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의 모 초등학교에서 교장의 폭언과 횡포를 견디다 못한 교사들이 집단으로 반기를 들었다. 연줄, 연줄로 꽉 짜여지고 군기와 서열을 중요시하는 광주지역의 특성상 정말 어지간했다보다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서 어찌어찌 하여 서울에 올라온 그 지역 출신 교장, 교감들이 교사들에게 무리하게 마구 권력을 휘두르려다 저항과 냉소에 부딪치며 그들은 그들대로, 교사는 교사대로 상처받는 안타까운 현실이 또 눈에 밟힌다.

서울지역에는 교육적으로나 학문적으로나 아무 업적, 하다못해 형식적인 업적조차 없이 교감 승진한 농어촌 출신 교사들이 있다. 이들은 각종 꼼수를 총동원한 사람들이다. 그들이 동원하는 꼼수란 주로 농어촌 벽지 근부 가산점을 챙겨서 승진점수를 따는 것이다. 그래서 그 점수가 충분히 쌓이면 서울로 전보 내신을 내서 어떻게든 서울로 올라오는 것이다. 그러면 얼마 지나지 않아 서울지역 학교의 교감이 될 수 있다. 서울 토박이 교사들이야 농어촌 벽지 점수 따위가 있을 턱이 없으니 소위 승진점수에서 밀리는 것이다.

혹자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그들이 남들이 근무 기피하는 농어촌 지역에서 봉사했으니 그 정도 댓가는 받아야 하는게 아니냐고... 남들이 기피? 지나가던 이메가가 웃을 일이다. 지방 학교에서는 농어촌 벽지 근무를 서로 못해서 난리다. 그래서 농어촌 벽지 근무를 위해  시도 장학사에게 연줄이라도 닿아 보려고 술판을 벌리기 일쑤다. 그렇게 농어촌 벽지 근무를 하게 되면, 그래도 농어촌 교사 유인책은 된다고?

천만에... 그런 그들이 농어촌 벽지 학교에서 제대로 근무를 할 턱이 없다. 여전히 집은 도시에 두고 승용차로 출퇴근만 한다. 친절하게도 도교육청에서는 기름값까지 보조해준다. 그렇게 벽지학교, 농어촌 진흥 학교 따위만 이리 저리 골라다니면, 그런 학교에서 수업이야 어떻게 하든간에 근무하는 개월수만큼 승진 가산점이 착착 붙는다. 그러니 지방에서 교사가 승진하려면 연줄과 선후배간의 위계는 필수다. 조금이라도 연고가 있으면 달라 붙어서 형님, 아우님 하면서 술판 벌려야 한다. 이렇게 엉성한 사생활을 하니 낮에 제정신일 턱이 없다. 수업은 귀찮다. 수업이 귀찮을때 제일 좋은 방법은 학생들을 마구 두드려 패서 조용히 시켜 놓는 것이다. 더군다나 지방은, 특히 호남지방은 교사의 폭력에 대해 비교적 관대하다. 마구 조사버리면 되는 거다. 이렇게 이들은 교사시절부터 학생들에 대한 폭력, 폭언과 웃사람에 대한 아부를 몸에 익힌다.

그러다가 교감이 된다. 달라진건 오직 하나다. 바로 아래에 학생이 아니라 교사가 있다는 것. 그래서 이들은 교사에게도 서슴없이 폭언을 행사한다. 만의 하나 이들이 서울에서 교감이 되면, 상당한 저항과 냉소에 부딪칠수 있겠지만, 지방이라면 이 역시 그러려니 하고 넘어간다. 교장은 교사들의 불만과 모욕감을 알면서도 교감이 스스로 악역을 담당하며 군기를 잡아주니 모르는 척 넘어가 준다.

이런 인간들이 이제 교장이 된다면? 눈치 볼 상대도 하나 없는 교장이 된다면? 학생이나 교사는 전혀 자신에게 의미가 없고, 오직 교육청의 어르신들에게만 잘보이면 되는 그런 교장이 된다면? 그러니 광주 모 초등학교 같은 사태가 벌어지는 것이다. 이건 근본적으로 잘못된 제도다.

사교육 문제? 교육 시장화 저지? 다 필요없다. 먼저 저 쓰레기 같은 교장, 교감들(70%는 쓰레기일것)부터 쓸어버릴 생각을 해야 한다. 그들을 쓸어버릴수만 있다면 교원평가든, 뭐든 다 받아들일 용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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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강남지역에 있는 어느 중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전해 들었다. 이야기는 이렇다.

그 학교에 새로 교감이 왔다. 전라남도에서 죽 교사생활을 하다가 서울에 올라와서 교감이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교감은 상식이하의 교감이었다. 교감이라기 보다는 거의 시정잡배에 가깝다고 한다. 교무실에서 큰소리로 교사들에게 호통을 치며, 전혀 문제되지 않는 사소한 사안을 가지고 고집을 부리며, 무슨 회식이든 간에 공짜로 술 먹을 수 있는 자리면 꼬박꼬박 찾아가서 고주망태로 꼬장을 부렸으며, 기간제 교사들과 젊은 여교사들만 골라서 호통을 치고 마치 학생부 교사가 문제아 대하듯이 무례한 언동을 일삼았다. 당연히 학생들에게도 함부로 대해서 여학생의 복장을 지도한다는 미명하에 치마를 들추고, 탁구채로 뺨을 치기까지 하였다. 이런 무뢰한이 어떻게 교감이 되었나 했더니, 전라도에서 근무하던 시절 각종 벽지근무 점수를 미친듯이 수집했다고 한다. 참으로 해괴한 승진제도를 가진 나라에서나 볼수 있는 풍경이다.

모든 교사들이 그를 미워했다. 그가 참석한다고 하면 회식이 취소되었으며, 교사들 셋 이상만 모이면 으레 화제는 교감 흉보는 것이었다. 심지어는 교장조차 그 교감의 무례한 언동에서는 예외가 되지 않았다. 교장이 여자라는 이유로 그 조폭 스타일의 교감은 멋대로 행동했고, 전혀 통제가 되지 않았다. 어쩌다 교사가 교장과 상의하여 어떤 일을 처리하면, 교감인 자기 무시했다고 마구 행패를 부렸다. 게다가 그는 무능했다. 무능하기 때문에 교육청 장학사에게 무시당했으며, 그러니 무슨 승진점수 될만한 프로젝트도 따오지 못했다. 그래서 교감임에도 불구하고 승진에 목마른 승진병 환자들, 점수병 환자들과도 사이가 나빴다. 승진병 환자들과 사이가 나쁜 교감이니 거의 할말 다 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어느날 그 학교를 몇 해 전에 졸업한 졸업생이 졸업증명서를 떼러 찾아왔다. 그 졸업생은 소위 양아치였기 때문에 아주 보기 드문 복장을 하고 있었다. 그 졸업생이 재학생인줄 알았던 이 무뢰배 교감은 느닷없이 졸업생에게 "이 새끼가 복장이 이게 뭐야?" 하면서 귀싸대기를 한대 올려 붙였다. 느닷없이 봉변을 당한 졸업생이 자기가 학교 다닐때 보지도 못했던 교감에게 얻어맞고 참을 턱이 있겠는가? 마침내 둘 간의 몸싸움이 벌어졌다.

이 때 해괴한 일이 벌어졌다. 그 동안 그토록 교감을 미워했던 교사들이 일제히 교감 편을 드는 것이다. 심지어 그 졸업생이 첨 보는 교감에게 가격당한뒤 반격했다는 사실을 들어 "교권이 땅에 떨어지고, 교사할 맛이 안나고"운운을 하기 시작했다. 이 사건을 보고 제보자는 참담함을 느꼈다고 한다. 교감이 함부러 폭력을 휘두르다가 제대로 한껀 걸렸구나, 이렇게 생각이 드는게 아니라 교권의 무너짐으로 생각한다는 것은, 그 동안 교감의 무뢰배짓을 인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학교의 일이라는게 항상 그렇다. 아무리 무지한, 무식한, 그리고 거의 범죄수준의 교사나 교감, 교장이 있더라도 막상 그들이 학생, 학보모, 여하튼 학교 밖의 누군가와 부딪치게 되면 갑자기 놀라운 단결력을 보여준다. 가재는 게편인가? 초록은 동색인가? 평소에 똥같이 여기던 작자와 같은 편이 된다면 결국 스스로를 똥으로 만드는 것일텐데, 교사집단은 그 점에서는 늘 한결같은 반응을 보인다. 여기에는 전교조 교사도 예외없다. 심지어 부정비리 사학의 재단 앞잡이 교사라도 학부모와 대거리를 벌이면 거의 교사편이 된다. 참으로 한심한 노릇이다.

혹자는 누워서 침뱉기 해서 뭐하냐고 하면서 이런 꼴을 정당화 시킨다. 그러나 누워서 침뱉기를 두려워하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내가 지금 누워있는 자리가 제자리가 아니라면 누워서 침뱉기라도 해야 한다. 그래야 그 자리를 떠날 마음이 생기지 않겠는가? 누워서 침뱉지 않는 교사, 학교, 참으로 암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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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자녀가 정신병자의 손아귀에서 깨어 있는 시간의 대부분을 보내고 있다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 당신은 자녀가 영리하고 유능한 정신병자와 둔하고 무능한 그러나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 중 누구와 함께 시간을 보내기를 바라는가? 당연히 후자일 것이다. 그러나 학생도, 학부모도 누구도 여기에 대해서는 신경을 쓰지 않는다.

많은 심리학자들은 인간의 정서적 건강이 매우 불안하고 예민한 균형상태에서 유지되고 있음에 동의하고 있다. 특히 자아의 존재론적 안전감은 그것을 지켜주는 든든한 배경이 무너질 경우 정처없이 흔들리게 된다. 이렇게 존재론적 안전감이 위태로워질때 자아는 본능적으로 만사를 자아의 안전을 위해 재배치한다. 즉, 정신적 정당방위를 시도하는데, 그 과정에서 타인들에 대한 세심한 배려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존재론적 안전감의 배경에는, 공유되는 신념, 반복되어 온 관행, 자연, 전통, 가족과 같이 비교적 영속적인 친밀한 관계 등이 있다. 즉 아무리 풍파가 닥쳐와도 큰 변화 없이 의존할 수 있는 그런 문화적, 사회적, 심리적 대상들이 있다.

그러나 오늘날 이런 것들 중 그 어느 것도 안전하지 않다. 최근의 요동치는 금융 위기는 안전하지 않은 현대의 상징이다. 어떤 변화에도  불변이었던 재산의 상징이었던 "금"과 같은 상품은 존재하지 않고, 브레턴우즈 체제 붕괴 이후 "달러"도 한낱 유동성이 되었다. 그 어느 가치도, 제도도, 관행도, 가족관계도 안전하지 않다.

학교는 그 동안 비교적 안전한 공간이었다. 입시교육이라는, 그리고 관료주의라는, 권위주의라는 불변의 관행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모두 위협받거나 해체되고 있다. 해체되는 관료주의 하에 교사들은 스스로 생각할 필요 없이 그저 따르기만 하면 되었던 각종 관행들이 무너지는 것을 체감한다. 이제 교사들은 권위와 관행이라는 버팀목이 사라진 상황에 스스로 적응해야 한다. 학생들에 대한 권위는 스스로 만들어야 하며, 학생들과의 친밀감도 저절로 생기지 않아, 늘 협상하고 타협하고 감정노동을 해야 한다. 물론 그 과정에서 상처도 받아야 한다.

특히 여기에서 몸부림을 치게 되는 존재들은 교감, 교장들이다. 이들은 과거처럼 단지 교장, 교감이라는 이유만으로 내리게 된 네크로필리아적 명령들이 번번히 반발과 항의에 부딪치는 상황을 견디지 못한다. 결국 명령이 관철되기는 하지만, 그것은 교사들이 인간적인 감정이 더 악화되는것이 싫어서 마지못해 하는 것이지, 과거와 같은 복종이 아니다. 교장, 교감들 역시 그것을 잘 안다. 명령이 떨어지면 즉시 "예"하는 교사들이 아니라 앙앙불락한 얼굴로 마지못해 하는 교사들과 계속 같은 공간에서 얼굴보며 생활하는 것은 결코 유쾌한 일이 아니다. 이들은 딜레마에 빠진다. 교직원들이 심리적 안전감을 주는 공동체가 되려면 교장, 교감의 권력이 무너져야 한다. 그 권력을 지키려면 자신을 적대시하고 백안시하는 수십명의 교사들 가운데 섬처럼 존재해야 한다.

이런 상황은 교장, 교감들을 자기도취적 장애 상태로 이끈다. 그리하여 이들은 난초, 바둑 같은 개인적인 취미에 탐닉하거나, 아니면 교사들을 괴롭히는 가학성 변태행위에서 쾌감을 추구하거나, 아니면 상황이 어려워질수록 더욱 더 자신의 아집에 집착한다. 이로써 이들은 완전히 자아를 상실하고, 정서적으로 망가진다. 이런 정서적 망가짐은 수시로 솟구치는 분노의 형태로 내장되며, 이는 많은 교장, 교감들을 시한폭탄 같은 존재로 만든다. 문제는 교사들 역시 학생들을 상대로 이런 상태에 처해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학교의 교무실이란 시한폭탄들로 득실대는 무시무시한 장소다. 여기서는 멀쩡한 사람도 상처받기 십상이다.

어쩌면 이것이 공교육보다 사교육을 신뢰하는 이유중 하나인 것 같다. 직접 누가 해 본적은 없지만, 아마도 학원 강사들이 학교 교사들보다 정서적으로 더 건강할 가능성이 크며, 이는 경력이 길어질수록 더욱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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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선생님이 시킨대로 했을 뿐인데...... 손이 발이된 중학생의 사연

    Tracked from 가장 힘든때 무엇을 결의하고 어떻게 행동하는가 이것으로 인생은 결정된다. 여기에 인간의 진가가 있고 위대함이 있다. 2009/07/05 17:09  삭제

    둘째놈 입원한 병원에 가는 중에 처형이 들려준 첫째놈의 근간의 일을 들려주었습니다. 듣고보니 "아하! 그게 그런 사연이 있는 아이스크림이었구나" 우리가족에게만 재미있는 사건일지는 모르지만 소개합니다. 부반장의 역직에 대한 애착 첫째놈은 중딩1학년입니다. 부반장이기도 하구요. 그런데 부반장이라는 자리가 나름대로는 자신을 아이들로 부터 지탱해주는 유일한 버팀목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래서 임기가 6개월이면 이번달에 재선출해야하고 떨어지면 자신을 아이들..

학교에 참 요상한 자리가 있으니 그것은 바로 교감이다.
요상한 이유는 도대체 무슨 일을 하는지가 정해진 바가 없기 때문이다.

법적으로 교감은 완전히 교장의 땜방이다. "교장을 보좌하여 ~, 교장 유고시에~"

그런데 같은 법에서 "교장은 필요시 교사중 한 사람을 지명하여~ 담당하게 할수있다."는 내용도 나온다. 즉 교감은 교장이 일이 많거나 도움이 필요할때 지원하는 역할이며, 교장에게 일이 생길 경우 백업하는 역할이다. 그런데 교장은 평소에 교사중 하나를 지정하여 그런 역할을 맡길수도 있다. 즉 교사중 아무나 백업을 준비해 두면 그만인 것이다. 굳이 있을 이유가 없는 자리다.

결국 현실 학교에서 교감들 스스로가 느끼는 자신들의 존재이유는 오직 하나다. 교사가 바로 교장이 되는게 아니라 거쳐가는 단계를 하나 만들어 놓은 것이다. 따라서 교감의 가장 중요한 일은 "교장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며, 사실은 할 수 있는 일도 그것밖에 없다.

과거에는 교감이 하는 일이 퍽 많았다. 그것은 "교사를 감시하는 것"이었다. 유신, 5공시절, 지식인들의 동향에 민감하던 독재자들은 그 중 가장 위험할수 있는 집단인 교사들의 동태를 감시할 필요가 있었다.

교장은 교사들과 공간을 공유하지 않아서 한계가 있었기에, 교무실 한 가운데 감시탑처럼 박아놓은 교감이야말로 그 적격자였다. 심지어 교감에게 정보비라는 수당까지 지급하지 않았는가?

실제로 교감은 교육적 기능을 전혀 하지 않는다. 그저 하는 일이라고는 이런저런 행정 문서에 서명하고, 공문 날짜 체크하는게 전부다. 사실 이런 일은 상고에서 잘 배운 비서직 사원들이 훨씬 더 잘한다. 뭣하러 500만원씩 월급줘가면서 저딴일을 시키는가? 결국 교감의 역할은 교무실 가운데 앉아있는거다. 아무일 안해도 좋다. 인터넷으로 야구중계를 보거나 바둑을 두어도 좋다. 그저 가운데 버티고 앉아서 교사들이 알아서 기게 만들면 된다. 호통과 위압적인 방법을 사용하던, 친밀감과 인간적인 방법을 사용하던, 혹시 있을지 모르는 교사들의 자율성과 자주성을 사전에 차단해서 충실하게 사회재생산도구로 기능하게 감시하고 조율하는 자, 그게 교감인 것이다.

그런데, 권위주의 독재시대가 끝나고, 게다가 학교라는 대량생산 시스템이 낡은 틀이되고, 국가가 주도하는 중앙집권형 공교육이 석양에 서자, 그만 교감이라는 자리라 붕 뜨고 말았다. 아무 권한도 없고, 이제는 감시, 통제라는 역할도 미약해진 교감이 할 수 있는 일은 정말로 "교장이 되기 위해", "교장에게 충성하는 것"외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은 것이다. 언젠가 교장이 될 것이라는 꿈을 이루기 위해, 교장의 의향을 먼저 살펴서 교사들에게 강요하고, 이를 위해 호통이던, 인간적 유대든 동원하는 것, 그것이 교감의 역할이 되었다. 말하자면 영혼을 교장에게 맡긴 수족이 된 것이다.

도대체 이런 직책이 학교에 왜 있어야 하는가? 노인네가 심심해지면 성질 고약해진다고, 할일이 점점 줄어드는 나이먹은 교감(교장되는 것도 포기한)들은 교사들과 되지도 않는 언쟁을 벌리며 교무실 분위기만 험악하게 만든다. 지금 상태로서 교감은 백해무익한 존재이며, 한시라도 빨리 폐지되어야 할 직책이다.

만약 교감이 가치가 있으려면, 지금 교사들이 하고 있는 온갖 행정잡무를 모조리 전담해야 한다. 혼자하기 힘들면 교감 수를 늘리면 된다. 그래서 젊은 나이에 교감되서, 저 승진병 환자들이 그토록 사랑하던 일인 행정잡무만 하루종일 하게하면 된다. 아마 교감 두세명이 달라붙으면 교사 50명이 아까운 수업시간 사이사이에 스트레스 받으며 해야 했던 각종 행정업무를 모조리 무리없이 할 수 있을 것이다.

교감을 폐지하거나, 모든 행정업무를 전담케 하는 것. 어렵지 않고, 돈 더들지 않는 교육개혁의 쉬운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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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청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을 교육행정 공무원이라고 한다. 즉, 그들은 교사도 아니며, 교육자도 아니다. 그래서 그들을 일반 행정직이라고 한다. 그러나 일반 행정직이 교육이라는 전문적인 분야에 대한 지식이 부족할수 있기 때문에 교사 출신 공무원을 일부 채용하게 되는데, 그것을 일컬어 교육 전문직 공무원이라 부른다. 여기에는 장학사, 장학관, 교육연구사, 교육연구관이 있다.

따라서 이들은 별 다른 것 없다. 단지 교사가 행정직 공무원으로 전직한 것에 불과하다. 이들을 전문직이라고 부르는 것도 교사가 전문직이 되었다는 뜻이 아니라, 교사였기 때문에 일반행정직과 구별하여 전문직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더더군다나 교사가 교육전문직이 되는 것은 승진도 아니다.

장학사, 연구사가 되기 위한 조건은 다음과 같다.

1. 대학·사범대학·교육대학졸업자로서 5년이상의 교육 경력이나 2년이상의 교육경력을 포함한 5년이상의 교육 행정경력 또는 교육연구경력이 있는 자.
2. 9년이상의 교육경력이나 2년이상의 교육경력을 포함한
9년이상의 교육행정경력 또는 교육연구경력이 있는 자.

이 중 2번은 고졸 학력이 교사되기 불가능하기 때문에 사문화된 조항이다. 결국 정상적으로 교사로 임용되어서 5년을 근무하면 장학사의 자격이 생기는 것이다. 다만 장학사를 하겠다는 지원자들이 많다보니 자연히 경쟁이 생겨서 시험을 보지만, 절대 이것은 승진시험이 아니며, 국가고시도 아니다. 자격기준을 5년으로 한 것은 공무원임용시험령에 의거한다면 통상 7급으로 간주되는 초임교사가 6급 주사급으로 간주될수 있는 근속연한을 채워야 한다는 뜻이 된다.

다음, 장학관, 교육연구관이 되기 위한 조건은 다음과 같다.

1. 대학·사범대학·교육대학졸업자로서 7년이상의 교육 경력이나 2년이상의 교육경력을 포함한 7년이상의 교육 행정경력 또는 교육연구경력이 있는 자
2. 2년제교육대학 또는 전문대학졸업자로서 9년이상의 교육경력이나 2년이상의 교육경력을 포함한 9년이상의 교
육행정경력 또는 교육연구경력이 있는 자
3. 행정고등고시 합격자로서 4년이상의 교육경력이나 교육
행정경력 또는 교육연구경력이 있는 자
4. 2년이상의 장학사·교육연구사의 경력이 있는 자
5. 11년이상의 교육경력이나 2년이상의 교육경력을 포함한
11년이상의 교육연구경력이 있는 자
6. 박사학위를 소지한 자
 
앞서와 같은 이유로 5번은 사문화된 조항이다. 그리고 나머지에서 알 수 있는 것은 7년 이상의 교직경력을 가지고 있거나, 아니면 교육경력과 무관하게 박사학위가 있다면 누구나 장학관이나 연구관이 될 수 있는 자격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장학관, 연구관은 공개적으로 채용되고 있지 않으며, 오직 장학사, 연구사가 승진하는 것만 허용되고 있다. 이렇게 됨으로써 단지 경력이 7년 이상인 교사, 혹은 박사학위를 가진 교사라면 누구나 응시할 수 있어야 하는 장학관, 연구관이 먼저 장학사, 연구사를 거쳐 힘들게 힘들게 올라가야 하는 자리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어느샌가 장학관, 연구관이 학교로 수평이동하면 교감이 되는 것이 되어버렸다.

자, 여기서 사단이 났다. 앞에서 보듯이 장학사, 연구사는 2년을 근무하면 장학관, 연구관이 될 수 있다. 즉, 초고속 승진이 가능한 것이다. 그리고 장학관, 연구관이 되면 교감이 될 수 있다. 그렇다면 견적을 뽑아보자. 26세 교사가 5년이 지나 장학사에 도전한다. 대략 7년만에 장학사가 되었다고 치자. 그리고 다시 이런저런 방법(뇌물이던, 실적이던, 뭐던)을 동원하여 7년만에 장학관이 되었다고 치자. 그럼 40세다. 그리고 한 4~5년 근무하다 교감이 되는 것이다. 그럼 45세의 교감이 탄생한다. 교사가 20년 경력평정에 이런저런 가산점 챙겨가며 교감이 되는 지난한 코스에 비해 완전 지름길임을 알 수 있다. 게다가 장학사, 장학관으로 근무한 기간은 차후 교장 승진을 위한 경력 평정에서 가 경력으로 분류되기 때문에 교사출신 교감보다 훨씬 빨리 교장이 될 수 있다. 따라서 49~50세면 교장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교사로서 경력을 계속 쌓은 교감은 빨라야 54~56세나 되어야 교장이 될 수 있다. 지름길도 보통 지름길이 아닌 것이다.

자, 이게 대체 무엇을 의미할까? 교육경력보다 행정경력이 더 우월하다는 국가적인 선언인 것이다. 그 결과 일찌감치 승진을 생각하는 교사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장학사나 연구사가 되려고 거의 발악을 한다. 즉, 하루라도 빨리 가르치는 자리에서 벗어나려고, 교사가 아니게 되려고 발악을 한다. 하루라도 빨리 가르치는 일이 아니라 각종 서류작업, 행정업무보는 자리로 가야 승진할수 있다. 그렇다 보니 교사로 있을때 부터 이미 가르치는 일 보다 서류작업, 행정업무에 자기 정체성을 두어야 한다. 그렇게 성장한 사람들이 교장, 교감이 되기 때문에 결국 서류작업, 행정업무 열심히 하는 교사가 유능한 교사로 인정 받는다. 기실 가르치는 일은 자격을 가진 교사만 해야하는 전문적인 일이고, 각종 행정업무는 아르바이트 생을 써도 조금만 훈련시키면 잘 하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것이야 말로 가치전도다.

이런 가치전도가 해소되지 않는한 공교육 정상화는 불가능하다. 이를 해소하려면 먼저 연구사니 장학사니 하는 무리들을 법적으로 규정된 자기 지위로 복귀시키고, 이들이 교사에게 상전행세하는 것을 차단해야 한다. 장학사보다 상관인 장학관, 연구관을 규정대로 교사와 순환보직해야 하며, 교감으로 순환보직하는 불법적인 일을 중단해야 한다. 아울러 아무런 이유 없이 교장 승진에 가 경력을 부여하는 폐단도 시정해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먼저 교감이나 교장을 승진이 아니라 공모나 선출로 뽑거나, 아니면 완전히 직제 개편하여 단지 행정직으로 바꾸어야 한다. 대부분의 교육 선진국이 이렇게 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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