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개혁'에 해당되는 글 21건

  1. 2008/12/09 [부정변증법] 사교육 문제보다 먼저 쓰레기 같은 교장, 교감 부터 해결해야 한다. (1)
  2. 2008/12/06 [부정변증법] 아, 결국 안으로 굽은 팔
  3. 2008/10/11 [부정변증법] 영재교육도 망치는 교사 승진제도(퍼온 글)
  4. 2008/10/01 [부정변증법] 교사의 전문성을 위하여(예전에 썼던 글)
  5. 2008/10/01 [부정변증법] 미국의 교장
  6. 2008/09/26 [부정변증법] 들어라 참실련이여!(퍼온 글)
  7. 2008/09/23 [부정변증법] 전교조의 유리 천장
  8. 2008/09/21 [부정변증법] 교총이 비난 받아야 하는 10가지 이유(퍼온글)
  9. 2008/09/17 [부정변증법] 교사대생의 위험한 이데올로기
  10. 2008/09/17 [부정변증법] 교장만 되면 발뻗고 잘줄 알았더니
  11. 2008/09/14 [부정변증법] 교사들의 대화 소재
  12. 2008/09/10 [부정변증법] 전교조내 운동권 정파들을 비판함(1) (작년에 썼던 글)
  13. 2008/09/09 [부정변증법] 전교조의 최하급 직원은 부장님
  14. 2008/09/08 [물쟁이] 그들만의 리그, 블랙센스 (1)
  15. 2008/09/08 [부정변증법] ‘외곬’으로 치닫는 전교조…조직 내부서도 갈등 (경향신문)
  16. 2008/09/08 [부정변증법] 연설문을 쓰지 않는 어른들
  17. 2008/09/06 [부정변증법] 장학사, 연구사, 이건 또 웬 듣보잡 (1)
  18. 2008/09/05 [부정변증법] 전교조 지도부 선생님들께 드리는 편지
  19. 2008/09/04 [부정변증법] 비교육적 공간, 교무실
  20. 2008/09/03 [부정변증법] 승진병 환자들의 최대 격전지 -연구점수
  21. 2008/08/25 [부정변증법] 교장의 권한

광주의 모 초등학교에서 교장의 폭언과 횡포를 견디다 못한 교사들이 집단으로 반기를 들었다. 연줄, 연줄로 꽉 짜여지고 군기와 서열을 중요시하는 광주지역의 특성상 정말 어지간했다보다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서 어찌어찌 하여 서울에 올라온 그 지역 출신 교장, 교감들이 교사들에게 무리하게 마구 권력을 휘두르려다 저항과 냉소에 부딪치며 그들은 그들대로, 교사는 교사대로 상처받는 안타까운 현실이 또 눈에 밟힌다.

서울지역에는 교육적으로나 학문적으로나 아무 업적, 하다못해 형식적인 업적조차 없이 교감 승진한 농어촌 출신 교사들이 있다. 이들은 각종 꼼수를 총동원한 사람들이다. 그들이 동원하는 꼼수란 주로 농어촌 벽지 근부 가산점을 챙겨서 승진점수를 따는 것이다. 그래서 그 점수가 충분히 쌓이면 서울로 전보 내신을 내서 어떻게든 서울로 올라오는 것이다. 그러면 얼마 지나지 않아 서울지역 학교의 교감이 될 수 있다. 서울 토박이 교사들이야 농어촌 벽지 점수 따위가 있을 턱이 없으니 소위 승진점수에서 밀리는 것이다.

혹자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그들이 남들이 근무 기피하는 농어촌 지역에서 봉사했으니 그 정도 댓가는 받아야 하는게 아니냐고... 남들이 기피? 지나가던 이메가가 웃을 일이다. 지방 학교에서는 농어촌 벽지 근무를 서로 못해서 난리다. 그래서 농어촌 벽지 근무를 위해  시도 장학사에게 연줄이라도 닿아 보려고 술판을 벌리기 일쑤다. 그렇게 농어촌 벽지 근무를 하게 되면, 그래도 농어촌 교사 유인책은 된다고?

천만에... 그런 그들이 농어촌 벽지 학교에서 제대로 근무를 할 턱이 없다. 여전히 집은 도시에 두고 승용차로 출퇴근만 한다. 친절하게도 도교육청에서는 기름값까지 보조해준다. 그렇게 벽지학교, 농어촌 진흥 학교 따위만 이리 저리 골라다니면, 그런 학교에서 수업이야 어떻게 하든간에 근무하는 개월수만큼 승진 가산점이 착착 붙는다. 그러니 지방에서 교사가 승진하려면 연줄과 선후배간의 위계는 필수다. 조금이라도 연고가 있으면 달라 붙어서 형님, 아우님 하면서 술판 벌려야 한다. 이렇게 엉성한 사생활을 하니 낮에 제정신일 턱이 없다. 수업은 귀찮다. 수업이 귀찮을때 제일 좋은 방법은 학생들을 마구 두드려 패서 조용히 시켜 놓는 것이다. 더군다나 지방은, 특히 호남지방은 교사의 폭력에 대해 비교적 관대하다. 마구 조사버리면 되는 거다. 이렇게 이들은 교사시절부터 학생들에 대한 폭력, 폭언과 웃사람에 대한 아부를 몸에 익힌다.

그러다가 교감이 된다. 달라진건 오직 하나다. 바로 아래에 학생이 아니라 교사가 있다는 것. 그래서 이들은 교사에게도 서슴없이 폭언을 행사한다. 만의 하나 이들이 서울에서 교감이 되면, 상당한 저항과 냉소에 부딪칠수 있겠지만, 지방이라면 이 역시 그러려니 하고 넘어간다. 교장은 교사들의 불만과 모욕감을 알면서도 교감이 스스로 악역을 담당하며 군기를 잡아주니 모르는 척 넘어가 준다.

이런 인간들이 이제 교장이 된다면? 눈치 볼 상대도 하나 없는 교장이 된다면? 학생이나 교사는 전혀 자신에게 의미가 없고, 오직 교육청의 어르신들에게만 잘보이면 되는 그런 교장이 된다면? 그러니 광주 모 초등학교 같은 사태가 벌어지는 것이다. 이건 근본적으로 잘못된 제도다.

사교육 문제? 교육 시장화 저지? 다 필요없다. 먼저 저 쓰레기 같은 교장, 교감들(70%는 쓰레기일것)부터 쓸어버릴 생각을 해야 한다. 그들을 쓸어버릴수만 있다면 교원평가든, 뭐든 다 받아들일 용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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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강남지역에 있는 어느 중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전해 들었다. 이야기는 이렇다.

그 학교에 새로 교감이 왔다. 전라남도에서 죽 교사생활을 하다가 서울에 올라와서 교감이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교감은 상식이하의 교감이었다. 교감이라기 보다는 거의 시정잡배에 가깝다고 한다. 교무실에서 큰소리로 교사들에게 호통을 치며, 전혀 문제되지 않는 사소한 사안을 가지고 고집을 부리며, 무슨 회식이든 간에 공짜로 술 먹을 수 있는 자리면 꼬박꼬박 찾아가서 고주망태로 꼬장을 부렸으며, 기간제 교사들과 젊은 여교사들만 골라서 호통을 치고 마치 학생부 교사가 문제아 대하듯이 무례한 언동을 일삼았다. 당연히 학생들에게도 함부로 대해서 여학생의 복장을 지도한다는 미명하에 치마를 들추고, 탁구채로 뺨을 치기까지 하였다. 이런 무뢰한이 어떻게 교감이 되었나 했더니, 전라도에서 근무하던 시절 각종 벽지근무 점수를 미친듯이 수집했다고 한다. 참으로 해괴한 승진제도를 가진 나라에서나 볼수 있는 풍경이다.

모든 교사들이 그를 미워했다. 그가 참석한다고 하면 회식이 취소되었으며, 교사들 셋 이상만 모이면 으레 화제는 교감 흉보는 것이었다. 심지어는 교장조차 그 교감의 무례한 언동에서는 예외가 되지 않았다. 교장이 여자라는 이유로 그 조폭 스타일의 교감은 멋대로 행동했고, 전혀 통제가 되지 않았다. 어쩌다 교사가 교장과 상의하여 어떤 일을 처리하면, 교감인 자기 무시했다고 마구 행패를 부렸다. 게다가 그는 무능했다. 무능하기 때문에 교육청 장학사에게 무시당했으며, 그러니 무슨 승진점수 될만한 프로젝트도 따오지 못했다. 그래서 교감임에도 불구하고 승진에 목마른 승진병 환자들, 점수병 환자들과도 사이가 나빴다. 승진병 환자들과 사이가 나쁜 교감이니 거의 할말 다 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어느날 그 학교를 몇 해 전에 졸업한 졸업생이 졸업증명서를 떼러 찾아왔다. 그 졸업생은 소위 양아치였기 때문에 아주 보기 드문 복장을 하고 있었다. 그 졸업생이 재학생인줄 알았던 이 무뢰배 교감은 느닷없이 졸업생에게 "이 새끼가 복장이 이게 뭐야?" 하면서 귀싸대기를 한대 올려 붙였다. 느닷없이 봉변을 당한 졸업생이 자기가 학교 다닐때 보지도 못했던 교감에게 얻어맞고 참을 턱이 있겠는가? 마침내 둘 간의 몸싸움이 벌어졌다.

이 때 해괴한 일이 벌어졌다. 그 동안 그토록 교감을 미워했던 교사들이 일제히 교감 편을 드는 것이다. 심지어 그 졸업생이 첨 보는 교감에게 가격당한뒤 반격했다는 사실을 들어 "교권이 땅에 떨어지고, 교사할 맛이 안나고"운운을 하기 시작했다. 이 사건을 보고 제보자는 참담함을 느꼈다고 한다. 교감이 함부러 폭력을 휘두르다가 제대로 한껀 걸렸구나, 이렇게 생각이 드는게 아니라 교권의 무너짐으로 생각한다는 것은, 그 동안 교감의 무뢰배짓을 인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학교의 일이라는게 항상 그렇다. 아무리 무지한, 무식한, 그리고 거의 범죄수준의 교사나 교감, 교장이 있더라도 막상 그들이 학생, 학보모, 여하튼 학교 밖의 누군가와 부딪치게 되면 갑자기 놀라운 단결력을 보여준다. 가재는 게편인가? 초록은 동색인가? 평소에 똥같이 여기던 작자와 같은 편이 된다면 결국 스스로를 똥으로 만드는 것일텐데, 교사집단은 그 점에서는 늘 한결같은 반응을 보인다. 여기에는 전교조 교사도 예외없다. 심지어 부정비리 사학의 재단 앞잡이 교사라도 학부모와 대거리를 벌이면 거의 교사편이 된다. 참으로 한심한 노릇이다.

혹자는 누워서 침뱉기 해서 뭐하냐고 하면서 이런 꼴을 정당화 시킨다. 그러나 누워서 침뱉기를 두려워하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내가 지금 누워있는 자리가 제자리가 아니라면 누워서 침뱉기라도 해야 한다. 그래야 그 자리를 떠날 마음이 생기지 않겠는가? 누워서 침뱉지 않는 교사, 학교, 참으로 암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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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올해 노벨상 수상이 4명....이것은 충격이 아닐 수 없다.

학교교육이든 사회교육이든, 정부의 방침이든....우리와 비슷하면서도 상당히 다른 일본으로부터 우리는 진정 배우고 있는가?

일본을 능가하는 미래의 비젼을 우리는 구상하고 있는가? 답답한 상황이다.

일제고사, 성과급, 다면평가 등 수면 위에 떠오르는 거품같은 문제들에 집착하는 정부를 보면서....

또 이와 상대하지 않을 수 없음을 인정하나 여전히 전교조도 정부의 방침에서 시야를 떼고 저 멀리 개혁안을 내고 근본개혁을 촉구하면서 국민에게 알리는 작업을 하지 못하고 있다.

학급당 학생수 20명 안쪽으로 줄이기, 행정보조원 대거 투입, 교과교실제(이동수업), 학벌타파의 구체적인 대안, 학력인플레를 완화시키기 위한 실업교육 정상화, 승진의 왜곡된 열기를 바로잡기 위한 노력 등 구조적인 개혁의 물줄기를 타지 못하고 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며, 지금껏 그래왔다.

어제 어느 지역의 과학고에 근무하다 올해 내가 있는 학교로 전출온 50대 중반 가까운 연령대의 선생님이 말한다. "과학고에 근무하는데 거기서는 각종 수학, 과학경시대회 등에 아이들을 출전시키고 실적을 내는 정도에 따라 교사를 비교하고, 그리고 각종 수상경력 등은 실적이 되어 교사의 근평에 영향을 주고, 교사 자신도 출품해서 점수 따고....스트레스가 많더라구요. 승진을 위해서 과학고의 아이들도 일종의 희생을 치르고 있어요. 승진구조 이대로는 안되겠는데....다른 대안이 없으니 또 응하고 있습니다."라고 한다.

과학고도 취지와 어긋나게 기초 과학영재를 키워내는 것이 아니라 당장 실적내는 각종 경시대회에 내보내고, 학벌사회의 정점에 있는 서울 연고대에 보내며 우리의 인재들은 과학분야의 기반을 다질 기회를 상실케 하고 있다. 그래서 노벨상은 더욱 멀어지고 있다.....

이제 훌륭한 교과부 장관이 나오기를 기대하는 것은 그만두어야 할 것 같다. 바로 전교조가 먼저 국민들에게 교육개혁을 제대로 하지 않은 결과가 어떤 것인가를 중심으로 각종 통계자료, 인터뷰 자료 등을 토대로 국민 즉 시민단체에 알리고 대대적인 교육개혁 운동을 벌이지 않으면 희망은 없을 것 같다. 늘 지리멸렬하게 이렇게 정권의 정책에 따라 물결에 따라 표류하며 일렁이는 가운데 떠내려가듯이 우리의 교육은 그렇게 갈 것 같다.

해외유학, 조기유학 등은 계속 늘고... 교육후진국이라는 불명예는 무겁게 우리를 누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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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의 전문성 신장을 가로막는 장벽들


절박한 과제로서 전문성 신장

  먼저 교사의 전문성 신장이 절박한 이유부터 짚어보면서 시작하겠습니다. 아무리 아니라 우겨도 교사의 대우가 평균을 넘는 것이 사실입니다. 문제는 그것이 과잉보상이라는 견해가 사회적으로 보편화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컨대 사람들은 교사보다도 대우가 좋은 교수나 의사를 부러워하기는 합니다. 하지만 그 일들을 “당장 할 수 있다.”고 감히 생각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교사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웬만한 교육을 받은 성인들은 교사 정도의 일은 당장이라도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들 보다 좋은 대우를 받는 교사를 곱게 보아 넘길 수 없는 것입니다. 지금 사회적으로 유통되는 교사의 이미지는 무능한데도 평균이상의 월급을 받고 노동자들의 절반만 일하는 집단입니다. 이런 분위기에서 교사가 지금 같은 대우를 계속 유지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과분한 대우를 포기하던가 아니면 그만한 대우를 받을만한 합당한 자격이 있음을, 아니 더 좋은 대우를 받아도 모자람을 당당히 선언하던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절박한 상황에 와 있습니다. 우리는 당연히 후자를 선택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스스로 전문성을 신장하고 이를 내어 보임으로써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교사의 전문성은 단지 전공 지식이나 교육학에 기능적으로 숙달되는 것 이상의 것이라야 합니다. 이는 무수한 지식의 네트워크에서 학생들에게 가장 도움이 될 수 있는 것들을 선택할 수 있고, 그것에 적합한 교육방법을 선택, 구상할 수 있으며, 학생들이 새로운 지식과 방법을 생산자로 설 수 있게 이끌 수 있는 그런 능력입니다. 이러한 전문성은 당연히 오랜 연구와 교실에서의 실천경험이 필요하며, 일반인은 물론 전문 연구자도 쉽게 넘볼 수 없는 능력입니다. 교육의 이러한 전문성을 끈질기게 연마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사회에 드러낼 때 우리에게 가해오는 부당한 압력과 비난은 중단될 것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많은 교사들이 적극적으로 전문성을 신장하고 보기는 어려운 것이 현실입니다. 하지만 이를 마냥 교사들의 안일과 나태로만 몰아세울 수는 없습니다. 부지런하고 의욕적인 교사들마저 중년기가 되면서 지치고 냉소적이 되면서 안일과 나태의 대열에 합류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교사의 전문성 신장을 가로막는 여러 구조적 장벽들이 있는 것입니다. 이 장벽들은 교사 집단 바깥에서 형성된 사회적, 제도적 장벽일수도 있고 교사집단 내부에 형성된 문화적, 관습적 장벽일수도 있습니다. 간단하게나마 이런 장벽들을 한 번 짚어봅시다.

  전문성 신장을 가로막는 외부의 장벽들

  부족한 기자재

아무리 유능한 의사라도 청진기 하나 쥐어주고 암을 치료하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교사의 전문성 역시 그것을 발휘할 수 있는 하드웨어의 제약을 받습니다. 교실에 빔프로젝터가 있고 없고에 따라 수업을 구상할 수 있는 범위가 달라지면, 냉방시설이 있는 교실과 없는 교실의 수업은 하늘과 땅 차이가 납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 학교의 실태는 비참합니다. 시설은 낡고, 시대에 뒤떨어졌으며, 경직되고 비대한 관료제로 인해 업그레이드도 매우 더디며, 학교간 편차도 심합니다. 학교의 각종 시설환경은 흡사 ‘타임캡슐’을 연상시킵니다. 그나마 신형의 시설과 기자재가 공급되어도 설치되는 그 순간부터 활용보다 분실·파손 방지, 관리 철저 등등의 잡무가 되어버립니다. 적극적으로 활용되는 시설과 장비는 고장이 나고 파손되는 것이 정상이지만, 이런 정상적인 생각을 갖추기에는 학교관리자라는 지위가 너무 비정상적입니다.

  전문성 신장에 적대적인 공간

교사들의 공간적 환경은 전문성 신장에 최악이며 적대적입니다. 교무실 배치를 보면 최소한의 공간을 사용하여 최대한의 교사를 몰아넣으려는 목적 외에는 없어 보입니다. 이런 공간에서는 연구도 휴식도 불가능하며 그나마 비좁은 공간을 컴퓨터가 차지한 다음부터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행정사무 아니면 인터넷 쇼핑뿐입니다. 초등 교사들은 교실을 연구실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지만 이는 궁여지책에 불과합니다. 개별 연구실이 어렵더라도 교사전용 도서실, 세미나실 등만 있어도 교사문화가 전문성에 친화적으로 바뀔 것입니다. 사실 이런 공간이 설치되어 있는 학교가 있긴 하지만 이 경우도 활용보다는 관리에만 신경 쓰느라 잠겨있기 일수입니다.

  유인동기 부족

전문성 신장을 교사 개개인의 열정과 윤리에만 맡겨두는 것은 낭만적 생각입니다. 전문성 신장은 노고와 비용을 요구하며, 유인동기가 없다면 일부 열정적 교사들을 제외하면 자발적으로 나서기 어려울 것입니다. 아시겠지만 우리 학교는 전문성을 신장해도 별 이득이 없고, 하지 않아도 별 손해가 없는 체제입니다. 전문성 신장의 유인동기가 없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전문성은 승진에도 아무런 기여를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전문성 신장이 경제적 보상, 명예, 승진에도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소수의 특별한 교사를 제외하면 자발적으로 전문성 신장에 나서지 않을 것입니다. 그나마 교육당국이 제공하는 얼마 안 되는 전문성 유인 동기는 주로 부정적 보상에 의존하려 들거나 쥐꼬리만한 혜택을 주면서 그것을 빌미로 산더미 같은 간섭을 하려들어 교사의 자존심을 손상시킵니다.

  행정사무와 낡은 관행

교사가 행정사무까지 보는 것은 교사의 전문성 뿐 아니라 행정직원들의 전문성도 손상시키는 최악의 조합입니다. 사실 교사 전문성 신장의 첫 걸음은 행정사무를 하지 않는것에서 시작되어야 합니다. 교사가 행정사무를 담당하는 것은 행정 비전문가인 교사가 각종 행정사무를 적당히 나눠가지는 것은 행정직원에게도 모욕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행정업무를 행정직원이 전담하게 되면 비로소 그들은 쓸데 없는 불합리한 잡무를 분석하고 이를 간소화, 합리화 하려는 노력을 할 것입니다. 즉 행정 전문가가 되는 것입니다. 반면 교사는 교실에 집중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지금까지 행정 잡무는 무능한 교사들의 도피처였습니다. 아무리 엉터리로 수업을 해도 공문서 몇 장 처리하면 용서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행정 잡무가 사라지면 무능한 교사가 도피할 영역이 없기 때문에 도리 없이 교실에 집중해야 합니다.

  남성의 지배의 문화

교사들의 대다수가 여성입니다. 따라서 젠더 문제를 고려하지 않고는 교사문제를 다룰 수 없습니다. 많은 여교사들이 교사와 주부라는 2중 지위를 가집니다. 그런데 주부라는 지위가 전문성 신장을 위해 사용되어야 할 소중한 시간을 빼앗아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남성에 비해 여성은 전문성 신장을 위해 시간을 사용하기가 어렵습니다. 많은 여성들이 남는 시간에 각종 가정유지 노동을 해야 합니다. 부부교사가 아닌 경우 여교사가 배우자에게 동등한 가사노동을 요구하는 경우가 그리 많지 않은 것입니다. 그런데 여교사의 배우자들이 대체로 여론주도층이라는 점이 더욱 문제입니다. 불행히도 많은 여교사들은 대기업에 다니는, 혹은 전문직인 배우자 앞에서 자신의 일이 그들이 하는 일 보다 더 어렵고 사회적으로 중요한 일이라는 확신을 심어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교사 하느라 아이에게 신경을 못 써서 미안하다고 말하는 여교사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배우자인 전문직 남성들은 직장에서 두고 온 자녀에게 미안해 하는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그 결과 남성들이 주류를 이루는 직종은 열정과 패기로 전념하는 이미지가 형성되고, 여성들이 주류를 이루는 교사는 주부가 적당히 겸직해도 되는 정도의 일이라는 이미지가 만들어집니다. 이것은 실로 무서운 이미지입니다. 이 마음속의 불평등을 극복해야 합니다. 전문성 신장의 장벽은 가정에서부터 제거해야 합니다.

 

전문성 신장을 가로막는 내 안의 장벽들

  지금까지 전문성 신장을 가로막는 장벽들을 살펴보면 제도적이거나 문화적인 것이라 교사 자신에게는 문제가 없는 것 처럼 착각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실상 외부의 장벽 못지않게 교사들 스스로 가지고 있는 전문성 신장의 장벽도 만만치 않습니다.

  자유를 번거로워하는 타성

주로 중년층 이상의 교사들의 성장을 가로막는 주된 이유입니다. 사실 전문직은 자율성을 가질 수 있지만 그것을 위해 치뤄야 할 책무성이란 비용을 요구합니다. 사실 수업을 스스로 구상해서 실시하는 것은 매우 고들픈 일입니다. 그냥 정해진 교육과정과 교과서에 따라 기계적으로 반복하는 수업이 훨씬 노고가 덜 드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니 편하게 정해진 수업만 하고 남는 시간을 여흥과 쇼핑으로 탕진하는 교사들의 수가 많은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 안락함은 자율성을 포기한 댓가, 즉 노예의 안락함입니다. 물론 교사를 부러워하는 시선이 전문성보다 노예의 안락함에 끌렸기 때문인 것이 현실입니다. 어쩌면 젊은이들 중에는 이 노예의 안락함을 누리기 위해 열심히 공부해 교사가 된 사람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지금 교사에 대한 좋은 대우는 사회적 합의가 되지 않은 비정상적인 과도기에 불과합니다. 노예의 안락함에 안주하고 있는 교사에게 지금과 같은 대우를 하는 것은 사회적 낭비입니다. 하루에 4~5시간 정도만 노동하고, 1년의 1/3이 휴가인 이유는 남는 시간동안 전문성을 신장하라는 것이지 놀거나 쉬라는 것이 아닙니다. 1999년 캐나다 교원노조의 투쟁 슬로건이 “하루 1시간의 공강시간 확보!”였음을, 레이건 시절 미국 교사들이 하루 45분의 비는 시간을 지키기 위해 치열하게 투쟁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하루에 2~3시간씩 남는 시간을 의미없는 웹서핑, 싸이질, 수다 등으로 탕진해도 되는 이런 비정상적인 상태가 얼마나 더 유지될 수 있을지 의심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교육학 소비자주의

교육학은 이미 완결된 매뉴얼이 아니라 구체적인 교육을 통해 수정, 보완, 발전되어야 하는 일련의 실천입니다. 따라서 교육학과 수업은 구별되지 않으며, 교육학자와 교사도 구별되지 않습니다. 교실은 단지 교육학이 적용되는 공간이 아니라 생성되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많은 교사들이 교육학을 배우고 익혀야 할 완성된 교수-학습 패키지로 인식하는 경향이 많습니다. 그래서 부지런한 교사들조차 교육학의 생산자가 아니라 소비자로 머물러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그나마도 창조적으로 변화, 발전시키기 보다 기계적으로 적용한 뒤 “역시 한국 현실에는 이런 수업이 안 돼.”라며 지레 포기해버리기가 일쑤입니다. 그래서 젊어서는 다양한 교수-학습을 시도해 보다가 나이 들어갈수록 단순 강의형에 안주해 버리는 불행한 루틴이 반복됩니다. 그러면서 학교 현장을 모르는 교육학자들의 탁상공론을 비판합니다. 하지만 학교 현장을 아는 교육학자가 달리 있을 수 있겠습니까? 교사 외에 누가 학교 현장을 알겠습니까? 그러니 교사가 교육학의 소비자인지 생산자인지의 답은 분명해질 수 밖에 없습니다.

  행복관의 부재

이런 분도 있을 수 있습니다. “당신이 말한 것이 옳다고 치자. 하지만 난 수업 대충 하고, 월급이나 받고, 남는 시간을 쇼핑하고, 친구만나 수다 떨고 사는 것이 더 행복하다. 무엇 때문에 아무 보상도 없이 스스로를 힘들게 만든단 말인가?” 물론 이는 매우 영리한 선택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삶의 태도에서는 행복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행복은 모두가 자신의 타고난 본성을 실현할 때 도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타고난 본성보다는 외부에서 강요된 기준에 따르도록 강요받으며 성장했습니다. 교사인 우리 역시 잘못된 교육의 희생자입니다. 우리는 무의식 중에 외적인 행복을 추구하는 습관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외적인 행복은 결과를 얻으면 얻을수록 새로운 욕망을 생산하는 허무한 행복입니다. 만약 미결정적 주체인 아동들이 타고난 본성을 실현하며 성장하는 과정에서 얻는 행복에 공감하는 그 아름다운 경험을 한 번이라도 겪는다면, 우리는 저 허무한 행복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프뢰벨은 아동의 교육은 잘못된 교육을 받은 어른이 자신을 고칠 수 있는 치유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원자화 경향

최근 성실하고 진취적인 젊은 교사들일수록 자주 토로하는 고민이 너무 일이 많고, 힘들고, 바쁘다고 합니다. 수업 준비하는 것도 벅차고, 처리해야 할 업무도 산더미처럼 보이고, 면담은 또 어찌해야 할지 깜깜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고민하는 교사들의 공통점은 이 모든 것을 홀로 한다는 것입니다. 홀로 자료 준비하고, 홀로 면담 준비하고, 홀로 업무를 처리합니다. 동료나 선배는 단지 고충을 토로하고 동정심이나 공감을 얻어내는 대상일 뿐, 함께 공부하고, 함께 준비하는 모습을 찾기가 어렵습니다. 하지만 지식은 소통과 공유를 통해 생성되지 결코 고독한 은둔을 통해 형성되지 않습니다. 안다는 것은 행함이며 행함은 곧 말하는 것이고, 말함은 곧 공동으로 행함입니다. 그래서 공자는 혼자 밤을 새지 말고 스승에게 말하라고 했던 것이다. 그런데 불행히도 최근 교사들의 원자화되는 경향이 강해집니다. 전교조 역시 과거와 같은 공동의 실천단위가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물론 전교조가 시대에 뒤떨어졌다고 비판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대체할만한 새로운 실천단위가 나온 것도 아닙니다. 이렇게 공동의 실천맥락에서 떨어져 나온 개체화된 인간은 아렌트의 말을 빌리면 모두 “잠재적인 나찌”입니다. 우리는 나찌들에게 전문성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전문성의 새로운 정립을 위하여

  지금까지 교사의 전문성 신장이 필요한 이유, 그리고 그것을 가로막는 장벽들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사실 그 동안 전문성이라고 하면 막스 베버가 말한 “차갑고 영혼 없는 전문가”의 속성을 떠올리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 전문성은 차라리 듀이가 말한 “자유로운 연구자들의 공동체”의 속성이 되어야 합니다. 교사는 정해진 매뉴얼에 정통한 전문가가 아니라 자신의 영역의 애정과 창의적인 정신을 발휘하는 전문가가 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교사의 전문성 신장은 교사뿐 아니라 사회 전체적으로 전문성이라고 하는 것의 새로운 의미 정립을 위해서도 중요한 일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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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좋아하는 사람들이 권력을 잡고 있다. 미국 좋아하는 사람들, 아니 미국을 신앙하는 사람들이 정책을 결정하고 있다. 그런데 한사코 미국을 안 따라하는 것이 있다. 바로 교장제도, 교사 승진제도, 학교 행정제도다.

우선 미국 교장제도의 특징은 "교장선생님"이 아니라는 것이다. 즉, 교장은 교장이고 선생님은 선생님이다. 우리말의 교장선생님에 해당되는 말은 head teacher로 이는 일부 명문 사립학교에서 시행되는 제도인데, 대부분의 공립학교는 이에 해당되지 않으며 principal을 두고 있다.

head teacher는 교육자의 대표로서 교장 개념이다. 명문 사립학교에서는 교사들 중에서 자원을 받아 면접과 기타 심사를 거쳐 이사회에서 위임한 심사위원들이 교장을 선출한다. 이 교장선생님은 교사보다 훨씬 바빠사 학교의 대소사는 물론 각종 상담과 지도업무까지 감당한다. 교사들은 학생들을 처벌하고 상담하는 경우가 드물다. 이건 다 교장이 하는 일이다. 그래서 이 교장선생님들은 전교생의 이름과 특성을 다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하는 일로 봐서는 우리나라 교장보다는 차라리 학생주임 더하기 상담부장에 가깝다.

principal은 행정직의 개념으로 사실은 교장이라는 번역어도 적당하지 않다. 어쨌든 이 교장이 하는 일은 오히려 우리나라 학교의 행정실장에 가깝다. 교장1인과 교감 1~2인, 그리고 비서(우리나라 행정실장)와 행정직원 2인 정도가 그야말로 수업을 제외한 학교의 모든 사무를 다 담당한다. 이른바 장학업무도 담당하는데, 이는 애로사항을 듣고 조치를 취하기 위함이지, 교사에게 지시를 하기 위함이 아니다. 즉, 미국의 교장은 교사의 상관이 아니다. 단지 교감과 행정직원의 상관이다. 교사들은 수업과, 수업을 위한 연구 외에는 아무런 책무가 없다. 학교의 각종 소소한 관리 업무는 교장의 책무다. 즉, 그런 일들을 감독하는게 아니라 "직접 하는 것"이 교장의 책무이며, 혼자하기 힘들면 교감과 같이 하는 것이다. 공문서 트집잡아서 수업하느라 바쁜 교사에게 다시쓰라고 헛소리 하는 것이 아니라, 공문서를 직접 작성하는 것이 교장의 일이다.

그래서 미국 학교의 교사들은 수업시간이 아니면 얼굴 보기도 힘들다. 각자 연구실에 들어박히며, 일단 연구실에 들어간 교사는 학부모나 학생이라 할지라도 약속없이 만나기 어렵다. 그렇다면 각종 애로 상담은 누구한테 할까? 그건 교장의 일이다. 각종 제증명 발급은 누구 일일까? 그것 역시 교장 책임하에 행정직원이 한다. 한마디로 교장입네 하고 에헴 하는 그런 것은 있을 수 없다. 기본적으로 교사가 승진해서 교장이 되는 것이 아닌데, 무슨 에헴인가? 대학원에서 교육행정 석사 받고, 교장 연수 받은 뒤에 15개월인가 교장 시보 수련을 받으면 교장 자격증 받을 수 있는게 미국이다. 그러니 20대에도 교장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자, 미국 좋아하는 사람들. 이런 것 좀 따라해라. 제발 미국처럼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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