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에 해당되는 글 25건

  1. 2011/08/22 [부정변증법] 교육의 희망을 위한 팀블로그를 발진합니다 (3)
  2. 2008/12/06 [부정변증법] 아, 결국 안으로 굽은 팔
  3. 2008/10/24 [부정변증법] 정신건강이 위험한 교사들, 그리고 미쳐가는 교감, 교장 (1)
  4. 2008/10/23 [부정변증법] 교원평가 조건부 찬성론(전교조 조합원 게시판 펌)
  5. 2008/10/01 [부정변증법] 교사의 전문성을 위하여(예전에 썼던 글)
  6. 2008/09/25 [부정변증법] 기간제 교사 -학교의 치부 (8)
  7. 2008/09/17 [부정변증법] 교사대생의 위험한 이데올로기
  8. 2008/09/15 [부정변증법] 수석교사제에 대하여(작년에 썼던 글)
  9. 2008/09/14 [부정변증법] 교사들의 대화 소재
  10. 2008/09/12 [부정변증법] 교감은 대체 뭐하는 사람인가?
  11. 2008/09/10 [부정변증법] 아이들이 원하는걸 해 주어야, 교사들이 원하는 걸 얻는다
  12. 2008/09/08 [물쟁이] 그들만의 리그, 블랙센스 (1)
  13. 2008/09/08 [부정변증법] 연설문을 쓰지 않는 어른들
  14. 2008/09/07 [부정변증법] 교사가 학교에 등돌리는 나라(매일경제)
  15. 2008/09/06 [부정변증법] 장학사, 연구사, 이건 또 웬 듣보잡 (1)
  16. 2008/09/05 [부정변증법] 전교조 지도부 선생님들께 드리는 편지
  17. 2008/09/05 [부정변증법] 학생 인권유린은 어디까지? -학교라는 괴물(퍼온 기사)
  18. 2008/09/04 [부정변증법] 비교육적 공간, 교무실
  19. 2008/09/03 [부정변증법] 승진병 환자들의 최대 격전지 -연구점수
  20. 2008/09/02 [부정변증법] 승진하려면 교사이기를 포기해야 하는 현실(2)
  21. 2008/09/01 [부정변증법] 승진 하려면 교사이길 포기해야 하는 현실(1) (2)
  22. 2008/08/30 [리틀윙] 중간놀이 시간 (1)
  23. 2008/08/30 [부정변증법] 기능직이나 보내줄 것이지....
  24. 2008/08/29 [부정변증법] 뇌물 부르는 근무평정. 대책없는 교장제도(펌 기사)
  25. 2008/08/28 [부정변증법] 부장님, 실장님이라고 부르면서 스스로를 모욕하는 교사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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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의 희망과 진보를 상징하는 아틀란티스



그 동안 여러분은 얼마나 학교를 교사를 욕했습니까? 또 얼마나 학교를 교사를 상대로 희망을 품었습니까? 하지만 우리는 학교를 교사를 얼마나 알고 있습니까?
이곳은 학교를 그리고 교사를 알고, 알게된 만큼 비판하면서 희망을 세워보자는 취지에서 여러 교사, 학생, 학부모가 함께 채워나갈 팀 블로그입니다. 모쪼록 학교, 교사, 그리고 이들을 좀먹는 현행 교장, 승진제도 등에 대한 사례들, 그리고 이를 극복할 희망을 보여줄 사례들을 함께 채워나갔으면 합니다.

본 팀 블로그의 취지에 동의하시는 분은 오른쪽 메뉴의 가입하기를 선택해서 공동 필진으로 가입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리하여 이 땅의 교육이 참으로 미래의 희망과 진보의 아틀란티스로 항해하는 방향타가 되도록 힘을 모아주셨으면 합니다.

아울러 평소 교육에 대해 생각해 오신 블로그가 있으신 분은 메타블로그인

교육운동네트워크(www.edumnet.or.kr)에 블로그를 연결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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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강남지역에 있는 어느 중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전해 들었다. 이야기는 이렇다.

그 학교에 새로 교감이 왔다. 전라남도에서 죽 교사생활을 하다가 서울에 올라와서 교감이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교감은 상식이하의 교감이었다. 교감이라기 보다는 거의 시정잡배에 가깝다고 한다. 교무실에서 큰소리로 교사들에게 호통을 치며, 전혀 문제되지 않는 사소한 사안을 가지고 고집을 부리며, 무슨 회식이든 간에 공짜로 술 먹을 수 있는 자리면 꼬박꼬박 찾아가서 고주망태로 꼬장을 부렸으며, 기간제 교사들과 젊은 여교사들만 골라서 호통을 치고 마치 학생부 교사가 문제아 대하듯이 무례한 언동을 일삼았다. 당연히 학생들에게도 함부로 대해서 여학생의 복장을 지도한다는 미명하에 치마를 들추고, 탁구채로 뺨을 치기까지 하였다. 이런 무뢰한이 어떻게 교감이 되었나 했더니, 전라도에서 근무하던 시절 각종 벽지근무 점수를 미친듯이 수집했다고 한다. 참으로 해괴한 승진제도를 가진 나라에서나 볼수 있는 풍경이다.

모든 교사들이 그를 미워했다. 그가 참석한다고 하면 회식이 취소되었으며, 교사들 셋 이상만 모이면 으레 화제는 교감 흉보는 것이었다. 심지어는 교장조차 그 교감의 무례한 언동에서는 예외가 되지 않았다. 교장이 여자라는 이유로 그 조폭 스타일의 교감은 멋대로 행동했고, 전혀 통제가 되지 않았다. 어쩌다 교사가 교장과 상의하여 어떤 일을 처리하면, 교감인 자기 무시했다고 마구 행패를 부렸다. 게다가 그는 무능했다. 무능하기 때문에 교육청 장학사에게 무시당했으며, 그러니 무슨 승진점수 될만한 프로젝트도 따오지 못했다. 그래서 교감임에도 불구하고 승진에 목마른 승진병 환자들, 점수병 환자들과도 사이가 나빴다. 승진병 환자들과 사이가 나쁜 교감이니 거의 할말 다 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어느날 그 학교를 몇 해 전에 졸업한 졸업생이 졸업증명서를 떼러 찾아왔다. 그 졸업생은 소위 양아치였기 때문에 아주 보기 드문 복장을 하고 있었다. 그 졸업생이 재학생인줄 알았던 이 무뢰배 교감은 느닷없이 졸업생에게 "이 새끼가 복장이 이게 뭐야?" 하면서 귀싸대기를 한대 올려 붙였다. 느닷없이 봉변을 당한 졸업생이 자기가 학교 다닐때 보지도 못했던 교감에게 얻어맞고 참을 턱이 있겠는가? 마침내 둘 간의 몸싸움이 벌어졌다.

이 때 해괴한 일이 벌어졌다. 그 동안 그토록 교감을 미워했던 교사들이 일제히 교감 편을 드는 것이다. 심지어 그 졸업생이 첨 보는 교감에게 가격당한뒤 반격했다는 사실을 들어 "교권이 땅에 떨어지고, 교사할 맛이 안나고"운운을 하기 시작했다. 이 사건을 보고 제보자는 참담함을 느꼈다고 한다. 교감이 함부러 폭력을 휘두르다가 제대로 한껀 걸렸구나, 이렇게 생각이 드는게 아니라 교권의 무너짐으로 생각한다는 것은, 그 동안 교감의 무뢰배짓을 인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학교의 일이라는게 항상 그렇다. 아무리 무지한, 무식한, 그리고 거의 범죄수준의 교사나 교감, 교장이 있더라도 막상 그들이 학생, 학보모, 여하튼 학교 밖의 누군가와 부딪치게 되면 갑자기 놀라운 단결력을 보여준다. 가재는 게편인가? 초록은 동색인가? 평소에 똥같이 여기던 작자와 같은 편이 된다면 결국 스스로를 똥으로 만드는 것일텐데, 교사집단은 그 점에서는 늘 한결같은 반응을 보인다. 여기에는 전교조 교사도 예외없다. 심지어 부정비리 사학의 재단 앞잡이 교사라도 학부모와 대거리를 벌이면 거의 교사편이 된다. 참으로 한심한 노릇이다.

혹자는 누워서 침뱉기 해서 뭐하냐고 하면서 이런 꼴을 정당화 시킨다. 그러나 누워서 침뱉기를 두려워하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내가 지금 누워있는 자리가 제자리가 아니라면 누워서 침뱉기라도 해야 한다. 그래야 그 자리를 떠날 마음이 생기지 않겠는가? 누워서 침뱉지 않는 교사, 학교, 참으로 암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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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자녀가 정신병자의 손아귀에서 깨어 있는 시간의 대부분을 보내고 있다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 당신은 자녀가 영리하고 유능한 정신병자와 둔하고 무능한 그러나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 중 누구와 함께 시간을 보내기를 바라는가? 당연히 후자일 것이다. 그러나 학생도, 학부모도 누구도 여기에 대해서는 신경을 쓰지 않는다.

많은 심리학자들은 인간의 정서적 건강이 매우 불안하고 예민한 균형상태에서 유지되고 있음에 동의하고 있다. 특히 자아의 존재론적 안전감은 그것을 지켜주는 든든한 배경이 무너질 경우 정처없이 흔들리게 된다. 이렇게 존재론적 안전감이 위태로워질때 자아는 본능적으로 만사를 자아의 안전을 위해 재배치한다. 즉, 정신적 정당방위를 시도하는데, 그 과정에서 타인들에 대한 세심한 배려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존재론적 안전감의 배경에는, 공유되는 신념, 반복되어 온 관행, 자연, 전통, 가족과 같이 비교적 영속적인 친밀한 관계 등이 있다. 즉 아무리 풍파가 닥쳐와도 큰 변화 없이 의존할 수 있는 그런 문화적, 사회적, 심리적 대상들이 있다.

그러나 오늘날 이런 것들 중 그 어느 것도 안전하지 않다. 최근의 요동치는 금융 위기는 안전하지 않은 현대의 상징이다. 어떤 변화에도  불변이었던 재산의 상징이었던 "금"과 같은 상품은 존재하지 않고, 브레턴우즈 체제 붕괴 이후 "달러"도 한낱 유동성이 되었다. 그 어느 가치도, 제도도, 관행도, 가족관계도 안전하지 않다.

학교는 그 동안 비교적 안전한 공간이었다. 입시교육이라는, 그리고 관료주의라는, 권위주의라는 불변의 관행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모두 위협받거나 해체되고 있다. 해체되는 관료주의 하에 교사들은 스스로 생각할 필요 없이 그저 따르기만 하면 되었던 각종 관행들이 무너지는 것을 체감한다. 이제 교사들은 권위와 관행이라는 버팀목이 사라진 상황에 스스로 적응해야 한다. 학생들에 대한 권위는 스스로 만들어야 하며, 학생들과의 친밀감도 저절로 생기지 않아, 늘 협상하고 타협하고 감정노동을 해야 한다. 물론 그 과정에서 상처도 받아야 한다.

특히 여기에서 몸부림을 치게 되는 존재들은 교감, 교장들이다. 이들은 과거처럼 단지 교장, 교감이라는 이유만으로 내리게 된 네크로필리아적 명령들이 번번히 반발과 항의에 부딪치는 상황을 견디지 못한다. 결국 명령이 관철되기는 하지만, 그것은 교사들이 인간적인 감정이 더 악화되는것이 싫어서 마지못해 하는 것이지, 과거와 같은 복종이 아니다. 교장, 교감들 역시 그것을 잘 안다. 명령이 떨어지면 즉시 "예"하는 교사들이 아니라 앙앙불락한 얼굴로 마지못해 하는 교사들과 계속 같은 공간에서 얼굴보며 생활하는 것은 결코 유쾌한 일이 아니다. 이들은 딜레마에 빠진다. 교직원들이 심리적 안전감을 주는 공동체가 되려면 교장, 교감의 권력이 무너져야 한다. 그 권력을 지키려면 자신을 적대시하고 백안시하는 수십명의 교사들 가운데 섬처럼 존재해야 한다.

이런 상황은 교장, 교감들을 자기도취적 장애 상태로 이끈다. 그리하여 이들은 난초, 바둑 같은 개인적인 취미에 탐닉하거나, 아니면 교사들을 괴롭히는 가학성 변태행위에서 쾌감을 추구하거나, 아니면 상황이 어려워질수록 더욱 더 자신의 아집에 집착한다. 이로써 이들은 완전히 자아를 상실하고, 정서적으로 망가진다. 이런 정서적 망가짐은 수시로 솟구치는 분노의 형태로 내장되며, 이는 많은 교장, 교감들을 시한폭탄 같은 존재로 만든다. 문제는 교사들 역시 학생들을 상대로 이런 상태에 처해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학교의 교무실이란 시한폭탄들로 득실대는 무시무시한 장소다. 여기서는 멀쩡한 사람도 상처받기 십상이다.

어쩌면 이것이 공교육보다 사교육을 신뢰하는 이유중 하나인 것 같다. 직접 누가 해 본적은 없지만, 아마도 학원 강사들이 학교 교사들보다 정서적으로 더 건강할 가능성이 크며, 이는 경력이 길어질수록 더욱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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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선생님이 시킨대로 했을 뿐인데...... 손이 발이된 중학생의 사연

    Tracked from 가장 힘든때 무엇을 결의하고 어떻게 행동하는가 이것으로 인생은 결정된다. 여기에 인간의 진가가 있고 위대함이 있다. 2009/07/05 17:09  삭제

    둘째놈 입원한 병원에 가는 중에 처형이 들려준 첫째놈의 근간의 일을 들려주었습니다. 듣고보니 "아하! 그게 그런 사연이 있는 아이스크림이었구나" 우리가족에게만 재미있는 사건일지는 모르지만 소개합니다. 부반장의 역직에 대한 애착 첫째놈은 중딩1학년입니다. 부반장이기도 하구요. 그런데 부반장이라는 자리가 나름대로는 자신을 아이들로 부터 지탱해주는 유일한 버팀목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래서 임기가 6개월이면 이번달에 재선출해야하고 떨어지면 자신을 아이들..

교원평가를 조건부로 찬성하며

2008-10-18 

[1] 교원평가에 대한 가지 견해

 

1.        교원평가의 취지: 교사들의 능력을 배가시켜 교육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 정부에 추진하는

 

2.        교원평가를 추진하는 정부의 입장에 대한 평가: 교육투자를 통한 교육환경 개선을 하지 않는 정부의 무능과 직무유기를 교사들에게 일정 정도 전가하는 것임.

 

3.        교원평가 수용 여부: 그러나 교원평가는 수용하는 것이 좋다.

3-1     교육환경 개선은 장기적으로 이뤄질 일이어서 계속 추진하여야 하지만, 현재 교육의 질적 개선을 위한 요건 중에 교사가 변해야 하는 부분이 있는데, 교사들 스스로가 변할 있는 교육환경과 교사들의 의지가 모두 취약하다. 여기에 교육계 밖에서 평가를 거부하는 것은 아무리 좋게 판단한다고 해도 교사들 스스로가 평가의 무풍지대로 남으려고 하는 집단 이기주의로 비쳐질 가능성이 상존한다는 것이다.

3-2     게다가 교수평가가 지금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 경우가 사실상 드문데도 역시 교수도 평가받는데 교사가 평가받지 않는다는 것은 이해할 없다는 식의 논리가 통용되고 있으며, 논리가 전적으로 타당하지 않아도 타당성이 없는 것도 아니다.

3-3     평가를 거부하는 것보다는 수용하는 것이 일단 융통성있고 스스로를 겸손하게 드러내는 것이므로 좋다고 본다. 그러면 다른 교육적 사안을 비판하고 대안을 때도 정부나 여론이 보다 호의적으로 반응을 보일 것이다.

3-4     교원평가는 성과급, 다면평가와 맞물려 있어서 평가를 거부하면 성과급도 거부하게 되는데, 성과급도 현재로서는 전면 거부가 어려울 같다. 참에 교원평가 척도를 질적으로 가다듬는 것도 좋다고 본다. , 교육환경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바꿔야 하는가에 대한 대안을 학부모 단체와 교원단체가 공조해서 내는 것이 제일 중요하며, 평가를 수용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교육환경이 개선되어 가르치고 배울 맛을 느끼게 하면 교원평가라는 부적 강화(negative reinforcement) 필요성은 줄어들 것이다. 정부는 바로 점을 못보고 있다.

3-5     원인은 교육환경의 열악함이지만 결과적으로 교사들의 교육에 대한 열정, 독서를 꾸준히 하는 가운데 실력을 연마하려는 의지 등의 면에서 교사들이 차별화되어 대우가 달라져야 필요성이 교육내부에서도 감지된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어떤 교사는 시간 나는 대로 전공별 독서, 수업준비, 자료편집, 학급 아이들 지도를 위한 조언 구하기와 고민 등을 한다. 반면,  일상의 취미에만 관심을 갖는 교사, 시댁과 친정 가족과 아들 딸의 사적 이야기를 틈나는대로 하면서 잡담을 즐기는 교사,  55 나이든 교사에 대해 수업부담이나 업무 시험감독 등을 빼줄 앉아서 사담을 나누거나 인터넷 쇼핑몰을 뒤지는 교사들, 동료교사는 수업과 업무를 하느라 바쁜데 일을 돕고자 하는 생각을 갖지 않는 편협하고 이기적인 성향의 교사들이 분명 존재하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이들이 극소수는 아니다.

3-5-1 교사들이 이렇게 능력과 열정에서 차이가 나는 이유: 교원양성과정에서 현재 임용고시가 시험위주로 되어 있어서 전체를 보는 안목이 부족하게 되어 있다. 게다가 평교사로서 정년까지 가는 것이 대세이며 여기서 교직의 보람을 느끼는 선진국과 달리, 한국의 교직풍토는 부장, 교감, 교장으로 승진하는 데서 우대받는 풍토이다. 그래서 나이들면 승진하려고 하며 과정에서 알차게 전공별 독서와 수업에서 실제 있는 자료개발 등이 소홀해진다.  결혼에 집착하는 사회적 인식과 이로 인해 결혼생활이 우선이고 학교의 공적 업무를 소홀히 하는 경향도 작용한다고 보여진다. 여러 갖가지 교육의 모순을 방치한 교육현실 인식능력과 의지가 부족한 정치인들이 내놓는 편리한 대증요법이 바로 교원평가이지만 다음과 같은 주요 요건들이 개선되면 교육경쟁력을 보다 월등히 살아날 것이다.

 

4.        이제부터 우리가 일을 가지로 요약해 있다.  

4-1 교육환경 개선사업을 위한 본격적인 개혁 청사진을 내는 : (아래 [2] 에서 제시할 것임)

4-2 지금껏 교육투자를 하지 않음으로써 발생하는 문제상황을 드러내는 : 우리나라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어떤 고통을 얼마나 느끼는가를 그래프와 설문지 통계조사를 해서 가시적으로 드러냄으로써 언론에 시리즈로 공표하는 이것은 시민들의 적절한 분노를 자아낼 것이다. 정당한 분노는 정부에 대한 가장 강력한 개혁의 추동의 힘으로 작용할 것이다. 전교조만 외쳐대야 봐야 소용없다. 전교조 좌파에 대한 편견이 심한 척박한 이념적 풍토에서는 더욱 어렵다. 다음 촛불집회는 어른들이 주도해야 것이며 목표는 교육개혁이다.

4-3 교원평가 척도를 질적으로 개발하는 : 이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나 전면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교원평가 척도를 질적으로 개발한 상태를 100으로 우리가 노력하면 60까지는 가능하지 않을까 가정해 본다. 질적으로 노력을 하는 가운데 교사들의 교육에 대한 보다 세밀한 고민이 이뤄지도록 자극할 수도 있을 것이다.

 

[2]  교원평가를 넘어서서 사고해야 한다.

이는  교육경쟁력을 살리기 위한 방안이다. 이것은 멀리 있지 않고 교육환경을 갖추는 상식에 충실할 가능할 것이다. 우리는 지금껏 상식을 외면해 왔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환경을 악화시키고 있다.

 

   학급당 학생수를 평균 20명으로 줄여라! : 한국의 교사들의 오랜 숙원이다.

    행정보조원을 대거 투입하라! : 미국의 어느 학교에서는 행정보조원이 교사 수보다 많은 곳이 있다. 그래서 학교 교사들은 행정업무를 위해 공문을 만지는 일이 거의 없다. 한국의 교사들은 (행정) 공문만지거나 수업시간표 짜기, 연간계획서 만들기, 학생들 인솔하고 각종 행사에 다니기 위해 서류작성하고 영수증 처리하여 행정실에 내기 ….일이 많다. 행정 보조원이 투입되면 이런 일들이 대폭 없어지면서 교사들이 학생과의 대화, 수업자료 편집, 독서, 교과협의회 등이 보다 원활해질 것이며 이는 교사의 실력향상과 교육경쟁력으로 이어질 것이다.

    외국의 학교들 처럼 교과교실전담제에 따라 학생들의 이동수업을 보장해야 한다. : 교사가 전담 교실을 배정받으면 그곳에 각종 책과 수업자료를 비치하여 보다 질높게 수업에 임할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도 전공필수 과목 외에 선택해서 들을 있어 관심도도 높아질 것이다. 학교예산 불요불급한 것을 줄이고 학교 증설에 힘써야 한다. : 교육개혁에 대한 안목을 지닌 교사들을 물색해서 학교 회계 전문가와 함께 학교 교육예산 중에서 어떤 것을 줄이야 하는가를 심도있게 논의하도록 한다. 정부 관리가 교사들을 직접 물색하기 보다는 현장의 개혁성향의 교장, 교감, 교사 그리고 교원단체 임원을 통해서 추천한다. 그리고 교사들을 단계적으로 대폭 증원해야 한다.

    평준화를 손질한다. : 아이들의 이해수준이 다른데 무조건 이질집단의 장점만을 고집할 없다. 이질집단에서 공부 잘하는 아이가 뒤쳐지는 아이를 가르쳐 주면서 협동심의 배가된다는 논리는 타당하지만 모든 과목, 모든 상황에 적용할 사안은 아니다. 과목의 성격과 난이도 등에 의해 동질집단으로 구성될 필요가 있다. 평준화는 단계적으로 해지하되 성적이 뒤쳐지는 아이들에 대해 전문적인 기술교육을 시키는 시설을 갖추지 않는 정부의 무능에 문제가 있다.

    학벌을 타파하고 대학의 서열화를 깨야 한다. : 서울대를 정점으로 해서 줄서는 기막힌 낙후성을 시급히 개선해야 한다. 그래서 시민단체, 학부모 단체, 교원단체가 관철될 때까지 학벌과 대학 간판을 보고 인재를 선발하는 관행을 근절하고 능력에 따라 철저히 선발, 대우하도록 촉구하고 매스컴이 여기에 함께 하도록 한다. 유럽처럼 인근 지역의 대학에서 실력껏 공부하도록 대학 교수와 환경의 양적 질적 고양이 이뤄져야 가능할 것이다.

    실업계 고교의 증설과 교육과정을 기업체와 함께 한다. 그래야 학생들이 현장에서 있는 기술을 연마할 있으며 적정 인력이 바로 기업체에 취업할 있을 것이다.  실업계를 살려야 과도한 입시경쟁이 완화된다. 왜냐하면 기술을 연마해서 보수를 받고 사회적으로 인정해주면 인문계 고교진학 열기는 줄어들 것이기 때문이다. 박정희 시절의 금오공고, 철도공고 등의 명성을 되살려 장인정신을 확산시키지 않으면 안된다. 일본은 장인정신이 살아있지 않은가?

    -- 교사들의 승진열기가 교육경쟁력을 먹는 하나의 요인이다.; 평교사를 대폭 우대하고 교장은 평교사들 중에서 교직경력 10, 교육행정학 석사과정 이수, 부장경력 5, 교육문제 인식과 개선을 위한 경력에 가산점을 주면서 지역 단위학교에서 선발하도록 한다. 지금 과학고에서도 승진열기 때문에 소수의 학생을 선발해서 각종 경시대회에 내보내 단기적인 실적을 내려고 한다. 기초 과학적 소양을 쌓고 장차 노벨상 수상을 기대하며 공부할 아이들이 승진열기의 과정에 참여되는 것은 시급히 막아야 한다. 미래를 응시할 모르는 교육당국자와 교육관행이 참으로 문제가 아닐 없다.

    학기당 이수과목을 평균 7개로 줄여야 한다. 너무 많은 과목을 배우고, 7 교육과정 이후 공부량이 늘어나 학생들의 실력은 깊이를 잃고 있다. 그래서 고교생 중에서 문학, 철학, 역사 등의 고전을 접하는 아이들이 드물다.

    교과협의회를 정부에서 장려하고 간섭을 줄인다. 최근 역사교과서에 대해 교과부가 직접 개입하는 것은 역사성이 부족한 퇴행적 모습이다. 정부는 좌파와 우파가 건강하게 토론하며 학문적이고 지적으로 성장하게 해주어야 하는 역할에 그쳐야 한다.

    교사연구실을 대폭 늘려주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학교내 공간 확보, 이를 위해서는 학교가 많이 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학교 부지 확보를 위해 도심지역의 주택단지를 매입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여기에 예산을 투입해야 한다.

 

[3] 마치며

      교사들이 관심가질 영역으로는 첫째, 시간나는 대로 전공 사회과학 에세이 독서를 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 한국의 교사들이 일에 채이고, 학급운영의 부담, 의지의 상실로 시간나면 독서해야 한다는 사실을 잊는 교사들이 있다.  상황이 교원평가의 필요성을 가중시키고 있다. 시댁 친정, 군대 이야기, 술 먹은 이야기 등 사담을 자주 나누는 교사들에게 동료교사가 우리 볼까요?”하는 말을 없다. 말하면 교사와의 인간관계는 종결된다. 이것은 교사관계가 열린 것이 아니고 닫힌 사회임을 있다.  둘째, 교육문제 인식능력을 교환하기 위해 교육문제에 대해 학교 안팎에서 토론의 기회를 가질 필요가 있다.

      열정과 능력을 기르기 위해 노력하는 교사를 가려내는 작업을 위해 교내에서 평가단 구성이 필요하다. 그리고 교원평가 결과에 대해 본인의 이의제기를 기회를 주고 평가단 3자의 역할을 해줄 교사들을 입회시켜 토론 속에서 교원평가를 마무리한다.

      단위학교 안에서 무능한 교사를 골라내야 필요는 없다. 일반적인 기준을 마련해서 평가하면 것이며, 평가결과는 성과급과 인사이동에 영향을 줘야 한다.

*****전교조 교사로서 교육적인 열정을 지닌 교사가 배제되는 평가척도가 구성되지 않도록 조심하며, 승진구조에 편승하는 교사가 평가에서 혜택을 배타적으로 보는 일이 없도록 역시 평가척도 구성에 유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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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의 전문성 신장을 가로막는 장벽들


절박한 과제로서 전문성 신장

  먼저 교사의 전문성 신장이 절박한 이유부터 짚어보면서 시작하겠습니다. 아무리 아니라 우겨도 교사의 대우가 평균을 넘는 것이 사실입니다. 문제는 그것이 과잉보상이라는 견해가 사회적으로 보편화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컨대 사람들은 교사보다도 대우가 좋은 교수나 의사를 부러워하기는 합니다. 하지만 그 일들을 “당장 할 수 있다.”고 감히 생각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교사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웬만한 교육을 받은 성인들은 교사 정도의 일은 당장이라도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들 보다 좋은 대우를 받는 교사를 곱게 보아 넘길 수 없는 것입니다. 지금 사회적으로 유통되는 교사의 이미지는 무능한데도 평균이상의 월급을 받고 노동자들의 절반만 일하는 집단입니다. 이런 분위기에서 교사가 지금 같은 대우를 계속 유지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과분한 대우를 포기하던가 아니면 그만한 대우를 받을만한 합당한 자격이 있음을, 아니 더 좋은 대우를 받아도 모자람을 당당히 선언하던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절박한 상황에 와 있습니다. 우리는 당연히 후자를 선택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스스로 전문성을 신장하고 이를 내어 보임으로써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교사의 전문성은 단지 전공 지식이나 교육학에 기능적으로 숙달되는 것 이상의 것이라야 합니다. 이는 무수한 지식의 네트워크에서 학생들에게 가장 도움이 될 수 있는 것들을 선택할 수 있고, 그것에 적합한 교육방법을 선택, 구상할 수 있으며, 학생들이 새로운 지식과 방법을 생산자로 설 수 있게 이끌 수 있는 그런 능력입니다. 이러한 전문성은 당연히 오랜 연구와 교실에서의 실천경험이 필요하며, 일반인은 물론 전문 연구자도 쉽게 넘볼 수 없는 능력입니다. 교육의 이러한 전문성을 끈질기게 연마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사회에 드러낼 때 우리에게 가해오는 부당한 압력과 비난은 중단될 것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많은 교사들이 적극적으로 전문성을 신장하고 보기는 어려운 것이 현실입니다. 하지만 이를 마냥 교사들의 안일과 나태로만 몰아세울 수는 없습니다. 부지런하고 의욕적인 교사들마저 중년기가 되면서 지치고 냉소적이 되면서 안일과 나태의 대열에 합류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교사의 전문성 신장을 가로막는 여러 구조적 장벽들이 있는 것입니다. 이 장벽들은 교사 집단 바깥에서 형성된 사회적, 제도적 장벽일수도 있고 교사집단 내부에 형성된 문화적, 관습적 장벽일수도 있습니다. 간단하게나마 이런 장벽들을 한 번 짚어봅시다.

  전문성 신장을 가로막는 외부의 장벽들

  부족한 기자재

아무리 유능한 의사라도 청진기 하나 쥐어주고 암을 치료하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교사의 전문성 역시 그것을 발휘할 수 있는 하드웨어의 제약을 받습니다. 교실에 빔프로젝터가 있고 없고에 따라 수업을 구상할 수 있는 범위가 달라지면, 냉방시설이 있는 교실과 없는 교실의 수업은 하늘과 땅 차이가 납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 학교의 실태는 비참합니다. 시설은 낡고, 시대에 뒤떨어졌으며, 경직되고 비대한 관료제로 인해 업그레이드도 매우 더디며, 학교간 편차도 심합니다. 학교의 각종 시설환경은 흡사 ‘타임캡슐’을 연상시킵니다. 그나마 신형의 시설과 기자재가 공급되어도 설치되는 그 순간부터 활용보다 분실·파손 방지, 관리 철저 등등의 잡무가 되어버립니다. 적극적으로 활용되는 시설과 장비는 고장이 나고 파손되는 것이 정상이지만, 이런 정상적인 생각을 갖추기에는 학교관리자라는 지위가 너무 비정상적입니다.

  전문성 신장에 적대적인 공간

교사들의 공간적 환경은 전문성 신장에 최악이며 적대적입니다. 교무실 배치를 보면 최소한의 공간을 사용하여 최대한의 교사를 몰아넣으려는 목적 외에는 없어 보입니다. 이런 공간에서는 연구도 휴식도 불가능하며 그나마 비좁은 공간을 컴퓨터가 차지한 다음부터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행정사무 아니면 인터넷 쇼핑뿐입니다. 초등 교사들은 교실을 연구실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지만 이는 궁여지책에 불과합니다. 개별 연구실이 어렵더라도 교사전용 도서실, 세미나실 등만 있어도 교사문화가 전문성에 친화적으로 바뀔 것입니다. 사실 이런 공간이 설치되어 있는 학교가 있긴 하지만 이 경우도 활용보다는 관리에만 신경 쓰느라 잠겨있기 일수입니다.

  유인동기 부족

전문성 신장을 교사 개개인의 열정과 윤리에만 맡겨두는 것은 낭만적 생각입니다. 전문성 신장은 노고와 비용을 요구하며, 유인동기가 없다면 일부 열정적 교사들을 제외하면 자발적으로 나서기 어려울 것입니다. 아시겠지만 우리 학교는 전문성을 신장해도 별 이득이 없고, 하지 않아도 별 손해가 없는 체제입니다. 전문성 신장의 유인동기가 없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전문성은 승진에도 아무런 기여를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전문성 신장이 경제적 보상, 명예, 승진에도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소수의 특별한 교사를 제외하면 자발적으로 전문성 신장에 나서지 않을 것입니다. 그나마 교육당국이 제공하는 얼마 안 되는 전문성 유인 동기는 주로 부정적 보상에 의존하려 들거나 쥐꼬리만한 혜택을 주면서 그것을 빌미로 산더미 같은 간섭을 하려들어 교사의 자존심을 손상시킵니다.

  행정사무와 낡은 관행

교사가 행정사무까지 보는 것은 교사의 전문성 뿐 아니라 행정직원들의 전문성도 손상시키는 최악의 조합입니다. 사실 교사 전문성 신장의 첫 걸음은 행정사무를 하지 않는것에서 시작되어야 합니다. 교사가 행정사무를 담당하는 것은 행정 비전문가인 교사가 각종 행정사무를 적당히 나눠가지는 것은 행정직원에게도 모욕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행정업무를 행정직원이 전담하게 되면 비로소 그들은 쓸데 없는 불합리한 잡무를 분석하고 이를 간소화, 합리화 하려는 노력을 할 것입니다. 즉 행정 전문가가 되는 것입니다. 반면 교사는 교실에 집중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지금까지 행정 잡무는 무능한 교사들의 도피처였습니다. 아무리 엉터리로 수업을 해도 공문서 몇 장 처리하면 용서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행정 잡무가 사라지면 무능한 교사가 도피할 영역이 없기 때문에 도리 없이 교실에 집중해야 합니다.

  남성의 지배의 문화

교사들의 대다수가 여성입니다. 따라서 젠더 문제를 고려하지 않고는 교사문제를 다룰 수 없습니다. 많은 여교사들이 교사와 주부라는 2중 지위를 가집니다. 그런데 주부라는 지위가 전문성 신장을 위해 사용되어야 할 소중한 시간을 빼앗아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남성에 비해 여성은 전문성 신장을 위해 시간을 사용하기가 어렵습니다. 많은 여성들이 남는 시간에 각종 가정유지 노동을 해야 합니다. 부부교사가 아닌 경우 여교사가 배우자에게 동등한 가사노동을 요구하는 경우가 그리 많지 않은 것입니다. 그런데 여교사의 배우자들이 대체로 여론주도층이라는 점이 더욱 문제입니다. 불행히도 많은 여교사들은 대기업에 다니는, 혹은 전문직인 배우자 앞에서 자신의 일이 그들이 하는 일 보다 더 어렵고 사회적으로 중요한 일이라는 확신을 심어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교사 하느라 아이에게 신경을 못 써서 미안하다고 말하는 여교사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배우자인 전문직 남성들은 직장에서 두고 온 자녀에게 미안해 하는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그 결과 남성들이 주류를 이루는 직종은 열정과 패기로 전념하는 이미지가 형성되고, 여성들이 주류를 이루는 교사는 주부가 적당히 겸직해도 되는 정도의 일이라는 이미지가 만들어집니다. 이것은 실로 무서운 이미지입니다. 이 마음속의 불평등을 극복해야 합니다. 전문성 신장의 장벽은 가정에서부터 제거해야 합니다.

 

전문성 신장을 가로막는 내 안의 장벽들

  지금까지 전문성 신장을 가로막는 장벽들을 살펴보면 제도적이거나 문화적인 것이라 교사 자신에게는 문제가 없는 것 처럼 착각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실상 외부의 장벽 못지않게 교사들 스스로 가지고 있는 전문성 신장의 장벽도 만만치 않습니다.

  자유를 번거로워하는 타성

주로 중년층 이상의 교사들의 성장을 가로막는 주된 이유입니다. 사실 전문직은 자율성을 가질 수 있지만 그것을 위해 치뤄야 할 책무성이란 비용을 요구합니다. 사실 수업을 스스로 구상해서 실시하는 것은 매우 고들픈 일입니다. 그냥 정해진 교육과정과 교과서에 따라 기계적으로 반복하는 수업이 훨씬 노고가 덜 드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니 편하게 정해진 수업만 하고 남는 시간을 여흥과 쇼핑으로 탕진하는 교사들의 수가 많은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 안락함은 자율성을 포기한 댓가, 즉 노예의 안락함입니다. 물론 교사를 부러워하는 시선이 전문성보다 노예의 안락함에 끌렸기 때문인 것이 현실입니다. 어쩌면 젊은이들 중에는 이 노예의 안락함을 누리기 위해 열심히 공부해 교사가 된 사람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지금 교사에 대한 좋은 대우는 사회적 합의가 되지 않은 비정상적인 과도기에 불과합니다. 노예의 안락함에 안주하고 있는 교사에게 지금과 같은 대우를 하는 것은 사회적 낭비입니다. 하루에 4~5시간 정도만 노동하고, 1년의 1/3이 휴가인 이유는 남는 시간동안 전문성을 신장하라는 것이지 놀거나 쉬라는 것이 아닙니다. 1999년 캐나다 교원노조의 투쟁 슬로건이 “하루 1시간의 공강시간 확보!”였음을, 레이건 시절 미국 교사들이 하루 45분의 비는 시간을 지키기 위해 치열하게 투쟁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하루에 2~3시간씩 남는 시간을 의미없는 웹서핑, 싸이질, 수다 등으로 탕진해도 되는 이런 비정상적인 상태가 얼마나 더 유지될 수 있을지 의심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교육학 소비자주의

교육학은 이미 완결된 매뉴얼이 아니라 구체적인 교육을 통해 수정, 보완, 발전되어야 하는 일련의 실천입니다. 따라서 교육학과 수업은 구별되지 않으며, 교육학자와 교사도 구별되지 않습니다. 교실은 단지 교육학이 적용되는 공간이 아니라 생성되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많은 교사들이 교육학을 배우고 익혀야 할 완성된 교수-학습 패키지로 인식하는 경향이 많습니다. 그래서 부지런한 교사들조차 교육학의 생산자가 아니라 소비자로 머물러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그나마도 창조적으로 변화, 발전시키기 보다 기계적으로 적용한 뒤 “역시 한국 현실에는 이런 수업이 안 돼.”라며 지레 포기해버리기가 일쑤입니다. 그래서 젊어서는 다양한 교수-학습을 시도해 보다가 나이 들어갈수록 단순 강의형에 안주해 버리는 불행한 루틴이 반복됩니다. 그러면서 학교 현장을 모르는 교육학자들의 탁상공론을 비판합니다. 하지만 학교 현장을 아는 교육학자가 달리 있을 수 있겠습니까? 교사 외에 누가 학교 현장을 알겠습니까? 그러니 교사가 교육학의 소비자인지 생산자인지의 답은 분명해질 수 밖에 없습니다.

  행복관의 부재

이런 분도 있을 수 있습니다. “당신이 말한 것이 옳다고 치자. 하지만 난 수업 대충 하고, 월급이나 받고, 남는 시간을 쇼핑하고, 친구만나 수다 떨고 사는 것이 더 행복하다. 무엇 때문에 아무 보상도 없이 스스로를 힘들게 만든단 말인가?” 물론 이는 매우 영리한 선택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삶의 태도에서는 행복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행복은 모두가 자신의 타고난 본성을 실현할 때 도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타고난 본성보다는 외부에서 강요된 기준에 따르도록 강요받으며 성장했습니다. 교사인 우리 역시 잘못된 교육의 희생자입니다. 우리는 무의식 중에 외적인 행복을 추구하는 습관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외적인 행복은 결과를 얻으면 얻을수록 새로운 욕망을 생산하는 허무한 행복입니다. 만약 미결정적 주체인 아동들이 타고난 본성을 실현하며 성장하는 과정에서 얻는 행복에 공감하는 그 아름다운 경험을 한 번이라도 겪는다면, 우리는 저 허무한 행복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프뢰벨은 아동의 교육은 잘못된 교육을 받은 어른이 자신을 고칠 수 있는 치유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원자화 경향

최근 성실하고 진취적인 젊은 교사들일수록 자주 토로하는 고민이 너무 일이 많고, 힘들고, 바쁘다고 합니다. 수업 준비하는 것도 벅차고, 처리해야 할 업무도 산더미처럼 보이고, 면담은 또 어찌해야 할지 깜깜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고민하는 교사들의 공통점은 이 모든 것을 홀로 한다는 것입니다. 홀로 자료 준비하고, 홀로 면담 준비하고, 홀로 업무를 처리합니다. 동료나 선배는 단지 고충을 토로하고 동정심이나 공감을 얻어내는 대상일 뿐, 함께 공부하고, 함께 준비하는 모습을 찾기가 어렵습니다. 하지만 지식은 소통과 공유를 통해 생성되지 결코 고독한 은둔을 통해 형성되지 않습니다. 안다는 것은 행함이며 행함은 곧 말하는 것이고, 말함은 곧 공동으로 행함입니다. 그래서 공자는 혼자 밤을 새지 말고 스승에게 말하라고 했던 것이다. 그런데 불행히도 최근 교사들의 원자화되는 경향이 강해집니다. 전교조 역시 과거와 같은 공동의 실천단위가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물론 전교조가 시대에 뒤떨어졌다고 비판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대체할만한 새로운 실천단위가 나온 것도 아닙니다. 이렇게 공동의 실천맥락에서 떨어져 나온 개체화된 인간은 아렌트의 말을 빌리면 모두 “잠재적인 나찌”입니다. 우리는 나찌들에게 전문성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전문성의 새로운 정립을 위하여

  지금까지 교사의 전문성 신장이 필요한 이유, 그리고 그것을 가로막는 장벽들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사실 그 동안 전문성이라고 하면 막스 베버가 말한 “차갑고 영혼 없는 전문가”의 속성을 떠올리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 전문성은 차라리 듀이가 말한 “자유로운 연구자들의 공동체”의 속성이 되어야 합니다. 교사는 정해진 매뉴얼에 정통한 전문가가 아니라 자신의 영역의 애정과 창의적인 정신을 발휘하는 전문가가 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교사의 전문성 신장은 교사뿐 아니라 사회 전체적으로 전문성이라고 하는 것의 새로운 의미 정립을 위해서도 중요한 일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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