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강남지역에 있는 어느 중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전해 들었다. 이야기는 이렇다.

그 학교에 새로 교감이 왔다. 전라남도에서 죽 교사생활을 하다가 서울에 올라와서 교감이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교감은 상식이하의 교감이었다. 교감이라기 보다는 거의 시정잡배에 가깝다고 한다. 교무실에서 큰소리로 교사들에게 호통을 치며, 전혀 문제되지 않는 사소한 사안을 가지고 고집을 부리며, 무슨 회식이든 간에 공짜로 술 먹을 수 있는 자리면 꼬박꼬박 찾아가서 고주망태로 꼬장을 부렸으며, 기간제 교사들과 젊은 여교사들만 골라서 호통을 치고 마치 학생부 교사가 문제아 대하듯이 무례한 언동을 일삼았다. 당연히 학생들에게도 함부로 대해서 여학생의 복장을 지도한다는 미명하에 치마를 들추고, 탁구채로 뺨을 치기까지 하였다. 이런 무뢰한이 어떻게 교감이 되었나 했더니, 전라도에서 근무하던 시절 각종 벽지근무 점수를 미친듯이 수집했다고 한다. 참으로 해괴한 승진제도를 가진 나라에서나 볼수 있는 풍경이다.

모든 교사들이 그를 미워했다. 그가 참석한다고 하면 회식이 취소되었으며, 교사들 셋 이상만 모이면 으레 화제는 교감 흉보는 것이었다. 심지어는 교장조차 그 교감의 무례한 언동에서는 예외가 되지 않았다. 교장이 여자라는 이유로 그 조폭 스타일의 교감은 멋대로 행동했고, 전혀 통제가 되지 않았다. 어쩌다 교사가 교장과 상의하여 어떤 일을 처리하면, 교감인 자기 무시했다고 마구 행패를 부렸다. 게다가 그는 무능했다. 무능하기 때문에 교육청 장학사에게 무시당했으며, 그러니 무슨 승진점수 될만한 프로젝트도 따오지 못했다. 그래서 교감임에도 불구하고 승진에 목마른 승진병 환자들, 점수병 환자들과도 사이가 나빴다. 승진병 환자들과 사이가 나쁜 교감이니 거의 할말 다 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어느날 그 학교를 몇 해 전에 졸업한 졸업생이 졸업증명서를 떼러 찾아왔다. 그 졸업생은 소위 양아치였기 때문에 아주 보기 드문 복장을 하고 있었다. 그 졸업생이 재학생인줄 알았던 이 무뢰배 교감은 느닷없이 졸업생에게 "이 새끼가 복장이 이게 뭐야?" 하면서 귀싸대기를 한대 올려 붙였다. 느닷없이 봉변을 당한 졸업생이 자기가 학교 다닐때 보지도 못했던 교감에게 얻어맞고 참을 턱이 있겠는가? 마침내 둘 간의 몸싸움이 벌어졌다.

이 때 해괴한 일이 벌어졌다. 그 동안 그토록 교감을 미워했던 교사들이 일제히 교감 편을 드는 것이다. 심지어 그 졸업생이 첨 보는 교감에게 가격당한뒤 반격했다는 사실을 들어 "교권이 땅에 떨어지고, 교사할 맛이 안나고"운운을 하기 시작했다. 이 사건을 보고 제보자는 참담함을 느꼈다고 한다. 교감이 함부러 폭력을 휘두르다가 제대로 한껀 걸렸구나, 이렇게 생각이 드는게 아니라 교권의 무너짐으로 생각한다는 것은, 그 동안 교감의 무뢰배짓을 인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학교의 일이라는게 항상 그렇다. 아무리 무지한, 무식한, 그리고 거의 범죄수준의 교사나 교감, 교장이 있더라도 막상 그들이 학생, 학보모, 여하튼 학교 밖의 누군가와 부딪치게 되면 갑자기 놀라운 단결력을 보여준다. 가재는 게편인가? 초록은 동색인가? 평소에 똥같이 여기던 작자와 같은 편이 된다면 결국 스스로를 똥으로 만드는 것일텐데, 교사집단은 그 점에서는 늘 한결같은 반응을 보인다. 여기에는 전교조 교사도 예외없다. 심지어 부정비리 사학의 재단 앞잡이 교사라도 학부모와 대거리를 벌이면 거의 교사편이 된다. 참으로 한심한 노릇이다.

혹자는 누워서 침뱉기 해서 뭐하냐고 하면서 이런 꼴을 정당화 시킨다. 그러나 누워서 침뱉기를 두려워하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내가 지금 누워있는 자리가 제자리가 아니라면 누워서 침뱉기라도 해야 한다. 그래야 그 자리를 떠날 마음이 생기지 않겠는가? 누워서 침뱉지 않는 교사, 학교, 참으로 암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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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자녀가 정신병자의 손아귀에서 깨어 있는 시간의 대부분을 보내고 있다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 당신은 자녀가 영리하고 유능한 정신병자와 둔하고 무능한 그러나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 중 누구와 함께 시간을 보내기를 바라는가? 당연히 후자일 것이다. 그러나 학생도, 학부모도 누구도 여기에 대해서는 신경을 쓰지 않는다.

많은 심리학자들은 인간의 정서적 건강이 매우 불안하고 예민한 균형상태에서 유지되고 있음에 동의하고 있다. 특히 자아의 존재론적 안전감은 그것을 지켜주는 든든한 배경이 무너질 경우 정처없이 흔들리게 된다. 이렇게 존재론적 안전감이 위태로워질때 자아는 본능적으로 만사를 자아의 안전을 위해 재배치한다. 즉, 정신적 정당방위를 시도하는데, 그 과정에서 타인들에 대한 세심한 배려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존재론적 안전감의 배경에는, 공유되는 신념, 반복되어 온 관행, 자연, 전통, 가족과 같이 비교적 영속적인 친밀한 관계 등이 있다. 즉 아무리 풍파가 닥쳐와도 큰 변화 없이 의존할 수 있는 그런 문화적, 사회적, 심리적 대상들이 있다.

그러나 오늘날 이런 것들 중 그 어느 것도 안전하지 않다. 최근의 요동치는 금융 위기는 안전하지 않은 현대의 상징이다. 어떤 변화에도  불변이었던 재산의 상징이었던 "금"과 같은 상품은 존재하지 않고, 브레턴우즈 체제 붕괴 이후 "달러"도 한낱 유동성이 되었다. 그 어느 가치도, 제도도, 관행도, 가족관계도 안전하지 않다.

학교는 그 동안 비교적 안전한 공간이었다. 입시교육이라는, 그리고 관료주의라는, 권위주의라는 불변의 관행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모두 위협받거나 해체되고 있다. 해체되는 관료주의 하에 교사들은 스스로 생각할 필요 없이 그저 따르기만 하면 되었던 각종 관행들이 무너지는 것을 체감한다. 이제 교사들은 권위와 관행이라는 버팀목이 사라진 상황에 스스로 적응해야 한다. 학생들에 대한 권위는 스스로 만들어야 하며, 학생들과의 친밀감도 저절로 생기지 않아, 늘 협상하고 타협하고 감정노동을 해야 한다. 물론 그 과정에서 상처도 받아야 한다.

특히 여기에서 몸부림을 치게 되는 존재들은 교감, 교장들이다. 이들은 과거처럼 단지 교장, 교감이라는 이유만으로 내리게 된 네크로필리아적 명령들이 번번히 반발과 항의에 부딪치는 상황을 견디지 못한다. 결국 명령이 관철되기는 하지만, 그것은 교사들이 인간적인 감정이 더 악화되는것이 싫어서 마지못해 하는 것이지, 과거와 같은 복종이 아니다. 교장, 교감들 역시 그것을 잘 안다. 명령이 떨어지면 즉시 "예"하는 교사들이 아니라 앙앙불락한 얼굴로 마지못해 하는 교사들과 계속 같은 공간에서 얼굴보며 생활하는 것은 결코 유쾌한 일이 아니다. 이들은 딜레마에 빠진다. 교직원들이 심리적 안전감을 주는 공동체가 되려면 교장, 교감의 권력이 무너져야 한다. 그 권력을 지키려면 자신을 적대시하고 백안시하는 수십명의 교사들 가운데 섬처럼 존재해야 한다.

이런 상황은 교장, 교감들을 자기도취적 장애 상태로 이끈다. 그리하여 이들은 난초, 바둑 같은 개인적인 취미에 탐닉하거나, 아니면 교사들을 괴롭히는 가학성 변태행위에서 쾌감을 추구하거나, 아니면 상황이 어려워질수록 더욱 더 자신의 아집에 집착한다. 이로써 이들은 완전히 자아를 상실하고, 정서적으로 망가진다. 이런 정서적 망가짐은 수시로 솟구치는 분노의 형태로 내장되며, 이는 많은 교장, 교감들을 시한폭탄 같은 존재로 만든다. 문제는 교사들 역시 학생들을 상대로 이런 상태에 처해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학교의 교무실이란 시한폭탄들로 득실대는 무시무시한 장소다. 여기서는 멀쩡한 사람도 상처받기 십상이다.

어쩌면 이것이 공교육보다 사교육을 신뢰하는 이유중 하나인 것 같다. 직접 누가 해 본적은 없지만, 아마도 학원 강사들이 학교 교사들보다 정서적으로 더 건강할 가능성이 크며, 이는 경력이 길어질수록 더욱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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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선생님이 시킨대로 했을 뿐인데...... 손이 발이된 중학생의 사연

    Tracked from 가장 힘든때 무엇을 결의하고 어떻게 행동하는가 이것으로 인생은 결정된다. 여기에 인간의 진가가 있고 위대함이 있다. 2009/07/05 17:09  삭제

    둘째놈 입원한 병원에 가는 중에 처형이 들려준 첫째놈의 근간의 일을 들려주었습니다. 듣고보니 "아하! 그게 그런 사연이 있는 아이스크림이었구나" 우리가족에게만 재미있는 사건일지는 모르지만 소개합니다. 부반장의 역직에 대한 애착 첫째놈은 중딩1학년입니다. 부반장이기도 하구요. 그런데 부반장이라는 자리가 나름대로는 자신을 아이들로 부터 지탱해주는 유일한 버팀목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래서 임기가 6개월이면 이번달에 재선출해야하고 떨어지면 자신을 아이들..

일본에서 올해 노벨상 수상이 4명....이것은 충격이 아닐 수 없다.

학교교육이든 사회교육이든, 정부의 방침이든....우리와 비슷하면서도 상당히 다른 일본으로부터 우리는 진정 배우고 있는가?

일본을 능가하는 미래의 비젼을 우리는 구상하고 있는가? 답답한 상황이다.

일제고사, 성과급, 다면평가 등 수면 위에 떠오르는 거품같은 문제들에 집착하는 정부를 보면서....

또 이와 상대하지 않을 수 없음을 인정하나 여전히 전교조도 정부의 방침에서 시야를 떼고 저 멀리 개혁안을 내고 근본개혁을 촉구하면서 국민에게 알리는 작업을 하지 못하고 있다.

학급당 학생수 20명 안쪽으로 줄이기, 행정보조원 대거 투입, 교과교실제(이동수업), 학벌타파의 구체적인 대안, 학력인플레를 완화시키기 위한 실업교육 정상화, 승진의 왜곡된 열기를 바로잡기 위한 노력 등 구조적인 개혁의 물줄기를 타지 못하고 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며, 지금껏 그래왔다.

어제 어느 지역의 과학고에 근무하다 올해 내가 있는 학교로 전출온 50대 중반 가까운 연령대의 선생님이 말한다. "과학고에 근무하는데 거기서는 각종 수학, 과학경시대회 등에 아이들을 출전시키고 실적을 내는 정도에 따라 교사를 비교하고, 그리고 각종 수상경력 등은 실적이 되어 교사의 근평에 영향을 주고, 교사 자신도 출품해서 점수 따고....스트레스가 많더라구요. 승진을 위해서 과학고의 아이들도 일종의 희생을 치르고 있어요. 승진구조 이대로는 안되겠는데....다른 대안이 없으니 또 응하고 있습니다."라고 한다.

과학고도 취지와 어긋나게 기초 과학영재를 키워내는 것이 아니라 당장 실적내는 각종 경시대회에 내보내고, 학벌사회의 정점에 있는 서울 연고대에 보내며 우리의 인재들은 과학분야의 기반을 다질 기회를 상실케 하고 있다. 그래서 노벨상은 더욱 멀어지고 있다.....

이제 훌륭한 교과부 장관이 나오기를 기대하는 것은 그만두어야 할 것 같다. 바로 전교조가 먼저 국민들에게 교육개혁을 제대로 하지 않은 결과가 어떤 것인가를 중심으로 각종 통계자료, 인터뷰 자료 등을 토대로 국민 즉 시민단체에 알리고 대대적인 교육개혁 운동을 벌이지 않으면 희망은 없을 것 같다. 늘 지리멸렬하게 이렇게 정권의 정책에 따라 물결에 따라 표류하며 일렁이는 가운데 떠내려가듯이 우리의 교육은 그렇게 갈 것 같다.

해외유학, 조기유학 등은 계속 늘고... 교육후진국이라는 불명예는 무겁게 우리를 누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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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건 교장으로 승진하기라는 의미가 아니다. 승진을 해서 부임한 교장이 어떻게 교장이 되어가나라는 뜻이다. 즉, 이른바 교장단 회가 가지고 있는 사회화 기능에 대한 짤막한 고찰이다. 실제로 전교조 출신 공모제 교장들이 가장 힘들어 하는 것도 이른바 교장단회에서 따돌림을 받고, 그들과 어울리기 힘들다는 것이다.

전교조 출신은 아니지만, 내가 무척 좋아했던 퇴직 교장이 있어서 한번 물어 보았다. 도대체 신임 교장들은 어떤 식으로 교장의 관행을 배우는가? 그 분의 입에서 토로된 기가막힌 사례들은 이렇다.

1) 처음 교장단 회에 나가자 퇴직이 얼마 안남은 노련한 교장이 선배 노릇을 하며, 이것 저것 가르쳐준다며 귀찮게 굴었다. 그런데 그 이것 저것이란 어떻게 이중장부를 잘 활용해서 각종 공사, 기자재 납품 등에서 돈을 남겨 먹을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분은 그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서는 하도 복잡하고 듣기도 더러워서 기억하지 않았다고 한다.

2) 그 분이 또 선배 교장들에게 들은 비법은, 법인 카드를 이용해서 친지들 대접하기였다. 자기 돈 내서 식사하는 교장은 바보라는 말까지 들었다고 한다. 물론 각종 경조사 비용도 자기돈으로 내는 교장은 바보 소리 듣는다고 한다.

3) 그럼 교육자로서 학교 운영자로서 교장의 비법과 노하우는 전수되는가 물어봤더니, 그런거는 거의 없고, 기껏 모여서 하는 이야기가 누구네 학교는 전교조가 많아서 힘들다더라, 전교조 잡는 법은 분회장에게 승진점수 메리트를 주면서 꼬시는 거라더라 등등의 것들이라고 했다. 그리고 각종 교육 예산의 헛점을 이용해서 해외여행 나갈 궁리들을 하더라는 것이다.

간혹, 교육적 마인드에서 진지한 대화를 꺼내 보는 교장이 있기도 하지만, 그렇게 했다가는 "교장 처음 해보나?" 하는 이상한 반응에 직면하기 일쑤라고 한다. 교장단회의... 도대체 그 안에서 오가는 이야기를 누가 몰카로 녹음이라도 했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하긴 견제받지 않는 권력은 썩을수 밖에 없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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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실련은 전교조에서 현재 정진화 위원장이 속해있는 정파입니다. 그들에게 전교조내 유일한 공개 정파인 "새로운 힘"이 던지는 공개 서한입니다.

들어라 참실련이여!

  <참실련>은 전교조가 중요한 기로에 섰을 때 마다 잠시 망설이고 서성거렸지만 늘 <교찾사>를 따라갔다. 7차 교육과정 투쟁 때에도 교원평가 투쟁 때에도 그랬다. 조합원 총 투표제 논쟁 때에도 그들은 그랬다. 잠시 무언가 다른 태도를 보일 듯이 머뭇거리다 막판에 어정쩡하게 조합원 총 투표제를 사실상 포기하며 <교찾사>와 함께 했다.

  그런 의미에서 스포츠 구단으로 따지면 <참실련>과 <교찾사>는 한 구단에 속한다. 그리고 그 구단에 2군은 <참실련>이다. <참실련> 입장에선 다소 억울한 평가일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냉정히 과거를 되돌아본다면 그리 억울할 일도 아니다. 술자리나 사석에서 이러쿵저러쿵 서로 이야기하면서 느낀 감정상의 차이나 혹은 방법상의 차이는 냉정히 빼고 말이다. 감정상의 차이나 방법상의 차이는 한 구단의 1군 2군에도 있다.

  교장선출보직제 등 몇 가지를 우선정책으로 내세웠다고 주장할 런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정책은 전교조가 처한 현실에선 늘 문건 속의 정책으로 끝났다. 전교조 현실에선 7차, 성과급, 네이스, 교원평가가 세상과 부딪히는 전선이었다. 그리고 그 전선의 주도권은 늘 <교찾사>가 만들었고 주도했다.

  따라서 <참실련>을 평하는데 사실 정책은 필요 하지 않다. 그렇다면 무엇을 통해 <참실련>을 들여다보아야 할까? 그것은 그들의 주의주장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이 조직의 중요한 순간에 행한 행동을 따져보는 것이 <참실련>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2000년 전교조선거 때 <참실련> 후보의 슬로건은 <국민과 함께>였다. 그러나 <교찾사>의 ‘7차 교육과정 투쟁 올인 노선’에 모든 것을 내줌으로써 국민과 함께는 커녕 ‘참교육 학부회’ 등 중요한 우군들마저 잃어갔다. 그러나 이 정도만 해도 한 번의 실수로 봐줄만하다. ‘신자유주의’, ‘교육과정’ 담론에 접하며 당황했거나 혹은 아직 내부 정리가 미처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었으니까.

  2004년 선거 때는 ‘국민에게 박수 받는 전교조!’로 후보를 내세운 <참실련>은 교원평가에 대해 애매모호한 태도를 보이면서 국민적으론 교원평가 강력반대 연가투쟁 을 배치했다. 그로인해 국민에게 박수는커녕 삿대질만 받는 꼴을 자초했다. 역시 <교찾사>노선에 충실한 대리인 역할만 한 꼴이다.

  1
2006년 선거 때의 일이다. <참실련>의 가장 주요한 슬로건은 <고립을 넘어>였다. 그리고 선거의 쟁점은 ‘교원평가’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 였다. <새로운 힘>은 학생에 의한 수업평가 제도화로 정부의 교원평가 국면을 넘어서자고 했다. 학생의 수업평가권 확대요구는 전교조의 정신이며 가치라고 했다. <새로운힘>은 교원평가 국면에서 그것이 전교조의 유일한 무기라고 했다.

  <교찾사>는 새힘의 이런 정책을 정부정책 수용론자로 몰아붙였다. 그러나 <참실련>은 <새힘>의 정책에 많은 <참실련> 구성원들이 사실상 동의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의 선거 슬로건이 <고립을 넘어!>로 설정했다는 것은 전교조가 처한 현실을 인식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 핵심에 교원평가가 있다는 사실도 인지했을 것이다. 그래서 하물며 <참실련> 후보까지 개인적인 자리에선 <새힘>의 정책에 동의했다.

  그러나 거기까지다. 그들은 여전히 그 순간에도 자신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행동하지 않았다. 혹 수용 론으로 몰릴까 두려워 더욱 소리 높여 교원평가 반대를 외쳤다. 왜 일까? 이유는 간단했다. 그걸 주장해서는 집권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자신의 집권이 전교조의 가치보다, 전교조의 고립보다 더 중요했던 것 일까? <참실련>의 태도는 늘 그랬다.

  2008년 8월 대의원 대회에서도 그랬다. 당시 <참실련>의 대다수는 MB정권이 전교조 고립화 전략으로 ‘교원평가’를 몰아붙이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교원평가 반대는 최악의 선택이라는 사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교원평가에 대한 입장을 수정하지 않고는 난국을 돌파할 수 없다는 것도 그들은 충분히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언제나처럼 자신의 생각대로 행동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시민사회단체와 그리고 자신 속에서 요동치는 의지를 용기 있게 선택하기보다는 또 다시 <교찾사>눈치와 곧 다가올 전교조 선거에서의 승리를 선택했다. <참실련>은 전교조의 중요한 길목에서 늘 용기 없고 비겁한 행동을 반복 했다. 그 결과 전교조는 지금 매우 어려운 처지에 놓여있다. 단지 몇 가지 잘못으로 지금 전교조의 처지를 진단하는 것은 다소 과도하다고 생각할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전쟁은 결정적인 몇 가지 잘못으로 패한다. <참실련>의 책임이 무겁다.

  늘 그랬다. 중요한 사안에 대해 애매모호한 태도로 쭈빗 거리고 결단의 시기에 이 눈치 저 눈치 살피고, 자기의 생각마저 용기 있게 표현하지 못하는 것이 <참실련>의 현재까지 모습이다. <참실련>이 친목계 모임이 아닌 운동가들이 모여 만든 의견구룹이기 위해서는 자기의견을 있는 그대로 내놓는 용기부터 배워야한다. 선거에 집권하겠다고 뛰어들 때의 용기처럼.

2

대의와 가치 추구보다 집권을 우선하는 행동은 정치꾼들이나 하는 것이지 운동집단

이 할 일은 아니다. 우리가 세상 속에서 운동을 할 때 대의명분과 운동이 추구하는 가치를 최우선으로 삼아 한 발 한 발 가듯이 우리내부를 변화시키는 운동도 그렇게 가야하는 것이 맞다. 그걸 잃어버린 순간 더 이상 운동집단도 운동가도 아니다.

  어쩌면 지금 <참실련>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반교찾사 집권전략이 아니라 자신의 내부를 들여다보는 것이다. 그리고 치열하게 자기정체성에 대한 검증이 요구된다. 그 과정에서 용기도 배워야한다. 전교조의 미래를 결정하는 사안에 대해서는 자신의 정파마저 가벼이 보는 용기, 전교조가 추구했던 교육적 가치를 두고는 교사들하고도 싸울 수 있다는 용기.

  분명한 가치정립과 그것을 행동으로 조직할 용기를 만들어 내지 못한다면 <참실련>의 미래는 언제나 그랬듯이 <교찾사>의 대리인역할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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