 주요한 슬로건은 <고립을 넘어>였다. 그리고 선거의 쟁점은 ‘교원평가’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 였다. <새로운 힘>은 학생에 의한 수업평가 제도화로 정부의 교원평가 국면을 넘어서자고 했다. 학생의 수업평가권 확대요구는 전교조의 정신이며 가치라고 했다. <새로운힘>은 교원평가 국면에서 그것이 전교조의 유일한 무기라고 했다.

  <교찾사>는 새힘의 이런 정책을 정부정책 수용론자로 몰아붙였다. 그러나 <참실련>은 <새힘>의 정책에 많은 <참실련> 구성원들이 사실상 동의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의 선거 슬로건이 <고립을 넘어!>로 설정했다는 것은 전교조가 처한 현실을 인식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 핵심에 교원평가가 있다는 사실도 인지했을 것이다. 그래서 하물며 <참실련> 후보까지 개인적인 자리에선 <새힘>의 정책에 동의했다.

  그러나 거기까지다. 그들은 여전히 그 순간에도 자신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행동하지 않았다. 혹 수용 론으로 몰릴까 두려워 더욱 소리 높여 교원평가 반대를 외쳤다. 왜 일까? 이유는 간단했다. 그걸 주장해서는 집권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자신의 집권이 전교조의 가치보다, 전교조의 고립보다 더 중요했던 것 일까? <참실련>의 태도는 늘 그랬다.

  2008년 8월 대의원 대회에서도 그랬다. 당시 <참실련>의 대다수는 MB정권이 전교조 고립화 전략으로 ‘교원평가’를 몰아붙이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교원평가 반대는 최악의 선택이라는 사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교원평가에 대한 입장을 수정하지 않고는 난국을 돌파할 수 없다는 것도 그들은 충분히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언제나처럼 자신의 생각대로 행동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시민사회단체와 그리고 자신 속에서 요동치는 의지를 용기 있게 선택하기보다는 또 다시 <교찾사>눈치와 곧 다가올 전교조 선거에서의 승리를 선택했다. <참실련>은 전교조의 중요한 길목에서 늘 용기 없고 비겁한 행동을 반복 했다. 그 결과 전교조는 지금 매우 어려운 처지에 놓여있다. 단지 몇 가지 잘못으로 지금 전교조의 처지를 진단하는 것은 다소 과도하다고 생각할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전쟁은 결정적인 몇 가지 잘못으로 패한다. <참실련>의 책임이 무겁다.

  늘 그랬다. 중요한 사안에 대해 애매모호한 태도로 쭈빗 거리고 결단의 시기에 이 눈치 저 눈치 살피고, 자기의 생각마저 용기 있게 표현하지 못하는 것이 <참실련>의 현재까지 모습이다. <참실련>이 친목계 모임이 아닌 운동가들이 모여 만든 의견구룹이기 위해서는 자기의견을 있는 그대로 내놓는 용기부터 배워야한다. 선거에 집권하겠다고 뛰어들 때의 용기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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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의와 가치 추구보다 집권을 우선하는 행동은 정치꾼들이나 하는 것이지 운동집단

이 할 일은 아니다. 우리가 세상 속에서 운동을 할 때 대의명분과 운동이 추구하는 가치를 최우선으로 삼아 한 발 한 발 가듯이 우리내부를 변화시키는 운동도 그렇게 가야하는 것이 맞다. 그걸 잃어버린 순간 더 이상 운동집단도 운동가도 아니다.

  어쩌면 지금 <참실련>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반교찾사 집권전략이 아니라 자신의 내부를 들여다보는 것이다. 그리고 치열하게 자기정체성에 대한 검증이 요구된다. 그 과정에서 용기도 배워야한다. 전교조의 미래를 결정하는 사안에 대해서는 자신의 정파마저 가벼이 보는 용기, 전교조가 추구했던 교육적 가치를 두고는 교사들하고도 싸울 수 있다는 용기.

  분명한 가치정립과 그것을 행동으로 조직할 용기를 만들어 내지 못한다면 <참실련>의 미래는 언제나 그랬듯이 <교찾사>의 대리인역할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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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천장은 원래 여성들의 고위직 진출을 가로 막는 회사 내 보이지 않는 장벽을 뜻하는 말이다. 겉 보기에는 아무런 차별이 없는 것 같은데도 유독 여성 직장인들만 승진의 최상한선이 있는 현상이다. 여성의 승진을 무언가 가로막고 있는데, 그 장벽은 보이지 않는 것이다.

물론 학교에도 유리천장이 있다. 교사의 60%가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교감, 교장 중에 여성 비율은 매우 미미하다. 하지만 나는 여기서 이걸 지적하려는 게 아니다. 이런 유리 천장을 분쇄해야 마땅할 전교조에서도 유리천장이 있다는 것이다. 다음의 몇몇 사례를 보자.

중학교에서 기술을 가르치는 김OO교사는 전교조 초창기 동료들이 해직되는 것을 보고 의협심이 발동해 후원회 활동을 시작하고, 합법화가 되자마자 가입하고 이후 세 학교를 이동하는 동안, 가는 학교마다 분회장을 하고, 가는 학교마다 학교운영위원으로 들어가는 열혈 활동가였다. 그런데 활동을 거듭하면 할수록 그는 의구심을 느껴야만 했다. 자신과 같은 열혈 활동가도 결국 어디선가 이미 결정되어 내려오는 사업, 투쟁을 단지 내려오는 지시에 따라 이행만 하고 있기 때문이다.

때로는 마치 잡무를 하는게 아닐까 하는 회의감도 밀려왔다. 잡무가 결국 무엇인가? 자기 의사와 무관하게 해야 하는 일이 잡무다. 그는 지구장도, 심지어 지회장도 해보았지만, 그 어느 경우에도 자신의 의사가 전교조의 정책으로 만들어진다고 느껴 본적이 없다. 전교조의 의사결정 기관에 대해서는 전국대의원대회, 상임집행위, 중앙집행위, 중앙위원회 등이 있다고 규약을 보아 알고 있지만, 이상하게 자신은 그런 단위에는 교묘하게 진입이 차단되어있다고 느껴졌다. 도대체 그 자리는 누가 차지한단 말인가? 전교조 초기부터 열심히 활동했던 자신도 결국은 학교 단위에서 서명이나 받고, 성과급 1/n 나누느라 복잡하게 계산이나 해야하는 처지가 되었는데, 전교조의 사업과 투쟁을 결정하는 사람들은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듣기에는 전교조 내에 정파들이 있다고 햇다. 그러나 그는 그 정파들의 이름도 잘 몰랐다. 전교조에 정파가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정파의 이름이 교찾사와 참실련이라는 것도 전교조가 아니라 조선일보를 보고 알았다. 공식적으로, 전교조의 이름으로 정파가 거론된 적은 한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절망적으로 그는 전교조 게시판에 "교찾사는 대체 어디에 계시는 분들인가요?"라는 글을 쓰기도 했다. 그러나 아무도 답변하지 않았다.

2년마다 한번씩 위원장이나 지부장 선거를 하면 그때마다 양 진영 후보가 나오고, 각 후보별 선거운동 본부가 세워진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의 선거운동을 하고 싶어도 누구에게 해야 하는지 알 수 없다. 저 후보들이 어떤 과정을 통해 후보로 나오게 되는지도 알 수 없다. 저 후보들이 위원장이나 지부장으로 당선된뒤 집행부를 구성할때 어떤 통로로 그 작업을 하는지, 자신도 집행부에서 일해보고 싶은데, 어떻게 지원할수 있는지도 알 수 없다. 모든 것이 베일로 싸여 있다.

이렇게 열혈 전교조 활동가 김선생은 지회장 이상으로는 결코 올라갈 수 없는 유리천장을 실감하고 있었다. 도대체 이게 교육민주화를 외치는 조직에서 가능한 이야기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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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사이트는 전교조내 정파중 가장 세력이 세다는 "교육노동운동의 전망을 찾는 사람들", 일명 교찾사의 홈페이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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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edulabour.jinbo.net/

이 주소를 치고 찾아가면 우리를 기다리는 것은 왼쪽과 같은 화면 뿐이다. 즉 아이디와 비밀번호만 치는 창 하나 달랑 뜬다.

도대체 여기가 무엇을 하는 사이트고, 여기 모인 사람들이 뭐 하는 사람들인지 도통 알수 있는 방법이 없다.

회원가입을 누르면 실명과 함께 전교조 소속 지부, 지회, 소속학교, 성명, 이메일 등을 밝히게 되어있다. 그래서 회원가입 신청을 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연락이 오는데, "누구의 초대로 왔느냐?" 하는 것이다. 즉 회원가입이 추천제이며, 기존 회원의 추천이 없으면 가입할 수 없다. 아마 소망교회보다 더 폐쇄적이지 않을까 싶다.

현재 전교조 집행부를 차지하고 있는 "참교육실천연대"의 경우는 더욱 폐쇄적이다. 이들은 비공개 카페를 사용하고 있는데, 어떤 검색에도 뜨지 않는다. 교찾사는 저 홈페이지 회원가입 누르고 연락처 남기면 연락이라도 받을수 있지만 참실련은 아예 어디서 어떻게 해야 참실련이 되는지 완전히 안개속이다. 그냥 우연히 아는 사람 통해서 우연히 간택되는 길 밖에 없다.

아래 사진은 참실련의 자체 연수 모습이다. 보다시피 꽤 많은 사람들이 비까번쩍한 시설에서 행사를 하고 있다. 그런데 이 정도 되는 조직(현수막까지 걸어놓고 있는)이 완전히 안개속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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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조직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것은 정말 기가막히는 노릇이다. 물론 교찾사도 이런 자체행사를 참실련보다 더 많이 한다.

그래서 전교조의 정파갈등은 조직내 정당제도로 볼 수 없다. 정당은 적어도 실체가 있는 조직이다. 예컨대 진보신당의 정파조직인 "전진", 심지어 혁명을 내거는 나름 결사조직인 다함께, 노동자의힘, 해방연대 같은 조직도 공개 홈페이지와 함께 자신들의 실체를 드러내고 있다.

그런데 전교조의 양대정파는 단지 소문으로만 그 존재가 알려질 뿐, 공식적으로는 존재하지 않으며, 그 실체도 전혀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선거때 1번진영, 2번진영 이렇게 불릴 뿐이다.

이렇게 폐쇄되고 가려진 정파조직의 구성원들이 양대 정파를 합하면 1000명 정도 된다. 그리고 양대 정파에 소속되어 있지는 않지만, 정파의 존재를, 그리고 정파 구성원들과 어느 정도 안면이 있는 이른바 활동가들이 또 그 정도 있다. 결국 이 2000명이 전교조의 모든 것을 결정하고 있다. 전교조 본부, 지부의 각종 직책은 물론, 전국 대의원의 절대 다수도 결국 이 2000명이 나눠먹는 형국이 되어있다. 또한 참교육실천대회 발표자와 청중까지도 결국 이 2000명 안에서 나온다.

지금 전교조 지회장이 결원이 될 위험에 처해 있는데, 이는 일꾼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이 2000명 안에서만 일꾼을 찾기 때문에 빚어진 일이다. 대의원대회가 치열한 논쟁을 밤새도록 하고 있어도, 나머지 8만 조합원들은 뭐가 쟁점이 되고 있는지, 뭐가 논의되고 있는지조차 알지 못한다. 이들은 철저히 전교조의 의사소통에서 배제되어 있는 것이다. 결국 전교조는 8만의 조직이 아니라 2000의 조직이며, 그나마 2000중 1000명은 다시 정파로부터 배제되어 결코 조직 의사결정의 핵심에 접근하지 못한다.

필자는 공교롭게도 양대 정파가 모두 자기편으로 판단해서 제법 고급정보를 많이 얻을수 있었는데, 이제는 들통이 났는지, 전교조의 의사결정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에 대한 정보가 몹시 부족해졌다.

나중에 밝히겠지만, 그래도 교육을 이끌 사람들은 교사들이며, 그래도 그 중 나은 사람들이 전교조에 많이 가입해 있다. 그런데 이 나은 사람들의 의사가 반영되지 않고, 그들이 철저히 배제되고 있는 1000명의 결사대가 전교조인 것이다. 이는 전적으로 권력의 독점에 취해 평조합원을 조작과 동원의 대상으로만 여겨온 비밀조직 양대정파의 책임이다. 그리고 이들이 혁파될때 비로소 전교조는 제자리를 찾을 것이다.

이들이 혁파되는 방법은 간단하다. 조합원들이 이들의 존재를 알게되고, 이들에게 그 실체의 공개를 요구할 때이다. 비밀이 벗겨진 정파는 대중조직이 되어 통제를 받거나 아니면 소멸한다. 이 글은 바로 이런 목적에 복무하기 위해 작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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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에 전교조내 운동권 정파들의 경직된 믿음과 그것이 야기한 갑갑한 상황에 대해 개관하였다. 이제 구체적으로 전교조내 정파들의 현황과 실태를 살펴보도록 하자. 이것을 보고 분개할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기가막힐 사람도 있을 것이다. 어쩌면 이 포스트가 조중동 잡것들에게 이용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느 경우라도 다 현재보다는 났다. 어차피 깨져야 할것들이니.

우선 전교조내 정파가 무엇인지 정의하자. 정파란 조합원들 중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여론 주도층, 즉 활동가들이 일정한 사회, 정치적 견해에 따라 모인 의견집단을 말한다. 얼른 보면 사안에 따라 이합집산하는 임의적인 모임 같지만, 뿌리깊은 인맥으로 엮어져서 지금은 단지 의견집단이라기 보다는 마치 조선시대 노론, 소론 같은 단단한 당파로 고착되어 있다.

이하의 내용은 이금자 선생님의 성공회신학대학 석사논문에서 상당부분 따온 내용이다.

그 뿌리는 전교조가 세워지기도 전인 전교협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전교협 건설의 두 주역은 YMCA, 흥사단 등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공개조직과 서울 남부지역에서 서서히 수를 늘려나가고 있던 비합법 지하조직이었다. 아무래도 전자는 시민운동, 개혁운동적 성향이 강하고, 후자는 레닌주의, 좌파적 성향이 강할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들은 전교협 발족까지 그 뜻을 같이한다. 공개조직 활동가들이 주로 대표와 공식적 직함을 맡았고, 비공개조직 활동가들은 각 현장 조직을 감당했다.

이들이 처음 갈라선것은 전교협을 노동조합으로 전환하자는 공개조직파에 대해 시기상조이니 제2교직단체로 출범해야 한다는 비공개조직파가 반대하면서 시작되었다. 그러나 어쨌든 노동조합으로 발족했고, 다 알다시피 가혹한 탄압으로 1500명이 해직되었다. 해직되지 않은 20000여명의 교사들은 자신이 조합원임을 숨기고 활동해야 했다.

이때 비공개조직파를 중심으로 대량해직 사태를 더욱 쟁점화하면서 공세적으로 돌파하자면 20000명의 이름도 다 밝히면서 즉, "어디 다 짤라 봐라!"하면서 밀어 붙여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이를 "비판안"이라 불렀다. 반대로 무리한 투쟁은 그나마 남은 조합원들의 탈퇴를 불러오니 현장  교사대중의 수준과 이해에 맞추어 대중적 지지를 획득해야 한다는 주장이 맞붙었는데, 이를 "기존안"이라 불렸다.  이로써 "과감한 선도투쟁"과 "현장의 대중정서"라는 두개의 대립적인 전술이 분명해졌고, 처음으로 정파라 불릴만한 집단이 이 두 전술을 중심으로 형성되기 시작했다.

이때 기존안에서 다시 분열이 일어났는데, 이른바 10인안 그룹이라 해서, 교원노조가 문제가 되면 교사조합이라는 이름으로라도 합법화를 먼저 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이에 기존안 진영의 나머지와 비판안 진영이 합세하여 이들을 공격하였고, 결국 10인안 그룹(주로 YMCA 출신들)은 기존안 진영에서 분리되어 나름의 인맥을 바탕으로 참교육교사연대(참교연)라는 별도의 정파로 독립하게 된다. 이후 뜻밖에도 "노동조합으로 합법화"가 이루어지며(사실은 비정규직 입법과 교환한 더러운 뒷거래의 결과), 노조사수론을 끝까지 움켜쥐었던 기존안 그룹이 합법화 이후의 주도권을 쥐게 된다.

 자, 족보를 그려보면 이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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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족보를 보면 알수 있지만 공교롭게도 전교협 시절부터 이루어진 인맥이 주장을 달리해가면서 계속 유지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오늘날의 교찾사를 이루는 진영이 시종일관 원칙론과 강경론을 주장하는 반면, 반대쪽 진영은 일정한 경향성이 없이 선거때마다 이합집산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오늘은 일단 이 정도로 해두고, 다음부터 각 정파별로 하나하나 비판해 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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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잡지사와의 인터뷰에서 심상정 전의원이 우리나라 진보진영에 정파는 없고 족보만 있다는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정말 예리한 지적입니다. 정파와 족보의 차이가 무엇일까요? 정파는 언제든지 바뀔수 있습니다. 옳다고 생각하면 같이 가는것이고, 생각이 바뀌면 째지는게 정파입니다. 하지만 족보는 절대 불변합니다. 양자를 가더라도 어디에서 양자를 갔다는 원천기록은 남습니다.

그런점에서 우리나라의 진보진영은 참으로 정파는 없고 족보만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대개 정파는 처음 운동에 발을 들여 놓은 써클의 선배가 누구냐에 따라 결정되고,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대학 졸업후에도 그 정파는 계속 유지되어 나이가 40이 되고 50이 되어도 여기 때라 패가 갈립니다. 조직 내 투표를 할라치면 개인적 선택의 표는 찾아보기 어렵고 우르르 몰려다니는 정파표만 난무합니다. 진보라는 이름을 붙이기가 부끄러울 정도입니다. 87년으로부터도 20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동일한 정파가 그대로 남아있다는게 이게 정파가 아니라 족보라는 첫번째 증거요, 각 정파의 막내가 80년대에는 20대, 90년대에는 30대, 2000년대에는 40대라는 것이 그 명백한 두번째 증거입니다.

그렇다면 어쩌다가 정파가 이렇게 족보가 되고 말았을까요? 그건 우리나라 양대 정파라는 NL과 PD가 이념적 불임상태에 빠져 사실상 정파로서의 생명이 끝났기 때문입니다. 생명이 끝났으니 젊은이들은 더 이상 없고 나이들어 가며 뭉쳐있는 일종의 친목회, 동문회에 불과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 그럴수록  중년의 위기속에 정체성은 더욱 붙들고 싶어서 20년전의 그 이념에 더욱 집착하게 됩니다. 내부 결속은 더 강해지고, 외부와의 소통은 마비상태에 이릅니다. NL과 PD는 원수가 되고 "NL+PD"와 다른 민중들은 아예 다른 차원 사람이 됩니다. 두 정파의 차이가 샛강이라면 두 정파와 일반민중들과의 차이는 가히 은하계가 되었습니다. 차라리 빨갱이라고 욕먹던 시절이 더 나을 지경입니다. 이제는 아예 관심의 대상도 아닙니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요? 자신이 믿는 바를 한번도 의심하지 않는 습관, 자신의 외부의 시선들을 돌아보지 않는 습이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사실 80년대에는 모든 것이 의심스러웠습니다. 군바리들이 정보를 독점하고 온갖 보도통제를 했습니다. (저 역시 보도지침의 잔재에 저항하다 방송사에서 짤린 전력이 있습니다. 그리고 임용고시를 봤죠).  그 시절 비선을 타고 흐릿해질때까지 복사에 복사를 거듭한 타자글씨의 팜플렛들은(심지어는 필사본) 한가닥 진실의 샘물이었습니다. 그걸 돌려보고, 보자마자 불태우면서 "어리석은 백성들은 속고 있지만, 우리는 진실을 알고 있다."는 우쭐함도 생겼습니다. 그리고 아닌게 아니라 그 우쭐함이 실상 운동의 큰 동력이었습니다.  자본론의 번역자가 체포되던 시절(강금실의 전남편이라더군요), 골방에 모여앉아 거친 제본의 자본론을 강독하고, 때론 단파라디오로 한민전 소리도 몰래몰래 들으면서 말입니다.

사실 어느정도 사실이었습니다. TV, 신문만 접하던 민간인(?)들보다 운동권들은 확실히 더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었고, 비선 등을 통해 더 넓은 정보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다만 그러다가 고약한 버릇이 두가지 생겼습니다.하나는 시민들의 상식적인 생각을 무시하는 버릇입니다. 저들은 자본에게, 파쇼에게, 미제에게 세뇌되어, 허위의식에 사로잡혔다, 우리만 진실을 알고 있다라는 생각 말입니다. 또 하나는 우리가 접하는 정보원에 대해 무비판적이 된 버릇입니다. 이 엄혹한 시절에 목숨걸고 전달되는 이 소중한 정보와 사상을 어떻게 의심한단 말입니까? 그 결과 신문에 나오는 사실은 의심하면서도 문건으로 전달되는 정보는 100% 수용하고, 의심이 생기면 오히려 의심이 생긴다는 사실, 즉 "자신의 사상적 허약성"을 자아비판하기까지 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떻습니까? 누구나 금단의 정보를 얻을수 있습니다. 어떤 분은 저에게 미제에게 세뇌된 정보만 접해서 그렇다고 합디다. 하지만 저 역시 그분이 말하는 소위 미제에 세뇌되지 않은 그 정보를 충분히 찾아 봅니다. 물론 원한다면 누구나 그 정보를 얻어 볼수 있습니다. 청소년들 조차 손쉽게 그런 정보를 얻어 보는 것을 보았습니다.  운동권(?)은 더 이상 특별히 더 많은 정보를 가지지 않습니다. 도리어 정보화에 지체되고, 영어등 국제감각에 지체된 80년대의 후예들은 접하는 정보의 폭에서 일반인보다도 협소한게 현실입니다. 그럼에도 시민의 상식을 무시하고, 자신들이 가진 협소한 정보를 "신앙"하는 버릇만 고스란히 남았습니다.

한국 진보진영의 가장 큰 문제는 바로 더 이상 "진보적이지 않고", 도리어 "후미에 쳐져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주제에 시민들을 내리깔며 오만하다는 것입니다.

80년대를 함께 호흡했던 동지 여러분들..(저는 이제 이 동지란 말도 도통 듣기 싫습니다. 어떻게 뜻이 같을 수 있습니까?), 아니 동료 여러분들. 우리 가슴에 손을 얹고 곰곰히 생각해 봅시다. 그 결과가 지금입니다. 지금의 우리 고립, 우리의 무력, 우리의 자괴감이 과연 신자유주의 때문에, 조중동 때문에, 미제의 압박때문에, 순전히 외부에서 비롯된 것입니까? 김현준 선생님 마지막 말씀이 무엇이었습니까? "문제의 근원인 내부를 보라"였습니다.

물론 자신이 믿어왔던 바, 더군다나 수십년 믿어왔던 바를 의심하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하지만 그 믿어왔던 바가 "종교"가 아니라 "이념"이고 "운동"라면, 사실 매 순간 의심해야 합니다. 시민들의 상식적 생각이 우리 생각과 다를때 저들이 세뇌된 것이라는 터무니 없는 오만함도 버려야 합니다.

사실 저는 NL과 PD를 다 거쳐온 놈이고, 지금은 NL, PD 양측에게 모두 원수가 될 작정을 하고 있는 놈입니다. 처음 NL이었다가 뛰쳐나온 이유는 도통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는 식반론, 30년대 항일무투의 일반화, 또한 반민주적인 수령론 등에 대해 질문하자 도리어 질문한다고 집단적으로 화를 내었기 때문입니다.

PD에서 뛰쳐나온 이유는 89년 이후 현실사회주의권의 완전 소멸(몰락도 아니고 소멸입니다. 기억에서조차 사라져 버렸고, 그걸 되살리자고 생각하는 사람마저 없다는 점에서)에서 아무런 교훈도 얻지 못하고 여전히 전위당론, 정투/경투, 통전론 등만 되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한 마디로 두진영 모두 공히 소련과 그 언저리는 모조리 망했고, 북한은 분명 우리가 지향할 목표가 아님이 명백해졌는데도, 즉 제시했던 모델이 이미 소멸했는데도, 미동도 하지 않는 그 경직됨을 우직함과 신념으로 착각하는데 질렸기 때문입니다.

서론은 이 정도 해 두고, 앞으로 NL과 PD의 운동론을 틈날때 마다 낱낱이 비판하려 합니다. 사실상 이미 사회적으로 80년대 같은 영향력을 발휘할 가망이 거의 없어진 저 이념들을(인정할 건 인정 합시다), 굳이 확인사살하려는 것은 저 유령들이 진보를 가로막기 때문입니다. 이미 스스로 무엇을 되게 할 힘은 상실한 저 이념들이, 새로운 무엇이 되는 것은 붙잡고 늘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이 운동입니까? 진보를 가로막는 것을 뚫고 나가는 것입니다. 진보를 가로막는 것이 과거 우리의 신념들이라면, 그것들은 무슨 근거로 진보의 거센 물결앞에 소멸되지 않을 특권을 가진단 말입니까?

"너의 당파성,계급성이 의심스럽다"이런 질문이 혹시 올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대답을 말하자면 나도 의심스럽습니다. 아니 당파성과 계급성이 있을 이유가 뭐람? 이게 제 답입니다. 지금 상태는 진실을 보다 가까이 알기 위해, 데카르트처럼 내가 알고 있던 모든 것을 다 의심하는 단계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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